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83
1383화 암계
천계연, 요왕대전.
엽현이 대전에 들어섰을 때 치요요는 이미 기다리던 중이었다.
“무슨 사고라도 났소?”
치요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천계연 안에 기이한 검은 회오리 하나가 나타났다. 조사 결과 그 안에서 대단히 정순한 기운이 감지된 상태다. 확실치는 않으나 최소 열 줄기의 영맥, 혹은 이때까지 발견된 적 없는 엄청난 영맥이 있을 거라 추측하고 있다.”
“검은 회오리? 그건 어떻게 발견한 거요?”
“당연히 갱도를 조사하다 나온 것이지. 이 천계연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아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천계연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니, 도총과 도정의 실력으로도 측량이 안 된단 말이오?”
“너는 이 천계연의 내력을 알고 있느냐?”
엽현이 재차 고개를 저었다.
천계연에 대해 그가 아는 것은 조화신정이 있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치요요의 대답에 엽현이 울컥하며 되물었다.
“아니, 그럼 뭐 하러 물어본 거요?”
“천계연은 우리나 도정보다도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개발을 시작한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아직 얼마나 깊은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게나 거대하단 말이오?”
“보통 거대한 정도가 아니다. 게다가 이 천계연 지하에 기이한 기류(氣流)가 흐르고 있다. 이 기류의 흐름이 너무나 강력해서 어도경 강자 정도로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와 도정이 계속해서 탐사를 시도해 왔지만, 이곳을 뚫기는커녕 죽어 나간 어도경 강자만 육십 명이 넘는다.”
“그렇다면 그대들도 천계연 내부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오?”
치요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지금까지 파고 들어간 땅이 전체 천계연의 삼 분의 일 정도일 거라 추측만 하는 상태다.”
삼 분의 일!
순간 엽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삼 분의 일만 개발해도 이 정도인데, 완전히 파고 들어가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자원이 나올 것인가!
엽현은 상상만으로도 피가 끓어오를 지경이었다.
“자, 망상은 나중에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현재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은 암계(暗界)라는 땅이다. 이곳부터는 원래부터 접근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검은 회오리마저 나타나 더욱 진입이 어려워졌지. 바로 이것 때문에 보자고 한 것이다. 혹시 탐사에 도전해 볼 생각이 있느냐?”
“나… 말이오?”
“그럼 너 말고 누가 있느냐?”
엽현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아니, 나후나 다른 강자도 있는데 왜 굳이 날 보내겠단 거요?”
“멍청하긴! 우리가 가면 누가 네 뒤를 봐 준단 말이냐? 도정이 과연 네가 온전히 탐사를 할 수 있게 내버려 둘 것 같더냐? 우리가 저들을 견제하는 동안 네가 회오리 안을 살펴본다. 이게 바로 우리의 전략이다.”
“그렇군. 그런데… 보상이 있소? 괜히 갔다가 다치면 나만 손해인데…….”
이때 치요요가 벌떡 일어나 엽현 앞에 똑바로 섰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더니 나직이 말했다.
“그런 곳까지 가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게 더 어려운 일이 아니겠느냐? 아마 네가 상상도 못 할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게다.”
이 말에 엽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하, 동맹 사이에 하는 부탁인데 마다 할 이유가 있겠소? 그대의 일이라면 언제든 발 벗고 뛰어들 준비가 돼 있었소!”
엽현의 너스레에 치요요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정말이지 너의 그 뻔뻔하고 양심 없는 성격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
다시 자리에 돌아가 앉은 치요요는 차 한 모금을 음미했다.
“이건 기연이다. 도총의 기연일 뿐 아니라 너의 기연이기도 하다. 다만 도정이 어떤 식으로 개입하려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백포나 진무신군 등은 우리가 막아 주겠지만, 나머지 위기는 너 스스로 헤쳐나가야만 한다. 질문 있느냐?”
“없소!”
치요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 오너라.”
이때 엽현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요왕, 암계는 위험한 곳이오?”
“암계…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너에게 큰 위협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어째서 말이오?”
“후후, 결국엔 뻔뻔한 놈이 승리한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뻔뻔하기로 따지자면 너를 따라올 자가 없으니 이번에도 성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엽현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뻔뻔하면 살아남는다고? 이건 또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이때 치요요가 진지하게 말했다.
“도정을 조심하거라. 또 검은 회오리에 어떤 장치가 숨겨져 있을지 모르니 절대 경계를 늦춰선 안 될 것이다.”
“혹시 회오리 안에 들어 가 봤소?”
치요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입하긴 했으나 곧바로 빠져나왔다. 조금 더 들어갔다간 몸이 찢겨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곳엘 들어가란 말이오?”
치요요가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거기서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이 뭔지 아느냐?”
“무엇이었소?”
“검기! 그 어디서도 만나보지 못했던 흉흉한 검기가 존재했다!”
검기!
“아니, 회오리 안에 검기가 존재한단 말이오?”
치요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무인은 절대 견딜 수 없는 그런 강력한 검기였다. 설령 나나 다른 나후라 할지라도! 때문에 네가 이 일에 적합한 것이다. 너의 몸은 검기를 흡수할 수 있으니, 아무 타격 없이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볼 수 있지 않겠느냐?”
이 말에 엽현은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도총이 기껏 발견한 이 검은 회오리에 대해 말 해 줄 리가 만무하다.
안에 얼마나 많은 영맥이 존재할지 모르는 곳에 굳이 도총 사람이 아니라 엽현을 보낼 필요는 없다.
엽현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엽현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소!”
“좋아! 해낼 거라 믿는다!”
엽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섰다.
이때 치요요의 음성이 들려왔다.
“혹시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느냐?”
이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엽현은 이를 들키지 않으려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소. 여전히 증도경일 뿐이오.”
“그래? 왜 나는 더 강해진 것처럼 느껴질까?”
엽현이 웃으며 치요요를 향해 돌아섰다.
“요왕,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치요요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되물었다.
“사람의 발이 왜 손보다 하얀 줄 아느냐?”
“왜 그렇소?”
“후후… 그건 항상 신발 안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신발을 벗겨보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진실도 마찬가지지.”
“…충고 고맙소.”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등을 보이며 돌아섰다.
이때 그의 얼굴은 다소 굳어 있었다.
치요요는 이미 육신이 새 경지에 이른 것을 눈치챘던 것이다.
이번 것은 확실히 그의 실수였다.
기운을 감춰 놓는다고는 했지만, 계옥탑을 이용해 더 확실히 숨겼어야만 했다.
스스로 자만하고 방심한 결과 상대에게 주요한 패 하나를 들켜 버린 것이었다.
엽현은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는 치요요 정도의 고수의 눈을 속이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적어도 지금은 계옥탑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으리라!
대전 밖을 나선 엽현은 자신의 뺨을 몇 차례 가볍게 때렸다.
“엽현아, 엽현아… 더 조심하자!”
말을 마친 그는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이내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대전 안, 치요요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육신이 더 강화되다니… 역시 그때 도경을 보았기 때문인 걸까?”
치요요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 * *
신궁.
대전 안에는 백제자와 백포, 그리고 진무신군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검은 회오리에 대한 보고를 막 받은 상태였다.
먼저 백포가 입을 열었다.
“그 회오리는 도총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자연히 발생한 것이오. 다만, 회오리 안에 강력한 검기가 존재하는 탓에 나후나 치요요조차 진입을 실패했다 하오.”
“엽현은 가능하오.”
백제자의 말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놈이 무슨 수로 말이오?”
“흥! 그 뻔뻔한 놈의 육신은 어째서인지 검기를 흡수할 수 있는 특성이 있소. 이거 참 공교롭지 않소? 저 검은 회오리… 마치 엽현을 위해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 드오.”
이때 진무신군이 입을 열었다.
“백포, 암계는 어떤 곳이오. 이 중에서 그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 말 해 주시오.”
“암계… 그곳은 혼탁한 기운이 가득한 곳이오. 이 기운은 사람의 몸은 물론 수명마저 갉아 먹는 지독한 기운이오.”
“방어할 방법은 없는 거요?”
백포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 없소.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기운이 강력해지고, 오랫동안 노출되면 천인오쇠(天人五衰)의 상태에 이르게 되오.”
천인오쇠!
이는 무엇에 중독되어 죽기 직전에 이른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엽현은 그 ‘혼탁한 기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거요?
백포가 재차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정도 경지로는 암계에 발을 들이는 즉시 죽는 게 정상이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놈은 평범한 무인이 아니니, 똑같은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소.”
백제자는 말이 없었다.
사실 그가 보아도 엽현이 쉽게 죽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이변을 만들어 낸 엽현이 아니던가.
이때 진무신군이 주먹을 불끈 쥐며 발언했다.
“이건 우리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소. 엽현을 죽일 수 있는 기회 말이오! 백포신장 말대로라면 암계 내에서 엽현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는 것 아니오?”
이에 백포가 고개를 저었다.
“암계에 진입하지 못하는 건 도총 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요. 그런데 어떻게…….”
“도포(道袍)!”
도포!?
백제자가 백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도포가 있다면 암계 내부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소?”
모두의 시선이 백포에게로 향했다.
이에 백포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최대 반 시진 정도요. 그 이후엔 도포 역시 녹아내리기 시작할 거요. 게다가 내 생각에 엽현은 소용돌이 안에 진입할 순 있겠으나 암계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요. 만약 놈이 암계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이 작전은 아무 소용이 없소. 왜냐하면, 소용돌이 안에서 출수하면 도총도 출수할 수 있기 때문이오.”
“놈이 진입할 수 있다는 쪽에 도박을 걸어 봅시다.”
도박!
진무신군의 말에 백제자와 백포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때 진무신군이 백포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정을 해 봅시다. 엽현과 일대일로 붙었다고 쳤을 때, 그대에게 승산이 얼마나 있소?”
“팔 할! 놈이 그동안 어도경이 된 것이 아니라면 내가 질 이유가 없소!”
진무신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팔 할…. 그 정도면 도박하기에 충분하오. 그렇지 않소?”
이때 말없이 있던 백제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도포를 가져오겠소.”
말과 함께 백제자가 대전을 떠났다.
이때 진무신군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아쉽군, 그놈이 우리 쪽 사람이었더라면 도총을 쳐부술 수 있었을 텐데.”
만약 엽현이 도정의 사람이고, 도정이 그를 물심양면 지원했더라면 제 2의 도조가 탄생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도조 수준의 강자가 한 명 더 존재한다면 저 눈엣가시 같은 도총을 무너뜨리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
하지만 애석하게도 엽현은 도정의 무인이 아닌,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