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95
1395화 한번 해 보시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삼인은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이때, 오랫동안 침묵하던 백제자가 입을 열었다.
“기억도 잃고 힘도 잃었소.”
백포와 진무신군이 동시에 백제자를 쳐다보았다.
백제자는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어갔다.
“이 말은 즉, 지금의 그녀는 평범한 소녀에 불과하다는 뜻이오.”
백제자의 말을 들은 순간, 진무신군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났다.
원래 상태의 막념이라면 자신들 전부가 달려들어도 당할 수 없다.
하지만 기억과 실력을 회복하지 못한 지금이라면?
그야말로 손가락만 까딱해도 죽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닌가!
“이번 일은 질질 끌어서 좋을 것이 없소.”
백포의 말에 백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정의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제거해야만 했다. 그녀가 언제 기억을 되찾을지 누가 아는가?
그것이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도총부터 해결해야 하오.”
진무신군의 말에 백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가서 담판을 짓고 오겠소.”
“그들이 거절한다면?”
“그럼 곧바로 전면전이 열릴 것이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 아니겠소! 진무, 백포! 지금 당장 도정의 모든 강자를 모아주시오! 오늘 밤이라도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말을 마친 백제자는 서둘러 대전을 빠져나갔다.
* * *
도총성.
백제자는 홀로 도총성 한가운데 도착했다.
그가 나타나자 나후와 치요요, 뒤이어 아고왕과 전만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제자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막념은 제거되어야 하오. 우리나 그대들이나 그편이 좋을 거요.”
치요요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왜 우리에게 좋은 일이오? 도총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요왕, 정말로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있어서 좋을 게 있다고 생각하시오?”
“좋을 건 없지만, 그렇다고 나쁠 건 또 뭐요? 어쨌든 우리는 손해 볼 것도 없소. 그녀가 기억과 실력을 회복한다면 제일 먼저 도정을 없애려 할 테니까. 내 말이 틀렸소?”
“하하, 좋소! 협상은 결렬됐군! 그럼 전장에서 봅시다!”
이 말을 끝으로 백제자가 자리를 떠났다.
전장에서 보자!
치요요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씩 사라졌다.
백제자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도정은 막다른 길에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막념을 없애지 않으면 그녀가 기억을 찾는 순간 도정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도정 입장으로서는 지금 당장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막념을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설령 도총과 전면전을 펼친다 하더라도!
이때 나후가 입을 열었다.
“우린 절대 개입할 수 없소.”
“무슨 말이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오.”
“…….”
“요왕, 좋은 생각이라도 있소?”
“두 가지 선택이 있소. 하나는 도정과 엽현이 혈전을 벌이는 동안 지켜보고 있다가 이득을 챙기는 것이오.”
“그럼 두 번째는?”
“엽현을 도와 막념이 기억을 회복할 때까지 도정을 막는 것이오.”
“그에 따른 보상은 무엇이오?”
아고왕이 묻자 치요요가 대답했다.
“보상이라면 오유맹과 진정으로 동맹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거요. 신뢰로 다져진 동맹!”
아고왕이 고개를 저었다.
나후 역시 부정적인 표정이었다.
동맹?
그들은 단 한 번도 남을 믿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오유계가 강성해 지면 도총은 자연히 압박을 받을 것이 뻔하다.
백제자가 한 말처럼, 이 우주에 막념 같은 강자가 존재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치요요는 이들의 표정에서 이미 어떤 선택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총은 첫 번째 안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엽현과 도정이 서로 피를 흘리게 된다면 도총으로서는 결코 나쁠 일이 아니었다.
도총으로서는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어부지리를 취하게 될 테니.
엽현이 져도 도총은 손해가 없고, 도정이 지면 천계연은 모두 자신들의 차지가 된다.
“오유계에 한번 다녀오겠소!”
“요왕!”
치요요가 일어나 떠나려 할 때, 나후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이에 돌아선 치요요가 웃으며 말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결정할 순 없지 않소?”
“도총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오.”
치요요는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대전을 나섰다.
* * *
오유계.
소음이 소녀를 데리고 검전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 소녀는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달라져 있었다. 꾀죄죄했던 것들을 벗어 던지고, 헝클어진 머리를 단정하게 땋아 내리니 영락없이 또래의 소녀의 모습이었다.
비록 외모는 달랐지만, 엽현은 이 소녀가 막념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엽현을 발견한 소녀는 곧장 달려와 엽현의 팔에 매달렸다.
“생선이 먹고 싶어!”
생선!
“하하, 가자! 내가 맛있게 구워 줄게!”
엽현은 소녀를 데리고 대전 밖으로 나섰다.
대전 안, 소음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막념이 부활한 것은 오유계 전체적으로는 호사였다. 하지만 문제는 당장 그녀가 힘을 전혀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도정이 두고 보고 있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
도정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념을 죽이려 들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인즉, 오유계의 평화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 * *
엽현은 ‘막념’을 데리고 어느 강변을 찾았다. 그녀와 엽현이 처음으로 만났던 장소였다. 당시 엽현은 그녀가 오유계의 천도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엽현은 곧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와 막념 앞에 펼쳤다.
“어느 거부터 구울까?”
“음… 저거!”
막념은 가장 큰 고기를 선택했다.
엽현은 곧바로 불을 피워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평생 이 일을 한 것처럼 매우 능숙했다.
막념은 엽현 곁에 쪼그려 앉아 눈을 반짝이며 물고기가 익어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막념아, 그 시장에는 뭐 하러 갔던 거야?”
막념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어떻게 거기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
“…응.”
막념은 엽현을 만나기 이전의 기억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때 막념이 양손으로 엽현의 팔을 끌어안았다.
“나… 계속 여기 있어도 돼?”
“하하, 물론이지!”
“정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매일 매일 생선도 구워 줄 거야!”
이 말에 막념의 입이 귓가에 걸렸다.
생선이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 엽현은 하늘을 바라보며 누웠다.
문득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 이유는 물론 막념이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엽현은 자신이 멍청하게 구는 대신 오유계를 잘 돌본 선택을 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모두의 노력 덕분에 오유계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무인들의 단결력도 그 어느 때보다 더 단단했다.
기억을 되찾은 막념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이런 생각이 들자 엽현은 코를 쓱 문질렀다. 스스로가 대견했던 것이다.
“다 익었어!”
막념이 다 익은 생선을 들고 호호 불더니, 크게 살점을 떼어 엽현에게 내밀었다.
“먹어!”
엽현은 하하 웃으며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맛있어?”
“그럼! 누가 구웠는데, 당연히 맛있지!”
“하하! 바보!”
“하하하!”
화기애애한 이때, 노인 하나가 강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백제자였다.
엽현은 백제자를 응시하며 생선을 뜯었다.
막념은 낯선 이의 등장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며 엽현의 팔을 끌어안았다.
막념을 본 순간, 백제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실수였다. 그때 본체를 태워버렸어야 할 것을!”
한 우주의 천도는 사람과 달리 죽음이란 것이 따로 없다. 다만 그 우주의 흥망성쇠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것이다.
오유계가 다시 살아난 이상, 천도 역시 부활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오유계가 건재한 이상 그녀의 힘은 여전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본체가 재생된 것 또한 같은 이치다. 비록 영혼이 천지에 흩어져버렸지만, 오유계는 이를 조금씩 모아 결국 완전한 영혼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바로 막념이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엽현은 고개를 돌려 불안해하는 막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서워 하지 마. 내가 있잖아.”
막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팔을 놓지 않았다.
“엽현, 그녀를 넘겨라. 아니면 지금 당장 전쟁이다.”
이에 엽현이 백제자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한번 해 보시든가.”
백제자와 엽현은 계속해서 시선을 마주쳤다.
딱딱한 표정의 백제자와 달리 엽현은 여유가 있었다.
“후후, 겁준다고 누가 무서워할 줄 아나? 지금도 준비됐으니까 언제든 쳐들어와라.”
“멍청한 놈. 도총을 믿고 있나본데 그런 가소로운 생각은…….”
“긴말하지 말고 꺼져!”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엽현의 검이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다.
이를 본 백제자는 눈이 휘둥그레져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원래 있던 곳으로부터 무려 수백 장 떨어진 곳이었다.
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과연 백제자를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싸움 실력은 몰라도, 도망치는 솜씨는 가히 일류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검기보다도 빠른 몸놀림이었다.
잠시 넋 놓고 있는 사이 백제자는 이미 오유계의 경계를 벗어난 상태였다.
이때 막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 왜 날 죽이려는 거야?”
생각을 거둔 엽현이 막념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냐. 널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으, 응…….”
막념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은 곧 막념을 데리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이때, 이번에는 치요요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막념을 흘끗 쳐다본 치요요가 엽현에게 말했다.
“이야기 좀 할까?”
“그래, 합시다.”
세 사람은 강을 따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도총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음, 예상하던 바요.”
“네 배후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으냐?”
“전혀.”
“그럼 뭘 믿고 전쟁을 치를 셈이지?”
“딱히 믿을 사람은 없소. 의지할 것은 한 자루 검뿐이오.”
치요요는 말없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에 엽현이 가볍게 미소를 흘렸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치요요는 더 묻지 않고 막념을 쳐다보았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막념이 경계하며 엽현 뒤로 몸을 숨겼다.
“가능한 빨리 천도의 기억과 실력을 되돌아오게 하는 게 좋을 게다.”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때가 되면 자연히 그렇게 될 일이오.”
막념이 기억을 되찾는 것은 엽현도 바라는 바였다.
하지만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는 오직 막념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도정과 전쟁을 할 셈이냐?”
“아니면 뭐 다른 방법이라도 있소?”
“…….”
“그 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본론이나 꺼내 보시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찾아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