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52
1352화 엽현의 계략
엽현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혈맥을 흡수하려는 것인지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혈맥지력!
출수를 준비하던 엽현은 일단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사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이 신비한 기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풀어낼 자신이 있었다.
도정과 마찬가지로 도총 역시 자신의 실력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또 하나, 그가 출수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혈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풍마혈맥을 흡수한다?
엽현은 문득 이반지의 혈맥과 자신의 혈맥 중 어느 것이 더 강할지 궁금해졌다.
설령 이반지의 혈맥이 예상외로 강하다 할지라도, 그때 가서 진혼검을 꺼내 들면 아무 문제도 없으리라.
이때 이반지가 입을 열었다.
“그대… 매우 침착하군.”
“훗, 반지 소저. 그대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 이익 앞에 눈이 머는 것은 똑같구려.”
“그건 미안하게 됐소. 만약 그대의 혈맥이 내 인생을 바꿔 놓을 만큼 특수하지만 않았더라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오. 혹시… 남길 유언이라도 있소?”
“…….”
“그럼 없는 것으로 알고…….”
말끝을 흐린 이반지가 엽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엽현 체내의 모든 선혈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순간, 이반지는 다소 흥분된 상태였다.
“느낄 수 있어…. 이 정도로 강력한 혈맥을 집어삼킨다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도 꿈은 아니야!”
이반지가 손아귀에 힘을 준 순간, 엽현의 체내에서 한 줄기 선혈이 빠져나와 그녀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쾅-!
방 전체가 요동침과 동시에 이반지의 몸이 피처럼 붉게 변했다.
이반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들어오고 있어. 갈력한 혈맥지력이 내 몸 안으로… 아…….”
바로 이때, 그녀가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엽현은 평온한 얼굴로 이반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때 이반지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불가능해… 이건 절대 불가능해……!”
그녀의 몸 안에선 엽현의 혈맥이 막 이반지의 혈맥을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
이반지는 황급히 혈맥지력을 운용해 주도권을 잡으려 했으나, 이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엽현의 혈맥이 자신의 혈맥을 집어삼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반지는 순간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때 이반지의 시선에 여유롭게 자신을 지켜보는 엽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엽 공자… 혹시 그대의 혈맥을 통제할 수 있소?”
엽현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내 몸 안에 있는 그대의 혈맥을 멈춰 주시오. 당장!”
바로 이때, 한 줄기 검광이 엽현의 몸 안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다음 순간, 그를 속박하고 있던 붉은 기운이 눈 녹은 것처럼 사라졌다.
뒤이어 엽현이 웃으며 이반지를 향해 한발 다가섰다.
“이 소저, 좀 어떻소? 할 만하오?”
“…내가 너무 얕잡아 봤소. 그대도… 그대의 혈맥도.”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려.”
이때 이반지가 돌연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엽 공자, 우리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해 봅시다. 도총과 오유계의 동맹에 관해서 말이오!”
이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게 됐소. 더 이상 그대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구려.”
이반지의 표정은 다시 침착해졌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이대로 이곳을 떠나시오. 그대가 완전히 도총의 땅에서 사라질 때까지 추격하지 않겠소.”
엽현은 이반지를 응시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반지는 이 표정에서 무언가를 감지해냈다.
“어찌… 설마 날 죽이려는 생각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오.”
이반지가 엽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엔 여전히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그대는 절대 날 죽일 수 없소. 왜? 내가 죽은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을 테니까. 나를 죽인다는 건 곧 도총과 도정을 동시에 적으로 맞이하겠다는 소리. 그대처럼 똑똑한 사람이 오유계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짓을 할 리가 없소. 어디, 내 말이 틀렸소?”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틀렸소.”
말이 떨어진 순간, 엽현이 검을 휘둘렀다.
푸확-!
이반지의 목이 갈라지며 선혈이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이반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엽현이 정말로 살수를 펼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뒤에 따라올 결과를 알면서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인단 말인가?
정녕 도총의 보복이 두렵지 않은 걸까?
일련의 의문이 이반지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반지 소저, 예상치 못했단 표정이구려.”
이반지는 피를 쏟으면서도 엽현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바깥에 도움을 요청하려 시도했지만, 엽현의 혈맥지력에 막혀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
혈맥지력이 외부에서 작용했더라면 이 정도 극한 상황까지 몰리지 않았겠지만, 몸속으로 들어온 이상 통제권을 되찾아 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엽현이 마음만 먹으면 그녀의 육신이 한 줌의 핏덩이로 변하고 말리라.
이반지는 반쯤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죽기 전에 알고 싶소. 나를 죽인 다음 뒷수습은 어찌할 생각이오?”
엽현은 대답 대신 손으로 이반지의 뺨을 부드럽게 만졌다.
“정말… 아름답구려. 이대로 죽이기 아까울 정도로…….”
말을 마친 엽현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순간, 그의 주먹 안으로 강대한 기운이 응집됐다.
이반지는 다시 눈을 뜨고서 엽현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
바로 이때, 엽현의 눈빛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이와 동시에 엽현이 대뜸 자신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 강대한 멸천의 힘이 밀실 밖으로 폭풍처럼 터져 나갔다.
쿠쿵-!
엽현이 펼치려는 초식은 다름 아닌 도권이었다. 도권의 기운이 방출된 순간, 도총 전역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한편, 엽현이 스스로의 가슴을 가격하려는 것을 보자, 이반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좋은 계략이로군.”
이반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드리웠다. 자신이 죽고 난 뒤, 엽현이 어떻게 뒷수습을 하려 할지 이해했던 것이다.
쾅-!
엽현이 자신의 가슴을 후려친 순간, 밀실이 그대로 무너져 잿더미로 변했고, 반경 수만 리 이내의 공간이 유리처럼 쩍 갈라졌다. 이 가운데 이반지의 육신 역시 폭발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총 전역은 곧 경악에 휩싸였다.
설마 누군가 도총을 습격한 것일까?
곧, 수많은 강자들이 사고 지점으로 몰려들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주견심이었다. 잿더미로 변해버린 신방을 본 순간, 주견심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사방을 둘러보던 그는 엽현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이때의 엽현은 참혹할 정도의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갈기갈기 찢겨 나간 육신 사이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왔고, 기운 역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미약했다.
주견심은 일단 엽현은 내버려 둔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이반지는!?
이때 도총의 강자들이 하나둘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역시 엽현의 몰골을 본 순간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바로 이때, 주견심이 엽현을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엽현을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넘쳐흘렀다.
“어떻게 된 것이냐! 말해!”
엽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반쯤 혼절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말해! 반지는 어디있느냐!”
주견심이 분노하며 엽현을 흔들어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때 한쪽에 있던 노인 하나가 다급히 소리쳤다.
“진정하시오! 먼저 숨을 붙여 놓는 게 우선이오!”
이 말에 주견심은 잠시 엽현을 노려보고는 그의 입안에 손톱 만한 단약 한 알을 흘려 넣었다. 단약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자 엽현의 기운은 조금씩이나마 회복되기 시작했다.
주견심은 엽현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반지는, 반지는 어디 있느냐!”
이때 힘겹게 눈을 뜬 엽현이 주변을 향해 눈동자를 움직였다.
“주 선생… 반지는… 그녀는 어떻게 됐소……?”
주견심이 인상을 찌푸리는 이때, 조금 전의 그 노인이 엽현 곁으로 다가왔다.
“엽 공자,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게요?”
이때 정신이 번쩍 든 엽현이 눈앞에 보이는 주견심의 멱살을 꽉 붙들었다.
“반지! 반지는 어디 있소! 내 신부는 어떻게 됐느냔 말이오!”
“…….”
장내에 모인 무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 중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 뒤편에서 한 중년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 장로… 신녀의 영혼이… 소멸된 것 같습니다…….”
소멸!
이 말에 무인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중에서도 주견심의 얼굴은 이미 백지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이때 엽현의 입에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소멸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묻지 않소! 그게 무슨 소리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엽현이 방금 말을 한 중년인의 멱살을 잡고서 야수처럼 포효했다.
“말해! 영혼이 소멸 됐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여, 엽 공자… 그러니까 신녀께선 이미…….”
“말도 안 돼! 반지가 죽다니! 있을 수 없어! 이건 말도 안 된단 말이다!”
엽현의 눈동자는 이미 반쯤 흰자를 보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방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의 모습이었다.
중년인은 이런 엽현을 보며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엽현은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는 한 마리 짐승처럼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엽 공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어서 말 해 보시오.”
주견심의 말에도 엽현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야말로 단장이 끊어지는 듯한 울부짖음이 도총 전역에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무인들은 이 모습을 보고서 함부로 말을 걸지 못했다.
잠시 후, 엽현에게로 다가온 주견심이 근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엽 공자, 그만 그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해 주시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견심을 바라보는 엽현.
이때 말똥 같은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인들은 엽현이 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비록 같은 부족은 아니지만, 같은 남자로서 연민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마침내 엽현이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반지가 내가 한 가지 중요한 일을 말 해 주겠다고 했소. 그런데 바로 이때, 정체 모를 괴한이 방 안으로 난입해서는 무방비 상태에 있는 우리를 공격했소…….”
문득 말을 하는 엽현의 눈가에 두려운 기색이 흘렀다.
“내 세상에 태어난 후로 그렇게 무시무시한 주먹은 처음이었소. 상대의 일격을 맞은 순간, 나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소.”
주견심의 눈썹이 순간 치켜 올라갔다.
“그게 누구요?”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소. 거리가 상당히 가까웠음에도 어찌 된 것인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소…….”
이때 엽현이 문득 고개를 들어 주견심을 쳐다보았다.
“그자가 들어왔을 때 반지가 했던 말이 있었소!”
“어떤 말?”
“도정… 분명 도정이라 했소!”
도정!
엽현의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오자 도총 무인들의 표정이 흉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때 엽현이 괴성을 질러댔다.
“도정! 도정이 보낸 자객이 틀림없소! 으아아악-! 도정, 이 개자식들! 첫날밤도 못 치렀는데 홀아비로 만들다니! 용서할 수 없다! 으아아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