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81
1281화 당장 불경을 가져와!
오유계.
이날, 조용하던 대 황국 내에서 난데없이 검명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뒤이어 한 여인이 황궁 상공에 나타났다.
여인의 정체는 바로 오래전 폐관에 들어갔던 아라!
이때의 아라는 이미 둔일, 그것도 진정한 둔일을 이룬 상태였다.
엽현 이후로 새로운 진짜 둔일경 강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때 아라가 가볍게 소매를 펄럭이자, 사방으로 몰아치던 기운이 잠잠해졌다.
그녀가 진짜 둔일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엽현이 준 도경과 엽지명의 지도 덕분이었다.
바로 이때, 오유계 반대쪽 성공에서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검명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공간을 가르며 두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와 사도!
“하… 역시 바깥 공기가 좋군.”
아주가 허리춤에 달아 놓은 술병을 벌컥벌컥 들이켜자 사도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떠날까?”
이에 아주가 동작을 멈추고 사도를 쳐다보았다.
“너는 양심이란 게 없어?”
“…….”
“우리가 진짜 둔일에 도달한 건 다 녀석이 사심 없이 도와줬기 때문이야. 그런데 날름 입 닦고 떠나버리자고? 그것도 오유겁이 코앞에 있는 이때?”
사도를 한 번 째려본 아주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떠나갔다.
이때, 아주의 등 뒤에서 사도가 소리쳤다.
“아주! 멍청한 짓 하지 마! 여기 있으면 뻔히 죽는 거 알고 있잖아!”
이때 아주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사도를 쳐다보았다.
“너도 알잖아? 나,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 거. 그 녀석 없이 지금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까? 아니, 백 년을 혼자 끙끙대도 불가능했겠지.”
말을 마친 아주는 다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사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재능만 놓고 보자면 두 여인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조차 진짜 둔일을 깨우치는 것은 백 년, 아니 천년을 준다 해도 어려운 일이 분명하다.
앞서 아주가 말한 대로 두 사람은 분명 엽현에게 큰 빚을 진 것이다.
* * *
오유맹의 어느 장원.
방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밖으로 발을 뻗었다.
여인은 다름 아닌 안란수였다.
안란수가 눈을 감고 호흡을 정돈하자, 주변의 공간이 파도치듯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눈을 뜬 안란수가 반대쪽 방을 지그시 응시했다.
이때 문이 박살 나면서 여인 하나가 튀어 나왔다.
연만리!
안란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연만리가 웃으며 눈을 마주쳤다.
“한 판 붙을까?”
안란수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두 사람은 성공을 향해 솟구쳤다.
한편 오유맹의 한쪽에서는 소칠이 멀어져 가는 연만리와 안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두 여인보다 한참 앞서 둔일에 이른 상태였다.
* * *
사유계, 생명금구.
먼 산을 향해 죽은 듯 앉아있던 간자재가 깊게 호흡을 들이켰다. 뒤이어 그녀가 허공을 가볍게 쥐자, 천지 전체가 희미하게 변했다.
둔일!
그녀 역시 이곳에서 진짜 둔일을 이뤄낸 것이었다.
이때 생명금구의 주인, 금주(禁主)가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이를 본 간자재가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 녀석은 어떻게 하고 있소?”
“…….”
“지금 내 실력이면 녀석의 적과 상대하기에 충분하겠소?”
“그의 적은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뭐? 어떻게 그런…”
“뿐만 아니라, 오유계의 상황도 더 어려워졌다.”
간자재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이 물음에 금주가 먼 곳을 흘끔 쳐다보더니 답했다.
“너는 오유계의 존재들이 그 많은 오유겁 겪고도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 아느냐?”
“모르오.”
“그건 바로 천도, 그 여인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두고 ‘그분’께선 이런 평가를 내린 적이 있었지.”
청삼남이?
간자재는 호기심이 동한 듯 눈을 크게 뜨고 금주를 쳐다보았다.
“그가 무어라 평가했소?”
“그분은 그녀를 인간 제사검(人間 第四劍)이라 불렀다.”
인간 제사검!?
인간들 중 네 번째로 강한 검수란 뜻인가?
“그럼… 혹시 그 앞에 일이삼검은 탑의 검주들인 것이오?”
금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간자재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청삼남이 농담한 것이 아니라면 오유계의 천도는 탑의 검주들을 제외하고 최강의 검수라는 것이 아닌가!
금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 여인의 실력은 누구와도 쉽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만약 그녀가 금제에 걸린 상황만 아니라면 저승이나 파사세계, 심지어 도가(道塚)나 도정(道廷) 같은 자들도 그녀 앞에선 한 수 접어 줘야 할 것이다.”
간자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가? 도정?”
“무시무시한 세력들이지. 특히 도가에 묻혀있는 그…”
바로 이때, 말을 하던 금주의 주변에서 큰 폭발이 발생했다.
쾅-!
불의의 타격을 입은 금주는 그대로 천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이를 본 간자재가 황급히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때 멀리 날아간 금주가 입가의 피를 닦으며 다시 자리에 나타났다.
“제길… 이럴 줄 알았다니까.”
“금주, 무슨 일이오? 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오?”
금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금제가 걸려 있다. 더 이상 그곳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겠군.”
“그렇게 강한 소복의 여인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도 아무 일도 없었지 않았소?”
“둘은 성격이 다르다.”
“어디가 다르단 말이오?”
“그곳은 일련의 대도 법칙과 연결된 신비한 곳이다. 때문에 함부로 입을 열면 법칙에 의해 제재를 받게 되는 것이지.”
“아니,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오?”
금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말해서도, 심지어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이 말에 간자재가 고개를 돌려 깊은 성공을 바라보았다.
“꽤나 많이 안다고 생각했건만, 이 우주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곳이오.”
“…….”
이때 간자재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참, 조금 전 오유계 천도에게 금제가 가해져 있다고 했는데, 도대체 누가 그런 것이오? 도가? 아니면 도정?”
금주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금제는 자신 스스로가 걸어 놓은 것이다.”
“자신에게 금제를 가했다? 그것 참 이상하군…. 어쨌든 상관없소. 궁금한 건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면 풀릴 테니까.”
간자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먼 성공을 쳐다보았다.
이 방향은 오유계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나저나 마지막으로 본 것도 꽤나 오래전 일이군. 그동안 고마웠소. 잘 계시오!”
간자재는 금주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금주는 한동안 간자재가 사라진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나저나 엽현이란 놈의 일 저지르는 능력은 누구에게서 온 것인가. 정말이지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구나.”
* * *
극락지계.
막 읽고 있던 경전을 덮은 엽현은 꽤나 즐거운 표정이었다.
“흥미롭군, 아주 흥미로워!”
“재밌다니 다행이로구나. 네가 방금 읽은 경전은 대도의 원리에 대한 것이었다.”
엽지명의 음성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수확이 많은 것 같소.”
“물론이다. 현재 너의 불도는 예전에 비해 몇 배는 더 깊어져 있을 것이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물었다.
“엽 소저, 혹시 이곳에서 도경을 발견했소?”
“…….”
엽지명이 말을 하지 않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 역시 알아차렸느냐?”
엽지명의 물음에 엽현이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대보다는 적게 발견했을 것이오.”
“어디 들어나 보자꾸나.”
이에 엽현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운명이란 숙명(宿命)과 운기(運氣)의 결합이라 할 수 있소. 즉, 타고난 것과 변하는 것이 서로 얽히면서 하나의 일정한 양식을 띠는 것이오.”
“계속해 보거라.”
엽현이 이번에는 곁에 있던 경문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안에 있는 수많은 고사들은 각기 다른 교훈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명운에 대한 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앞서 말했듯 명(命)과 운(運)은 서로 다른 개념이오. 명이 이미 특정되어 있는 정수(定數)라면, 운은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오. 명과 운이 만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대상의 시간과 공간이 변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소. 즉, 숙명에 운기가 다가왔을 때, 운명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오. 내가 한 해석이 어떻소?”
엽지명은 한동안 엽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너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모양이로구나.”
“하하, 그대는 뭘 발견했소?”
엽지명은 차분한 어조로 운을 뗐다.
“내가 알아낸 것은 이렇다. 명(命)이 선천적으로 고정돼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운(運)은 인생의 각 단계에서 마주하는 개별적 사건으로 정의할 수 있다. 명이 영원하다면 운은 일시적이라는 것이지. 더불어 명과 운은 불가분 관계에 있다. 명이 있으면 운이 있고, 운이 있으면 반드시 명이 존재해야 하지. 도경 네 번째 편에는 명과 운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게 서술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불경들 사이사이에 담겨 있는 것들은 명운의 개괄만을 다루고 있을 뿐,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 승려가 처음부터 도경을 제대로 남겨놓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중요한 내용은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
“흠… 엽 소저, 혹시 그대의 능력으로 도경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겠소? 그대라면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고맙다.”
뜬금없는 대답에 엽현이 의아한 듯 고개를 까딱였다.
“고맙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나를 그렇게나 대단한 사람으로 봐줘서. 너는 내가 정말로 신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이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하오?”
“그 땡중을 찾아가서 숨겨 놓은 경전이 더 있는지 알아봐야겠지.”
“흠, 그가 순순히 내주려 하겠소?”
“말로 해서 듣지 않으면 힘으로 하는 수밖에.”
“…….”
“서두르는 게 좋을게다. 지금쯤 수미신국과 극락지계는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어떻게든 저승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고개를 끄덕인 엽현은 곧장 불전 문을 나섰다.
마침 미존은 문밖을 지키고 있었다.
엽현은 친근한 표정으로 미존에게로 다가갔다.
“대사, 이곳에서는 더 이상 볼 것이 없소. 혹시 불경을 모아 놓은 또 다른 장소가 있소?”
미존은 엽현을 흘끔 쳐다보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곳이 있긴 하나 외부인에게는 개방할 수가…”
말이 채 끝나지 않은 이때, 엽현이 갑자기 몸을 돌려 일권을 날렸다.
쾅-!
굉음과 함께 한쪽에 있던 탑 하나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갑작스레 벌어진 소란에 극락지계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경전을 내놓으시오! 어서! 불법을 익혀야 한단 말이오!”
당당하게 경전을 내 놓으라 요구하는 엽현.
이를 본 미존은 당황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엽 시주… 괜찮으시오?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미존은 황당했다. 설마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머리가 돌아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