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96
1296화 누가 날 노리는 거지?
엽지명의 물음에 엽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봐도 좀 너무한 것 같지 않았소?”
“확실히 그 여자의 행위는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엽지명은 처음부터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 알지도 못하는 일에 괜히 휘말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건의 경위를 직접 보게 되자 그녀의 생각에도 변화가 일었다.
자신이 보아도 여인의 행동이 매우 악랄했던 것이다.
고작 자기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두 여인을 천년만년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은 잔인한 것을 넘어서서 이미 인간의 도리를 넘어선 것이었다.
“지명,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겠소? 그대는 말만 하시오. 행동하는 것은 내가 할 테니!”
엽현의 말에 엽지명이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지? 설마 내가 보복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느냐?”
“하하, 그대가 뭘 두려워한다고는 생각지 않소. 다만 나는 어차피 액난지인을 달고 있는 몸이니 다른 인과 하나 더 걸친다 해도 별로 손해 보는 일은 아니지 않소?”
“…….”
이때 엽지명이 만주에게로 다가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흠… 악랄한 수단이군. 저주가 운명의 수레바퀴에 올라타 거칠게 관여하고 있어.”
“이만하면 됐소. 그대들이 굳이 참견할 필요까지는…….”
만주가 무어라 의사를 표현하려는 이때, 엽지명이 엽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저 아이가 누군지 아느냐?”
이에 만주가 엽현을 흘끗 쳐다보았다.
“저 공자가 누구기에…….”
“저놈은 만년에 한 번 등장할까 말까 한 금수저다.”
금수저!
엽현이 황당해하며 엽지명을 쳐다보았다.
“지명 소저, 거,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는 게요? 오해라도 하면 어쩌려고…….”
“시끄럽고, 잔말 말고 피안화 주변으로 검역을 둘러쳐 보거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곧, 피안화 주변으로 검역이 펼쳐졌다.
한편 엽지명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양손으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잘 들어라. 내가 저주의 실체를 강제로 끌어내면 너는 검역으로 녀석을 제압한 뒤 일검에 제거하는 거다. 간단하지?”
“강제로 끌어낸다고?”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우자, 엽지명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더 좋은 대안이라도 있느냐?”
“헤헤, 지명 소저, 시작합시다!”
엽지명은 곧 눈을 감고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곧 만주가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붉은 부문 하나가 그녀의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화면 속의 여인이 심어 둔 바로 그 부문이었다.
“지금이야!”
엽지명의 외침과 동시에 엽현이 검을 휘둘렀다.
팟-!
빠르게 휘두른 검은 부문 위를 정확히 때렸으나, 오히려 엽현이 튕겨 나가고 말았다. 이 사이 부문은 다시 만주의 몸으로 유유히 돌아갔다.
이를 보자 엽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엽지명을 쳐다보았다.
“저주를 파괴하기엔 아직 네 실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럼 어쩌면 좋소?”
“…….”
바로 이때 만주가 돌연 소리쳤다.
“그만! 이 정도면 충분하오!”
엽현과 엽지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만주가 슬픈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의 진심은 이미 나와 사화 두 사람에게 충분히 전달됐소. 아마도 이제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가 보오. 한때는 억울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운명을 거스를 순 없는 것이오.”
“…….”
이때 엽현이 불현듯 엽지명을 쳐다보았다.
“지명 소저, 혹시 저주를 내 몸 안으로 끌어 올 방법이 있겠소?”
이 말에 엽지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농담하는 게냐?”
엽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오. 어처구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문득 액난지인으로 이 저주를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독으로 독을 제거하듯, 액난지인으로 저주를 제거하는 것이오!”
“…….”
“그렇게 보기만 하지 말고 의견을 말 해 보시오. 그대 생각에 가능할 것 같소?”
“진심으로 그리하길 원하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고만 한다면 시도해서 나쁠 건 없지 않소?”
이때 만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괜한 짓 하지 마시오. 그러다가 괜히 그대만 다치면 어쩌려 그러시오?”
엽현이 만주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만주 낭자, 이미 목생에게 그대를 구해오겠노라고 호언장담한 상태요. 여기서 물러나면 이 엽현, 체면이 서질 않소!”
“목생…….”
만주는 재차 고개를 저었다.
“그대는 이미 최선을 다했소.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소!”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그대를 돕고자 하는 데는 그 여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있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오.”
이때 엽지명이 물었다.
“도대체 목생과 무슨 거래를 했기에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것이냐?”
“헤헤, 그냥 별것 아니오. 그나저나 지명, 다시 한번 해봅시다. 이번에는 곧바로 내 몸 안으로 빨아들일 것이오.”
“진심으로?”
“진심으로!”
엽현이 굳은 의지를 보이자, 엽지명 역시 더 이상 만류하진 않았다.
“독을 독으로 제거한다라… 어디 네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 보자꾸나!”
엽지명은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빠르게 손을 교차했다. 수인이 완성된 순간, 조금 전과 같이 붉은 부문이 흘러나오더니 엽현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쾅-!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부문이 엽현의 몸 안으로 진입하자 몸 안의 혈맥들이 미친 듯 요동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엽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지명 낭자! 이게 어떻게 된 것이오?”
“음…….”
이때 뭔가 생각하던 엽지명이 자신의 무릎을 탁 때렸다.
“알았다! 이 저주는 사람이 아니라 혈맥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어! 그래서 네 혈맥이 반응하는 것이다!”
“혀, 혈맥?”
“그래! 그렇다는 건 너뿐만 아니라 너의 혈맥 관련된 자 전부…….”
순간 엽지명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엽현을 쳐다보았다.
“혹시 네 조상 중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느냐?”
“…….”
* * *
이 시각, 저승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어느 성역.
청색 장삼을 입은 남자가 자리에 우뚝 멈춰 서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누군데 날 노리는 거지?”
청삼남의 곁에는 여인 하나와 앳돼 보이는 소녀도 함께였다.
하얀 장포 차림의 여인은 긴 머리를 뒤로 질끈 감아올렸고, 한 손에는 기다란 창을 쥐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영웅의 풍모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이에 반해 소녀의 복장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매우 기괴했다. 하얀 윗도리는 소매 절반이 뜯어져 나가 팔이 빠져나와 있었고, 옷의 정중앙에는 매우 귀엽게 생긴 요수가 수놓아져 있었다.
아랫도리는 몸에 딱 달라붙는 파란 바지였는데, 어디서 거지가 입던 걸 주워 왔는지 무릎 부위가 다 헤져 살이 드러나 보일 지경이었다.
그나마 정상인 것은 하얀 신발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왼쪽과 오른쪽을 바꿔 신은 상태여서 기괴함을 더할 뿐이었다.
소녀의 한쪽 어깨에는 하얀 털이 뽀송뽀송하게 난 작은 아이가 앉아 있었다. 이 하얀 아이의 양쪽 귀에는 무슨 마개 같은 게 덮여 있었는데, 여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들어 젖히고 있었다.
이때 청삼남의 중얼거림을 들은 여인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 있어?”
청삼남이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부턴가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붉은 실을 응시했다.
“저주술이라… 희한한 일이로군. 하계를 떠나 온 지도 꽤 오래됐는데 아직 나를 노리는 자가 있었나?”
청삼남은 고개를 들어 붉은 선이 이어진 곳을 응시했다.
찰나의 순간, 그의 안광이 성공을 뚫고서 이역만리 떨어진 어느 성역에 도달했다.
이 시각, 모처의 어느 화려한 궁전 앞.
화려한 복색을 갖춘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감히 어떤 개잡놈이 본 공주(公主)를 훔쳐보는 것이냐!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그녀는 비록 상대의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여인의 거친 말을 들은 청삼남은 심기가 다소 불편해졌다.
“개잡놈? 어떤 성격일지 안 봐도 훤하군.”
청삼남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팟-!
검에서 흘러나온 검광은 눈 깜빡할 사이 성공을 지나쳐 궁전 앞에 도착했다.
이를 본 순간, 여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뿐 아니라, 궁전 내에 있던 무인들 역시 표정이 크게 변했다.
‘누가 감히 도정(道廷)을 노리는 것인가!’
이때 여인이 쥐고 있던 신합선이 강대한 기운을 내뿜으며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하지만 상대의 검기 근처에 다가가자 그야말로 눈이 녹아 없어지듯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이를 본 여인은 이번에는 머릿속이 새하얘져 움직이지 못했다.
바로 이 순간, 웬 노인 하나가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여인 앞에 나타났다. 지상으로 날아오는 검기를 본 노인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양손을 교차해 수인을 맺었다.
“어도만천(御道萬千), 신화천지(身化天地)!”
음성이 울려 퍼지자마자, 사방에서 신비한 기운들이 몰려들더니 이내 노인의 머리 위로 하나의 거대한 기의 장벽을 형성해 냈다.
이때, 검기가 도착했다.
푸확-!
너무나도 가볍게 장벽을 찢어버린 검기는 거침없이 밀고 들어가 노인의 미간 사이를 정확히 꿰뚫었다.
순간 피투성이가 된 노인의 얼굴.
눈을 동그랗게 뜬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사, 사부!”
노인 뒤편에 있던 여인의 표정은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에 어떤 존재가 자신의 사부를 일검에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일검초살(一劍秒殺)!
이 순간, 여인은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한편 반대쪽 성공,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려던 청삼남이 멈칫하더니 어딘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뭔가를 발견한 듯 또렷해졌다.
“찾았어?”
창을 든 여인이 묻자 청삼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청삼남 일행은 어두운 성공을 향해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한참을 날아가던 중, 창을 든 여인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 여자… 벌써 사라진 것 같은데?”
여인이 말한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천녀였다.
이때 청삼남이 뭔가 떠오른 듯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그렇게 방목해야 한다고 할 때도 제 새끼처럼 껴안고서 놓아주지 않더니, 결국 녀석에게 의지하려는 심보만 잔뜩 심어 주었지. 젠장, 사람이 말하면 귓구멍으로도 듣질 않으니, 이참에 푸닥거리라도 한번 해야 하나?”
“글쎄, 내 생각에 그녀도 딱히 잘못한 것 같진 않은데? 솔직히 말해 ‘그 녀석’의 처지는 오빠하고는 다르지. 오빠는 성격이 지랄 맞아서 제 발로 집구석을 박차고 나온 거고, 그 아이는 의지와 상관없이 방목 당한 거고… 게다가 그 아이의 팔자가 기구한 것도 다 우리 때문인 거잖아. 내 말이 틀려?”
청삼남은 정곡을 찔렸는지 입을 삐죽였다.
“내가 그 고생을 했는데 놈이 호의호식하면서 사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이 말에 여인이 청삼남을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그래! 방목해라, 방목해! 그런데 오빠가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한 번 만나 봐야 하는 거 아냐?”
“지금? 하하하! 나중에!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나중에는 개뿔,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하하하…….”
이때 여인이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려 뒤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저 여자 이렇게 살려 둘 거야?”
“음… 원래라면 다 죽여야겠지만, 지금은 이쪽 일이 더 급해. 그리고 정(靖)이 너도 알다시피, 내가 막 죽이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잖아.”
여인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지. 일단 죽이기 시작하면 짐승처럼 변해버리니까.”
“…….”
이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소녀가 말을 꺼냈다.
“오빠, 근데 우리 염상 언니네 언제 또 가?”
“…뭐?”
청삼남이 고개를 돌려 소녀를 쳐다보았다.
이때 청삼남의 눈빛이 변한 것을 본 소녀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아냐… 아무것도. 그냥 한번 물어본 거야…….”
“…….”
잠시 후, 청삼남 일행은 어두운 성공 안쪽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