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45
1345화 그게 아니라고!
소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소혼이었다.
소혼의 애교 섞인 말투에 무뚝뚝하던 엽현의 표정에도 웃음기가 돌았다.
엽현은 소혼이 어도경에 이른 것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있어 소혼은 가족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소혼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어도경이 되었지만, 엽현을 떠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영원한 주인은 오직 한 사람, 엽현뿐이었다.
만약 엽현의 도움과 배려가 아니었더라면, 그녀가 지금 경지에 이르는 일은 불가능했으리라.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엽현이 진정으로 그녀를 가족처럼 여긴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주종관계를 벗어나 남매와 마찬가지였다.
엽현은 소혼과 눈을 마주치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정말로 어도경이로구나!”
“헤헤, 주인! 제가 강해진 게 느껴지십니까?”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느껴진다. 앞으로는 네가 날 지켜줘야겠구나.”
“헤헤, 주인. 이번에 흡수한 영혼력을 완전히 통제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만약 싸울 일이 있거든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지금의 저라면 증도경 열 명도 거뜬할 겁니다!”
“하하, 그래!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거라!”
소음은 다시 한번 엽현을 꼭 끌어안은 후, 계옥탑 안으로 사라졌다.
엽현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장내는 매우 한산해진 상태였다.
왜냐하면, 진혼검이 저승의 영혼들을 죄다 빨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소혼이 어도경에 이른 것은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얼마 전, 도정에 쳐들어갔을 당시 이미 수많은 영혼을 흡수한 상태에서, 이번에 또 저승의 원혼까지 흡수했으니.
변화가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어도경!
더욱 강력해진 진혼검과 함께라면 일반 어도경 강자는 이제 큰 어려움 없이 처리할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물론 엽현이 볼 때, 아직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생각을 갈무리한 엽현은 아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도경은 어디에 있소?”
도경!
엽현은 저승에 도경 두 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오늘 저승을 방문한 진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엽현의 물음에 아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도경 한 권은 음주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으니…….”
아음이 말끝을 흐린 이때, 듣고 있던 남장이 끼어들었다.
“그 도경은 이미 도정의 손에 떨어졌다.”
“음?”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남장이 말을 이어갔다.
“말 그대로다. 음주는 이미 오래전 자신의 도경을 도정에 넘겼다. 내가 알기로는 둘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다고 하더구나.”
“거래? 아니,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도경처럼 귀한 물건으로 거래를 한단 말이오?”
이 말에 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도정이 도경을 콕 집어 원한다는데 음주라고 버틸 수 있었겠느냐? 어쨌든 간에, 도정에게로 도경이 넘어간 것은 사실이다.”
도정!
그렇다면 그 도경을 소유한 것은 도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나머지 한 권은 어디 있소?”
“다른 한 권은… 십팔층지옥에 있다!”
십팔층지옥!
십팔층지옥의 파도자!
순간, 엽현의 표정이 매우 진중해졌다.
막념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도경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막념이라면 자신이 계속해서 도경을 찾아다니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미리 그 파도자를 죽여 사전에 위협을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을 바꿨지만.
생각을 정리한 엽현은 삼생과 무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도 군사, 무심. 그대들은 이곳에 남으시오. 십팔층지옥에 한번 가봐야겠소.”
이 말에 도삼이 화들짝 놀랐다.
“대단히 위험한 곳이오!”
“하지만 막념 누님은 그를 죽이지 않았소.”
말을 마친 엽현은 말릴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엽현이 떠나자 아음이 삼생에게 물었다.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야?”
“막념… 그녀는 무슨 일을 하던 실수가 없는 사람이야. 그녀가 십팔층지옥의 그자를 죽이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뜻이지.”
“고작 그런 이유로?”
도삼생이 고개를 저었다.
아음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엽현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엽현은 곧장 십팔층지옥에 도착했다.
이름 그대로 총 열여덟 층으로 된 이 지옥은 생전 큰 죄를 지은 악령들이 수감 된 곳으로, 이들은 영원히 고통 속에서 울부짖어야만 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긴 엽현은 곧바로 지옥 십팔 층에 도착했다.
다른 곳과 달리 고요한 이곳은 간간이 음풍이 불어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에서 엽현은 사지가 쇠사슬에 묶여 있는 한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남자의 발밑에는 뜨거운 불구덩이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구유신화(九幽神火)!
오로지 영혼을 불사르기 위해 만들어진 화염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실력이 매우 고강하기에 구유신화라 할지라도 그의 영혼을 불태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엽현은 남자에게서 아무런 특별한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평범한 존재일 리가 없다.
파도자!
엽현이 남자를 향해 다가서는 이때, 남자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순간 엽현은 멈칫하며 자리에 멈춰 섰다. 남자의 눈이 있어야 할 곳이 텅 비어있던 것이다.
남자의 입에서 쇳소리 가득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꺼져라…….”
엽현은 말없이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천도검.
막념의 검이었다.
순간, 남자가 반응을 보였다.
“이건… 그 여자의 기운…….”
그 여인이란 막념을 말하는 것이리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소. 그녀의 검이오.”
“그녀가 보낸 것이냐?”
“그건 알 것 없소. 그나저나 그녀가 그대에게 무슨 말이라도 남겼소?”
“날 죽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은 그러지 않았지.”
“어째서?”
“…….”
“오늘 내가 방문한 것은 도경을 가져가기 위해서요.”
“도경… 훗…….”
남자의 반응에 엽현이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그 웃음은 무슨 의미요?”
“하하… 이미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자가 왜 아직도 도경에 집착하는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내 것과 남의 것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소. 어차피 모든 길이 하나의 대도로 통하는 것을, 굳이 한 가지 길에만 집착할 필요가 있소?”
“…….”
“묻는 말에 대답하시오. 도경… 내어 주시겠소?”
“…그러지.”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고서 한 권이 엽현 앞으로 날아들었다.
고서를 낚아챈 엽현은 주저 없이 돌아섰다.
“고맙소. 그럼 이만.”
이때,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는 이미 죽은 것이냐?”
자리에 멈춰 선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주제넘지만, 한마디만 해도 되겠소?”
“무얼 말이냐?”
엽현이 다시 남자를 향해 돌아섰다.
“그대가 스스로를 이곳에 가둔 이유는 아마도 뭔가 후회할 만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일 거요. 그렇지 않소?”
“…….”
“나 역시 죽을 때까지 후회할 일을 저질렀소. 하지만 그대처럼 나 자신을 가두지는 않았소. 왜? 그건 그저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이오. 사람으로 태어나서 실수하는 건 당연한 것이오. 다만 그대처럼 숨어 지내는 것은 솔직히 말해 겁쟁이로밖에 보이지 않소.”
엽현의 말에 남자는 화를 내지 않았다.
“너는 모른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왜 그랬던 것이오?”
남자는 마치 흐느끼기라도 하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어도경, 그 이후에 무슨 경지가 있는지 아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어도경 다음은 바로 성도(成道)다. 성도란 말 그대로 하나의 도(道), 다시 말해, 삼천대도의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성도를 이루는 수많은 방법 중, 내가 택한 것은 바로 무정성도(無情成道)였다. 왜냐하면, 다른 것들보다 쉬워 보였거든. 무정이란 쉽게 말해 포기를 뜻한다. 나와 관련된 세속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지. 그렇게 나는 내 사랑하는 여인을 포기했다. 그녀에게는 성도를 마친 후, 반드시 찾아오겠노라고 했지. 그녀는 바보처럼 그 말을 믿고 천년도 넘게 날 기다리다가…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참, 짐승 같은 짓을 했구려.”
“하하하하! 그래, 말 잘했다! 나는 짐승이다. 그래서 이렇게 가둬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이루었소?”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실패했다.”
“어째서?”
“하하… 어리석게도 그녀를 잊지 못했거든. 결국, 무정을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그 무정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버린 셈이지.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란 말이냐…….”
“…….”
남자는 웃고 있었지만, 동시에 흐느끼기도 했다.
다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흐흐… 성도를 이루지 못한 것은 상관없다. 다만 그때 그녀에게 그런 약속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런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외로움 속에 기다리다 죽진 않았을 텐데……. 그 여자도 얼마나 멍청한지 그 말을 어찌 그리 철석같이 믿을 수 있단 말이냐? 사내가 한 말은 태반이 거짓이란 걸 정녕 몰랐단 말이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정말로 그대를 사랑했다면, 설령 거짓이란 걸 알았다 해도 모른 척 기다렸을 거요.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니까.”
“하하하하! 네 말이 맞다. 그녀는 날 믿었지. 하지만 나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마침내 목표했던 성도를 눈앞에 둘 수 있었다. 마음속에 존재했던 유일한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지. 하나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얻은 성도는 의미가 없다는 걸! 아무 의미도!”
“…….”
엽현은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남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성도경이 될 수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 유혹을 포기하고 스스로에게 형벌을 가하고 있다니… 남자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엽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그녀가 정말로 그대를 사랑했다고 믿소?”
“그게 무슨…….”
“한 번 생각 해 보시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한 게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스스로를 가둬 놓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겠소? 아마 그런 걸 바라진 않았을 거요. 만약 그녀가 이곳에 있다면 매우 슬퍼했겠지. 같은 사내로서 그대의 슬픔은 충분히 이해하오. 하지만 이런다고 해서 죽은 여인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오. 차라리 둘 중 하나를 택하시오. 참회하는 마음으로 여생을 보내던가, 아니면 여기서 목숨을 끊던가.”
“…….”
남자는 침묵에 잠겼다.
한참 말이 없던 남자는 무언가 결심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그녀도 내가 이런 꼴로 있는 건 원치 않을게다. 그러니 차라리…….”
바로 이때, 남자의 육신이 빠른 속도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엽현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제길, 죽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는데! 내가 말을 잘못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