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98
1398화 오유계를 위해서라면!
백제자는 엽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뭔가 불안했다.
엽현이란 인물 자체가 원래 계략이 많은 데다가 표정까지 평온한 걸 보니 더더욱 의심스러웠다.
저 표정… 분명 다른 패가 더 있다.
도대체 무슨 패일까?
도총?
그들은 이번 일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사세계?
애당초 엽현이 파사세계의 소종주 어쩌고 하는 것은 믿은 적이 없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백제자, 뭘 그리 뜸을 들이나? 빨리 시작하지?”
“…….”
“왜 그래? 어디 기세 좋게 덤벼 보란 말이다.”
“애송이 녀석, 허장성세로구나.”
백제자가 문득 흑의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대는 누구시오? 저 녀석과 무슨 관계요?”
흑의인이 대답했다.
“그저 약속을 지키러 온 것일 뿐, 아무 관계도 아니다.”
“어떤 대가를 받기로 했는지는 몰라도, 이쪽에서 그 두 배를 지불하겠소.”
흑의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럼 세 배를…….”
“지겨우니 그만하거라.”
흑의인이 엽현을 쳐다보았다.
“내가 누구를 맡으면 되지?”
엽현이 손으로 진무와 백포를 가리켰다.
“저 두 사람, 가능하겠소?”
“…죽이진 못한다.”
“그거면 충분하오!”
이 말을 들은 흑의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때, 진무가 백포에게 소리쳤다.
“너 자는 내가 막겠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무신군의 검이 날카롭게 날아올랐다.
쉭-!
쾅-!
진무신군 바로 앞에서 폭발이 일더니, 그의 신형이 수십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이 장면을 보자 백제성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디서 저런 강자가 튀어 나왔단 말인가!’
이때 자리에 멈춰 선 진무신군이 검을 고쳐 잡았다.
순간, 강대한 검세가 검 끝에 맺혔다.
바로 이때, 흑의인이 부지불식간에 진무신군 앞에 나타났다.
뒤이어 흑의인의 평범한 일권이 날아들었다.
이를 본 진무신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일검을 휘둘렀다.
한 줄기 검세가 맺힌 이 일검엔 천지를 반으로 갈라버릴 위력이 담겨 있었다.
쾅-!
순간, 두 사람이 서 있던 공간 전체가 와르르 무너졌다. 이 와중에도 두 사람의 전투는 계속 이어졌다.
한편, 백포는 진무신군이 밀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출수하지 않았다.
흑의인도 진무신군을 쉽게 죽이지 못하는 이상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하하! 아무래도 혼자서 우리 둘을 감당하진 못할 것 같구나!”
백포의 비아냥거림에 엽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먼 하늘에서 날카로운 검명이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작은 체구의 여인 하나가 백포 앞에 떨어졌다.
소칠!
소칠의 등장에 엽현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소칠, 삼유계인가 간다고 하지 않았어?”
“갔다 온 거야.”
“그렇구나… 네가 할 수 있겠어?”
“한번 해 보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칠이 뒤로 돌며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을 본 순간, 백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생각지 못하게 강력한 일검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를 지켜본 백제자의 표정에도 경련이 일었다.
오유계에 저런 강자가 존재했단 말인가?
소칠과 백포는 한데 뒤섞여 전투를 진행했다.
두 사람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전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엽현은 다소 놀란 상태였다. 얼마 보지 않은 사이에 소칠의 실력이 급격하게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이때 백제자가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런 강자들을 잘도 숨겨 놓았군! 더 올 자가 있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없어. 정말로.”
“흥!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전쟁은 이미 끝났다.”
이때 엽현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조급해하지 말라구. 너에게 줄 선물이 남아 있으니까!”
엽현은 일단 막념을 안전한 계옥탑에 들어가도록 했다.
막념이 사라지자, 엽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백제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엽현을 지켜보았다.
그의 주먹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백제자 뒤로 서 있는 신군들 역시 경계의 기색이 역력했다.
눈앞의 젊은 무인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존재란 걸 잘 알고 있는 터였다.
모두가 긴장하며 엽현이 말한 ‘선물’을 기다리는 이때, 엽현이 백제자를 향해 엉덩이를 쭉 내밀었다.
뿌앙-!
순간, 모두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윽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스멀스멀 날아들었고, 이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똥 씹은 얼굴이 됐다.
이때 엽현이 상쾌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하하하! 내가 준비한 선물이다! 어때? 향기롭지?”
엽현을 노려보는 백제자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살기가 넘쳐흘렀다.
“출수!”
백제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신군들이 일제히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가히 번개 같아서, 눈 깜빡할 사이 이미 엽현과 지척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때, 엽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찰나의 순간, 수십만 자루에 달하는 기검이 엽현의 체내에서 튀어 나왔다.
이 기검은 바로 혼탁지기를 응축해 만든 것이었다.
하늘을 검게 가린 기검들을 본 순간, 백제자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퇴, 퇴각! 당장 물러나라!”
하지만 물러나기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도정 무인들은 십여만 자루의 기검이 지나간 순간, 벌집으로 변했다.
성도경 강자도 버거워하는 혼탁지기를 어도경 급 무인들이 막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신군들의 대처도 빨랐다.
가장 앞에 있던 십여 명의 신군들이 죽은 순간, 나머지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피해에 이들의 표정은 매우 어둡게 변해 있었다.
공격을 마친 기검들은 마치 호위병처럼 엽현의 등 뒤로 돌아갔다.
한편, 백제자의 눈빛엔 불신의 기색이 역력했다.
“저건 암계의 혼탁지기… 네가 어떻게 혼탁지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이냐!”
“하하, 이건 몰랐지?”
대답하기가 무섭게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와 거의 동시에 십여만 자루의 기검이 마치 폭우처럼 도정 무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이 모습을 본 신군들과 증도경 강자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평범한 기검이라면 이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엽현의 실력으로는 기검을 만든다 해도 증도경 한 명을 죽일 수 있을까 말까 한 정도였다.
그것도 여러 자루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날아오는 건 평범한 기검이 아니다.
혼탁지기!
증도경 강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도경 강자도 혼탁지기에 스치면 천인오쇠(天人五衰) 상태에 접어들어 결국 죽음에 이른다.
즉, 이들에게 혼탁지기는 쥐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때 백제자가 소리쳤다.
“퇴각! 전원 퇴각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장내의 모든 어도경과 증도경 강자들이 황급히 도망치더니, 아예 오유계 영역 바깥쪽까지 물러났다.
이때, 전투 중이던 백포와 진무신군이 손을 멈추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혼탁지기!
도정과 도총이 천계연 심층부 계발을 포기한 이유는 바로 이 혼탁지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무인은 물론이고, 백포나 진무신군에게도 매우 부담스러운 기운이었다.
하지만 엽현은 혼탁지기에 면역인 것도 모자라 한술 더 떠 혼탁지기로 기검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
백제자가 이들의 생각을 대변해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어떻게 혼탁지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이냐!”
“하하, 나도 모르겠는데?”
“엽현… 정말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나 역시 탄복했다.”
이때 엽현이 손가락을 들어 백제자를 가리켰다. 순간, 기검 하나가 백제자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이를 본 백제자는 기겁하면 수만 장 밖으로 도망쳤다.
순식간에 멀어진 백제자를 보자 엽현은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에 저렇게 잘 도망치는 무인이 또 있을까?
“퇴각! 퇴각한다!”
멀리 도망친 백제자의 명령에 도정 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백포와 진무신군 역시 백제자의 뒤를 따랐다.
도정 무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엽현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걸로 끝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다음에 그가 상대해야 할 무인은 어도경 급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성도경!
성도경이라면 충분히 엽현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천계연에서 만난 성도경 노인 역시 혼탁지기를 꺼려하긴 했지만 그다지 심각한 피해는 입지 않았었다. 그가 암계 심층부로 접근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곳은 온통 혼탁지기뿐이기 때문이었다.
즉, 성도경 강자를 막으려면 주변을 혼탁지기로 도배해야 하는데, 오유계에서 그런 일을 벌일 순 없다.
이때 소칠이 엽현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엽현이 소칠을 보며 대답했다.
“내게 생각이 있어. 네가 나 대신 여길 좀 지켜줘.”
“물론이지!”
엽현은 한쪽에 서 있던 흑의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에 흑의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널 위해 한번 출수했다.”
이때 엽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납계 하나가 흑의인 앞으로 날아갔다. 그 안에는 자그마치 조화신정 만 개가 들어 있었다!
“한 번 도와줄 때마다 만 개씩. 어떻소?”
“…….”
흑의인은 망설였다.
이때 납계 하나가 더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조화신정 이만 개였다.
잠시 납계 안을 바라보던 흑의인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앞으로 오유계의 평화를 위해 분골쇄신! 이 한 몸 다 바칠 준비가 돼 있다!”
“…….”
흑의인의 말에 엽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과연, 조화신정이 물건은 물건이었다.
절대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았던 흑의인마저 돌려세운 걸 보면.
물론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지금까지 조화신정은 도정과 도총이 독식하다시피 해왔다. 이 두 세력이 아닌 이상 조화신정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매우 흔치 않았다.
이때, 한 가지 생각이 엽현 머릿속에 번뜩였다.
현재 그가 지니고 있는 조화신정은 수천만 개.
여기에 최상급 광맥만 해도 수십 개가 있다.
대충 계산해도 이들 광맥에서 만들어 내는 조화신정은 한 해 오륙백만 개가량.
그렇다면 이것들을 이용해 무인들을 초빙해 올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도정이 강한 것은 맞지만 조화신정 앞에 장사는 없다.
값만 제대로 쳐 준다면 용병이 되려 하는 자들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엽현은 곧바로 소음을 소환했다.
“소음, 지금 당장 방(榜)을 붙이시오. 오유계를 위해 싸워 줄 자들을 모집한다고. 한 번씩 출수할 때마다 어도경에겐 조화신정 만 개, 증도경은 삼천 개가 손에 떨어질 거라 적으시오!”
소음은 곧바로 엽현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바로 진행시키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