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백성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소?
황궁 내.
그 누구도 감히 소리 내는 자가 없다.
당국 병사든 당국 무인이든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국의 국주를 이다지도 쉽게 죽이다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담판 어쩌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제안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는다고 상대를 바로 죽인단 말인가?
현재 당국인들의 감정은 단 한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분노!
지금 상황은 당국인들에게 있어 참을 수 없는 치욕인 것이다!
그렇게 몇몇 피가 들끓는 당국 무인들이 엽현 등의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하더니 그들 중 일부가 겁도 없이 달려들었다.
바로 이때, 엽현과 육반장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펑! 펑! 펑!
쉬이익-!
장내에 여러 차례 부서지고 잘려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엽현 등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장내에는 어느새 십여 구의 시체가 더해졌다.
엽현을 향해 달려든 무인들이 순식간에 모두 죽임을 당한 것이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죽은 시체들을 보니 나머지 무인들은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나 강하다!’
엽현이 이내 검을 들어 한 편에 서 있던 당국 황족들을 가리켰다.
“누구 국주 하고 싶은 사람 없나?”
바로 이때,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엽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등 뒤로 두 자루의 도(刀)가 얼핏 보였다.
만법경 강자였다.
장내에는 두 명의 만법경 강자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당국의 국사, 그리고 엽현의 눈앞에 있는 이 흑포 노인이었다.
“어떻게, 결국 인내심이 바닥나 버린 것인가?”
엽현은 황궁에 발을 디딜 때부터 상대의 살기를 느끼고 있었다.
흑포 노인이 매섭게 엽현을 노려보자 그의 등 뒤에서 두 자루의 도가 격렬하게 떨려왔다.
이때 뒤편에 있던 육광이 코웃음을 쳤다.
“어디, 힘으로 한 번 눌러 보려는 것인가!?”
말과 함께 육광이 엽현의 곁에 섰다. 육광이 자신의 도를 움켜쥐며 말했다.
“중토신주에서 가장 천시되는 행동이 바로 노부들이 젊은 무인들을 힘으로 누르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나서겠다면 나 역시 중토신주의 만법경 강자를 부르는 수밖에 없겠군.”
능한 등이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 배후엔 적어도 한 명의 만법경 강자가 있었다.
단 중토신주에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일에 결코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선배가 한참 어린 후배들을 향해 출수한다면 그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 된다.
게다가 중토신주엔 많은 거대 세력들이 있기에 자칫하면 아이들 싸움으로 끝날 것이 세력 간의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 때문에 모두가 암묵적으로 이와 같은 불문율을 지키고 있던 것이다.
물론 청주와 같은 작은 지역에서는 아무래도 그 정도가 엄격하다고 볼 순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육반장 등이 청주가 아닌 중토신주에서 온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배경이 모두 녹록지 않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만법경 강자가 그들을 건드리는 순간, 마치 벌집을 건드린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는 당국 같은 소국은 물론 창목학원이나 암계 정도의 거대 세력들이라 할지라도 쉽게 감수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흑포 노인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져 갔다.
그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비단 자신들과 엽현 사이의 일일 뿐 아니라, 중토신주의 인물들까지 연루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창목학원과 암계가 벌인 일에 재수 없게 당국이 휘말렸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후…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이 말을 뱉은 흑포 노인이 그대로 장내를 떠나갔다.
이제 남은 만법경 강자는 국사 노인 단 한 명뿐이었다.
당국 진영의 의욕이 더욱 꺾이는 순간이었다.
엽현이 황실의 인물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생각인가?”
바로 그때 황족들 사이에서 한 명의 청년이 걸어 나왔다. 청년은 두려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표정으로 엽현을 향해 외쳤다.
“내가 당국의 태자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강국에 갈 텐가?”
“하! 그게 뭐 어렵겠는가! 하지만 기억해 둬라. 오늘의 이 수모는 훗날 반드시 백배로 갚아줄 것…….”
이때 청년의 음성이 뚝 끊겼다.
왜냐하면 말을 전달해야 머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국 황족들은 핏물을 흩뿌리며 허망하게 날아가는 태자의 머리를 보며 안색이 극도로 하얘졌다.
엽현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영수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애석하게도 네겐 훗날이란 게 없을 것 같군.”
엽현이 잔뜩 겁에 질린 황족을 향해 다시 소리쳤다.
“자, 이번엔 좀 더 총명한 자가 나왔으면 하는데!”
사실 엽현은 당국 황족들을 모두 죽일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만약 당국 황실이 무너지게 된다면 그것은 강국에게도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만약 당국 황실이 사라지게 되면 당국 곳곳에서 호족이나 군벌이 들고 일어나게 될 것이고 자칫 자신들의 국호를 들이대며 난립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당국에 꼭두각시 국주를 하나 심어 두는 편이 당국을 통제하기에 훨씬 좋지 아니한가?
만약 당국 황실이 남아 있으면 군벌들도 봉기하지 못할 것이고, 만약 반란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강국 군대가 당국의 이름을 빌어 토벌하면 될 일이다.
사실 엽현 입장에서는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만약 당국 황실을 제거하려 한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황족을 죽여야 하는데, 황궁 밖에 즐비하게 있는 군대와 무인들을 보자니 어쩐지 큰일이 될 것만 같았다.
게다가 엽현은 더 이상 자신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능한 등이 그간 전투에서 입은 상처들은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었고, 엽현은 그런 그들이 최대한 안전하게 이곳에서 빠져나가길 원했다.
바로 이때, 황족들 사이에서 한 소년이 앞으로 나섰다. 십오 세 가량으로 보이는 소년은 분명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엽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가겠소.”
엽현이 물었다.
“이름은?”
“당목(唐木).”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부터 네가 당국 국주다.”
이때 엽현이 칼끝으로 황족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또 국주가 되고 싶은 자가 있으면 지금 나와도 좋다.”
그러나 더 이상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럼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겠다.”
엽현이 당목이라는 소년에게 한발 다가섰다.
“나와 강국으로 가자. 네 안전은 보장할 테니 안심해도 좋다!”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엽현이 이번에는 당국 병사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기억해라. 새 국주가 너희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병사들은 그의 말을 듣고도 그저 잠잠할 뿐이었다.
엽현이 육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육 형, 번거롭겠지만 강국까지 호위를 좀 부탁하겠소.”
육광이 고민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그렇게 엽현 등은 새로 당국 국주가 된 당목을 데리고 황궁을 나섰다. 엽현은 몇몇 당국 군사들이 당목을 따르도록 했다.
황성을 빠져나가는 동안 엽현 등을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엽현이 드디어 강국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엽현이 고개를 돌려 능한 등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반드시 당국을 무사히 빠져나가야만 했다.
엽현은 검안을 수련하게 된 이후, 비록 눈을 뜰 순 없었지만 모든 사물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심지어 눈으로 볼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엽현 등이 황성의 거리를 지날 때, 이미 수많은 당국인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국인들은 엽현 등을 바라보며 짙은 적의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저 눈들을 보아하니 훗날 반드시 강국에 복수하려 들겠군.”
엽현의 옆에서 걷던 묵운기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엽현이 대꾸했다.
“그 때문이라도 강국은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해. 복수할 생각은 영원히 꿈도 꾸지 못하게 말이야. 우리도 마찬가지야. 돌아가게 되면 모두 전력을 다해서 신합경에 도달하도록 하자!”
엽현이 능한 등을 돌아봤다.
“너희도 마찬가지로 하루 빨리 신합경에 이르자!”
신합경이라…….
청주에서 통유경 강자들은 그럭저럭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었지만, 중토신주의 무인들 사이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만약 능한 등이 현재 제 구 용병단과 겨루게 되면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헌데 그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용병단 보다도 훨씬 거대한 세력인 창목학원과 암계였다.
그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선 반드시 강해져야만 했다.
바로 이때, 그들 앞에 한 무리의 기병들이 출몰했다.
기병들의 수는 대략 일만이었다.
엽현은 기병들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 그들은 일 전에 상대했던 흑도위와 감사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병들의 선두에 있는 한 중년인은 바로 배소호(裴啸虎)였다.
그는 당국의 총사령관이다.
배소호는 엽현 등이 황성에 침입했다는 전갈을 받은 후 곧바로 십만 대군을 이끌고 양계성에서 회군하는 길이었다. 그는 수하들 중 가장 날랜 자들로 선발대로 꾸려 밤낮으로 말을 달렸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이윽고 두 진영이 대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때 배소호가 말을 끌고 앞으로 나와 엽현 등을 살기등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뒤에서 일만 기의 기병대가 언제든 돌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엽현… 굉장하군……. 우리 당국이 네 손에 무너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엽현이 흑랑을 몰고 배소호의 앞까지 다가갔다.
“너희 당국엔 두 개의 선택권이 있다. 첫 번째는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쪽도 피해가 없진 않겠지만, 너희 당국은 확실히 이 청주에서 사라질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와 협상 하는 것이다.”
“하하하! 협상? 이게 무슨 협상인가? 차라리 협박이라고 똑바로 말…….”
엽현의 검 끝이 순식간에 배소호의 목을 가리켰다.
“그럼 네 말대로 협박이라고 하자. 불쾌한가? 그렇다면 당국이 망할 때까지 어디 한 번 싸워보든가!”
배소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전쟁을 원하나? 그렇다면…….”
“대원수-!”
이때 멀리서 한 명의 기병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배소호의 앞에 도착한 기병이 말에서 내려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아룁니다! 우리 후진이 황성으로 오는 길에 강국 구 공주가 이끄는 수만의 기병의 기습을 받았습니다. 현재 우리 대군이 막산(莫山)에서 적군과 대치 중이니 속히 명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구 공주라고?’
기병의 말에 배소호의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졌다.
과연 구 공주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배소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당목이 그에게 말했다.
“배 원수, 우리 당국은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소.”
배소호가 당목을 바라봤다.
“그럼 이대로 투항하자는 말입니까?”
당목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협상을 할 것이오.”
“하하하! 육(六) 황자, 그 말을 믿는 것입니까? 황자께서 강국으로 끌려가신다면 협상은 없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당국은 그저 저들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될 뿐입니다!”
“배 원수, 그대는 백성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소? 만약 강국의 대군이 국경을 넘는다면 얼마나 많은 자들이 목숨을 잃겠소?”
당목이 배소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우리 당국이 졌소. 그리고 진 쪽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오.”
그렇다. 지금 당국이 패했다.
천하의 강골 배소호였지만, 그 말을 듣자 두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이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이 눈물은 자신의 조국을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