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41
1341화 이별이 슬픈 이유
도조 앞을 막아선 이는 다름 아닌 엽령이었다!
물론 현재 그녀의 몸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엽령이 아니었다.
일권에 도조를 격퇴한 엽령은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때 엽현의 신지는 여전히 비정상이었다.
잠시 엽현을 내려다보던 엽령은 한 손을 엽현의 어깨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순간, 엽현 주변에서 들끓던 살의가 순식간에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 엽령은 엽현을 들쳐업고 자리를 떠나갔다.
이때 도조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대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엽령이 뒤로 돌면서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 한 줄기 유광이 공간을 뚫고 날아갔다.
이에 도조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마찬가지로 일권을 날렸다.
쾅-!
천지가 진동함과 동시에 도조가 무려 천 장 밖으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자리에 멈춰 선 도조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한편, 엽령은 더 이상 출수하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섰다.
도조는 엽령과 엽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조사해 보거라.”
도조의 한 마디에 백제자가 고개를 끄덕인 후, 어딘가로 사라졌다.
장내 홀로 남은 도조는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후… 엽현…….”
이때의 도조는 울화통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천도만 없어지면 모든 게 끝인 줄 알았건만, 저 여인은 또 뭐란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배후가 진을 치고 있는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던 도조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당장은 엽현보다는 육신을 재건하는 일이 더 급한 도조였다.
* * *
도정을 빠져나온 엽령은 엽현을 데리고 우주 한복판으로 나왔다.
문득 걸음을 멈춘 엽령은 막념의 시신이 안치된 곳을 말없이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때 엽현은 천천히 정상의 모습을 회복해 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하얀 머리는 도통 돌아올 줄 몰랐다.
“려, 령아?”
엽현의 목소리에 엽령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속이 좀 시원하느냐?”
“령아…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엽령이 고개를 돌려 다시 막념이 있는 쪽을 향해 섰다.
“며칠 전에 그녀가 날 찾아왔었다.”
막념?
엽현이 막념이 있는 곳으로 돌아섰다.
문득 그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엽령이 다시 엽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게 말하길 자신은 이제 떠날 때가 됐다고 하더구나. 자기가 죽으면 네가 멍청한 짓을 할지도 모르니, 그때 내가 나서 달라고 부탁을 하고 갔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을 줄이야…….”
엽현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때 엽령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들고 날 쳐다 보거라.”
엽현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이때 그는 이미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엽령이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죽고 싶으면 죽어도 된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죽는 건 그녀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게 아니냐?”
“…….”
“그녀는 이 우주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런데… 눈이 있으면 직접 한번 둘러보거라. 지금 오유계의 모습이 어떤 것 같으냐?”
엽현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때 오유계는 갖가지 재앙을 맞아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막념의 힘은 여전히 오유겁이 완전히 활성화하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죽는 순간까지 칠 할의 힘을 거둬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 한들 상황이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멸망을 면했다 뿐이지, 오유겁을 완전히 몰아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즉, 시간이 가면 오유겁은 결국 완전히 활성화되어 오유계를 뒤덮을 것이다.
이때 엽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막념 누님… 왜 이리 바보 같은 짓을 하셨소.”
“그녀는 어리석지 않다. 자기 목숨 대신 너와 오유계를 택했을 뿐이지.”
엽현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누님, 안심하시오. 오유계는 내가 반드시 지켜 낼 테니까.”
엽현은 다시 눈을 뜨고 엽령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완전히 돌아온 거야? 아니면… 또 떠날 건가?”
엽령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이 무어라 말하려는 이때, 엽령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네 몸 안에 있는 관을 내게 보여다오.”
이 말에 엽현이 잠시 멈칫하더니 얼음으로 뒤덮인 관을 꺼냈다.
얼음관을 본 순간, 엽령이 다소 복잡한 기색을 보였다.
“령아, 이 안에 누가 있는지 혹시 아니?”
고개를 끄덕인 엽령은 관을 받아 들더니 엽현을 쳐다보았다.
“네 누이는 앞으로도 얼마간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나의 모든 전승을 모두 이어받은 후 돌려보낼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말에 엽현이 황급히 포권을 취했다.
“고, 고마워… 아니, 고맙소!”
엽령은 마지막으로 막념이 있는 쪽을 쳐다보더니, 이내 등을 돌리며 떠나갔다.
“그럼, 몸조심하거라.”
바로 이때, 막 사라지려는 엽령을 향해 엽현이 황급히 소리쳤다.
“저, 혹시 도조를 해결해 줄 수 있소?”
엽령이 걸음을 멈추고 엽현을 돌아보았다.
“가능은 하다만… 네 누이의 몸이 내 힘을 견딜지는 모르겠구나.”
“…….”
엽령이 손을 들어 막념의 시체를 가리켰다.
“이건 그녀의 원한이니, 네가 직접 갚도록 해라.”
이 말을 끝으로 엽령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때, 침묵에 잠긴 엽현 곁으로 한 여인이 다가왔다.
다름 아닌 엽지명이었다.
엽지명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엽현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마음대로 도정에 쳐들어온 엽현에게 욕을 퍼붓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반쪽이 되어 버린 엽현을 보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막념의 죽음에 가장 큰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엽현일 테니까.
이때, 엽현이 숨을 들이켜며 엽지명을 돌아보았다.
“오유계의 상황은 어떻소?”
“모두 너만 기다리고 있다.”
“…좋소. 돌아갑시다!”
엽현은 곧장 엽지명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엽령이 다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엽령은 허공에 홀로 떠 있는 막념의 시신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오유계만을 위해 살더니, 결국 오유계로 인해 죽었군.”
엽령의 시선은 곧 엽현이 떠난 자리로 옮겨갔다.
“애송이… 이렇게 된 이상 오유계를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동안 후회 속에서 살게 될 테니까.”
말을 마친 엽령은 마지막으로 막념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다음에 또 올 때까지, 편안히 쉬기를…….”
그렇게 엽령마저 떠나간 우주 공간엔 막념만이 홀로 자리를 지켰다.
* * *
오유계.
엽현이 무사 귀환하자 소음 등 오유계의 무인들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엽현이 도정에 쳐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서 놀라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 무시무시한 도정을 홀몸으로 쳐들어가다니!
엽현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이내 오유맹 대전 안에, 오유계 둔일경 강자들이 전부 집합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마침내 상석의 엽현이 강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강 각주, 그대는 도계 무인들을 이끌고 오유계 전역에서 신음하고 있는 부상자들을 구출하시오. 막을 수 있는 재앙은 막되,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 두고 사람들만 빼내시오.”
강우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겠소!”
말을 마친 강우는 서둘러 대전을 빠져나갔다.
다음으로 엽현의 시선이 향한 곳은 소음이 있는 자리였다.
“환란이 일어나면 반드시 도적 떼가 들끓기 마련이오. 그대는 각지에 무인들을 파견해 순찰을 강화하는 한편, 혼란을 틈타 사리사욕을 챙기는 자들을 소탕해 민심을 바로 세우시오.”
“알겠소, 맹주!”
엽현은 이번에는 문소약을 향해 말했다.
“문 소저, 보다시피 오유계는 육유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오.”
“엽 공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만 하시오.”
엽현이 도경을 공유하기로 결정한 이후, 육유계는 이미 엽현의 오유계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도경!
도경만 있으면 육유계의 강자들을 훨씬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문소약으로서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던 것이었다.
“현재 오유계를 복구할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오. 그대가 사람을 보내 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육유계의 영맥과 천지지령(天地之靈)을 이곳으로 데려와 주시오. 오유계의 영기가 다시 안정을 되찾는다면 반드시 이자까지 쳐서 되돌려 주겠소!”
영맥과 천지지령!
문소약은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대 말대로 하겠소!”
말을 마친 문소약은 육유계의 무인들과 함께 퇴장했다.
“그리고 방장…….”
엽현의 부름에 고사 주지가 기다렸다는 듯 엽현을 향해 합장했다.
이때 그는 극락지계를 총괄하는 역할도 겸임하고 있었다.
“엽 시주, 그대가 돌아오기 전에 이미 명을 내려, 극락지계의 모든 인원을 이곳으로 불러들였소. 극락지계의 천지지령과 영맥들도 밖에서 대기 중이오.”
“방장… 정말 고맙소.”
“허허,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오.”
엽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장내에 모인 모든 무인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여러분, 잘 들으시오! 잘 알다시피 오유겁이 발발했고, 오유계는 전례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소! 지금은 사사로운 이익이나 감정은 접어두고 하나로 합심할 때라는 걸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모두 힘을 합쳐서 이 곤경을 헤쳐나갑시다! 이번 위기만 잘 넘어간다면 나 엽현 역시 그대들을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오!”
엽현은 알고 있었다. 오유계의 각 세력들이 단결할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도경과 그들이 가진 공공의 적 때문이라는 것을.
하지만 오유겁이 현실로 나타난 이때, 그들은 각자 주판을 튕겨가며 이해 손익을 따져보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곡을 찔린 무인들의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이때 엽현이 말을 이어갔다.
“그대들 중 일부는 이미 둔일에, 어떤 이들은 심지어 진짜 둔일에 이르렀소. 하지만 둔일이 되었다고 끝이 아니란 것은 그대들이 더 잘 알 것이오. 내 말은… 더 긴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오.”
말을 마치자, 엽현이 오른손을 가볍게 앞으로 내밀었다. 찰나의 순간, 강대한 무형의 기운이 장내에 모인 모든 무인들의 머리 위를 짓눌렀다.
이 순간, 무인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심지어 아주나 사도, 아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증도경!
그것도 진정한 증도경!?
“진정하시오. 그대들을 놀라게 하고자 할 의도는 없소. 단지 나 엽현이 증도에 이르렀으니, 그대들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었소. 물론 나의 도움을 받을 자들은 오유계 소속의 무인들이 될 것이오.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소?”
이때, 한 노인이 벌떡 일어나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부, 분명히 알아들었소! 노부는 누가 때려죽인다 해도 오유계 사람이오! 누구든 오유계를 위협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가장 먼저 나서 해치울 것이오!”
“옳소! 나도 마찬가지요!”
“오유계를 위해 싸우자!”
“와아-!”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무인들이 앞다투어 태도를 표명했다.
엽현은 잠시 말없이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오유계는 엽현 혼자서 통제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나도 컸다. 때문에 이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목표했던 둔일에 이른 자들은 오유겁 앞에서 꽁무니를 내뺄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이들을 붙잡기 위해 새로운 당근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익(利益)!
당장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익으로 이들을 묶어놓고, 오유계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손에 원하는 것을 쥐어주면 악당도 선인으로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물론 도덕적으로 힐난을 받을 순 있겠지만,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다.
현재 엽현의 인생 최대 목표는 막념의 유지를 이어 어떻게든 오유계를 잘 지켜내는 것이었으니까.
한편, 대전 안은 흥분의 도가니로 변해 있었다.
엽현이 증도경이 되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자신들 역시 잘만 하면 증도경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엽현은 이미 도경을 공유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미리 신용을 쌓아 놓은 덕분에 그 누구도 엽현의 말이 거짓일 거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이렇게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엽현은 천천히 문밖으로 나와 한쪽 성공을 쳐다보았다.
“누님, 지금 이 자리에 누님이 있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이별이 슬픈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별의 순간에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한이 되어 가슴에 박혔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