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14
1314화 길을 안내하시오
순간, 음사왕의 표정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감히 도망을 쳐? 꿈도 야무지구나!”
말을 마친 음사왕이 두 눈을 감더니, 돌연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이 통과한 공간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이때, 천 리 밖에서 도망치고 있던 엽현이 문득 자리에 멈춰 서더니, 황급히 양팔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쾅-!
순간, 강대한 힘이 그의 정면에서 폭발하면서 엽현을 수백 장 밖까지 튕겨냈다.
엽현이 막 자리에 멈춰 섰을 때, 그의 앞 공간이 물결치더니, 음사왕을 포함한 저승의 강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때, 무심 역시 엽현의 곁에 나타났다.
엽현을 바라보는 음사왕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내가 널 너무 얕본 모양이구나.”
엽현은 음사왕은 무시한 채,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무심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왜 여기 있는 것이오? 진즉 도망간 줄 알았는데?”
무심이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흥, 내가 도망이나 치는 겁쟁이로 보였더냐? 흠, 흠! 그건 그렇고, 조금 전에 펼쳤던 초식은 무엇이었느냐? 꽤 대단하더구나!”
무심이 호기심을 보이자 엽현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방금 것은 ‘차라리 죽여줘’라는 초식이오. 내가 직접 고안한 것이지. 어찌, 괜찮았소?”
무심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상당히 멋있는 이름이구나. 그런데 네가 만든 초식이 확실한 게냐?”
“물론!”
엽현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 무심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네가 만든 거면 손에 장을 지진다.”
“…….”
“어쨌든 평범한 도둑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그래,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 아무 대비도 없이 황천성수를 훔치려 하진 않았을 테고, 어딘가에 지원군이 대기하고 있을 테지? 그렇지?”
“물론이오.”
이 말에 무심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이냐? 그럼 뭐 하고 있느냐? 비장의 무기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니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말이 맞소. 내 친구들이 저승 밖에서 대기하고 있소. 내가 그들을 불러올 동안 그대가 여기서 시간 좀 끌어 주시오!”
이 말에 무심이 정면에 도열해 있는 음사왕 등을 흘끗 쳐다보더니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에, 그러니까 네 말은… 네가 앞장서서 포위망을 뚫을 테니 나더러 뒤따라오라는 거지?”
“…….”
엽현과 무심을 둘러싼 증도경 강자들은 총 서른여섯이었다.
서른여섯 명의 증도경 강자들!
게다가 이 중에는 대도의 선택을 받은 대도 수호자도 여럿 끼어 있었다.
이들의 전력을 확인한 순간, 엽현은 항복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차올랐다.
“이놈아, 제대로 말 해봐! 정말로 없어? 비장의 무기 같은 거!”
무심이 다급히 속삭였다.
그는 여전히 엽현에게 무언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황천성수를 훔치러 왔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의 무심 역시 막무가내이긴 했지만, 빈손으로 올 정도로 대책이 없진 않았다.
“비장의 무기?”
이때 음사왕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엽현, 본왕 역시 궁금하구나. 도대체 어떤 믿는 구석이 있기에 감히 황천성수를 훔치러 올 수 있었던 게냐?”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음사왕, 그대는 풍도성의 수호자이자 저승의 주인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들었소.”
이 순간, 엽현의 손안에 천주검이 나타났다.
“나 엽현, 그 소문이 사실인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구려. 조무래기들은 빼고 남자답게 겨뤄 볼 배짱이 있소?”
“내게 도전을 하겠다고?”
“그렇소!”
엽현의 대답에 음사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받아들이마!”
음사왕이 도전을 받아들이자, 사방에 있던 무인들이 순식간에 천 장 밖으로 물러나 자리를 만들었다.
저승 역시 이승과 마찬가지로 강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더불어 음사왕으로서도 엽현의 도전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둔일경 하나를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풍도성 성주로서의 위엄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심 역시 엽현을 곁눈질로 살펴보고는 조용히 한쪽으로 물러났다.
도망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증도경 강자 수십의 포위망을 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음사왕이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자, 슬슬 검을 내 보도록 하거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음사왕은 맹렬히 돌진하는 엽현을 보고도 차분했다. 특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음사왕에게 엽현은 아직 그 정도 자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둘 사이의 거리가 겨우 수 장 가량 남았을 때, 엽현의 미간 사이에 돌연 인장 하나가 나타났다.
윤회신인(輪迴神印)!
윤회신인이 등장하자 엽현의 기운이 일순 증도경 강자에 근접할 정도로 폭증했다.
여기에 맹파에게서 물려받은 신기지인까지 합쳐지자, 그의 기운은 이미 일반 증도경 강자를 압도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세 가지 종류의 역이 음사왕을 휘감았고, 뒤이어 계옥탑까지 나타나 음사왕을 향해 아홉 가지 색깔의 빛줄기를 뿜어냈다.
신기지인!
세 가지 역!
게다가 계옥탑의 힘까지!
엽현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모든 비장의 무기를 처음부터 쏟아부었다.
음사왕 같은 강자를 상대로 다음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예열한 후에 중요한 순간이 오면 일격필살로 적을 마무리한다?
이런 방식은 엽현이 선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싸움이 무슨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뭐 때문에 질질 끌어야 한단 말인가?
승부는 그저 목숨을 건 한 방이면 족할 뿐!
엽현이 모든 패를 동시에 펼쳐 놓은 순간, 장내 무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음사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엽현이 대도의 수호자일 뿐 아니라, 두 개의 신기지인을 소유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나 엽현이 펼치는 검술이었다.
세 가지 역의 지원 속에서 날아드는 검의 깊이는 제아무리 음사왕이라 할지라도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엽현의 검도는 이미 검심자재를 훌쩍 뛰지 않았던가!
이 순간, 음사왕은 깨달았다.
방심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을.
눈앞의 검수를 상대로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 했다는 것을!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음사왕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만음귀체(萬陰歸體)!”
절제절명의 순간 음사왕의 선택은 수비였다.
엽현에게 선기를 빼앗긴 탓에 공격의 기회를 잃었던 것이다.
음성이 떨어지자, 수많은 음혼지체(陰魂之體)가 나타나 마치 갑옷처럼 음사왕을 에워쌌다.
그리고 이때, 엽현의 검이 도달했다.
지금 떨어지는 이 일검은 엽현이 펼쳐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검이었다. 신기지인의 도움을 받아 단숨에 증도경의 기운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검낙하(一劍落下)!
쾅-!
고막을 찢는 비명과 함께 멸천의 힘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이 일검은 무수히 많은 망령을 제거했지만, 만음귀체를 완전히 무력화시키지는 못했다.
이에 음사왕이 엽현을 향해 흉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멍청한 놈. 망령이 썩어나는 저승에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느냐? 이제 내 차례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음사왕이 출수할 듯 소매를 펄럭였다.
바로 이때, 엽현의 천주검이 순식간에 진혼검으로 바뀌었다.
진혼검이 나타나자, 음사왕 주변에 남아 있던 망령들이 순식간에 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안색이 하얗게 질린 음사왕이 황급히 뒷걸음질 치려는 이때, 진혼검이 그의 미관을 꿰뚫었다.
쾅-!
미간에 검이 박힌 채, 꼿꼿이 서 있는 음사왕.
진혼검은 어째서인지 음사왕을 흡수하지는 않았다.
순간,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죄다 딱딱하게 굳었다.
음사왕이 졌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멀리서 엽현을 지켜보고 있던 무심 역시 탄성을 내뱉었다.
“이야…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사실 엽현이 처음부터 진혼검을 꺼냈더라면 음사왕은 분명 이를 대비했었을 것이다.
엽현의 첫 공격이 망령의 벽을 뚫지 못했을 때, 모든 이들은 음사왕의 반격을 예상했다.
이때는 심지어 무심조차 엽현이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회심의 일격이 무위로 돌아간 이상 엽현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엽현은 그다음 수까지 계산한 상태였다.
첫 번째 공격을 흘려 냈을 때가 바로 음사왕이 유일하게 방심한 순간이었고, 이때 등장한 진혼검은 전투를 종결짓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진혼검에 제압당한 음사왕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움직이는 순간 죽음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엽현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이 순간, 그는 마치 온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검을 휘두르기 전, 엽현 역시 기회는 단 한 번뿐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면 음사왕이 곧 반격에 나설 것이고, 이 상황이 되면 상대가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승산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음사왕은 마지막 순간에 틈을 보이고 말았다.
생각을 정리한 엽현은 일단 두 개의 신기부터 회수했다. 확실히 신기의 권능은 사람을 현혹하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엽현은 이 힘에 의지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증도경이 되는 것은 진정한 실력으로 보기 어려웠다.
엽현에게 있어 더욱 값어치가 있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증도를 이루는 것이었다.
엽현은 음사왕을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음사왕, 내가 길눈이 어두워서 그런데 나가는 길까지 안내해 주시겠소?”
순간, 음사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놈! 나를 협박하려는 게냐?”
“하하하, 생각보다 머리가 나쁘지는 않군! 알아들었으면 결정하시오!”
“흥! 나 음사왕을 뭐로 보고 감히……”
바로 이때, 진혼검이 가볍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느끼자 음사왕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검이 영혼을 흡수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엽현이 음사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부하들 앞에서 못 볼 꼴 보이기 싫은가 본데, 깔끔하게 소멸하고 치웁시다. 그게 낫지 않겠소?”
음사왕은 엽현을 노려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하! 그래도 꼴에 죽기는 싫은 모양이군! 그럼 뭐 하고 있소? 빨리 앞장서지 않고! 무형(無兄)도 갑시다!”
“으, 으응… 같이 가자.”
무심은 우물쭈물 엽현을 따라나섰다.
여기서 고집부렸다간 정말로 저승에 남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저승의 강자들이 엽현의 앞을 막아섰다.
“하하하! 이건 또 뭔가? 음사왕이 죽건 말건 상관없다는 건가?”
엽현의 말에 가장 앞에 서 있던 음목춘이 차갑게 엽현을 바라보고는 음사왕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음사왕은 조용히 눈을 피할 뿐이었다.
이를 보자 음목춘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음사왕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소리 내 웃은 엽현은 음사왕을 앞세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뒤를 무심이 바짝 뒤쫓았고, 그다음으로 음목춘 등 저승의 무인들이 뒤따랐다.
잠시 후.
나하교 앞에 선 엽현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저승을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이변이 발생했다.
멀쩡하던 나하교가 갑자기 출렁이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