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27
1327화 너 죽고 나 죽고!
누나!
막념은 이 말을 뱉자마자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엽현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만약 가족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어색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감정.
이때 그녀는 문득 천녀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엽현에게 집착하는 그녀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강자들에게 가족이나 애정은 거추장스러운 감정일 따름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 하더라도 외로움을 타기 마련이고, 누군가 자신을 신경 써 주길 원한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바로 고독인 것이다.
이 고독이란 불치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약밖에 없다.
정(情).
누군가는 하찮게 여길지 모르는 이 사람의 정이란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을 이어가야 할 의미가 된다.
막념은 오유계의 수호자로서 까마득한 시간 동안 이 우주를 지켜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의 관찰자로서 인간들의 행동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딱히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까이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러기엔 인간이란 생명체는 매우 불안정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하하 호호 웃다가 돌아서면 등 뒤에 칼을 꽂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하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감정, 이를테면 가족의 정, 우정, 애정 따위는 언제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실제로 막념은 엽현과 함께 있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이때 대답을 기다리던 백제자가 마침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아하니 결국 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모양이구려. 특히나 부상 당한 몸으로 남의 일에 관여하려 하다니…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오.”
정신이 돌아온 막념이 웃으며 한쪽 성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글쎄, 내 판단이 잘못되었는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백제자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엽현과 현옹이 대치하고 있는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 * *
이 시각.
엽현의 표정은 다소 좋지 않았다.
도정이 막념을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엽현은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막념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부상을 입은 상태가 아니던가.
‘빨리 누님에게 가 봐야 해!’
엽현은 고개를 들어 공중의 현옹을 쳐다보았다. 그녀에게 가려면 이 사람부터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는 도정 사대신장 중 하나!
이때 현옹이 극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강대한 압력이 엽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기세(氣勢)!
단지 기세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려는 것이었다.
세상 모든 존재를 오시하는 듯한 패도 넘치는 기운은 보통 무인이라면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이때 엽현의 표정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어디 한 번 해보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엽현이 공중으로 신형을 날렸다.
쉭-!
순간 한 줄기 검광이 번뜩이자, 현옹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공중, 현옹이 무표정한 얼굴로 지상을 향해 들고 있던 극을 내리쳤다.
순간, 날카로운 창끝에 붉은 화염이 더해지면서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려는 듯한 강력한 일격!
이때, 엽현의 검이 도달했다.
검과 극의 끝이 맞닿은 순간,
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엽현의 검광이 그대로 소멸했다. 검세 역시 한풀 꺾인 상태였지만, 엽현은 물러나기는커녕, 창신을 타고 오히려 상대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현옹의 반응 역시 빨랐다. 엽현이 방위를 바꾸자, 재빨리 극을 횡으로 휘둘렀다.
퍽-!
간신히 검을 세워 공격을 막긴 했지만, 엽현은 수백 장 뒤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채 자리에 멈춰 서기도 전, 서늘한 기운이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극이 도달하기에 앞서 상대의 기세가 먼저 도착했던 것이다.
팟-!
엽현은 오른발을 뒤로 깊게 박아 넣음과 동시에 공간도칙을 이용해 강제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나 이때 현옹의 극은 이미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엽현은 막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다. 기세를 잘 이용하는 적을 상대로 한 번 물러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탓이었다.
대신 엽현은 빠르게 검역을 둘러쳤다. 검역이 공간을 장악한 순간, 검세가 크게 약해졌고, 엽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쾅-!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현옹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직후였다.
순간, 눈동자가 크게 확장된 엽현이 빠르게 오른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
다시 한번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막아 낸 엽현.
하지만 이번에는 창을 든 여러 개의 분신이 나타나 엽현을 에워쌌다. 현옹과 똑같이 생긴 이 분신들은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바로 이때, 엽현이 뒤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순간, 귀를 찢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무수히 많은 검광들이 엽현을 호위하듯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일각 가량을 후퇴하던 이때, 그림자들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더니, 엽현의 미간을 향해 극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극의 끝에는 경천동지할 위력이 깃들어 있었다.
물러나던 엽현은 이번에는 양손으로 검을 잡고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이때 검역이 재차 발동하면서 극의 기세를 찍어 눌렀다.
쾅-!
창과 극이 맞부딪치면서 천지를 울리는 굉음을 만들어냈다. 엽현은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지만, 결코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왼손을 뻗어 창신을 붙잡고는 현옹의 목을 향해 검끝을 쭉 밀어 넣었다.
하지만 현옹은 이를 알고 있었다는 듯, 극을 잡고 있던 오른손을 풀고서 주먹을 만들어 검면을 강하게 때렸다.
콰쾅-!
순간, 엽현의 신형이 공간을 부수며 백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바로 이때, 먼저 자리에 멈춰 선 현옹이 크게 한 발 내디디며 엽현을 향해 척을 내던졌다. 척을 던진 직후에는 바로 지면을 강하게 밟으며 폭발적으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막 자리에 멈춘 엽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공간을 가르며 날아드는 한 자루 척이었다. 그 뒤를 현옹이 바짝 쫓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검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오래전 천녀에게서 전수받은 검기가 다시 한번 펼쳐진 것이다!
일검정생사는 사실 엽현이 사용할 때에는 일검분생사(一劍分生死)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상대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천녀 정도의 강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네가 됐든 내가 됐든, 오늘 둘 중 하나는 죽는다!’
이것이 바로 일검정생사를 펼치는 엽현의 마음가짐이었다.
검이 방출된 이 순간, 검명이 하늘을 찢고 울려 펴졌다.
쾅-!
검과 척이 마주한 찰나의 순간, 척이 버티지 못하고 멀리 튕겨 날아갔다.
바로 이때, 엽현 바로 앞에 나타난 현옹이 벼락같은 일권을 엽현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그의 주먹은 척과 비교해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패도 넘치는 기운을 담고 있었다.
이미 피하기는 늦은 상황.
엽현은 가슴을 내어 주는 대신 자신 역시 주먹을 내질렀다.
마치 무공을 알지 못하는 남자가 휘두르는 듯한 평범한 주먹.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도경무학(道經武學): 구사(求死)!
두 사람의 주먹이 각각 상대의 가슴을 강타하자,
콰쾅-!
반경 수만 장 내에 존재하던 거대한 산맥이 그대로 먼지가 되어 평지로 변했다. 두 사람 역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지듯 날아갔다. 동시에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 역시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변했다.
무려 만 장 가까이 날아가서야 겨우 멈춰 선 엽현.
그의 입가에서는 쉴 새 없이 선혈이 흘러내렸고, 육신 역시 하얀 뼈를 드러낼 만큼 심각하게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만약 만불불멸체가 아니었더라면 이미 가루로 변해 영혼만 남았으리라!
한편, 현옹 역시 상황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수천 장을 날아간 그의 상의는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온몸은 상처로 인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몰골이 처참한 상황!
엽현을 바라보는 현옹의 눈빛은 매우 무거워져 있었다. 눈앞의 검수가 이 정도까지 자신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정보에 의하면 엽현은 아직 둔일에 불과하지 않던가!
이때 현옹은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엽현과 정면 대결을 했을 때 손해 보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처음 경지의 차이를 이용해 압박했을 땐, 분명 자신이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서로 방어를 포기한 채 공격을 교환했을 땐 양패구상의 결과가 발생했다.
물론 현옹이 이런 전략을 취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엽현이 자신의 일격을 견딜 수 없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엽현은 보란 듯이 두 다리로 서 있는 것도 모자라, 현옹에게 중상을 입히는 데까지 성공했다.
엽현을 한 수 아래로 생각하던 현옹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현옹이 심호흡을 크게 하며 회복을 도모하는 이때, 반대쪽의 엽현이 웃으며 소리쳤다.
“어째 힘들어 보이는군? 나는 거의 다 회복했는데! 하하하!”
이 말에 엽현을 유심히 쳐다봄 현웅은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정말로 엽현의 몸에 난 상처가 대부분 아물어 있는 게 아닌가!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엽현은 굳이 이유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신기지인을 소환함과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뒤이어 장내에 번뜩이는 한 줄기 검광.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신기지인을 소환한 엽현의 기운은 이미 증도경 근처에 도달해 있었다. 자연스레 이번 검기에 담긴 위력 또한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이때, 현옹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뒤이어 그는 정면으로 몸을 날리며 허공 깊숙이 척을 찔러 넣었다.
순간, 창끝에 한 덩이 화염이 피어나고,
쉭-!
마침내 상공 한복판에서 검과 척이 다시 한번 교우했다.
쾅-!
찰나의 순간, 불꽃과 검광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면서 두 사람을 수천 장 밖으로 튕겨냈다. 바로 이때, 엽현이 손을 앞으로 쭉 내밀자, 한 자루 비검이 빠르게 장내를 가로질렀다.
현옹 역시 이를 놓치지 않고 손을 뻗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척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날아갔다.
쾅-!
천지가 뒤흔들리면서 검과 척이 다시 한번 불꽃을 일으키며 튕겨 나갔다.
이때, 자리에 멈춘 엽현이 이번에는 진혼검을 꺼내 들고서 현웅을 가리켰다.
“일검정혼(一劍定魂)!”
윙-!
검명이 천지에 진동하는 순간, 한 줄기 강대한 영혼력이 현옹을 향해 뻗어 나갔다.
이를 본 현옹의 입에서 노기 띤 음성이 튀어 나왔다.
“산(散)!”
음성이 떨어진 순간, 강대한 기의 파동이 거대한 파도처럼 파문을 일으키며 공간 전역을 장악해 나갔다. 이 파동은 포악하고 사악한 기운마저 담고 있었다.
콰쾅-!
굉음과 함께 빠르게 날아가던 일검정혼의 기운이 현옹의 바로 앞에서 가로막혔다.
비록 소멸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현옹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영혼이 강대한 현옹을 상대로는 반드시 몸 안에 검을 꽂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에 타격을 입히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이 순간, 엽현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한 줄기 검광이 장내에 번뜩였다. 벼락처럼 날아드는 검광에는 세 가지 강대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세 가지 역(域)을 동반한 일검정혼!
당장 엽현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이었다.
이때, 현옹의 입가에 흉흉한 미소가 흘렀다. 찰나의 순간, 현옹이 지면을 강하게 박차고서 폭발적으로 정면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극에서 흘러나온 화염이 공간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은 마치 종말의 그 날을 연상케 했다.
생사일극(生死一戟)!
네가 죽거나 아니면 내가 죽거나!
도정의 신장, 현옹.
그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해 본 적 없는 진정한 전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