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21
1321화 인과를 무시하는 존재
막념이 다시 엽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널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그녀가 떠났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 네가 스스로 성장하길 바랐거나, 그렇지 않으면 모종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사라져야만 했겠지. 더욱이 네게 붙어 있는 액난지인은 절대 간단치 않다. 심지어 나조차 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정도니까.”
“내가… 누님에게 폐를 끼쳤구려.”
엽현이 풀이 죽어 말하자 막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린 것이었다. 네가 도정을 적으로 삼을 것을 알면서도 피안화를 구한 것처럼, 나도 네 운명을 알고서 너를 선택했지.”
“…누님, 솔직히 말 해 보시오. 도정 따위는 누님에게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거 아니오?”
“하하하! 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네 말이 맞다! 청아란 여인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 내가 무서워할 상대는 없다!”
“참 내, 곧 죽을 것 같더니 아직 허풍 칠 힘은 남아 있었네!”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막념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때 한쪽에서 듣고 있던 무심이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그… 청아란 여인이 그렇게도 대단한 사람이더냐?”
이에 엽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소. 둘이 싸운다면 내가 근소하게 밀릴 정도?”
“하하, 너도 이번에 성장을 했으니 동수(同數)를 이루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하하하!”
엽현과 막념은 호탕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무심이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동수라니… 또 뭔가 사기 치는 거 같은데?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어, 어라… 잠깐, 기다려! 같이 갑시다! 난 길을 모른다구!”
* * *
막념은 오유계로 돌아오자마자 어디론가 휙 사라졌다.
말하지 않아도 분명 생선을 구우러 간 것이리라.
엽현은 항상 이 점이 의문이었다. 막념은 왜 저리 생선을 좋아하는 걸까?
‘전생에 고양이라도 됐나?’
엽현은 우선 오유맹으로 향했다. 대전 안에는 마침 소음이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이때 소음은 이미 진짜 둔일을 이룬 상태였다.
간단히 안부를 교환한 두 사람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유겁이 점점 다가오고 있소. 혹시 이에 대한 전조라든가 징후가 있었소?”
“이쪽은 매우 조용한 상태요.”
소음의 대답에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흠… 그것참, 이상하군. 이때쯤이면 뭔가 있어도 벌써 있었어야 하는데.”
“나도 그 점이 의문이오. 하지만 오유계는 이상하리만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소.”
“…….”
“그나저나 저승을 다녀왔다고 들었소.”
소음의 물음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과 도석이 모두 그대에게 있으니 저승이 가만두지 않겠구려!”
엽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지금은 저승이 문제가 아니오. 사실 저승에서 한 여인을 죽였는데 글쎄 그녀의 신분이 도정의 공주라지 뭐요? 앞으로 우리는 저승과 도정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 처지에 놓였소! 하하하!”
“…….”
소음의 표정을 본 엽현이 민망한 듯 웃음을 뚝 그쳤다.
“흠, 흠! 그나저나 둔일경 강자는 어느 정도나 되오?”
“오유계를 통틀어 열두 명이오.”
둔일경 강자 열둘!
“그 정도로는 턱도 없소!”
엽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자 소음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한 명의 무인을 둔일로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오. 물론 도경의 도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무인 스스로의 자질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
“음… 오유계의 실력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도정은커녕 저승에도 미치지 않소. 게다가 무슨 파사세계니 도총이니 하는 세력도 염두에 두어야만 하오. 지금쯤 그들도 내게 여러 권의 도경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오.”
“그래서… 앞으로 어찌할 생각이오?”
엽현이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오유겁을 막을 준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강력한 적들까지 상대해야 한다니…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두는 게 좋을 것이오.”
소음은 어두운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때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명을 만나러 가야겠소. 그녀라면 분명 좋은 생각이 있을 것이오.”
“…….”
대전을 떠난 엽현은 곧장 엽지명이 머무는 장원을 찾았다.
마침 엽지명은 돌계단에 턱을 괴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 인기척을 느낀 엽지명이 고개를 들어 엽현을 쳐다보았다.
“왔느냐?”
“하하! 내가 왔소!”
“…축하한다.”
“음? 뭘 말이오?”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것 말이다.”
“아… 운이 좋았소, 헤헤…. 그나저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소? 목소리에 힘이 없구려.”
엽지명이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육공주… 막념이 죽인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엽지명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막념 누님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죽었을 것이오. 그나저나 도정에 대해 좀 알고 있소?”
엽지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도정은 강하다. 그것도 매우. 삼천대도의 호도자 중 팔 할이 도정의 무인이니 설명은 끝난 것 아니더냐? 만약 도총(道塚)의 견제가 없었더라면 도정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했을 것이다.”
“도총?”
엽현이 궁금하다는 듯 쳐다보자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총은 도정과 반대로 파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들의 목적은 도정의 멸망이지. 실제로 당시 도정은 도총의 총공격에 삼천대도 대부분이 큰 타격을 입어 괴멸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혹시… 전에 저승 외의 세력들을 설명하면서 그대가 언급할 수 없었던 한 군데가 바로 이 도총이란 곳이오?”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명칭은 ‘도총의 땅’이라 한다.”
“이상하군. 그런데 왜 지금은 말해도 되는 것이오?”
“왜냐하면, 네가 그들의 마음에 드는 일을 했기 때문이지.”
“어떤… 혹시 육공주를 죽인 일?”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그렇게 된 거 도총과 손을 잡는 건 어떻겠소? 우리에게도 우방이 생기면 한결 숨이 트일 텐데?”
“그건 아마 어려울 것이다.”
“어째서 말이오?”
엽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결국은 도경 때문이다. 파도자들에게도 도경은 매우 중요한 것이니까.”
엽현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아니, 도대체 도경이 뭐기에 다들 불나방처럼 달려든단 말이오? 파도경 정도 되는 자라면 도경이 필요 없는 것 아니오? 허 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엽지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도경이 아홉 권으로 구성된 것은 너도 알 것이다. 첫 권이 둔일에 이르는 방법을 담고 있다면 두 번째 권은 인과를, 세 번째 도경은 대도 규칙 내에서 벌어지는 변수를 설명하고 있지. 네가 검변을 창안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편 덕분이었다.”
엽현은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며 엽지명의 말을 경청했다.
“네 번째 도경은 편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운명을 포함한 세상만사가 한 가지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다루는데, 그 법칙은 다름 아닌 대도법칙을 의미한다. 즉, 편을 깨우친 자는 스스로의 운명을 통제하며 어느 정도 대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지.”
이때 엽지명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저승에 증도경 강자가 왜 그리 많은지 아느냐?”
“그야… 증도를 다루는 도경이 저승에 있기 때문 아니겠소?”
엽지명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저승에는 증도에 관해 기술 한 도경이 존재한다. 아홉 권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도경이지. 이뿐만 아니라, 후반부 네 권 중 한 권 역시 저승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증도를 뛰어넘은 ‘어도(御道)’를 다루고 있는 책이지. 그리고 나머지 세 권은……”
이때 엽지명이 말을 멈추고 잠시 엽현을 쳐다보았다.
“아홉 권의 도경이 한 군데 모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도경이 한데 모이게 된다는 의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도의 기원이자, 현존하는 최강의 무학이 부활한다는 뜻이다. 파사세계든 도정이든 모두 도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무도를 모두 압도하는 무학이 바로 도경의 광세도경무학(曠世道經武學)이다.”
이때 엽현이 물었다.
“그런데 파도자들은 왜 도경을 필요로 하는 것이오. 그들은 이미 대도의 법칙에서 벗어나 자신의 무도를 걷는 것 아니었소?”
이 질문에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도경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모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방해? 어째서 말이오?”
“도경은 삼천대도의 실질적 의미를 응축해 놓은 것이다. 그 안에는 대도의 핵심과 우주의 진리, 변수 등이 들어있지. 도경은 처음부터 아홉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어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경이 완전체를 이루게 되면 파도자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도경이 합쳐지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도경을 모두 모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는 무려 네 권의 도경을 가진 너, 엽현이다. 파도자들이 너와 손을 잡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지.”
“…….”
“덧붙이자면, 도경을 전부 모은 자는 삼천대도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삼천대도를 부리는데, 그 밑의 호도자는 뭐 말할 것도 없겠지.”
이때 잠시 말을 멈춘 엽지명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말하지만, 내가 너를 선택한 이유는 도경을 하나로 뭉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 바로 너이기 때문이다.”
“도경을 다 모은 다음은 어찌할 생각이오?”
“…….”
“하하, 말하고 싶지 않은가 보구려. 그럼 하지 않아도 상관없소. 혹시 나중에 말하고 싶거들랑 이야기해 주시오.”
“…이해해 줘서 고맙군. 앞서 다소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긴 했는데, 도경 전권을 모은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도경은 하나하나가 재앙을 담고 있어, 주인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거든. 실제로 저승에서도 도경 때문에 엄청난 숫자의 무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소문에 의하면 초대 저승 주인 역시 도경 두 권을 소유하고 있다가 비명에 횡사했다고 한다.”
엽지명이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래전, 나는 도경과 관련된 죽음을 연구하다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은 바로 도경 자체에 어떤 인과가 묻어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보통 인과가 아닌 삼천대도의 인과가. 그러니 도경을 차지하고 얼마 가지 못해 죽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이지. 제아무리 강한 무인이라 할지라도 삼천대도의 인과는 감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하늘이 날 저버리지 않았는지, 이런 인과쯤은 가볍게 무시하는 사내를 알게 되었다.”
엽현이 눈을 깜빡이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혹시… 나?”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네 배후라 불리는 그 여인이다. 그 여인이 인과를 막고 있기에 네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이지.”
여기까지 말한 엽지명이 갑자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만약 액난지인이나 삼천대도의 인과였더라면 매우 황당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재수 없게도 너 같은 금수저를 만났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