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76
1276화 적당히 해, 적당히!
엽현이 웃으며 강우의 말을 끊었다.
“걱정은 고맙지만 결국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 방법 말고는 없소.”
“흠…….”
“하지만 그대 말대로 홀로 적진으로 가기엔 위험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오. 해서 그대들의 도움을 구하고자 하오.”
순간 강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우리에게 동행을 요구하는 것이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도계의 모든 둔일경 강자들을 대동하게 해 주시오. 물론 그대들은 극락지계로 들어갈 필요 없이 경계 바깥을 지키고만 있으면 충분하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각오와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니까.”
“흠…….”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는 강우를 보자 엽현은 진중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응시하며 말했다.
“어차피 결과는 둘 중에 하나요. 서로 상생하던가, 전쟁을 치르던가. 그렇지 않소?”
강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이청 또한 마찬가지로 엽현을 흘끔 쳐다볼 뿐,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쉽사리 결정하기에는 사안이 너무나 중대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도경을 얻으려 하면서 이런 수고도 하지 않을 줄 알았소? 게다가 시간은 절대 우리 편이 아니오.”
이 말에 침묵하던 강우가 입을 열었다.
“엽 공자, 솔직히 말하자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소. 이건 그야말로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 아니오?”
엽현이 강우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웃으며 대꾸했다.
“그대들 생각은 잘 알겠소. 그대들이 협조할 마음이 없다면, 할 수 없이 저쪽과 도경을 공유할 수밖에!”
그대로 등을 보이며 떠나가는 엽현.
이를 보자 강우와 이청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극락지계와 도경을 공유하겠다!
이 말을 듣자 강우와 이청의 안색이 크게 달라졌다.
자신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엽현이 극락지계에 투항하는 것이 아니던가! 만약 엽현이 서옥을 여는데 협조하고, 극락지계가 도경을 얻게 된다면 그동안의 자신들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 생각이 미치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엽현을 막아섰다.
“엽 공자! 왜 이리 서두르는 것이오! 우리도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니오!”
강우가 다급히 외쳤지만, 엽현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미안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소.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다가 저쪽에서 서옥을 여는 방법을 찾아내기라도 하면 어쩌려 그러시오? 우리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오!”
이때 이청이 나섰다.
“엽 공자, 서옥이 극락지계에 있는 것이 확실하오?”
“이청 낭자,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
잠시 고민하던 이청은 결국 결심을 내렸다.
“그대와 함께하겠소!”
강우가 다소 놀란 얼굴로 쳐다보자 이청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확실히 시간을 끌면 불리한 것은 사실이오.”
“…….”
이제 강우의 결정만이 남은 상태.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강우는 결국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참하겠소!”
세 사람의 합의가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장장 팔십여 명의 둔일경 강자들이 엽현을 따라 극락지계로 향했다.
그로부터 대략 한 시진 가량이 지난 후, 엽현 일행은 은하수를 따라 어느 미지의 성역에 진입했다.
사실 엽현은 극락지계가 어딘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청이 알고 있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한참 뒤, 무리의 시야에 반짝이는 불상들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청이 멀리 보이는 천 장 높이의 황금불상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도착했소! 저곳이 바로 극락지계로 통하는 입구요!”
엽현은 이청이 가리킨 불상을 바라보았다. 바로 이때, 불상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눈동자로부터 두 줄기 금광을 뿜어냈다. 순식간에 성공을 가로지른 금광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엽현 일행이 뭉쳐 있는 공간이었다.
이때 강우가 가볍게 한 발 내딛음과 동시에 강렬한 일권을 방출했다.
쾅-!
순간, 강우 정면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지며 허무로 변했다. 이와 함께 날아오던 두 줄기 금광도 이 공간 안에 삼켜지고 말았다.
“아미타불….”
이때 들려 온 음성에 엽현 등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남루한 승복 차림의 승려였다. 손에 굵은 염주를 쥐고 있는 그는 비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큰 덩치의 소유자였다.
이때 승려가 엽현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젊은이가 바로 엽현 시주겠구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의 법명은 무엇이오?”
“미존(彌尊)이라 불러 주시오.”
엽현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미존 대사,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협상을 하고자 함이오.”
“협상?”
미존이 미간을 살포시 찡그리며 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대들이 나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서옥까지 뺏어 간 것은 너무한 처사였소.”
미존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엽현을 들여다보았다.
“엽 시주,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아고대보살은 이미 죽지 않았소?”
“주, 죽어? 그자가 말이오?”
엽현이 짐짓 모른 척하자 미존이 합장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엽 시주, 그 사정에 대해서는 그대가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리라 믿소.”
이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소. 내가 아는 건 그가 내게 중상을 입히고 서옥을 뺏어 달아났다는 사실뿐이오.”
“엽 시주.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오? 아고대보살은 그대 손에 죽지 않았소이까!”
이 말에 한쪽에서 듣고 있던 강우가 반응했다.
“그건 불가능하오! 엽 공자의 실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어찌 둔일 극경의 강자를 제거할 수 있단 말이오? 그것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서!”
미존이 미소를 띠며 강우를 돌아보았다.
“강 각주, 이제 보니 그대는 엽 시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것 같구려.”
“엽 공자…”
강우가 엽현을 쳐다보자,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이런, 이런… 불도를 닦는 고승께서 이간책을 들고나오셨을 줄은 미처 몰랐구려! 미존 대사, 당시 내가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것은 강 각주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전부가 직접 본 사실이오!”
이에 강우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엽현은 분명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한편 이청은 말없이 엽현을 응시했다.
이때 미존이 웃으며 말했다.
“엽 시주, 흑과 백을 바꾸는 능력이 이렇게나 탁월 한 사람은 그대가 처음이오. 사람을 죽여 놓고도 피해자 행세를 하다니, 이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구려.”
“대사,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내가 그자를 죽였다는 증거가 있소?”
강우가 미존을 쳐다보았다.
“대사, 혹시 그런 증거가 있소?”
이에 미존이 고개를 저었다.
“증거는 없소.”
당시 아고대보살은 육신과 영혼이 모두 소멸했으니, 증거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대사, 오늘은 시비를 가리려는 게 아니라 협상을 하러 온 것이오. 내가 알기로 그대들은 아직 서옥을 열지 못한 것 같은데… 내 짐작이 맞소?”
“엽 시주, 그렇게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엽현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몰아붙였다.
“대사, 그러지 말고 전향적으로 좀 생각해 보시오. 우리가 조금씩 양보하고 협조하면 모두가 도경을 볼 수가 있소. 이렇게 쉬운 일을 굳이 피 흘려가며 다툴 필요가 있느냔 말이오.”
미존의 안색이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엽 시주, 계속해서 말하지만 서옥은 이곳에 없소. 왜 자꾸 반복하게 하는 것이오?”
“흥! 보아하니 결국 혼자서 꿀꺽하시겠다는 거로군! 강 각주 어떻게 생각하시오?”
엽현의 말에 미존을 바라보는 강우의 표정이 점점 심상치 않게 변해갔다.
이를 본 미존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엽 시주, 이제 그만 하시오. 우리 불가의 불조(佛祖) 한 분이 이미 점괘를 받아 보셨소. 아고대보살은 그대에게 죽었고, 서옥은 여전히 그대에게 남아 있소.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대가 죽인 것은 확실한 거 아니요!”
엽현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시대에 점괘라니! 그럼 나도 한마디 해야겠소!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그대들이 서옥 갖고 도망치는 꿈이었소! 이걸로 보아 서옥은 그대들에게 있는 게 틀림없겠구려!”
미존이 답답한지 합장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엽 시주, 그대는 검수, 그것도 이쪽 우주에서 상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검수요. 그런 자가 어찌 시정잡배들처럼 툭 하면 거짓말하고, 사실을 호도할 수 있단 말이오? 그대는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소?”
“…….”
“엽 시주, 비록 적으로 만나긴 했지만, 우리 불가는 언제나 그대에게 예를 갖춰 대우했소. 부탁이니 이런 얄팍한 술수 대신 양지로 나와 정정당당하게 대결합시다!”
엽현은 억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그대를 두고 하는 말인지 몰랐소이다! 자꾸 내가 음험하다느니 거짓말을 한다느니 중상하려 하는데,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오? 툭 까놓고 말해서 증거가 있느냔 말이오!”
“…….”
“보시오 아무 말도 하지 못하지 않소! 서옥이 있다는 증거도, 아고대보살을 죽였다는 증거도 없소! 오히려 내가 보기에 서옥을 훔쳐 가고도 발뺌하는 그대들이 더 뻔뻔하다는 생각이오만?”
“…엽 시주, 그대가 이겼소. 더 이상 그대와는 할 말이 없을 것 같구려.”
말을 마친 미존은 염주를 굴리며 불경을 외기 시작했다. 치밀어 오르는 화기를 억제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 엽현의 손바닥 안에서 한 줄기 불광이 솟구쳤다.
영명견성(靈明見性)!
엽현의 손안에서 흘러나온 빛을 본 순간, 미존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내가 백 년 가까이 면벽하여 얻은 경지를 이런 불한당이 이뤄내다니, 정녕 부처의 도는 죽어버렸단 말인가!”
이 말에 엽현의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대사, 거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오? 불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배웠거늘, 어찌, 명성이 자자한 극락지계 고승의 마음속에 여전히 우월의식 따위가 남아 있는 것이오?”
미존이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받아쳤다.
“엽 시주, 그 정도로는 빈승의 심경을 깨뜨릴 수 없소이다. 불법의 깊이로 따지자면 그대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하오. 물론 염치없고 간교하고 음흉한 것으로 따지자면 그대의 압승이겠지만!”
“…….”
이때 대화를 듣고 있던 강우가 나섰다.
“미존 대사, 내가 보기에도 엽 공자의 제안이 괜찮은 것 같소만? 그대들에게 서옥이 있고, 여기 엽 공자는 그것을 열 수 있는데 왜 자꾸 어긋나려 하는 것이오?”
“강 각주! 그대들은 속고 있는 것이오! 엽 시주는 그대들을 이용하고 있단 말이오!”
미존이 소리치자, 강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맞섰다.
“거 아직도 이간질을 하려 드는 것이오? 이쯤이면 소용없다는 걸 알 때도 됐을 텐데?”
“후… 이제 그만 하겠소. 엽 시주의 간게에 노승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