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12
1312화 미안하게 됐소이다
엽현의 정면, 피를 흘리던 머리가 갑자기 요동치더니, 잘려나간 단면에서 새로운 육체가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엽현 앞에 지팡이를 든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 황천하에 있었던 바로 그 노인이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엽현은 깜짝 놀랐으나, 애써 평온한 태도를 유지했다.
노인의 시선은 곧바로 엽현에게로 향했다.
“호오… 재밌군. 경계를 뚫고 황천성수를 훔쳐 간 놈이 고작 둔일경일 줄이야.”
이에 엽현은 그저 웃으며 노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엽현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본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믿을 구석이 있는 건가?’
이때 노인의 눈이 엽현 곁에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이때의 남자는 이미 정상적인 몸을 갖춘 상태였다.
“무심(無心), 네가 이 햇병아리를 불러낸 것이냐?”
이에 무심이라 불린 남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음목춘(陰木春), 무엄하구나. 감히 내가 모시는 어르신께 햇병아리라니.”
“어르신!?”
음목춘이 눈을 크게 뜨며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 조그마한 녀석이?”
“하하하! 음목춘, 도망치려면 아직 늦지 않았다.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음목춘의 시선은 엽현에게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순간 음목춘은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정상 상황이라면 둔일경 따위가 이곳까지 올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저 고강한 실력의 무심이 어르신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눈앞의 젊은이는 보통 존재가 아님이 분명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군!’
이때 무심이 찌뿌듯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더니 엽현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어르신, 저 늙은이를 죽일 생각이십니까?”
이에 엽현이 근엄한 표정으로 음목춘을 응시했다.
“음…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는 상대로구나. 네가 처리하거라.”
무심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무심은 음목춘을 향해 돌아서더니 곧바로 일권을 내질렀다.
주먹이 허공을 가른 순간, 검은 권인이 강대한 기운을 내뿜으며 방출됐다.
이에 음목춘이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순간, 그의 앞에 거대한 검은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이때, 권인이 방패 위를 후려쳤다.
쾅-!
마치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음목춘의 신형이 백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이를 본 엽현은 애써 태연한 얼굴로 무심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실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최소 증도경 절정이군…….’
무심이 재차 출수하려는 이때, 엽현이 뒤로 돌아섰다.
“이쯤하고 가도록 하지.”
엽현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를 본 무심은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황급히 엽현의 뒤를 쫓았다.
최대 속도로 이동한 엽현은 순식간에 금역을 벗어나 성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 성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세 개의 강대한 기운이 그의 주변을 에워쌌다.
순간 엽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둔일경 강자들!
이때 어느새 엽현 곁에 따라붙은 무심이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어르신! 제가 왔습니다!”
“오, 왔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이때, 그들의 앞에 네 명의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목춘이라는 노인 뒤에 노인 하나와 중년인 둘이 더 나타났다.
무심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방게제(四方揭諦)라는 놈들입니다. 황천하의 보안을 책임지는 아주 빌어먹을 놈들이지요!”
엽현이 물끄러미 무심을 바라보았다.
“혼자서 상대할 수 있겠느냐?”
“네, 네놈 모두 말입니까?”
무심이 놀라서 눈을 깜빡거리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엽현의 진지한 얼굴을 본 무심이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둘이라면 가능하겠지만 혼자서 넷은 저…….”
“음? 저런 쓰레기들을 상대로 쩔쩔맨단 말이냐?”
“헤헤, 송구스럽습니다. 어르신께는 일초지적도 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이에 엽현이 오만한 미소로 대답했다.
“이 세상에 내 검을 막을 자가 몇이나 되겠느냐?”
무심의 눈빛이 순간 존경심으로 빛났다.
‘내 검을 막을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말 그대로 이런 오만한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바로 이때, 사방게제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음목춘이 엽현에게 소리쳤다.
“정체를 밝혀라! 너는 누구냐!”
음목춘은 머리가 복잡했다.
엽현의 기운은 분명 둔일이었지만, 자신의 판단에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세상에 증도 앞에서 저렇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둔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때 엽현이 의혹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음목춘을 향해 대꾸했다.
“너희 같은 조무래기들이 내 검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당장 가서 저승의 주인을 불러오너라!”
이 말을 듣자 엽현 곁에 있던 무심이 입을 뻐금거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 음목춘에게 소리쳤다.
“음목춘, 당장 가서 저승의 주인을 불러오너라! 당장!”
이때 무심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빳빳해졌다.
뒤에 거물이 버티고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던가!
‘햐, 너무 좋구나!’
한편, 음목춘은 전혀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겨우 너 따위가 그분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감히 주제도 모르고…….”
바로 이때, 엽현의 손안에 검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삼남의 검이 나타난 순간, 음목춘 등 사인의 표정이 크게 달라졌다.
엽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눈앞의 검은 진짜였던 것이다!
한눈에 봐도 파도경 급에 속하는 검!
‘설마 파도경 검수였단 말인가!’
이 생각이 들자, 네 무인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음목춘의 태도 역시 공손하게 바뀌었다.
“귀, 귀하는 도대체 누구시오? 이름이라도 알려줄 수 없소?”
엽현은 대답 대신 마음속으로 엽지명을 찾았다.
[지명, 잠시 후에 싸움이 벌어지면 기회를 봐서 황천성수를 가지고 도망치도록 하시오.] [너는 어쩌려고 그러느냐?] [걱정하지 마시오. 다 빠져나갈 방법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명, 이번 한 번만 내 말대로 하면 안 되겠소?] […알겠다.]엽지명의 동의를 얻은 엽현은 다시 음목춘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찌, 아직도 내가 네 주인을 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나?”
“그대는 파도자였소?”
파도자!
저승의 인물들에게 있어 파도자란 공포의 대명사였다. 파도자 앞에서는 제아무리 증도경 강자라 할지라도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증도와 파도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차이가 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말하기도 전에 곁에 있던 무심이 박장대소하며 소리쳤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빌어먹을 저승을 끝장내러 오신 파도자님이시다! 알아들었으면 당장 가서 저승의 주인을 불러올 것이지 왜 다들 멍하니 서 있느냐!”
파도자!
의혹이 확신으로 바뀐 순간, 음목춘과 다른 무인들의 안색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파도자는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갑자기 장내에 무형의 기운이 불어 닥치더니 웬 중년인 하나가 무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인은 하얀 장포 차림이었는데, 그의 머리 역시 눈처럼 새하얬다.
중년인의 등장에 음목춘 등이 황급히 허리를 굽히며 예를 차렸다.
“음사왕(陰司王)!”
음사왕!
음사왕은 풍도성의 성주이자 저승의 최고위인사 중 하나였다. 최고 실권자인 그는 오직 저승 주인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음사왕의 시선은 곧장 엽현에게로 향했다.
“너는… 엽현?”
엽현!
음사왕의 말을 듣자 음목춘 등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들이 엽현이란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엽현은 바로 저승에서 도망친 도석을 소유하고 있는 자가 아니던가?
‘그 도둑놈이 왜 저승에 나타났을까?’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들이 저 도둑놈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음목춘 등의 눈빛이 살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편, 엽현 곁에 있는 무심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바로 이때, 엽현의 손바닥 위에 계옥탑이 나타났다.
계옥탑이 나타남과 동시에 엽지명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이 곧장 계옥탑을 엽지명 손안에 쥐여주며 소리쳤다.
“가시오! 빨리!”
“가시오?”
음사왕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엽현, 꿈도 야무지구나. 그녀가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엽현은 음사왕을 무시한 채, 엽지명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서, 가시오. 금방 따라가겠소.”
이에 엽지명이 비장한 눈빛을 보냈다.
“…꼭 살아서 봐.”
이 말을 끝으로 엽지명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음사왕이 한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자, 강력한 음혼지력이 불어와 엽지명의 주변을 봉쇄했다.
바로 이때 엽현이 소리쳤다.
“목생! 지금이오!”
목생!
음사왕이 눈살을 찌푸린 이때, 하늘에 별안간 균열이 일더니, 그 사이로 강대한 기운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지계, 네가 감히 개입하려 하다니!”
말과 동시에 음사왕이 허공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쾅-!
강력한 기운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던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잔영(殘影) 하나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잔영이 번뜩인 순간, 음사왕의 힘은 그대로 소멸했고, 음사왕 역시 수백 장 뒤로 미끄러지듯 밀려났다.
풍도성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충격이 가시고 풍도성이 다시 정상을 회복할 즈음, 장내에 나타난 목생이 엽현과 엽지명을 양팔에 끌어안고서 찢어진 공간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이때, 아래쪽에서 한 줄기 신비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이를 보자 목생이 미간을 찌푸렸다.
“염왕(閻王)…….”
그리고 이때, 또 하나의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목생 등을 향해 날아갔다.
바로 조금 전 나가떨어졌던 음사왕이었다.
저승의 두 명의 왕!
이때 목생의 품 안에 안겨 있던 엽현이 그녀의 팔을 뿌리치고 나왔다.
“지명을 데리고 가시오! 어서!”
엽현은 검을 든 채 아래쪽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이에 아래쪽에 있던 음사왕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일권을 날렸다.
쾅-!
검광이 허공에 흩뿌려지면서 엽현이 백 장 가까이 튕겨 나갔다.
엽현이 멈춰 섰을 땐, 그의 주변 공간은 완전히 허무로 변해 있었다. 그의 육신은 음사왕의 힘을 견딜 수 있었지만, 공간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 틈을 타 엽지명과 목생이 무사히 탈출했다는 사실이었다.
“염왕! 그대는 목생을 쫓으시오!”
음사왕이 소리치자, 검은 그림자 하나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음사왕은 곧 엽현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내 일격을 맞고도 살아 있다니, 네 실력을 과소평가했구나. 과연 그 나이에 도경과 도석의 주인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어. 하지만 너 역시 자신을 과신한 것 같구나. 황천성수를 훔치려 한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니까!”
그가 말을 마친 이때, 엽현의 주변으로 더 많은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증도경의 무인들. 그것도 열 명이나 되는 숫자였다.
그들은 바로 저승 십방귀제(十方鬼帝)!
게다가 조금 전 목생과 사도왕의 교전이 격렬했던 탓에 저승의 수많은 강자가 빠르게 엽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증도경 강자만 해도 무려 오십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엽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이때 무심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어르신…….”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무심의 흔들리는 눈빛이 시선에 들어왔다.
“어르신 파도경 맞으시지요? 그렇지요?”
이에 엽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파도경… 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헤헤, 미안하게 됐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