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61
1361화 왜 얼굴을 가리는 것이오?
어떤 식으로 엽현을 죽일 것인가?
도정 강자들이 열띤 토론을 하는 가운데 엽현의 표정은 다소 일그러져 있었다.
아무리 철면피인 엽현이라도 자신을 어떤 식으로 죽일지 정하는 자리에 서 있는 건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희약이 발언했다.
“형제들, 일단 진정들 하시오. 놈을 죽이려면 우선 놈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소?”
소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동의하오. 먼저 놈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오.”
이때 엽현이 손을 번쩍 들었다.
“희약 낭자, 건의하나 해도 되겠소?”
희약이 엽현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오?”
“내 생각에 먼저 엽현이 우리 중에 잠입하지 못하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소.”
“음? 잠입?”
희약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수에 능한 자라 하지 않았소? 내가 엽현이라면 이 많은 사람 중에 섞여들려 할 것이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인원을 파악해 두는 게 어떻겠소?”
“음… 그거 좋은 생각이오.”
엽현이 곧장 고개를 돌려 장내에 있는 무인들을 세기 시작했다.
“백 여섯, 백 일곱… 나까지 하면 총 백 여덟이오. 소산, 여기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다 알아볼 수 있겠소?”
소산이 고개를 저었다.
비록 같은 연옥전장에 있긴 하지만, 이들은 온 시기도 다르고, 파벌도 같지 않았다. 게다가 평소에 이들은 조화신정이 나타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흩어져서 수련을 해 왔기에 서로 교류가 많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인원수를 외워 놓는 게 중요한 것이오. 그래야 혹시 있을 놈의 잠입에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소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대 말이 맞소!”
“자, 그럼 숫자는 파악했으니 이제 서로 얼굴을 익혀 봅시다. 그래야 우리끼리 공격하는 일이 없을 것 아니오?”
이 말에 무인들은 고개를 돌려 동료 무인들의 얼굴을 살폈다. 모두 안광이 밝은 자들이기에 서로를 기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때 희약이 문득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공자는 누구…….”
이에 엽현이 곧장 포권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인사가 늦었소. 양현이라 하오. 여기 송비와 형제 사이오!”
형제!?
송비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엽현이 잽싸게 그의 어깨를 잡으며 소리쳤다.
“지금부터 여기 모인 모두는 형제나 마찬가지요! 모두가 하나로 단결해야만 엽현을 잡을 수 있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소?”
“어, 어… 그게…….”
무인들의 시선이 집중된 이때, 엽현이 모두를 돌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형제들, 명심하시오. 우리의 적은 비단 엽현만이 아니오. 엽현 저놈이 이곳에서 활개를 치는데 과연 도총이 보고만 있겠소?”
도총!
이 말 한마디에 도정 무인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내가 정말로 말하고자 했던 게 바로 이것이오! 일단 엽현이 도총에 합류하게 되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소. 그의 뒤에는 오유계가 버티고 있으니까!”
“양 형, 그럼 이제 어쩌면 좋소? 의견을 말해 보시오.”
희약이 질문을 던지자, 엽현이 곧장 대답했다.
“아주 간단하오! 엽현이 저들과 합류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놈을 찾아내서 제거하는 것이오!”
“결국, 누가 엽현을 더 빨리 찾느냐의 싸움이 되겠구려?”
이번에는 소산이 묻자 엽현이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급한 것은 놈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오. 하지만 쉽게 찾을 순 없을 것이오. 엽현이란 놈이 머리가 있다면 이렇게 많은 숫자 앞에 감히 모습을 드러내겠소? 내 생각에 놈은 우리 눈을 피해 어딘가 숨어 있다가 암습하는 방법을 쓸 것이오!”
엽현의 시선이 희약에게로 향했다.
“희약 낭자, 생각해 보시오. 만약 놈이 암습을 가한다면 막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소?”
이 말에 희약의 표정이 크게 어두워졌다.
진무신군과 싸우고도 살아남은 엽현이다. 그 정도 실력자가 마음먹고 암습을 펼친다면 굉장히 까다로울 게 분명하다!
이때 엽현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유인책을 쓰는 것이 어떻겠소?”
“유인? 어떻게 말이오?”
“음… 듣기로 놈은 얼마 전 증도경이 되었다고 했소. 그렇다는 건 앞으로 조화신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겠소? 그러니 조화신정을 이용해 놈을 유인합시다!”
조화신정!
희약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방법 같소. 하지만 엽현이라면 속지 않을 것 같은데?”
“후후, 그건 상관없소. 조화신정 한 두정이라면 몰라도, 그 숫자가 상당하다면 반드시 걸려들 것이오.”
“상당한 숫자? 얼마 정도를 말하는 것이오?”
“음… 한 수백 개 정도?”
조화신정 수백 개!
순간, 모든 무인들이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수백 개라니!
일 년에 열 정 남짓 수확하는 조화신정을 수백 개나 준비해야 한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장내가 들썩이던 이때, 엽현이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내 생각에 진무신군과 백제성군은 우리를 시험하고 있소!”
시험?
웅성거리던 무인들이 일제히 엽현을 돌아보았다.
“백제성군과 진무신군은 이미 엽현을 미래의 가장 큰 적으로 상정해 놓은 상태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해득실이나 따지면서 일을 그르친다면, 앞으로 어떻게 우리를 믿고 거사를 치를 수 있겠소?”
순간 장내가 고요해졌다.
“지금은 이익이 아니라 도정 전체를 위해 단합할 때요! 이번에 우리가 엽현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도정은 더 이상 우리에게 신뢰를 보내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이번만큼은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만 하오! 그래서 우리도 엽현에게 뒤지지 않는 존재임을 입증해야만 하오!”
엽현이 연설을 마치자 희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양 형의 말이 맞소. 알다시피 백제성군은 이미 수많은 무인을 보냈지만, 엽현을 죽이는 덴 번번이 실패했소. 이번에 엽현을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진 건, 양 형 말대로 우리에 대한 일종의 시험이오. 생각해 보시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작 한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면 성군과 신군께서 얼마나 실망하시겠소? 또, 우리의 체면은 어찌 되겠소?”
이 말을 듣자 장내에 모인 무인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저마다 생각은 달랐지만, 다들 무엇이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다.
이런 중요한 사안 앞에서 개인적인 이득을 따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더욱이 백제성군과 진무신군이 역시 바보가 아니었다.
평시에 서로 알력 다툼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경쟁 또한 발전의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시기에 단합을 흐리는 자가 있다면 상부에서도 절대 두고 보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때 엽현이 소산을 향해 말했다.
“소산, 그대는 이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오. 엽현을 처치하는 이 중대한 임무를 책임지고 이끌 사람은 그대뿐이라 생각하오!”
소산이 잠시 엽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순간 엽현에 대한 호감이 크게 상승했다.
“양 형, 엽현을 죽이는 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그대들의 협력 또한 매우 중요하오!”
이에 엽현이 진중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하며 결의를 다졌다.
“우리는 그대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따를 준비가 돼 있소!”
“그럼 좋소! 그런데 양 형이 보기에 조화신정을 미끼로 쓰면 정말 엽현이 걸려들겠소?”
“적어도 시도는 해 볼 수 있을 것이오!”
“예를 들면?”
“음…….”
엽현이 곰곰이 생각하는 이때, 희약이 나섰다.
“이러면 어떻소? 이 부근에서 수백 개의 조화신정이 발견됐다는 소문을 흘리는 것이오. 그럼 자연히 엽현의 귀에도 들어갈 것이오.”
소산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되면 도총 놈들도 냄새를 맡고 몰려오지 않겠소?”
희약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럴 수도 있소.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엽현을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오.”
“흠…….”
소산이 대답을 망설이자 희약이 말을 이어갔다.
“들은 바로는 엽현과 도총간의 관계가 그리 끈끈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소. 나후가 놈을 받아들인 것 또한 그저 그를 이용해 우리를 치기 위함에 지나지 않소. 그렇다는 것은 엽현을 위해 목숨을 걸진 않을 거라는 소리요. 게다가 엽현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범수수 등과 친분을 쌓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오. 그러니 그가 우리에게 공격을 당한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소.”
“흠… 양 형. 그대 생각은 어떻소?”
소산이 엽현을 보며 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희약 낭자의 말에 동의하오. 그럼 문제는 조화신정인데…….”
엽현이 말끝을 흐리자 희약이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냥을 하려면 미끼가 필요한 법!”
희약이 이번에는 다른 무인들을 향해 돌아섰다.
“아마도 지금이 바로 우리의 단합력을 발휘할 때인 것 같소! 각자 조화신정 다섯 개씩만 거두도록 합시다. 그 정도면 엽현을 충분히 낚을 수 있으리라 믿소! 물론 일이 끝난 후, 빼먹지 않고 돌려주겠소!”
이 말에 무인들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조화신정을 꺼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 앞에 족히 오백 정이 넘는 조화신정이 모였다.
그야말로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엄청난 광경이었다.
오백 개의 조화신정이 한데 모이자, 정순한 기운이 순식간에 온 천지를 뒤덮으며 장관을 이뤘다.
엽현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조화신정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때 소산이 소리쳤다.
“모두 광맥으로 이동하겠소!”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무인들은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잠시 후, 도정 무인들이 다시 나타난 곳은 어느 거대한 산맥의 중심부였다.
이곳에 오는 동안 엽현은 총 팔백 리에 달하는 광맥을 도총과 도정이 사백 리씩 양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매년, 이 광맥 전체에서 생산되는 조화신정은 수천 개 정도로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백 명의 무인이 나누다 보면 개개인에게 떨어지는 신정은 몇 개 되지도 않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도정 무인들이 엽현을 유인하기 위해 오백 정의 조화신정을 모은 것은 엄청난 출혈을 감내한 것이었다.
소산은 오백여 개의 조화신정을 어느 동굴 안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찰나의 순간, 동굴 전체가 농후한 영기로 가득 찼다. 이 안에서 수련을 하면 평소의 몇 배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이 순간, 엽현은 도총과 도정이 왜 이렇게 천계연에 목숨을 거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선 강한 무인이 필요하고, 그런 무인을 양성하기 위해선 조화신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이때 한 남자가 다급히 소리쳤다.
“소산! 범수수 등이 바로 이 근처에 와 있소!”
“훗,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군!”
소산이 무인들을 향해 돌아섰다.
“자, 한 사람만 남고 모두 이곳에서 나갑시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걸 알면 엽현이 도망갈지 모르니까. 그럼…….”
무인들을 향해 있던 소산의 시선이 결국 엽현에게로 향했다.
“양 형, 그대가 이곳에 남아서 신정을 지켜주시오. 만약 엽현이 나타나면 바로 신호하고, 나타나지 않으면 이 신정들을 수거해 주시오. 할 수 있겠소?”
이에 엽현이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음… 솔직히 말해, 내 실력으로는 엽현을 상대로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여기 희약 소저를 같이 남게 하면 어떻겠소? 제아무리 엽현이라도 우리 둘을 동시에 처리하진 못할 테니 말이오.”
이 말을 들은 소산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오. 하지만 주의하시오. 놈이 나타나면 싸우려 하지 말고 바로 신호를 보내시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먼저 놈을 발견하게 되면, 곧바로 신호를 보내겠소. 그때 그대들은 잽싸게 신정을 수거하시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소!”
이 대화를 끝으로 소산과 나머지 무인들은 동굴 밖으로 사라졌다.
이제 동굴 안에는 농후한 영기를 뿜어내는 조화신정과 엽현과 희약만 남게 되었다.
이때 희약이 문득 엽현을 향해 말했다.
“양 형, 그런데 면구는 왜 쓰고 있는 거요?”
이 질문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여자들 때문에 곤란한 적이 많아서 말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