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75
1375화 이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다시 힘에 부치는 지점이 오자, 엽현은 재빨리 검역을 둘러 부담을 덜고자 했다. 하지만 금세 역부족이란 걸 깨닫고 사역과 혈역까지 모두 펼쳐냈다.
세 종류의 역을 운용하고 나서야 엽현은 어렵사리 도권과 검도의 힘을 제어할 수 있었다.
도권!
이 도경무학 안에는 대도의 힘이 깃들어 있다.
만약 지금 하는 것을 성공한다면, 천주검은 도검(道劍)으로 변할 것이다. 즉, 이론상, 검을 휘두르면 대도의 힘이 함께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엽현은 눈을 감은 채 온 정신을 집중했다. 곧, 도권과 검도의 기운이 합쳐진 강력한 힘이 거친 파도처럼 사방에 일렁이기 시작했다.
만약 세 개의 역으로 통제하지 않았더라면, 대전은 오래전에 이미 가루가 되었으리라.
그렇게 엽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고 있는 작업에 열중했다.
* * *
이 시각, 천계연.
도정은 조용했다. 엽현에게 최상품 영맥 두 개와 조화신정 이십여 만 개를 빼앗기긴 했지만, 아무런 보복의 징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한편 천계연 밖, 천궁 내에선 백제자가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그의 곁에는 진무신군이 자리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천계연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아직 더 기다려야 하는가?”
진무신군의 말에 백제성군이 살포시 눈을 뜨고는 대전 밖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아직이오.”
“백제성군, 도대체 뭘 기다리는 것이오?”
사실 진무신군과 백포는 이미 모든 것을 걸고 엽현을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가 어도경에 이르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어도경이 된다면 죽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될 테니까.
하지만 백제자는 무엇 때문인지 이러한 두 사람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도정의 두뇌인 백제자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이때 백제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대전 문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쯤 천리(千里)와 신풍(神風)이 그녀를 찾았을 것이오.”
진무신군은 곧바로 백제자의 말을 이해했다.
소복의 여인!
백제자는 먼저 엽현의 배후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백제성군, 아무리 그래도 그 여인 하나 때문에 모든 걸 중단 할 필요까지 있소?”
“…진무, 그대가 조바심 내는 것은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지금 도정이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게 무엇 때문이오? 바로 막념을 얕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소? 더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오. 엽현의 배후에 대해 확실한 정보가 들어오기 전에는 최대한 조심스레 행동해야 하오.”
“음… 그대가 보기에 그 여인이 막념보다도 더 강한 것 같소?”
백제자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이론상으로 보면 절대 그럴 일은 없소. 이 세상에 막념 그 여자보다 더 강한 존재가 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으니까.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불운이 우리에게 떨어질 거라 생각하진 않소.”
도정은 이미 막념이란 희대의 불운을 겪었다.
만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강자를 연거푸 만난다?
백제자가 생각하기에 그럴 확률은 지극히 희박했다.
그런 일이 진짜로 발생한다면 그땐 운명을 원망할 수밖에.
진무가 무어라 말하려는 이때, 백제자가 돌연 눈을 번쩍 떴다.
“찾았소!”
* * *
아득히 멀리 떨어진 어느 성역.
두 중년인이 성공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이동 중이다.
“신풍! 기운이 가까이서 느껴지오! 곧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소!”
한 남자의 말에 신풍이라 불린 남자가 다소 흥분된 기색을 보였다.
“한 달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찾아다녔건만, 드디어 결실을 맺는구려! 어서 갑시다!”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곧 속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어느 미지의 성역.
어두운 성공에 시시때때로 별빛이 반딧불처럼 교차하고 있었다. 마치 그림 속 장면처럼 보기 아름다웠다.
하지만 우주는 아름다운 만큼 두려운 존재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우주의 끝에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때, 한 여인이 어둠을 뚫고 천천히 성역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소복 치마를 휘날리며 걸음을 옮기는 여인의 모습은 그녀의 여행이 대단히 고독함을 암시했다.
아무도 그녀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다.
그녀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사람의 인생은 지켜야 할 누군가가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영생?
원한 적 없다.
죽지 않는 삶은 영원한 고독을 가져다줄 뿐이니까.
무적의 실력?
그렇게 된 지 이미 오래됐다.
누구나 궁금해하는 이 우주의 끝도 전혀 관심이 없다.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손끝만 까딱해도 전 우주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녀에게 우주란 그만큼 허무한 것이었다.
혹시 무도에 극이 있다면, 그 극한에 이른 자가 있다면.
과연 여인의 일검을 막아 낼 수 있을까?
여인의 머릿속엔 별다른 것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을 제거하고 싶을 뿐이었다.
이 일을 마치고 나면 어쩌면 이 우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돌아볼 여유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그자’를 죽일 생각뿐이다.
자신을 위해서, 엽현을 위해서.
이때, 여인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녀의 정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대한 검은 탑 하나가 보였다. 만 장은 족히 될 법한 높이의 검은 탑은 오만한 위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탑의 앞에는 창을 들고서 우주를 응시하는 한 남자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여인은 잠시 가만히 서서 눈앞의 검은 탑을 바라보았다.
바로 이때, 그녀의 뒤쪽 공간에 파문이 일더니, 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남자의 정체는 바로 신풍과 천리였다.
두 사람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인을 추적하느라 지난 한 달간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도운 것인지, 이들은 오늘에서야 마침내 여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여인은 갑작스러운 불청객을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이때, 신풍이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말했다.
“천리, 뭔가 싸하지 않소?”
이 말에 주위를 두리번거린 천리는 안색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 순간, 천리와 신풍은 자신들이 서 있는 우주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실제로 이 성역은 도정의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두 사람의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이때 천리가 여인을 향해 말을 걸었다.
“저, 여기는 어디요?”
“…….”
“이보시오. 말을 했으면 대답을…….”
이때, 신풍이 천리의 팔을 잡아끌었다.
“천리, 뭔가 이상하오.”
신풍이 고개를 돌리자, 천리가 긴장한 듯한 눈으로 여인을 응시하며 말했다.
“저 여자의 기운이 느껴지시오?”
이 말에 천리가 다시 여인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 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찌 된 일인지, 여인에게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히 눈앞에 존재하건만, 기운이 없다니…….
이건 귀신인가!?
“이거… 오늘 제대로 임자 만난 것 같구려.”
천리가 잠시 고민 끝에 여인에게 포권을 취하며 공손히 말을 걸었다.
“귀하께서는 혹시 엽현이란 자를 알고 계십니까?”
천리는 최대한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했다.
상대의 경지를 알지 못하는 이상, 조심스레 접근하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엽현!
이 말에 목석처럼 서 있던 여인이 눈을 반짝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천리는 이 여인이 일단 자신들이 추적하던 인물임을 확신했다.
“그럼 혹시 우리가 누군지는 아십니까?”
여인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도정의 무인들로, 백제성군의 명을 받고 귀하를 찾아…….”
“나를 찾아? 죽고 싶어서?”
“…….”
감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실리지 않은 여인의 음성에 두 사람이 움찔했다.
“천리, 아무래도 돌아가는 게 낫겠소.”
신풍이 작은 목소리로 천리에게 속삭였다. 뭔가 대단히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도정의 천장(天將) 자리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이미 여인과 마주한 순간, 본능적으로 위험한 인물이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신풍,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잔 말이오?”
“어쩔 수 없소. 저 여자는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오.”
“그럼 백제성군께는 뭐라고 보고한단 말이오?”
“…….”
“걱정 마시오. 우리 둘이 동시에 덤비면 해 볼만할 것이오. 만약 생각보다 강하면 도망치면 될 일 아니오?”
천리의 말에 신풍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물론 천장 둘이 힘을 합친다면 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무언가 꺼림칙함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천리의 말대로 이대로 돌아가면 뭐라고 보고한단 말인가? 어쩌면 크게 문책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각을 마친 신풍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번 해 봅시다.”
이 말을 듣자 천리가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여인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온 것은 한 수 배우기 위함입니다. 가르침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이에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가르침 대신 죽음을 허락하마.”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여인의 모습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천리와 신풍의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순식간에 커다래진 두 사람의 눈동자.
그들의 표정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두 사람 모두 여인이 어떤 공격을 가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자신들이 이미 죽었다는 것뿐이었다.
“제, 제기랄… 도정이 위험…….”
“위험은 무슨… 이미 다 끝났소…….”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모습은 사라졌다.
두 사람이 있던 자리는 마치 검은 붓으로 칠한 것처럼 어둠만 남게 되었다.
여인은 성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가 성 앞에 도달한 이때, 문을 지키고 있던 조각상이 번쩍 눈을 뜨고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범인(凡人)!”
조각상의 음성은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인은 대꾸 없이 조각상을 지나쳐 성으로 향했다.
이를 본 조각상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감히 공격을 시도하진 못했다. 본능적인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경지가 높을수록 여인의 무서움을 쉽게 감지했다.
이때, 조각상이 이미 지나간 여인을 향해 물었다.
“신체(神體)나 신격(神格)도 아니면서 어찌 그리 강할 수 있는가?”
여인은 대답 없이 성을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때, 여인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태산처럼 서 있던 검은 성이 길게 갈라졌다.
여인은 천천히 그 틈을 향해 나아갔다.
조각상은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제지도 하지 못했다.
곧, 어두운 성안으로 들어간 여인이 다시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다시 성 앞에 선 여인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 속에 바다처럼 거대한 연못 하나가 들어왔다.
연못 안쪽에는 무수히 많은 탑들이 수면을 향해 서 있었다.
“저건 뭐지?”
“고신연(古神淵).”
조각상의 대답을 들은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펼쳐 검을 소환했다. 이와 동시에 한 줄기 강대한 검세가 고신연을 향해 날아들었다. 다음 순간, 고대했던 고신연이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본 조각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고신연이 이렇게 쉽게… 이 자는 도대체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