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73
1273화 너희 강도야?
선조 소환!
사실 이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던 것이었다.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선조가 누구인지, 실력은 어떠한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선조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내 선조는 누구일까?
혈맥이 이렇게나 강한 걸 보면 보통 존재가 아닌 것은 틀림없으리라.
엽현은 이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당장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때 그의 몸 안의 피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장내에 나타난 조혈의 영향이었다. 하지만 엽현의 혈맥은 다른 무인들처럼 조혈에 압도되진 않았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방심할 순 없는 법이다.
엽현은 고개를 돌려 도삼생을 바라보았다. 이때의 도삼생은 조혈이 시작된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잔챙이는 아닌 모양이야. 꽤나 하는 놈 같은데”
“…….”
바로 이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중년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색 비룡이 수놓아진 검은 장포를 입고 있는 중년인은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로 수미신국의 초대 국주였다.
초대 국주의 등장에 수미신국 무인들은 황급히 무릎을 꿇었고, 일부 황족들은 오체투지(五體投地)하며 예를 갖췄다.
이들은 모두 초대 국주의 기운에 압도된 상태였다.
조혈 지닌 자들 중 가장 강한 혈맥이 나타났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수미신국 무인들에게 있어서 초대 국주의 혈맥은 언젠가 초월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넘보지 못할, 거대한 산과 같은 것이었다.
이때 장내를 내려다보던 중년인이 가볍게 손짓하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혈맥의 기운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러자 수미신국의 무인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때 중년인의 시선이 도삼생에게로 향했다.
“도석?”
도석!
엽현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도삼생의 정체를 알아보는 자가 있을 줄이야!
도삼생 역시 중년인을 향해 다소 기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본 군사를 아는가?”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주 오래전, 저승에 들렀던 적이 있소. 내 기억이 맞다면 그대는 저승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로군.”
순간 도삼생의 입가가 실룩였다.
“도망쳐 나온 게 아니라… 내 발로 걸어 나온 거야! 내 발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삼생이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쾅-!
굉음과 함께 강대한 기운이 장내에 휘몰아쳤다.
이때 정면의 중년인 역시 마찬가지로 일권을 내질렀다.
순간, 거대한 핏빛 권인(拳印)이 그의 주먹 위에 번뜩였다.
쾅-!
중년인과 도삼생 사이에 있던 공간이 폭발하며 그대로 허무로 변해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진 공간은 다시 곧 복구되었다.
무인들의 시선은 중년인에게로 향했다. 이때의 중년인은 비록 십여 장 밀려난 상태긴 하지만, 중요한 건 도삼생의 공격을 견뎌냈다는 것이었다.
증도경!
엽현은 한눈에 중년인의 경지가 최소 증도경이란 걸 파악했다. 그게 아니라면 한 줌 분혼(分魂)에 불과한 그가 도삼경의 주먹을 막아낼 수는 없었으리라.
엽현은 자신들이 수미신국의 힘을 다소 얕보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때 중년인이 재차 출수하려던 도삼생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손만 까딱 해 보시오. 내 당장 저승에다가 그대의 위치를 알릴 테니!”
이 말에 도삼생이 멈칫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후후, 분혼에 불과한 내가 어찌 그대를 협박할 수 있겠소? 다만 나 역시 이 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말이오. 그대가 이쯤에서 멈춘다면 나도 선을 넘지는 않겠소.”
도삼생은 고민에 빠졌다.
저승!
도삼생의 표정을 살펴보던 엽현은 그녀가 저승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자신을 속인 건 둘째 치고, 이 여인이 두려워할 정도라면 저승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이때 중년인이 말을 이어갔다.
“부디 잘 생각해 보시오. 나는 그대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소.”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던 도삼생이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저승 따윈 두렵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쳐들어갈 생각까지 하고 있다!”
“우리라면…”
중년인이 말끝을 흐리자 도삼생이 엽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나랑 저 남자!”
“…….”
이때 엽현을 돌아본 중년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액난지인!?”
“…….”
“액난지인을 타고 난 자가 어찌…”
중년인의 반응에 엽현이 웃으며 되물었다.
“왜 아직 살아 있는지 궁금한 것이오?”
“크흠…….”
중년인은 잠시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백발노인에게 소리쳤다.
“너희는 도대체 저 두 사람과 무슨 원한을 진 것이냐?”
“그것이…”
백발노인은 말을 더듬이며 그간에 엽현과 있었던 일을 소상히 설명했다.
노인이 말을 마치자 중년인이 다시 엽현을 돌아보았다.
이때 그의 눈에는 기이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도경… 도경이 네게 있는 것이냐?”
이 말에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내게 없소! 아니, 정확히는 극락지계가 강탈해갔소!”
백발노인이 반박했다.
“엽 공자, 우리도 눈과 귀가 있거늘 어찌 그리 뻔한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뻔한 거짓말에 놀아난 것은 바로 그대들이오! 그대들은 극락지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오?”
엽현은 이것만큼은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일단 인정하게 되면 도계 역시 등을 돌리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
이때 도삼생이 엽현에게로 다가와 속삭였다.
“이제 어떡하면 좋소?”
“군사, 그대의 실력이라면 물리칠 수 있지 않소?”
도삼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오. 하지만…”
“저승이 알게 될까 두려운 것이오?”
도삼생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계획은 저승을 급습하는 것이었소. 하지만 그들이 내 위치를 알게 되면 이 전략은 폐기될 수밖에 없소. 아, 무섭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다른 적들과 손을 잡고 덤비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오!”
엽현이 과장된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 말이 옳소! 그러면 여기서 일단 후퇴하는 건 어떻겠소? 전략적으로 말이오.”
“전략적 후퇴!”
도삼생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후퇴 또한 병법의 하나, 빠르게 후퇴합시다!”
도삼생은 엽현의 소맷자락을 붙들고서 도망치려 했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군사, 서두를 것 없소.”
“음? 그게 무슨 소리요? 언제는 후퇴하자며?”
“후후,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않소?”
“그 말은 그러니까…”
이때 엽현이 도삼생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훗날 저승과 일전을 벌이려면 많은 물자가 필요할 것이오. 그리고…”
엽현이 수미신국의 황궁이 있는 방향을 흘끔 쳐다보았다.
“듣기로 수미신국에 쟁여 놓은 보물이 어마무시하다고 하오. 그것을 조금 빌릴(?) 수 있다면 우리 병사들의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오!”
순간 도삼생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간만에 좋은 의견이로군!”
도삼생은 곧바로 백발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수미신국! 값나가는 물건이 있거든 당장 바치거라!”
“…….”
순간,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물건을 바치라니?
갑자기 싸우다 말고 강도짓을 하려는 것인가?
이때 백발노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 이보시오. 그러니까 지금 강도짓을 하려는 것이오?”
이에 도삼생이 당황한 표정으로 엽현을 돌아보았다.
“여, 엽 맹주. 정말 이게 맞소? 이건 누가 봐도 강도짓…”
“군사, 강도짓이라니요. 그저 잠시 빌리는 것뿐이오!”
도삼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빌리는 거야! 나중에 쓰고 주면 되잖아!”
도삼생은 잔뜩 눈을 부라리며 다시 백발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훔치려는 게 아니라 빌리는 거다! 당장 빌려줘!”
백발노인이 기가 차서 대꾸했다.
“빌리든 빼앗든 절대 안 되오!”
도삼생이 도움을 구하듯 엽현을 쳐다보았다.
이에 엽현이 중년인을 향해 소리쳤다.
“할 수 없군! 순순히 빌려주지 않으면 강제로 빌리는 수밖에!”
엽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삼생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찰나의 순간, 사방 천지의 공간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보자 엽현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이 기운은 그가 앞서 경험했던 도삼생의 세 가지 힘이었다!
이 세 가지 기운은 엽현의 육신을 그대로 무너뜨릴 만큼 강력했다. 막념조차 도경무학보다 강하다고 했을 정도니 그 위력은 이미 보증된 것이나 마찬가지!
한편, 중년인의 안색 또한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가 느끼기에 도삼생이 뿜어내는 힘은 충분히 수미신국의 본원(本源)에까지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도였다.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러려면 자신은 소멸을 각오해야만 하리라!
생각 이상으로 강한 상대다!
도삼생이 막 출수하려는 순간, 중년인이 소리쳤다.
“원하는 대로 다 주거라!”
백발노인이 놀란 표정으로 중년인을 쳐다보았다.
이 말은 즉, 선조의 능력으로도 저 여인을 막기 어렵다는 뜻이 아닌가!
한편, 중년인의 말을 들은 도삼생은 살며시 손을 내려놓으며 한 마디 하려 했다. 이때 곁에 있던 엽현이 갑자기 소리쳤다.
“시간 없소! 빨리 빌리러 갑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엽현은 도삼생의 팔을 붙잡고서 황궁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당당하게 도둑질하러 가는 것을 보고도 수미신국의 그 누구 하나 두 사람의 앞을 막는 이는 없었다.
자신들의 선조조차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 뭘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두 사람은 황궁을 돌면서 미친 듯이 쓸어 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확인조차 하지 않고 계옥탑에 던져 넣었다.
이뿐만 아니라, 수미신국 강자들을 협박해 그들이 차고 있는 납계까지 몽땅 거둬들였다. 처음에는 반항하던 무인들은 도삼생이 실력 발휘를 하려 하자 별수 없이 원하는 것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엽현은 더욱더 철저하게 ‘빌리기’ 위해 소령까지 소환했다. 그녀의 감응 능력이라면 꼭꼭 숨겨진 물건들까지 손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령은 처음에는 싫은 내색을 보였지만, 얼마 가지 않아 더욱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가만히 있는 물건을 쓸어 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수미신국인 만큼 그 양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결국, 한 시진에 걸친 약탈이 끝난 후.
수거한 납계만 무려 삼백 개가 넘어갔다. 이 삼백 개의 납계 안에는 수미신국 강자들과 황궁 보고의 물건들이 넘치기 직전까지 담겼다.
엽현은 눈 앞에 펼쳐진 납계들을 보며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 양이라면 오유계의 무인 전체를 무장시킬 수 있음은 물론, 중간 급 무인들의 실력까지도 한층 더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오유계 전체의 실력을 크게 향상시킬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