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86
1286화 내 앞에서 능청을 떨어?
이로부터 한 시진 후, 오유계.
연무장에서 무인들을 지켜보고 있던 도삼생이 뭔가를 발견하고는 곧장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엽현의 방 안이었다.
“큰일 났소! 그들이 오고 있소!”
폐관 중이던 엽현이 눈을 뜨고 도삼생을 쳐다보았다.
“누가 온단 말이오? 혹시 저승이?”
도삼생이 초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 군사, 걱정할 것 없소. 일단 나갑시다.”
엽현 등이 자리를 떠난 이 시각.
고서를 읽고 있던 엽지명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빨리…….”
* * *
오유계에 근접한 어느 성역.
허공을 가르던 중년인이 자리에 멈추더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훗, 근처 어디엔가 그녀가 있는 것 같군.”
중년인의 음성은 긴장과 흥분으로 다소 떨렸다.
바로 이때, 중년인이 허공을 향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 온 것은 매우 먼 성역에 꼿꼿이 서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인이었다.
“후후, 과연 증도경이로군. 기대가 되는 걸!”
웃음기를 머금은 중년인이 한 손을 펼치자, 검은 쇠사슬이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뒤편에 서 있던 한 남자의 손안으로 천천히 떨어졌다.
“아동(阿瞳), 잠시 후에 이걸로 도석을 봉인하도록 하거라. 참, 도경을 챙기는 것 또한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 말과 동시에 중년인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바로 이때, 엽현과 도삼생이 아동을 포함한 세 무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뒤편에 떨어져 있던 남초는 말없이 엽현을 응시했다.
반면 남무는 눈을 감고서 합장 한 채로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이때 엽현을 바라보던 아동이 도삼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 발로 갈 테냐, 짐승처럼 끌려갈 테냐?”
“…….”
도삼생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하지만 아동의 손에 들린 쇠사슬을 보고는 안색이 매우 어둡게 변했다.
“도 군사, 저것이 무엇이기에 그러시오?”
“쇄혼련(鎖魂鏈). 저승 주인의 기운이 서린 물건으로 일단 묶이면 증도경 강자라도 빠져나오기 어렵소. 게다가… 쇄혼련은 나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인 만큼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삼생의 말인즉슨, 쇄혼련은 그녀와 상극이란 뜻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것 치고는 준비를 단단히 해 왔구나!’
“보아하니 후자를 택한 모양이로군. 그럼 바로 시작하지!”
이 말과 함께 막 출수하려던 아동은 엽현을 보더니 잠시 멈칫했다.
“네가 엽현인가? 듣자 하니 도경은 네게 있다더군?”
“그래서?”
엽현이 순순히 시인하자 아동이 손을 쭉 내밀었다.
“얌전히 가져 오너라!”
엽현은 상대의 무례한 태도에 화를 내는 대신 미소로 대응했다.
“왜 내가 너의 말을 들어야 하지?”
“후후,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나 보군. 내가 직접 이 자리까지 찾아온 것만 해도 영광으로 알아야 하거늘… 쯧쯧.”
“하하하…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웃음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진 이때, 엽현의 모습은 이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이 순간, 엽현을 응시하고 있던 남초와 남무의 안색이 검게 그을렸다.
진짜 둔일!
두 사람의 눈동자엔 불신의 기색이 가득했다.
엽현이 이미 진짜 둔일이 되어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엽현이 사라진 순간, 놀란 것은 아동 또한 마찬가지였다.
앞서 남초가 말하길 엽현의 경지는 기껏해야 가짜 둔일이라 하지 않았던가!
가짜 둔일과 진짜 둔일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엽현이 검수라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오유계 역사상 두 번째로 스스로의 검도를 개척한 검수!
각도를 달리한다면 ‘검변’을 창시한 엽현은 증도경 강자와 어느 정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볼 수도 있었다.
‘방심했다!’
엽현이 출수한 찰나의 순간, 아동은 몸을 움직여 보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기선을 제압당한 것은 둘째 치고, 아직 싸울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적어도 몇 마디 말 정도는 더 섞을 줄 알았던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공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푸확-!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이때, 엽현의 검이 정확히 아동의 미간을 꿰뚫고 나왔다.
일검폐명(一劍斃命)!
눈빛이 점점 흐릿해지는 아동. 그는 엽현을 상대로 방심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아동 앞에 선 엽현이 미소를 띠며 말을 걸어왔다.
“내 손에 죽은 걸 영광으로 알아라!”
“…….”
“하하, 지금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군!”
엽현의 이 같은 행위는 아동을 두 번 죽이는 것이었다.
아동은 엽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서서히 흩어져갔다.
“하하, 원래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까 했는데, 네가 빈정거린 덕분에 기분이 상했지 뭐야?”
엽현이 말을 하며 손을 뻗자, 아동에게 있던 쇄혼련이 그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쇄혼련을 손에 넣은 엽현은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려면 빈손으로 올 것이지 뭘 이런 걸 다… 괜히 사람 미안하게시리… 하하하!”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느냐?”
“하하, 그건 나도 모르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너는 이미 죽었다는 거야.”
말을 마친 엽현이 진혼검을 꺼내 아동의 몸속 깊숙이 꽂아 넣었다.
쾅-!
아동의 육신이 폭발하면서 그의 영혼이 진혼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로 이때, 남초가 돌연 등을 보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엽현은 절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순간, 달아나던 남초의 앞을 한 여인이 막아섰다.
그녀는 바로 불패아라!
“죽이지는 마! 정보를 좀 캐내야 하니까!”
엽현의 음성을 들은 아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검을 들고서 남초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엽현의 시선은 이제 극락지계의 남무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남무가 황급히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엽 시주, 노승은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소. 방해하지 않을 테니 이대로 보내 주시오.”
“하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낼 수야 있겠소? 걱정 마시오. 같은 불자를 향해 살인을 저지르진 않을 테니까!”
이 말에 남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꾸하려 했다.
바로 이때, 한 자루 검이 벼락처럼 날아와 그의 미간을 꿰뚫었다.
푸확-!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남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엽현을 쳐다보았다.
“부, 분명… 죽이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소!”
엽현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가 능청스럽게 도망치려 하기에 나도 같은 방식으로 대처한 것뿐이오.”
“…….”
엽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진혼검이 마찬가지로 남무의 영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 남무의 육신은 빈껍데기가 되어 바스라지고 말았다.
엽현의 손안으로 들어온 진혼검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볍게 몸을 떨어댔다. 짧은 순간에 무인 둘의 영혼을 흡수했으니 그럴 만도 했으리라.
엽현은 고개를 돌려 남아있는 두 저승의 무인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엽현을 향해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팟-!
한 줄기 검광이 허공을 가른 순간, 저승의 두 무인 역시 신형을 날렸다.
일대 이의 전투!
비록 숫자에서 차이가 났지만, 엽현은 시작부터 두 사람을 압도해 나갔다.
그는 검수였기 때문이다.
같은 경지라면 검수가 더 강한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엽현은 그냥 검수도 아니었다.
곧, 어두운 허공에 검광이 쉴 새 없이 쏟아지자, 두 무인은 미친 듯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저승의 무인 중 하나가 목숨을 걸고 엽현에게 일권을 날렸다.
그의 주먹에는 강대한 사기와 음기뿐 아니라, 이승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기운까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엽현은 주먹이 날아드는 걸 보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상대 무인은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퍽-!
주먹이 엽현의 가슴팍에 꽂힌 이때, 엽현의 검이 상대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엽현의 신형이 십여 장 밀려난 반면, 상대 무인은 이미 목이 달아난 상태였다. 어깨 위가 텅 비게 되자, 무인의 몸에선 붉은 선혈이 폭포수처럼 솟구쳤다.
예전의 엽현은 전투 시에 갖은 편법과 속임수를 동원하곤 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그때그때 가장 실용적인 초식을 사용할 뿐이었다.
결국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니까!
검을 거둔 엽현은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이때 가슴에 머물러 있던 상대의 사기와 음기는 이미 몸 안에 완전히 흡수된 상태였다.
‘가능한 것이었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엽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생각했던 대로 불멸지체는 저승의 무인들에게도 효과가 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마지막으로 남은 저승의 강자는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둔일경 강자의 전력을 다한 주먹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것일까?
무인이 엽현을 향해 무언가 말하려는 이때, 엽현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흡!”
눈빛이 잔뜩 움츠러든 무인은 황급히 정면을 향해 일장을 뻗어냈다.
순간 그의 바로 앞, 십여 장에 달하는 공간이 무궁무진한 사기와 음기를 담은 죽음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양의 기운은 성난 들소처럼 공간 안에 들어온 엽현에 의해 깔끔하게 흡수됐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리고 이때, 무인의 목 언저리에 한 줄기 검광이 번뜩였다.
푸확-!
무인의 목을 날려버린 엽현은 익숙한 듯, 진혼검으로 상대의 영혼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세 명의 무인을 초살해 버린 엽현은 도삼생에게로 다가가 방금 전에 수거한 쇠사슬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선물이오!”
쇄혼련을 잠시 응시한 도삼생은 고개를 들어 엽현을 쳐다보았다.
“이걸로 내게 금제를 가할 수도 있소.”
“후후, 알고 있소.”
“알면서 왜 내게 주는 것이오? 만약을 대비해 가지고 있어도 좋을 것을.”
이에 엽현의 표정이 다소 진지하게 변했다.
“그대는 나의 군사이자 친구요. 뭐 때문에 그대에게 금제를 가한단 말이오?”
“친구… 친구라고?”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
친구.
이 단어는 그녀에겐 생소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저승에 남겨 놓고 온 존재를 제외하면 친구를 가져 본 적이 없었으니까.
“왜 그렇게 보시오? 혹시 인간과 친구가 되어 본 적은 없소?”
도삼생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럼 이번 기회에 한 번 시도 해 보시오.”
“좋소!”
도삼생이 힘차게 대답하자 엽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 고철 덩이는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시오.”
쇄혼련을 도삼생의 손에 쥐여준 엽현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년인 역시 증도경 강자였으니까.
‘누님이 이길 수 있을까?’
불안해진 엽현은 결국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를 본 도삼생이 빠르게 그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