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02
1302화 정말 바보라니까
당황한 엽현이 무어라 대꾸하려는 이때, 망천하가 요동치더니 한 자루 검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냈다.
진혼검!
바로 이때, 엽지명이 다급히 소리쳤다.
“빨리 탑 안으로 검을 집어넣어! 어서!”
엽현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서 황급히 진혼검을 탑 안으로 집어넣었다. 진혼검의 기운이 강해도 너무 강했던 것이다!
진혼검이 사라진 후, 엽현과 엽지명은 동시에 망천하를 바라보았다.
망천하를 가득 채우고 있던 원혼과 악귀들은 이미 깨끗이 사라진 상태였다.
족히 수천만 마리, 아니,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원혼들이 사라진 것이다!
‘소혼이 그동안 배가 많이 고팠나 보군!’
이때 엽지명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누군가 오고 있다!”
엽현은 엽지명과 함께 계옥탑 안으로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이 사라진 후, 계옥탑 역시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두 사람이 사라진 직후, 웬 망령 하나가 물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혼들이 사라진 망천하를 확인한 망령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시 한번 꼼꼼히 장내를 확인한 망령은 순식간에 몸을 돌려 사라졌다.
망령이 떠난 후, 엽현과 엽지명이 다시 장내에 나타났다.
“아마 상부에 보고하러 간 것 같다.”
엽지명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명, 일단 풍도성으로 갈 생각이오.”
“풍지성? 황천성수를 구하러?”
“그렇소.”
이 말에 엽지명이 엽현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욕심이 끝이 없구나!”
“하하…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내 원래 목적은 바로 황천성수를 획득하는 것이었소!”
“그게 무슨 말이냐? 너는 영혼에 손상을 입은 것도, 영혼을 증강할 이유도 딱히 없는데. 혹시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막념이겠군.”
“그대 말대로요. 지금까지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소. 그 정도 급의 존재가 육신에 상처를 입었을 리는 없으니 분명 영혼이 다친 것이 틀림없소. 그렇다면 황천성수는 지금 그녀에게 매우 필요한 물건이오.”
엽지명은 물끄러미 엽현을 응시했다.
“어쩐지, 이곳에 오기 전에 치료와 관련된 성물에 대해 물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 그렇다면 내게 말하지 않은 목생과의 거래 내용은… 아마도 만주와 사화를 구하는 대신 황천성수를 얻을 수 있도록 협조를 받는 것이었겠지. 결국, 그 신비한 여인과 적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피안화를 도운 것은 바로 황천성수 때문이었던 것이로군!”
엽현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을 구해 준 것은 사실 측은지심이 반, 사심이 반이었소.”
“그럼 막념 더러 직접 와서 가져가라고 하면 되지 왜 굳이 네가 온 것이냐?”
“음… 예전에 누님께서 말씀하길 괜히 저승의 강자들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고 하셨소. 그렇게 말한 까닭은 내가 보기에 첫째, 오유계의 안위를 위해서, 둘째, 자신의 상처를 더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 같소. 그래서…….”
“하하, 그래서 네가 그녀 대신 저승에 시비를 걸로 온 것이냐?”
엽현을 향한 엽지명의 눈빛엔 질책과 힐난의 기색이 담겨 있었다.
“네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줄 아느냐? 막념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저승을 네가 뭐라고 건드린단 말이냐? 네 배후를 믿고서? 그들이 그런 걸 신경이나 쓸 것 같으냐? 하물며 지금 당장 그들과 연락도 닿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
“게다가 황천길에서 너와 마찰을 빚었던 여인은 도정의 인물, 그것도 천신으로 밝혀졌다. 너는 지금 황천성수를 얻자고 저승과 도정 두 군데를 적으로 돌린 것이란 말이다! 아직도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르겠느냐?”
“지명 소저. 만약 다친 것이 그대였더라도 나는 지금과 똑같이 했을 것이오.”
“지금 그 말 하는 게 아니잖아!”
엽지명이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또, 또, 또! 지금도 내 환심을 사서 어떻게 위기를 모면해 볼 생각인 거지!”
“하하, 진정하고 들어 보시오. 그대도 막념 누님이 날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왔는지 알지 않소?”
“흥! 너를 위해? 실상은 널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여자는 네 생각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그녀뿐이더냐? 나 역시 널 이용해 내 적들과 대항해 볼 생각으로 접근한 것이다. 왜 그렇게 순진하게 속고만 사는 것이냐?”
엽현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럼 나도 나쁜 놈이겠구려. 나 역시 그대들을 이용하려 했던 건 마찬가지니까.”
“뭐, 뭐라고?”
이때 엽현이 엽지명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긴말할 것 없소. 나는 이번 기회에 막념 누님에게 빚진 것을 꼭 갚고 싶소. 그대도 알다시피 저승의 중심부인 풍도성은 매우 위험하니 나 혼자 가도록 하겠소. 여기 오기 전 목생과 했던 거래는 그대 말대로 피안화를 구출하는 대신 위기 상황에 한 번 출수할 것과 그대의 안전을 책임져 줄 것이었소. 지금도 목생은 어디선가 그대를 지켜보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시오.”
엽현은 품에서 두 권의 도경을 꺼내 엽지명에게 건넸다.
“그대가 도경을 매우 중시하는 것을 알고 있소.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토록 갈망하는 것이니 선물로 주겠소. 자, 늦기 전에 이것을 가지고 어서 돌아가시오!”
이때 엽지명이 엽현의 손을 탁 치며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런 사실이 있으면 진작에 말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하하… 미리 말했어도 똑같이 화냈을 거 아니오?”
“…….”
“조심히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오.”
이때 엽현이 뭔가 떠오른 듯 엽지명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지명, 혹시 지금이라도 그대가 누군지 말 해 주지 않겠소?”
“흥, 그 똑똑한 머리 뒀다 뭐 하러 그러느냐? 이번에도 직접 한 번 알아맞혀 보시지?”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내게 준 정보가 너무나도 많아 이제 무엇이 진실인지 다 헷갈릴 지경이오. 그러니 추측하는 건 의미가 없소.”
엽지명은 두 권의 도경을 응시하며 말이 없었다.
이에 엽현이 웃으며 그녀 손에 억지로 도경을 쥐여 주었다.
“이제 그대 것이오. 그럼, 나중에 봅시다!”
이 말을 끝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엽지명이 엽현을 불러 세웠다.
“나도 같이 간다!”
“지명 소저… 지금까지 뭘 들었소? 나 혼자 간다고 하지…….”
이때 엽지명이 엽현 앞으로 바짝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싫어? 그럼 할 수 없지. 지금 바로 가서 네가 풍도성으로 간다고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닐 거다. 못 믿겠으면 한 번 가 보던가?”
순간 엽현의 안색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지명… 왜 이러시오? 내가 지금까지 다 설명하지 않았소?”
“나도 같이 간다.”
“아니 글쎄, 둘이 가면 위험하다니까!”
“걱정하지 마라. 죽어도 너보다는 늦게 죽을 테니까.”
엽현이 무어라 반박하려는 이때, 엽지명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내 도움이 없이는 절대 황천성수를 구하지 못해. 혼자 가면 성에 도착하자마자 개죽음당할 테니 잔말 말고 내 말 들어.”
“어, 어째서 말이오?”
“흥, 안 가르쳐 준다.”
“…….”
“그리고…….”
엽지명은 손에 있던 도경을 엽현의 가슴에 내팽개치듯 던졌다.
“이런 식으로는 내 환심은커녕 동정도 사지 못해. 알았어?”
말을 마친 엽지명은 먼저 성큼성큼 앞장서 걸어갔다.
황당해진 엽현은 이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이지 똑똑한 척하는 바보라니까.”
엽지명의 반응에 엽현은 문득 가슴이 따듯해졌다.
엽지명은 걷는 내내 말이 없었다.
아직도 화가 난 것일까?
하지만 엽현은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엽현이 굳게 마음을 먹고 곁으로 다가가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랭한 반응뿐이었다.
“좀 떨어져서 걸어!”
엽지명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자 엽현이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지명, 솔직히 말해 나도 함께 가고 싶었소. 알다시피 그대가 없으면 저승에서 나는 장님이 아니오? 하지만 괜히 그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선뜻 같이 가자고 하지 못한 것뿐이오.”
이에 엽지명이 무거운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 저승은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다. 목생이 이런 곳에 널 보낸 것은 백번 양보해도 좋은 마음으로 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녀를 홀리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사실 그녀 역시 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고 있소.”
엽지명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그걸 알면서도 가겠다는 게냐!”
“하하… 어쩔 수 없소. 나는 황천성수가 반드시 필요하오.”
“하… 넌 정말이지…….”
한숨을 짓는 엽지명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정말이지 눈앞의 이 남자는 평소에는 영리한 것 같다가도 왜 중요한 순간만 되면 멍청해지는 걸까?
이때, 막 뭔가를 더 말하려던 엽현이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엽지명의 손목을 잡았다. 이와 동시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계옥탑 내부.
탑 일층으로 들어 온 두 사람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중앙에는 진혼검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는데, 전신은 마치 먹을 뭉쳐 놓은 것처럼 검은색을 띠었고, 사방으로는 강대한 영혼지력을 뿜어내는 등, 전에 알던 모습과는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던 것이다!
엽현이 영문을 묻듯 엽지명을 쳐다보았다.
“네 검… 아마도 ‘증도’에 도달하려는 것 같구나.”
“증도!?”
엽현의 동공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러니까 소혼이 증도경이 된단 말이오?”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으로 치면 그런 셈이지. 사실 사람뿐 아니라 영혼이 깃든 것들은 모두 ‘증도’가 가능하다. 네 검은 수많은 강자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그들의 기억과 경험을 흡수했고, 그것은 곧 경지를 돌파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물론 정말로 증도경이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지명 낭자. 신물이 증도경이 된 걸 본 적이 있소?”
“왜 없겠느냐? 예를 들어 도정의 그 여인이 지니고 있던 부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럼 이 검은 어떤 등급인 것 같소?”
엽현이 청삼남의 검을 빼 들었다.
엽지명은 검을 보자마자 고개를 내저었다.
“그 검은 경지가 없다.”
경지가 없다!
“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소.”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청삼남은 경지의 구속을 당하지 않는 자였다.
그렇다면 그의 검 또한 경지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이미 막념과의 대화를 통해 도경의 무도 내에 있는 무인과, 그 밖에 있는 무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청삼남과 천녀, 아니 청아가 있었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경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경 내에 존재하는 무인들에게는 그저 공포일 따름이었다.
이때 엽지명이 진혼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일단 녀석에게 시간을 주거라. 변수가 없는 한 증도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하하, 아직 주인도 증도가 아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