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23
1323화 이거라도 줄까?
‘너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
엽현의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이 얼마나 모욕적인 언사인가!
심각한 표정의 엽현과 달리 막념은 뭐가 그리 웃긴지 박장대소를 했다.
이때 백제자가 웃으며 막념에게 말했다.
“지금 경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 것이오. 도정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더 높은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겠소.”
“하하하, 거절한다면?”
순간 백제자의 눈빛이 퍼렇게 번뜩였다.
“거절한다면 수만 년의 고행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것이오.”
“호오, 그거 재밌겠군. 어디 한번 해 보든가!”
“후후, 그대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결국 하나의 천도일 뿐이오.”
이에 막념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글쎄, 나는 누구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 말… 곧 후회하게 될 것이오.”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백제자는 그대로 돌아서서 사라졌다.
백제자가 떠나자 막념은 다시 쪼그려 앉아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누님, 내 생각에 저자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소.”
“당연한 소리를 무얼 그리 심각하게 하느냐?”
“도정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이오?”
“나도 모른다.”
막념의 대답에 엽현의 표정이 다소 일그러졌다.
“누님도 모른단 말이오?”
“응, 귀찮아서 알아보지 않았거든.”
“…….”
“여기서 고민한다고 뭐가 해결된다더냐? 가서 할 일이나 하거라.”
“…알았소.”
엽현은 곧장 자리를 떠났다.
엽현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념 앞에 엽지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는 정말로 도정을 두려워하지 않는군.”
막념이 엽지명을 흘끗 쳐다보고는 심드렁한 표정을 드러냈다.
“넌 또 무슨 말을 하러 온 거냐?”
“어째서 이렇게 태연한 것이오?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 아니면 무언가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이때 막념이 잘 구워진 생선 하나를 들고 일어나, 먼 허공을 응시했다.
“이봐, 대연에서 온 여자. 이 우주는 과연 끝이 존재할까?”
“…….”
갑작스러운 질문에 엽지명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이 광활한 우주의 끝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후후, 우주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너무나 많아.”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요?”
막념이 기지개를 켜고는 웃으며 돌아섰다.
“누군가는 이 우주의 신비를 파헤치고 싶겠지만, 나는 오래전에 흥미를 잃었다. 이 자그마한 오유계가 결국 나의 무덤이 되겠지.”
엽지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요? 질문에 대한 답이나 하시오!”
“후후,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방금 내가 한 말에 들어 있었다.”
말을 마친 막념은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구운 생선을 들고서 떠나갔다.
홀로 남은 엽지명은 한참 동안 자리에 남아 생각에 잠겼다.
* * *
저승.
오유계를 떠난 백제자는 곧장 도정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저승을 찾았다.
음령전(陰靈殿).
백제자와 마주 앉은 음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가 거절했단 말이오?”
“그렇소.”
백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흠… 예상은 했었소. 그 정도 되는 강자가 쉽게 하진 않겠지. 가만… 혹시 다른 이유 때문에 그녀를 찾았던 것이오?”
백제자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인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자 했소.”
막념의 실력!
순간 음주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서? 확인했소?”
“후… 나 역시 그 여자의 실력을 꿰뚫어 볼 수 없었소.”
“그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단 말이오?”
백제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음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바로 이때, 백제자의 입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드리웠다.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소.”
“음? 무엇을…….”
“후후, 가까이서 관찰한 결과 그녀가 오유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아냈소. 내 예상대로라면, 그녀의 힘의 근원은 바로 오유계일 것이오. 내가 알기로 오유계는 얼마 가지 않아 큰 재난을 맞게 될 것이라 하오. 그리하면 그녀의 힘도 약해질 것이고, 그때 우리가 힘을 합쳐 공격한다면 그녀를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오.”
“우리?”
음주가 인상을 찌푸리자 백제자가 웃으며 되물었다.
“설마 도석을 되찾고 싶지 않은 것이오?”
“…….”
“게다가 그녀 손에 죽은 증도경 강자가 수십이 넘는 걸로 아는데,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오?”
“…당연히 복수하고 싶소. 하지만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텐데, 그럼 복수가 다 무슨 소용이오?”
“후후, 음주께서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려. 육공주의 지위는 그대 생각보다 훨씬 더 간단치 않소. 그런 그녀를 죽인 것도 모자라 영혼까지 흡수한 것은 우리 도정의 얼굴을 발로 짓밟은 것과 다름없소. 실제로 도총의 견제만 아니었더라면 도조께서 직접 병력을 이끌고 오셨을 것이오. 도정이 전력을 다한다면 제아무리 그 여인이라 하더라도 버틸 재간이 있겠소?”
“흠…….”
“게다가 생각해 보시오. 만약 그대가 도석을 흡수한다면……”
이 말에 음주가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진중하게 의논해 봅시다.”
“물론이오!”
* * *
오유계.
엽현은 방안에 앉아 앞에 놓인 책 한 권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책은 선각자에게서 얻은 것으로, 세상의 통치에 대한 그의 견해가 담겨 있었다.
선각자의 생각은 간단명료했다.
인간과 우주의 공존!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영기에 대한 탐욕을 절제하고, 영체나 영물들을 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육유계의 방식이다.
하지만 오유계에 이런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육유계는 처음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함으로써 영기를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영기를 소모하는데 익숙한 오유계 무인들에게 이는 매우 가혹한 일이었다. 평생을 바쳐 쌓아 온 경지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에 선각자는 오유겁을 이용할 생각을 하게 된다.
제구포신(除舊布新: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한다)!
오유겁이 당도하면 대부분 생령들이 소멸하게 된다. 그는 이때를 틈타 새로운 세상을 만들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오유계의 파괴, 그리고 새로운 세상의 시작!
엽현은 책을 덮고서 문밖을 바라보았다.
막념 역시 선각자의 생각에 동의했을까?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엽현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방문을 나섰다.
성을 찬찬히 둘러보니 강자들의 숫자가 확실히 늘어 난 것이 보였다.
더불어 오유계 무인들의 표정에서는 활기가 느껴졌다.
모두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간, 엽현은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강자가 많아진다는 건 오유계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영기란 것은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침묵하던 엽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 그렇게 하면 굳이 죽이지 않고도 부담을 덜 수 있잖아!”
엽현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엽현은 다시 어느 성역에서 막념을 찾았다.
막념의 시선은 곧장 엽현이 들고 있는 책으로 향했다.
“그건 선각자가 남긴…….”
“그렇소. 막 끝까지 본 참이오. 확실히 선각자와 누님의 생각은 상통하는 바가 있었소. 그렇지 않소?”
막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원래 내가 선택하려던 자였다. 하지만 야망이 너무 컸던 탓에 내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 허무하게 죽고 말았지.”
“…….”
막념은 아래쪽의 오유계를 향해 시선을 가져갔다.
“현재 오유계 무인들의 실력은 유례없이 강성하다. 오유겁이 끝난 후, 이들 중 많은 수가 생존하게 될 테고 우주의 부담은 이전보다 더 늘어 날 것이다. 다음에 벌어질 일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무인들은 더 많은 영기를 탐할 것이고, 다음 오유겁이 오는 시기도 계속 단축되겠지. 이렇게 이 우주는 서서히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누님과 선각자는 오유겁을 이용해 무인들을 제거하려 했던 것이오?”
이 물음에 막념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선각자는 분명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지.”
막념이 문득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 건 왜 묻는 것이냐? 혹시 네게 다른 생각이라도 있는 것이냐?”
엽현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것 때문에 찾아왔소. 누님이 듣고 어떤지 평가해 주시오.”
“일단 말 해 보거라.”
엽현이 손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저들이 이곳에 있는 것이 문제라면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는 건 어떻겠소?”
“음? 떠나보낸다고?”
“그렇소! 힘을 합쳐 오유겁을 막아낸 후, 최상급 무인들이 다른 우주로 나가 성장하도록 설득하는 것이오! 동시에 그들의 머릿속에 이 오유계가 그들의 고향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을 필요가 있소. 이렇게 된다면 오유계는 영기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고, 위기가 닥쳤을 때 사방팔방에서 달려와 줄 지원군도 확보할 수 있소.”
“하하, 그들이 뭐 때문에 다시 돌아오겠느냐?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엽현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열쇠는 바로 도경이오. 오유계를 떠난 그들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 돌아오면 도경을 통해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도울 것이오. 이렇게 하면 돌아오지 않고 배길 수 있겠소?”
“훗… 과연 그럴싸하구나.”
이익!
인간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결국 이에 상응하는 이익이다.
오유계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똘똘 뭉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이익 때문이었다.
이들은 오로지 도경을 얻기 위해 자발적인 단결을 택한 것이었다.
도경을 위해서라면 이들은 기꺼이 오유계를 집으로 여기기도 할 것이고, 외적에 대항해 싸우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들도 공짜로 받아만 가는 것은 아니오. 도움을 주는 대가로 우주 곳곳에 있는 천지영물이나 신물을 가져오도록 요구할 것이오. 그렇게 되면 오유계의 영기가 더욱 풍성해질 테니, 말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겠소?”
“그래서, 그 일을 네가 하겠다고?”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해낼 것이오!”
엽현은 고개를 돌려 오유계를 바라보았다.
“누님 혼자서 이곳을 지키는 것은 한계가 있소. 하지만 우리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은다면 누님의 부담은 훨씬 줄어들 것이오. 그렇게 되면 누님도 시간을 내서 우주 이곳저곳을 둘러볼 여유도 생기지 않겠소?”
이 말을 듣자 막념이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엽현은 그런 막념을 바라보며 말없이 기다렸다.
잠시 후, 막념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엽현을 향해 말했다.
“이곳을 떠나 한가롭게 우주를 돌아본다니, 꿈만 같은 일이로구나.”
“하하, 나도 상상만 해도 즐겁소!”
막념이 웃으며 엽현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조금 걸으면서 이 누님하고 수다나 떨자꾸나.”
“수다? 지금 한창 바쁜데… 따라가면 뭐 선물이라도 있는 거요?”
엽현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막념이 웃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별로 줄 건 없고 이거라도 한번 맛보겠느냐? 너무 오래돼서 내 주먹맛을 까먹은 것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