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30
1330화 내 집에서 싸우기는 좀
이를 본 막념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보고 있는 것 말고도 이 호수 아래는 모두 용암으로 꽉꽉 채워져 있다. 지금은 내 힘으로 봉인해 놓은 상태지만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상상 해 보거라. 수만 년 동안 축적되어 온 힘이 분출되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문제는 오유계 곳곳에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엽현의 멍한 표정을 보자 막념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널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굳이 외부의 적이 아니더라도 오유계는 이미 큰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이는 네가 아무리 강해진다고 하더라도 막아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 역시 그저 시간을 끄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결국, 오유겁은 언젠가 터지고 말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오유계 전체를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꾸지 않는 한 오유겁은 시간문제라는 것이구려.”
“네 말이 맞다. 원래는 천천히 바꿔 나갈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지금 보니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구나.”
이때 막념이 문득 머리 위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하! 정말이지 한 시도 가만두질 않는구나!”
막념은 곧바로 엽현을 데리고 다시 호숫가로 나왔다.
이때 엽현의 시선에 노인 한 명이 들어왔다.
다름 아닌 백제자였다.
막념을 발견한 백제자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또 보는구려.”
“하하하! 너희는 전생에 모기였느냐? 어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귀찮게 하는 것이냐?”
이 말에 백제자가 미소를 보였다.
“막념 소저,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도정으로 들어온다면 영원히 오유계를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소. 뿐만 아니라, 도정 내에서 그대가 원하는 지위가 있다면 무엇이든 허락하겠소!”
원하는 지위를 주겠다고?!
누구라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막념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하하! 듣기에는 달콤하구나. 하지만 사실은 나와 오유계를 무장해제 시킨 다음 본색을 드러내겠다는 속셈이 아니더냐?”
“…….”
“후후, 말로 할 것 없다. 여기까지 오면서 빈손으로 오진 않았을 테고… 가져온 것이나 꺼내 보거라!”
“…막념 소저, 그럼 실례하겠소이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백제자가 하늘로 손을 번쩍 들었다.
“전도(戰道)!”
순간, 백제자의 머리 위로 금광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색 길이 펼쳐졌다.
뒤이어 이 길 위에서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봉황 한 마리가 튀어 나왔다.
이 머리들 중 하나에 방천화극(方天畫戟)을 들고 있는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이때 백제자가 가볍게 소매를 펄럭였다. 순간, 반경 수만 리 근방의 하늘이 온통 금광으로 뒤덮였다.
막념을 바라보는 백제자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어디, 전도를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기대되는구려!”
전도!
전도란 단순히 한 명의 무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대규모 병력을 빠르게 파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전송진’에 가까웠다.
도정과 직접 이어진 전도는 주로 도총과 싸울 때 사용되곤 했었다.
오늘은 막념을 잡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즉, 전도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도정이 얼마나 작심하고 나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호숫가에 서 있는 막념은 하늘에 깔린 황금 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전도라고?”
“그렇소!”
“후후, 그렇게 자신 있으면 어디 들어와 봐!”
백제자는 막념을 응시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전도 위에 있던 남자가 머리 아홉 달린 봉황을 이끌고서 빠른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쾅-!
봉황의 날갯짓 한 번에 주변 산맥이 와르르 무너지고, 멸천의 기운이 대지를 휩쓸었다.
뒤이어 지면에 속한 모든 것이 허공으로 솟구치지 마치 종말의 날을 보는 듯 했다.
막념의 표정은 점점 차갑게 변해갔다. 상대의 목적이 자신이 아닌 오유계의 본원이라는 걸 알아챘던 것이다.
만약 저 봉황이 지면에 도착한다면 오유계의 본원은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으리라!
엽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허공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얼핏 느끼기에도 상대는 현옹 신장보다 더 강한 실력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봉황의 기운도 남자의 비해 전혀 약하지가 않았다.
엽현은 문득 막념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그녀는 저 강력한 두 존재를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을까?
이때 막념이 엽현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어떤…?”
“하하, 기억 못 하면 됐다.”
막념은 더는 할 말 없다는 듯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엽현은 황당한 얼굴로 막념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공중에 있는 막념의 왜소한 신체는 거대한 봉황에 비교해 모래알 정도 크기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봉황과 남자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단 일격에 신장의 목숨을 앗아 간 여인.
이런 여인을 앞두고 어찌 방심할 수가 있겠는가!
남자는 방천화극을 들고 있는 손에 잔뜩 힘을 준 채, 차분한 표정의 막념을 노려보았다.
“도정 선봉장(先鋒將) 임천행(任天行), 한 수 가르침을 청하겠소!”
말을 마친 순간, 봉황이 머리를 치켜들고 괴성을 지르더니 낙하 속도가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순간 기운을 이기지 못한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끔찍한 압력이 막념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이 압력 아래 위치한 막념의 모습은 마치 태풍이 이는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조각배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바로 이때, 영원히 멈춰 있을 것만 같았던 막념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 세상을 집어삼킬 듯했던 압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때 막념은 이미 임천행 앞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순간 눈동자가 움츠러든 임천행이 본능적으로 방천화극을 크게 휘둘렀다. 하지만 어느새 날아온 막념의 주먹이 그의 목을 강타했다.
빠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임천행의 머리가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일격에 임천행을 해치운 막념은 이번에는 봉황의 등 위로 가볍게 발을 디뎠다.
쾅-!
마치 봉황의 몸 안에서 폭탄이 터진 듯, 거대한 봉황의 육신이 산산 조각나 흩어졌다.
이윽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붉은 비가 호수 위로 투두둑 떨어져 내렸다.
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엽현 역시 숨소리도 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초살(秒殺)!
엽현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공중의 막념을 응시했다.
도대체 저 여인의 강함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반대편, 마찬가지로 막념을 바라보는 백제자의 눈빛 또한 무겁게 내려앉았다.
지난번에 이어 또다시 일격에 상황이 종료되고 만 것이다!
사실 임천행이 막념을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내보낸 것은 우선 막념의 실력을 파악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손을 섞어 보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으니.
여전히 막념의 경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실망스러운 결과에 백제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막념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비가 되어 쏟아지던 봉황의 피가 한순간 사라졌다.
“후후, 다음은 또 누구냐? 기대되는군!”
막념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지만, 강자의 패기가 짙게 묻어났다.
“막념 소저, 그대를 지나치게 얕본 것 같소.”
“하하하! 멍청한 소리! 너희는 여전히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막념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누님이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 가지 깨우친 진리가 있다. 그건 바로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거다. 주제 파악 못 하고,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순간 네 목은 이미 달아나 있을 게다. 하늘 위에 하늘 있고, 사람 위에 사람 있다는 걸 언제나 명심하거라!”
겸손!
엽현은 막념이 한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들었다.
사실 이는 하나의 도리를 뜻하는 것 외에도 막념과 청아와의 관계를 함축하는 것이기도 했다.
청아를 만나기 전 막념은 명실상부 오유계 최강의 존재였다.
하지만 막념이 그런 생각으로 청아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었더라면 지금의 그녀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즉, 겸손한 태도가 그녀의 목숨을 살렸던 것이다.
청아 앞에서 힘을 과시한다?
그건 곧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리라.
물론 막념의 이 말은 엽현뿐 아니라, 도정에게 들으라고 한 것이기도 했다.
도정은 처음 등장 했을 때부터 막념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해왔다.
예를 들어 막념을 자신들 편으로 영입하려는 행위 말이다.
도정의 입장에서는 강자에 대한 예우일 수 있겠으나, 막념에게는 매우 건방진 언사였던 것이다.
엽현은 눈앞의 막념을 바라보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여전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바로 이때, 백제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막념 소저, 방금 그대가 한 말은 일리가 있소. 하지만 말하는 주체가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소?”
“후후, 그 말은 내가 너희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냐?”
백제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그대의 실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 면도 분명히 있지만, 그대 역시 우리를 너무 얕잡아 보는 듯하오.”
이 말에 막념이 소리 내 웃었다.
“그것참 재미있군! 그렇다면 누구 말이 맞는지 계속 대결해 보자꾸나! 아니면…….”
막념이 웃으며 전도를 바라보았다.
“내가 직접 너희 도정에 방문하는 것도 괜찮겠지?”
도정으로 쳐들어간다!
순간, 백제자가 차가운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래쪽의 엽현 역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정녕 막념이 목숨을 걸고자 한단 말인가?
이때 백제자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아무래도 그대는 오유계에서 전쟁을 치르고 싶지 않은가 보구려?”
“뭐, 아무래도 내 집에서 싸우는 건 좀 그렇지?”
“하하하! 미안하지만 그대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듯싶소.”
“…….”
막념이 말없이 백제자를 응시하는 이때, 소음이 엽현 곁에 나타나 다급히 속삭였다.
“맹주, 큰일 났소! 갑자기 오유계 전역에 정체 모를 음기가 밀려 들어와 생태환경을 모두 집어삼키고 있소! 동시에 영기 또한 빠르게 사라지고 있소!”
“뭐라고?”
이 말을 듣자 엽현이 백제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설마… 처음부터 오유계를 노렸던 것인가?”
이에 백제자가 막념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 계속 진행되면 오유겁이 오는 시기는 더욱 가속될 것이오.”
“하하… 확실히 너희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도지계를 치워 버리고서 저승과 이승의 기운을 뒤섞어버릴 생각을 하다니… 그런데 이렇게 되면 파도자들과 다른 점이 뭐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소. 언제나 불가항력이란 게 존재하는 법이니까.”
“하하하! 이제 보니 삼천대도가 왜 무너졌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겠구나! 대도의 수호자라는 녀석들이 입맛에 따라 규칙을 바꿔버리니 파도자에게 쉽게 흔들릴 수밖에! 대도의 영이 살아 있다면 통곡할 노릇이겠군!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