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66
1366화 당신이 처리해 주시오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어느 성역.
한 손에 장검을 든 여인이 하얀 소복을 펄럭이며 길을 걷고 있다.
그때였다.
그녀 정면의 공간에 잔잔한 파문이 일더니 여인 하나가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걸어 나오는 여인은 바로 막념이었다.
여인을 발견한 막념은 살짝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어이, 오랜만이군!”
“그런데 너 이미 죽은 것이냐?”
여인의 물음에 막념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소!”
“…….”
“이렇게 먼 곳에 있었다니. 어쩐지 찾기가 힘들더라. 음… 할 말이 있어서 왔소. 놈이 걱정되는데 이제는 슬슬 돌아가 보는 게 좋지 않겠소?”
이 말을 듣자, 여인이 갑자기 검을 잡고 허공에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 성역 전체가 길게 갈라졌다.
이때, 갈라진 공간을 들여다보던 막념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마침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뭔가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일까?
여인은 말없이 막념을 응시할 뿐이었다.
막념이 원래 표정을 되찾은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어쩐지 어떤 이유가 있는 것 같더라니… 그대가 수고가 많소.”
여인은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막념을 스치듯 지나쳤다.
막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는 이때,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막념을 향해 돌아섰다.
“미안하군. 우리 남매가 빚진 것은 언젠가 갚도록 하지.”
“사정을 알고 나니 녀석이 더 걱정되는구려.”
여인은 다시 등을 돌려서 어둠 속을 향해 나아갔다.
“걱정할 것 없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내가 다 막아 낼 테니까.”
“후후, 나는 항상 그 자신감이 부러웠소. 보중하시오!”
“…그러지.”
이 말을 끝으로 여인의 모습은 완전히 어둠 속에 파묻혔다.
* * *
방 한가운데 가부좌를 튼 채 앉은 엽현.
그의 앞에는 조화신정 한 무더기가 휘황찬란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모두 도정 무인들에게서 얻은 것들이었다. 그중 상당수는 이미 도총 무인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래도 엽현에게 떨어진 것은 대략 천 개 이상이었다.
조화신정 천 개!
이 정도 양의 조화신정을 보유한 곳은 도정과 도총을 제외하면 전무했다.
오유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저승이라 해도 이 정도 조화신정은 없었다.
천 개의 조화신정을 응시하며 엽현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오유계 무인들이 도정이나 도총에 비해 약한 것은 자질이 아닌 수련 자원 때문이었다는 것을!
만약 오유계에 조화신정을 펑펑 쏟아내는 광맥이 있었더라면 절대 이들 세력보다 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돈이 없으면 한계가 분명한 법이다.
이때 엽현이 조화신정을 갈무리하더니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때, 문밖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들어가도 되겠나?”
나후의 목소리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엽현은 곧바로 방문을 열고서 환하게 웃으며 나후를 반겼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시오?”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다.”
“일단 안으로 듭시다.”
엽현이 손짓하자 나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탁자를 두고 마주 앉은 나후는 잠시 엽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래서 상처는 다 회복한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소.”
“음… 좋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리 도총은 지난 만 년 동안 천계연을 두고 도정과 다퉈왔다. 천계연에 존재하는 광맥은 총 천 이백 줄기에 달한다. 그런데 그 많은 광맥 중에서 우리가 차지한 것은 단 삼백여 개뿐이다. 이토록 우리가 열세에 처한 이유는 단 한 사람 때문이다.”
“누구 말이오?”
“백포! 도정이 보유한 최강의 신정이지!”
“…….”
엽현은 문득 혁련검과의 대화 내용을 떠올렸다.
그가 전해준 정보에 따르면 이 백포란 자는 도총을 상대로 단 한 번의 패배밖에 기록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때 나후가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천계연에 가주길 바란다.”
엽현은 천천히 찻잔을 들이키며 즉답을 피했다.
이를 본 나후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미 사람을 시켜 오유계로 조화신정 천 개를 보냈다.”
이에 엽현이 찻잔을 탁 내려놓고서 나후를 바라보았다.
“나후, 현재 도총에서 백포를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소?”
“음… 그럼 이천 개!”
“나후, 돌려 말하지 않겠소. 더도 말고 연옥전장의 광맥을 넘겨주시오.”
광맥!
나후는 말없이 엽현을 쳐다보았다.
“목숨값이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오. 지금의 나는 절대 백포의 상대가 되지 않소. 천계연에 가면 열에 아홉, 목숨을 잃을 수 있단 말이오. 그렇지 않소?”
나후는 대답을 꺼린 채 찻잔을 들이켰다.
“알겠소. 그럼 천계연 천 이백 개의 광맥은 모두 그대 것이 될 것이오.”
이때 나후가 거칠게 찻잔을 내려놓더니, 품 안에서 납계 하나를 꺼내 책상에 탁 올려놓았다.
“목숨값이다.”
이 말을 끝으로 나후는 자리를 박차고 떠나갔다.
엽현이 납계를 살펴보니 과연 연옥전장에서 획득한 광맥이 들어 있었다.
납계를 갈무리한 엽현은 곧바로 도총을 떠나 오유계로 향했다.
잠시 후.
오유맹의 대전 안.
엽현과 소음이 마주하고 앉았다.
소음의 시선은 엽현에 탁자에 올려둔 납계에 향해 있었다.
“그대가 맡아 주시오.”
납계 안을 확인한 소음의 눈이 순간 커다래졌다.
“이건…….”
“조화신맥(造化神脈)이오. 이걸로 조화신정을 얻을 수 있소. 현 상황에서 강자가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일 것이오.”
소음이 고개를 들고 엽현을 쳐다보았다.
“어디서 났소?”
“천계연.”
“천계연, 설마…….”
“걱정 마시오. 선은 절대 넘지 않을 것이니까.”
말을 마친 엽현은 서둘러 자리를 떠나갔다.
대전 밖으로 나온 엽현은 떠나는 엽현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전을 떠난 엽현은 오유맹 내의 한 장원을 들렀다.
그가 막 대문을 열고 들어선 이때, 방문이 열리면서 안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을 발견한 안란수는 아무 말 없이 엽현을 마주하고 섰다.
엽현은 말없이 그녀의 손안에 납계 하나를 쥐어 주었다.
이때 안란수가 엽현의 손을 붙잡았다.
“나도 같이 가게 해줘.”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 해.”
“…….”
“석 달, 기껏해야 석 달의 시간밖에 없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바보 같은 짓은 절대 하지 마. 위험하면 바로 돌아오도록 하고.”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에 안란수가 거칠게 엽현의 손을 끌어당겼다.
“장난으로 하는 소리 아니야! 진지하다고!”
“나도 장난 아니야. 약속할게.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만에 하나 거짓말이면 정말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천천히 엽현의 손을 놓은 안란수는 그대로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장원 안.
가만히 서서 안란수의 방을 응시하던 엽현은 한참 후에야 밖으로 나섰다.
그 뒤로 엽현은 아라 등을 만나 자신이 얻은 조화신정을 조금씩 나눠 주었다. 타고난 자질이 훌륭한 무인들이기에 이 정도 자원만으로도 더 높은 경지에 이르리라는 것을 엽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볼 일을 마친 엽현은 성공으로 나아왔다.
오유계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곳.
막념의 무덤가에 자리를 잡은 엽현은 하룻밤을 꼬박 지세며 그녀 곁을 지켰다.
그렇게 이틀째 되던 날.
엽현이 있던 자리에는 타다 남은 모닥불만 덩그러니 남았다.
* * *
천계연, 도총성.
성안이 한 눈에 들여다보이는 어느 제단 위.
나후와 아고왕이 나란히 서 있다.
먼저 침묵을 깨뜨린 것은 아고왕이었다.
“놈이 광맥을 들고 오유계로 향했소.”
나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음… 아고, 그 막념이란 여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고 있소?”
막념이라.
나후의 뜬금없는 질문에 아고왕의 표정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고작 삼 할의 힘으로 도정 도조의 육신을 박살 내 버린 여인의 실력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이때 나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알기로 그 여자는 괴물 같은 존재였소. 오유계를 지키겠다고 고집만 부리지 않았더라면 쉽게 도정을 멸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로서는 참 아쉬운 일이오.”
아고왕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가 생각해도 막념이 혼자서 도정 전체를 몰살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오유겁을 막는데 기운을 쏟지만 않았더라면 도정 정도는 간단히 삭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죽는 그 순간까지 오유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 대가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쯤 천계연에 도착했겠구려.”
나후의 음성에 정신이 돌아온 아고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백포를 감당해 낼 수 있겠소?”
나후가 곧바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건 엽현이 도정에게 큰 원한을 갖고 있다는 것이오. 설령 천계연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도정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이오. 아니,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가 오히려 백포의 손에 죽는 게 나을지도…….”
아고왕이 고개를 돌려 나후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게 있소. 그건 바로 놈에게 강력한 배후가 존재한다는 것이오. 놈의 뒤를 봐 주는 자는 비단 막념뿐이 아니오. 만에 하나 엽현이 죽게 되면 그들이 가만있겠소?”
“그 배후란 게 누군지 알아낼 수 있겠소?”
나후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밝혀낸 것은 아무것도 없소. 그래서 이 점이 더 무서운 것이오.”
이때 아고왕이 뭔가 생각난 듯 나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엽현이 천계연으로 가면… 치요요가 염려되는구려…….”
치요요.
이 말에 나후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대 말이 맞소. 그 아이에게 엽현을 조심하라 일러두시오.”
고개를 끄덕인 아고왕이 곧장 자리를 떠났다.
* * *
천계연.
엽현이 처음 마주한 천계연은 다소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글자 그대로 거대한 연못인 천계연은 지상이 아닌 성공한 가운데 존재했다.
그런데 그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성공에 존재하는 연못, 천계연!
엽현은 이곳에 오기 전 천계연에 대해 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도정과 도총 모두 천계연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기록한 자료는 없었다.
즉, 천계연은 이 두 세력이 존재하기도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 기원이 무엇이든 천계연이 중요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천 이백 줄기가 넘는 조화신맥!
조화신정도 아니고 신맥이 천 이백여 개라니.
이를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이 정도 양이라면 얼마나 많은 증도경, 어도경 강자를 길러낼 수 있을까?
잠시 침묵하며 천계연을 응시하던 엽현은 이내 연못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