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49
1349화 그냥 무작정 들이대면 돼
도총의 땅으로 향하는 길.
엽지명은 엽현 곁에 붙어서 도총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 주었다.
도총은 오래전 몇몇 파도자들이 도정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집단이었다.
‘타도 도정’의 기치 아래 모인 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하나의 거대 세력을 형성해 나갔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러 가지 다른 목적들도 추구하게 되었다.
도총의 진짜 실력에 대해서는 엽지명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도정을 맞상대하는 모습으로 미루어 보건대, 결코 도정의 아래가 아님은 확실했다.
한편, 엽현을 대하는 혁련검의 태도는 매우 온순해져 있었다.
가끔씩 대화를 섞을 때도 최대한 공손함을 드러냈다.
실력!
어디를 가든, 결국 실력이 있어야만 대접을 받는 법이다.
혁련검도 바보가 아니어서 더 이상 엽현을 적대하려 들진 않았다. 엽현이 이 정도까지 참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비를 건다면 그때는 ‘멍청하다’라는 말로도 형용할 수 없으리라.
다른 한편, 주견심은 별다른 말없이 그저 길 안내에 충실할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가물가물할 즈음.
전속력으로 성공을 내달린 네 사람은 십여 개의 흑동을 지나친 후에야 도총의 땅에 당도할 수 있었다.
도총의 땅이라고 별 신비한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커다란 산맥이 우뚝 솟아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바로 이 도총산(道塚山)이라는 곳에 도총의 근거지가 존재했다.
하지만 평범하게 보인다 해서 그 기운마저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초입에 들어서기도 전, 엽현은 몇몇 강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는 어도경 급의 기운도 상당수 존재했다.
이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파도경 강자들이었다.
도정에서는 증도경 다음 경지가 어도경이지만, 도총에서는 파도(破道)로 이어진다.
이는 두 집단이 추구하는 길이 상반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편, 엽현은 사방에 산재해 있는 강자들의 기운을 느낀 후, 오유계가 갈 길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오유계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절정 강자의 숫자가 너무나 부족했다.
특히나 도총이나 도정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확연했다.
실제로 오유계에 어도나 파도경 이후의 경지에 이른 무인은 한 명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때 조용하던 주견심이 한 마디를 툭 내던졌다.
“도총의 진짜 강자들은 모두 천계연에 가 있소.”
엽현은 주견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말을 한 의도는 명백했다.
자신들의 진짜 실력은 이것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점을 드러내려 한 것이었다.
엽현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때, 강대한 기운 하나가 먼 하늘로부터 쏘아지듯 다가왔다. 엽현이 고개를 드니, 백의 장포 차림의 한 남자가 어느 틈에 그들 머리 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때 혁련검이 엽현에게 속삭였다.
“엽 형, 저자는 백서경(白書境)이라고 신녀의 열렬한 추종자 중 한 명이오. 분명 무슨 트집을 잡으러 온 걸 게요.”
“트집? 그대 생각에 내가 어찌 대응하면 좋겠소?”
혁련검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도총에서는 강자만이 존대를 받고 있소. 만약 시비를 걸거든 피하지 말고 강하게 맞서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온갖 잡놈들이 그대를 괴롭히려 들 것이오.”
“음… 잘 알겠소. 고맙소 혁련 공자.”
바로 이때, 하늘 위에 떠 있던 백서경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내리꽂혔다.
“네가 엽현?”
“그렇소만?”
엽현이 대답하자 백서경이 비웃음을 남발했다.
“너 따위 오줌싸개가 도총의 신녀와 어울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냐?”
엽현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내가 보기에 그대는 신녀를 사모하고 있는 게 틀림없구려. 그런데 그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신녀가 갑자기 나를 좋아한다고 하니 질투가 난 것이고… 내 말이 맞소?”
이 말에 백서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허, 참!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군! 신녀가 널 좋아한다고?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엽현이 주견심을 돌아보았다.
“주 선생, 신녀가 나와 결혼하겠다고 그대를 오유계로 보냈던 것 아니오?”
“…그렇소.”
엽현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백서경을 쳐다보았다.
“그 보시오. 신녀가 나의 호방함에 반해 끙끙 앓다가 참지 못하고 청혼까지 한 거 아니오?”
순간, 주견심의 표정이 다소 이상해졌다.
“아니, 엽 공자. 신녀는…….”
“음? 설마 날 좋아해서 청혼한 게 아니란 말이오? 설마 다른 이유가 있는 거요?”
주견심은 입을 굳게 닫았다.
신녀가 노리는 것은 비단 도경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비밀을 엽현에게 발설할 순 없었다.
이때 엽현이 낮게 탄식을 뱉어냈다.
“솔직히 말해 이제는 질려버렸소. 내 유일한 단점이라면 너무나도 잘났다는 건데,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소?”
주견심의 입가가 살짝 실룩였다.
어떻게 사람의 낯짝이 이리도 두꺼울 수 있을까?
곁에 있던 혁련검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살면서 이 정도 철면피를 만나 본 적이 있었던가?
“놈! 제 입으로 잘났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다니, 보기보다 뻔뻔한 녀석이었구나!”
엽현이 고개를 돌려 백서경을 쳐다보았다.
“이제 그대가 말 해 보시오. 신녀를 사랑하오?”
갑작스러운 질문에 백서경은 어찌 대답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이를 본 엽현이 비웃듯 말했다.
“좋아한다면서 말조차 하지 못하는구려. 왜 그런지 아시오? 열등감 때문이오. 입장 바꿔서 그대가 신녀라면 솔직히 감정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겠소?”
“…….”
“진짜 둔일에 이를 정도면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은데 어찌 그런 용기조차 낼 줄 모르는 거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건 절대 숨길 일이 아니오. 설령 신분이나 실력 차이가 좀 나면 어떻소? 열심히 노력해서 채우면 되는 것을! 까놓고 말 해 봅시다. 이렇게 날 막고 귀찮게 한다고 그녀가 좋아해 줄 것 같소? 천만에! 더 깔보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백서경의 얼굴이 점점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엽현의 말은 다 맞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엽현은 말을 이어갔다.
“왜 아무 말이 없소?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그대가 여자라면 예, 아니오도 말 못 하는 남자를 좋아하겠소? 혁련 공자, 내 말이 틀렸소?”
갑작스레 엽현의 질문을 받은 혁련검이 뜨끔하며 대답했다.
“무, 물론이오! 엽 형의 말이 과연 일리가 있소!”
엽현은 다시 백서경을 쳐다보았다.
“진지하게 한 가지 묻겠소. 그대가 만약 지금 이 순간, 어도경에 도총 최강의 강자라면, 신녀에게 솔직히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겠소?”
백서경은 주먹을 꽉 쥔 채, 아무 대답도 없이 엽현을 응시할 뿐이었다.
“후… 아무리 봐도 연애초짜인 것 같은데 고수인 내가 한 수 가르쳐 주겠소. 잘 들으시오. 여자를 상대할 때 필요한 건 두 가지뿐이오. 첫째, 여자를 단숨에 정복할 실력! 둘째, 상대가 어떻게 나와도 흔들리지 않을 뻔뻔함이오!”
이때 혁련검이 조용히 물었다.
“엽 형, 그 뻔뻔함이라는 게… 실전에서 정말 통하는 것이오?”
“하!”
엽현이 대답하기도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혁련 공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봤소? 얼굴에 철판 깔고 들이대면 그 어떤 열녀라 한들 자빠지게 돼 있소! 내가 바로 산 증인이오!”
혁련검은 멍하니 엽현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이런 사람이 어떻게 검수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한편, 주견심은 엽현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토해냈다.
신녀는 하필이면 왜 이런 자를 택한 것일까?
말하는 모양을 보니 이건 호색한에 시정잡배가 아닌가!
주견심은 문득 오히려 자신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엽현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런 느낌을 받긴 했었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말로 상대를 쥐고 흔드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뻔뻔하다는 사실이었다.
“주 선생, 그럼 슬슬 신녀에게 안내 해주시오.”
“…엽 공자, 부탁인데 신녀 앞에서는 부디 점잖게 행동하기 바라겠소. 돌발행동도 삼가시오.”
“돌발행동? 하하! 걱정 마시오. 나 엽현은 이래 봬도 때와 장소를 가리는 사람이오. 설마 아직 식도 안 올렸는데 덮치기야 하겠소? 하하하!”
“여, 엽공자… 내 말은 그 뜻이 아니라…….”
“음? 아니면 또 뭐요? 남녀 사이에 그것 말고 또 벌어질 일이 있소?”
주견심은 무어라 대꾸하려다 말문이 막혔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엽 공자, 잡담은 이쯤하고 신녀를 뵈러 갑시다. 노부가 안내하겠소.”
주견심은 엽현과는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엽현이 입을 열 때마다 이번에는 또 무슨 폭탄이 터질지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주견심이 앞서 걸어가자, 엽현도 걸음을 옮겼다.
혁련검은 고개를 돌려 백서경을 쳐다보았다. 이때 백서경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혁련검은 문득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가볍게 툭툭 때렸다.
“무식하게 들이대는 게… 정말로 여자한테 먹힐까?”
신녀에게로 향하는 중에도 엽현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때때로 강력한 신식이 날아들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엽현의 몸을 침범할 수는 없었다.
주견심은 말없이 앞만 보고 걸어갔다. 간혹 시비를 걸려는 자가 나타나면 일언지하에 여지없이 쫓아 보냈다.
도총의 남아 있는 젊은 세대 중, 엽현의 적수가 될 만한 자는 없었다. 그러니 괜히 시비 걸러 왔다가 된통 당하기 전에 사전에 차단하자는 생각이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어느 대전 앞에 멈춰 섰다.
“엽 공자, 신녀께서 아직 공무 중인 것 같으니 잠시 여기서 기다립시다.”
“알겠소.”
엽현이 허락하자 주견심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에 가서 명상을 시작했다.
이때 탑 안에 있던 엽지명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곳 도총에도 도경이 있다는 걸 잊지 말거라.] [위치를 감지할 수 있겠소?] [어딘가에서 기운이 느껴지긴 하지만 정확한 위치까지는 알기 어렵다.] [음… 알겠소.] [그나저나… 지금까지 몇 명의 여인들에게 수작을 걸었던 게냐?] […….] [얼마나 많은 여인들에게 무식하게 들이댔느냔 말이다.] [하하… 조금 전은 농담이었소.] [흥! 농담? 이제 보니 네가 그 많은 여자를 거느릴 수 있는 까닭은 모두 그 뻔뻔한 낯짝 때문이었구나!] […….]바로 이때, 주견심의 음성이 엽현을 불렀다.
“엽 공주, 신녀께서 그대를 보고자 하시오.”
“마침 잘 됐구려! 어서 갑시다! 하하!”
곧, 대전 안에 들어선 엽현이 마주한 것은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었다. 어깨 뒤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인은 이마에 녹색 비단 끈을 묶은 상태였다.
신녀!
외모만 놓고 보았을 때,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경국지색이 틀림없었다.
엽현은 보일 듯 말 듯 웃고 있는 신녀의 표정에서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다.
대전 안에는 신녀 외에도 몇몇 무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히 한 사람을 향해 쏠려 있었다.
엽현!
혈혈단신, 겁도 없이 도정에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베어 넘겼다는 바로 그 사내!
신녀 역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엽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물론 그녀는 이미 엽현에 대한 파악이 끝난 상황이었다.
이때, 엽현이 신녀 앞으로 불쑥 다가서더니,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식은 언제 올리는 게 좋겠소?”
“…….”
장내에 당혹감이 맴도는 이때, 신녀가 씩 웃으며 대꾸했다.
“말 나온 김에 오늘 당장 진행하시지요. 서방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