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92
1292화 거래를 하자
망망대해와 같은 성역 위.
엽현과 엽지명이 어검을 타고서 미끄러지듯 날고 있다. 엽현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정면을 응시한 상태였다.
“지명, 어째서 저승에 대해 그리 잘 알고 있는 것이오?”
“흥, 아직도 내 정체를 알고 싶은 모양이로군.”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궁금하긴 하오.”
엽지명은 딱딱한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이 굳게 닫힌 것을 보자 엽현도 더 묻지 않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엽현은 일단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의 실력은 진짜 증도경 강자와 겨룰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아직 증도경과 싸워 본 경험도 없거니와, 그들 사이에서도 실력의 편차가 나기 때문이었다.
이때 엽지명이 불쑥 말을 걸어왔다.
“지금 너는 오유계, 육유계, 도계 그리고 극락지계의 강자들까지 흡수한 상태다. 얼마 뒤, 도경을 공유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저승과도 충분히 겨뤄 볼 수 있을 것이다.”
도경의 공유!
확실히 지인들을 중심으로 도경을 공유한 후, 오유계의 실력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엽현은 조금의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더 많은 절정 고수들이 출현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특히나, 아라나 아주 같은 검수들이 진짜 둔일에 이르게 되면 저승의 증도경 강자들과 승부를 벌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오. 저승은 내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주진 않을 것이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런데 지명. 도 군사는 정체가 정말로 돌덩이인 것이오?”
“그렇다. 하지만 돌덩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신비한 존재지.”
“혹시 그녀의 내력을 알고 있소?”
엽지명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보자 엽현이 또 호기심을 보였다.
“혹시 나에게 알려줄 수 있겠소?”
“궁금하면 네가 직접 가서 물어보거라.”
“이미 물어봤소. 하지만 입을 틀어막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하오.”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해 줄 말이 없구나.”
“…….”
엽현이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이때, 두 사람의 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도착했다!”
엽지명이 소리친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은 이미 어느 황야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다. 황야의 끝은 칠흑과 같은 어둠이었다.
엽현은 멀리 보이는 어둠을 응시하며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곳이 저승?”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상당히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조심하거라. 이승의 존재가 저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몸이 썩어버린다.”
엽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전진하던 엽현은 눈높이에 둥둥 떠 있는 붉은 선을 발견했다. 좌우 양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이 선은 그 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선을 기준으로 엽현이 서 있는 곳은 이승, 반대쪽은 저승이었다.
엽지명이 손가락으로 붉은 선을 가리켰다.
“저것이 바로 도지계라는 것이다. 오래전 어느 ‘위대한 자’가 저승과 이승을 구분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지.”
“그 위대한 자…….”
“누구냐고 묻지 마라. 나도 누군지 모르니까.”
“…….”
엽지명은 도지계를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에만 해도 이 결계는 증도경 강자들도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강력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문득 엽지명의 눈에 복잡한 기색이 스쳤다.
대도(大道)!
사실 대도가 쇠퇴함에 따라 천지간의 각종 질서들 또한 무너진 지 오래였다.
즉, 세상의 질서가 예전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지명, 저승으로 가려면 먼저 이 도지계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오?”
상념에서 깨어난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있는 도칙지력을 이용한다면 몸이 부식되진 않을 것이다. 물론 도칙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긴 하다만….”
엽지명은 엽현에게 사역(死域)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 이대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오?”
“글쎄…….”
“음? 또 무슨 문제가 있소?”
엽지명이 눈앞의 붉은 선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네가 선을 넘어가는 순간 도지계에 함유된 힘이 너를 공격할 것이다. 설령 막아낸다 해도 일단 소동이 벌어지면 저승에서 눈치챌 것이다.”
“그렇다는 건 도둑처럼 몰래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로군.”
“그렇다.”
엽현이 웃으며 엽지명을 쳐다보았다.
“지명, 혹시 좋은 방법이라도 있소?”
엽지명이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검역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검역!
이 말에 엽현은 도지계를 향해 돌아서서 곧바로 검역을 펼쳐냈다.
그러나 검역이 막 도지계를 뒤덮을 찰나, 엽현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검역을 거둬들였다.
엽현이 창백해진 얼굴로 엽지명이 돌아보았다.
“이게 도대체…….”
“보아하니 네 검역으로는 도지계의 힘을 감당할 수 없는 듯하구나.”
“그럼 어쩌면 좋소?”
엽현이 심각한 얼굴로 묻자 엽지명은 다시 고민에 잠겼다.
잠시 후.
“아무래도 도지계와 대화를 시도해 보는 방법뿐인 것 같다.”
“음? 도지계에도 영이 있소?”
“물론이다! 다만 너를 무시할 가능성도 적진 않다.”
이 말에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째서 말이오?”
“왜냐면… 너는 아직 강한 축에 들지 못하니까.”
순간 엽현이 입을 삐쭉였다.
“이래도 감히 날 무시할 수 있을까?”
엽현이 별안간 앞으로 손을 쭉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안에 날카로운 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령(劍靈)!
바로 청삼남의 검이었다.
검령을 들고서 몇 걸음 전진한 엽현은 검날로 도지계를 툭 건드렸다.
쾅-!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이 엽현을 뒤로 멀리 튕겨냈다.
제자리에 멈춰 선 엽현은 멍하니 손안의 검을 들여다보았다.
청삼남의 검으로도 상대와 대화할 자격이 부족하단 말인가?
바로 이때, 도지계가 갑자기 크게 흔들거리더니, 한 줄기 붉은빛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왔다.
잠시 후, 붉은빛 안쪽에서 웬 소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는 대략 열대여섯의 외모에 붉은 치마를 걸치고 있었다.
엽지명에 비해 키가 한 뼘 정도 더 컸다. 여기에 마치 그림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만 같은 또렷한 이목구비는 경국지색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 소녀가 바로 도지계의 영이었다.
한편, 엽지명은 엽현이 정말로 도지계의 영을 호출해 내자 다소 놀란 상태였다.
웬만한 무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도지계의 영이 아니었던가!
이때 소녀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너… 그 검의 주인이 아니로구나!”
“그렇소.”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이때 소녀가 돌연 한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단 한 발짝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신형은 이미 엽현과 지척 거리에 닿아 있었다.
“검의 주인은 어디 있지?”
“아마 이곳에는 없는 것 같소.”
엽현의 말에 소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게냐!”
외침과 동시에 소녀가 갑자기 주먹을 휘둘렀다.
이에 엽현이 황급히 검을 들어 방어했다.
쾅-!
실이 끊어진 연처럼 날아간 엽현은 천 장 밖에서야 겨우 멈춰 섰다. 이때 그의 가슴 부분은 크게 갈라져 선혈이 흘렀고, 동시에 기이한 기운이 미친 듯이 그의 몸을 갉아 먹고 있었다.
이를 본 엽현이 황급히 검역을 둘러치자, 그 기이한 기운이 빠르게 힘을 잃고 소멸했다.
이때 엽현의 시선에 재차 주먹을 휘두르려는 소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잠깐! 또 손찌검을 하면 당장 검의 주인을 불러 혼내주도록 하겠소!”
엽현이 외치자 소녀가 멈칫하더니 주먹을 거둬들였다.
바로 이때, 소녀가 뭔가 발견한 듯 엽현 뒤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네 뒤에 그자는 누구냐?”
‘그자?’
엽현은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적막한 황무지뿐이었다.
‘속임수!’
화들짝 놀란 엽현이 고개를 다시 원위치시켰다.
바로 이때, 어느새 접근한 소녀가 엽현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꽂아 넣었다.
쾅-!
산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엽현이 천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순간 공간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엽현과 소녀 사이 있던 모든 것이 허무로 변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엽현은 여전히 두 다리로 서 있긴 했으나, 입가로는 피를 흘리고, 복부 주변이 마치 거미줄 같이 갈라져 나간 것이 매우 처참한 몰골이었다.
엽현은 소매로 입가의 선혈을 훔치며 분노 어린 표정으로 소녀를 노려보았다.
“요망한 계집! 감히 속임수를 쓰다니!”
엽현은 상대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렇게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어떻게 기습 따위를 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
강자의 품위는 개나 줘 버린 것인가!
하지만 소녀의 표정은 어째 엽현보다 더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저승도 모자라 이번에는 이승까지 날 귀찮게 하다니!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녀의 신형이 잔상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이때 엽현이 빠르게 양손을 합장했다.
찰나의 순간, 멸천의 기운이 체내에 모여들었다.
이 장면을 보자 한쪽에 있던 엽지명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도경무학!
엽현이 체내의 기운을 막 방출하려는 이때, 소녀가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그게 무슨 초식이냐? 보통 무공이 아닌 것 같은데?”
엽현이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가 직접 창조한 무공이다. 어때, 맛 한 번 볼 테냐?”
직접 창조?
엽지명은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도경무학을 자신의 것이라 하다니.
사람이 어떻게 저리도 뻔뻔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소녀는 어느 정도 믿는 눈치였다.
“정말로 네가 만든 거라고?”
“물론! 검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소녀가 잠시 고민하더니 마침내 입을 뗐다.
“그럼 일단 진정하고 대화로 해결해 보도록 할까?”
“…….”
소녀의 시선은 엽현이 쥐고 있는 검으로 향했다.
“그 검의 주인…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 줄 수 있나?”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른다. 아주 먼 곳에 있다는 것밖에는.”
“음… 혹시 둘이 무슨 사이지?”
“그는… 내 큰형님이시다!”
큰형님!
대화를 듣고 있던 엽지명의 표정이 점점 더 기괴해져 갔다.
이때 소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네 형은 그렇게 강한데 너는 왜 이리 약한 거냐?”
“내가… 약해?”
“그럼 아냐?”
엽현이 울컥하며 소리쳤다.
“딴소리 하지 말고 본론이나 말해! 우리 형님은 왜 찾는 것이냐?”
“음…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하다. 그 검의 주인만이 할 수 있는… 혹시 그를 이곳에 데려와 줄 수 있나?”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엽현이 차갑게 대답하자 소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에 엽현도 지지 않고 도경무학의 기운을 다시 불러 모았다.
그야말로 일촉즉발!
이때 엽현이 말했다.
“그에게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말 해봐.”
“내 몸에 있는 무언가를 제거해야 한다.”
“그게 뭔데?”
소녀는 엽현이 꼬치꼬치 캐묻는 게 거슬렸다.
“내가 너한테 그런 것까지 다 알려줘야 하나?”
“…….”
이때 엽현이 뭔가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서로 거래를 하자.”
“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