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98
1298화 나 먼저 갑니다!
엽지명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맹파!
이 신비한 인물에 대해선 엽지명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십만 년도 더 전에 사라졌다고 알려진 인물이 왜 이곳에 다시 나타난 것일까?
생각할 것도 없이 엽현 때문임이 분명하다.
이 세상에 엽현 말고 십만 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존재를 소환할 자는 더 있지 않을 테니까.
엽지명이 볼 때 엽현은 그저 재수 옴 붙은 사내였다.
처음에는 자신이 엽현에게 화를 불러올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반대였다.
엽현의 곁에 있는 것은 마치 다 쓰러져 가는 난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움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엽지명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지명, 저 사람이 맹파가 맞소?”
“보면 모르겠느냐?”
“근데 왜 하필 여기에 나타난 거요? 혹시 내게 전승이라도 전해 주려고?”
“꿈도 야무지구나. 그 반대일 거라는 건 생각 못 하는가 보지? 누군가 널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음? 그게 무슨 말이오?”
엽지명이 낮게 탄식을 토해냈다.
“눈이 있으면 주변을 둘러보거라.”
이 말에 엽현이 주변을 살폈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가 있다고 그러시오?”
이에 엽지명이 손바닥으로 엽현의 눈가를 가볍게 문질렀다.
“다시 살펴보거라.”
별생각 없이 주변을 돌아본 엽현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의 주변으로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검은 실선들이 존재했는데, 이 실선들은 이미 엽현 주변의 공간을 완전히 봉쇄한 상태였다.
“이, 이게 뭐란 말이오!”
엽지명이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며 대답했다.
“대도의 법칙이다.”
“대도라니, 이런 곳에서 갑자기 말이오?”
“지금 이곳은 대도 법칙의 지배 아래에 있다. 누구라도 저승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나하교를 지나고 맹포탕을 마신 후에 윤회의 길로 들어가야만 한다.”
엽현의 표정이 다소 일그러졌다.
“지명, 대도는 이미 무너졌다 하지 않았소?”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다. 대다수의 천지도칙과 질서들이 이미 무너져 사라진 상태지. 하지만 모든 도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위대한 대도의 수호자가 버티고 있는 저승은 여전히 대도의 지배 아래에 있다.”
엽현이 다리 위에 있는 맹포를 쳐다보았다.
“저 노파가 대도의 수호자?”
“그렇다.”
엽현이 순간 검을 뽑아 들고서 허공에 휘둘렀다.
쉭-!
무언가 찢기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주변에 둘러쳐져 있는 검은 선은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엽현은 경악했다.
대도 법칙의 힘이 이렇게나 대단했단 말인가!
“지금 네 실력으로는 소용없다!”
“지명 소저…….”
엽지명이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대도 법칙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파도(破道)에 이르러야만 한다. 아니, 대도가 현저히 약해진 것을 고려하면 증도경 정도만 돼도 충분히 끊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음…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잠시 고민 끝에 엽현은 혈맥지력을 끌어 올렸다.
이때, 엽지명이 막아섰다.
“일단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하고 출수해도 늦지 않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일리가 있소.”
힘을 거둬들인 엽현은 엽지명과 함께 나하교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지명, 저 노파는 내가 여기에 있는지 어찌 알았던 것이오?”
“나도 그 점이 의아했다. 너는 이미 목생의 도움으로 생기가 지워진 상태다. 원래대로라면 저승은 아직 네가 여기 있다는 걸 몰라야 한다. 이 말은 누군가 너의 존재를 알렸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음… 그대의 말대로라면 흉수는 둘로 압축되겠구려. 하나는 청아와 대립하는… 즉, 내게 액난지인을 지운 자.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존재가 개입했을 것 같지는 않소.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오.”
이때 엽지명이 소리쳤다.
“바로 그 여자!”
그 여자!
엽현 일행이 여기에 와 있다는 걸 아는 자는 만주와 사화에게 저주를 내린 그 여인뿐이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내 생각에도 그 여인의 짓인 것 같소.”
“생각보다 결단이 빠른 여자였군.”
엽지명이 문득 엽현을 쳐다보았다.
“가만… 어쩌면 누구인지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음? 그게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
“이런 방식의 저주를 사용하는 곳은… 아마도 그곳뿐일 게다.”
“그곳이라면…….”
바로 이때, 엽현은 자신과 엽지명 주변의 공간이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것을 감지했다.
“가자! 일단 저 다리 위로 올라가야 한다!”
빠르게 내달린 두 사람은 순식간에 나하교 앞에 도착했다. 이때 가장 상층부의 다리로 올라가려던 엽현이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에 가로막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지명, 이게 어찌 된…….”
“두 번째 다리를 시도해 보거라!”
이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간 다리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엽현과 엽지명 둘 다 수월하게 올라설 수 있었다.
“선악겸반(善惡兼半)! 네 영혼은 선과 악 중간에 걸쳐 있었구나!”
“하하, 일단 건너가 봅시다!”
선악겸반!
엽현은 미리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일단 자신의 검의부터 선과 악이 반반씩 섞인 선악검의가 아니었던가!
물론 검도가 검변에 이른 후로는 검의 역시 기존의 선악검의에서 탈피한 상태긴 하지만.
두 사람은 천천히 다리를 건넜다.
이 와중에 강물에 빠진 원혼들은 이들을 향해 사납게 울부짖었고, 심지어 일부는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달려들려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 봐도 다리 위까지 도달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들 원혼을 가까이서 본 엽현은 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질 않았다. 한눈에 봐도 절대 선한 존재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뭔가 떠오른 엽현이 진혼검을 꺼내 들었다.
“음? 뭐 하려는 게냐?”
엽지명이 묻자 엽현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에 음혼과 악귀가 얼마나 있는 것 같소?”
“그야 셀 수도 없지.”
“헤헤, 바로 그거요!”
엽현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운 순간, 진혼검이 그의 손을 빠져나와 그대로 망천하 속으로 입수했다.
잠시 후.
세차게 흐르던 망천하의 물줄기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두 사람 앞에 검은 회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거대한 회오리는 망천하 주변에 가득했던 음혼과 악귀들을 순식간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를 보자 엽지명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진혼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역천의 변화가 있을 거란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자신과 엽현이 살아있다면 말이다.
“지명!”
엽현의 부름에 엽지명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느냐?”
이에 엽현이 씩 웃으며 그녀의 손안에 무언가를 억지로 쥐여 주었다.
엽지명이 손을 펴서 보자 손바닥 안에는 목생이 엽현에게 주었던 보명석(保命石)이 들어있었다.
엽지명이 영문을 몰라 엽현을 쳐다보았다.
“하하, 조금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거든 그걸 사용해 도망치시오.”
“…그게 무슨 의미냐?”
“아무 의미도 아니오. 다만 내가 벌인 일은 내 손으로 처리하겠단 것뿐이오.”
이에 엽지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엽현 앞으로 보명석을 던졌다.
“시건방지게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게냐? 내가 이따위 물건이 필요할 정도로 나약하다는 소리냐? 설령 당장 눈앞에 그 여자가 나타난다 해도 내가 죽을 일은 없으니, 여유가 있으면 네 걱정이나 하거라!”
엽지명은 차갑게 말을 던지고서 맹파가 있는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지명! 기다리시오!”
엽현이 빠르게 걸어가 엽지명의 팔을 붙잡았다.
“도대체 왜 화가 난 거요?”
“…….”
엽지명은 싸늘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려. 나는 그저 그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뿐인데.”
“부담?”
걸음을 멈춘 엽지명이 엽현을 향해 차갑게 돌아섰다.
“네 입으로 직접 우리가 친구라 하지 않았느냐?”
“분명 그랬소.”
“흥! 정말 친구라 생각했다면 이럴 때 혼자 도망가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니라 안란수나 다른 아이였더라도 이따위 돌멩이를 주면서 도망가라 했겠느냐?”
“…….”
엽현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안란수가 이 자리에 있다고 한다면 엽지명의 말대로 도망치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말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제야 엽현은 엽지명이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후… 지명, 미안하오.”
“뭐가 미안한데?”
날카롭게 반응하는 엽지명에 엽현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대가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저승에 오도록 허락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만주와 사화를 도우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오. 내 탓이오. 내가 생각이 짧아 그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소. 나는 다만 그대가 도경을 위해 쫓아왔다고만 여기고 있었소.”
“넌 틀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널 따라온 것은 화를 면하고 도경을 얻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헤헤, 알겠소. 그대 말대로 서로 이용하는 사이라 칩시다.”
“웃지 마! 나는 지금 매우 진지하니까!”
엽지명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치자,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소. 나도 진심으로 한 말이오!”
엽현은 엽지명의 마음이 썩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어쨌든 동의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눈앞의 여인이 또 무슨 잔소리를 늘어놓을지 모른다.
“후… 됐다. 더는 말 섞고 싶지도 않다!”
엽지명이 다시 걸음을 옮기자 엽현이 황급히 곁으로 따라붙었다.
“헤헤, 지명.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소? 일단 여기를 벗어나야 할 것 아니오?”
“나도 모른다. 묻지 마라.”
“하하, 그럼 할 수 없이 저 노파를 때려죽이는 수밖에 없겠구려!”
이에 엽지명이 고개를 돌려 엽현을 쳐다보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왜, 내가 못할 것 같소? 그저 죽이나 끓이는 힘없는 노친네 아니오?”
“이런 멍청이!”
엽지명이 엽현을 향해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죽이나 끓이는 노친네? 저 노파는 평범한 존재가 아닌 무려 신기(神祇)란 말이다! 신기가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대도 법칙의 지지를 받는 존재를 일컫는 것이다! 여기에 신기의 무기인 신기지인(神祇之印)까지 합쳐지면 그 위력은 일반 증도경 강자를 가볍게 넘어선다. 그런데 뭐? 때려죽여? 저 국통에 들어가 끓여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엽현은 시선을 다리 끝에 있는 맹파에게로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큰 솥에 뭔가를 끓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흠… 힘으로 안 된다면 논리로 한번 이겨 봅시다!”
“흥, 논리는 무슨. 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환심이나 사려는 거겠지. 만약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성공하면 내가 진짜…….”
“진짜 뭐요?”
“어쩌면 좋겠느냐?”
엽현이 잠시 고민 끝에 대답했다.
“만약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다면 뽀뽀나 한번 해 주시오.”
“엽현!”
“하하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입에 말고 볼에다가 말이오!”
엽지명은 잔뜩 약이 올랐는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엽현을 노려보았다.
“하하… 지명, 그냥 농담한 것이니 너무…….”
“좋아! 받아들이겠다!”
엽지명이 진지하게 말하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엽현이었다.
“아니, 정말로 그냥 해 본 말이라니까. 왜 이러시오?”
“닥쳐! 난 진심이니까! 만약에 성공 못 하면 바로 깨물어 죽여버릴 거다!”
“…….”
“뭐해? 빨리 시작하지 않고?”
“하하…….”
엽현은 멋쩍게 웃으며 맹파를 향해 다가갔다.
이때, 엽지명이 뒤쪽에서 소리쳤다.
“맹파! 그 녀석이 그대를 한 번 꾀어보겠다고 하니 어디 들어나 보시오!”
“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