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99
1399화 한꺼번에 덤벼라
대답과 동시에 소음이 자리를 떠났다.
엽현은 다시 흑의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이좌(李左).”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좌, 혹시 주변에 또 아는 무인 없소?”
“음… 한두 명 알고 지내는 자들이 있긴 하다만.”
이 말에 엽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수고스럽겠지만, 그들을 초빙해줄 수 있겠소? 보수는 두둑이 쳐 줄 것이오.”
“…….”
“부담 갖지 마시오.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말은 한번 전해 보겠다.”
엽현이 황급히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 잘 좀 부탁드리겠소!”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좌는 말없이 엽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남은 것은 꼭 조화신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조화신정이 귀하긴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엽현과 인연을 맺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엽현의 내력과 배경을 안다면 자신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엽현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할 것이다.
이좌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청삼남, 그가 보여준 절망스러운 강력함을.
시간이 많이 흘러 이좌의 실력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도 그때 청삼남의 무위를 생각할 때면 절망감에 빠지기 일쑤였다.
잠시 엽현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던 이좌는 이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 * *
오유계 외곽의 어느 성역.
나후 등이 오유계를 향해 서 있다.
이들은 조금 전 도정과 오유계의 대치 상황을 지켜본 터였다.
나후 등의 표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엽현이 혼탁지기에 면역이라는 것이 꽤나 충격이었던 것이다.
이는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게다가 혼탁지기로 기검까지 만들어 낼 줄이야!
이때 아고왕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 엽현은 암계 심층부까지 들어 가 본 것 같소.”
나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암계에서 일어났던 큰 폭발도 분명 그와 관련이 있을 것이오.”
“제길! 어쩐지 수상했소! 놈은 분명 그곳에서 엄청난 양의 조화신정을 발견했을 것이오!”
전만왕이 흥분해하며 소리치자, 치요요가 눈을 흘겼다.
“지금은 조화신정 따위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혼탁지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심층부로 갈 수 있었는지 고민해야 할 때요.”
“…….”
이때 나후가 치요요에게 물었다.
“요왕, 그대 의견을 듣고 싶소.”
이 질문에 치요요가 오유계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사실 난 이게 별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녀석은 지금까지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항상 해왔으니까.”
“…….”
나후 등은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까지 엽현의 행보는 그저 기적과도 같았다.
이 혼탁지기만 해도, 그들 중 엽현처럼 접근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엽현은 혼탁지기로 가득한 암계 심층부를 들어갔다 나왔을 뿐 아니라, 혼탁지기로 검까지 만들어 냈다.
설마 엽현의 육신이 검뿐만 아니라, 혼탁지기도 흡수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치요요가 물었다.
“지금부터 한 마디씩 해 보시오. 그대들 생각에 앞으로 도정이 어찌 나올 것 같소?”
도정!
“그들은 절대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오. 아마 도조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겠지.”
나후가 말하자 치요요가 고개를 저었다.
“도조 하나로는 현재의 오유계를 멸할 수 없소.”
“그게 무슨 말이오? 오유계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오?”
“성도경 하나로 모든 걸 끝내기에는 오유계와 엽현이 너무 커버렸소.”
나후와 다른 무인들은 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치요요가 말을 이어갔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소. 하나는 지금처럼 관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엽현 편에 서는 것이오.”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고왕의 질문에 치요요가 그와 눈을 마주쳤다.
“이익? 왜 그대는 항상 눈앞의 이익만 보는 것이오?”
치요요는 더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남은 이들은 침묵에 잠겼다.
엽현 편에 선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왜 굳이 그런 위험한 결정을 해야 한단 말인가?
도총은 이대로도 좋은 것을.
* * *
검전.
엽현과 막념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막념은 모닥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생선을 보며 침을 삼키기 바빴다.
엽현은 막념과 함께 있을 땐, 대부분 고기를 구우며 시간을 보냈다.
막념이 왜 이리 생선을 좋아하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좋아하니 굽는 수밖에.
엽현은 바쁘게 고기를 뒤적이면서도, 신경은 온통 대전 밖에 두고 있었다.
이때 막념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기억이 돌아올까?”
생각을 거둔 엽현이 막념을 쳐다보았다.
“기억을 되찾고 싶은 거야?”
“응! 그래야 나도 뭐라도 도울 수 있으니까!”
“하하, 그럴 필요 없어.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이 말에 막념이 시무룩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를 보자 엽현이 막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거 알아? 넌 이 세상을 위해 할 만큼 했어. 이제 오유계를 지키는 임무는 내가 맡을 테니까 넌 조금 더 쉬어도 돼.”
“그래도…….”
“이야, 이거 맛있게 익었다!”
엽현이 잘 익은 생선을 내밀자 막념이 하던 말을 멈추고 생선을 낚아챘다. 잠시 코를 벌름거리던 그녀는 크게 살점을 한 점 떼어 엽현의 입으로 들이밀었다.
이 모습에 엽현이 소리 내어 웃었다.
막념과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그에게는 꿈만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때 문득 뭔가 떠오른 엽현이 계옥탑을 들여다보았다. 이내 그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피어났다.
도체를 연마하고 있는 나가루는 이제 성공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나가루가 도체를 완성한다면 성도경 강자 하나 정도는 막아 줄 수 있을 테니, 엽현으로서는 매우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도정에 성도경 강자가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생각이 들자 엽현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기가 사라졌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오유계의 승산은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아직 부족해!
반드시 어도경에 도달해야 해!
생각을 마친 엽현은 막념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실력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실전이었다!
* * *
도정.
이때 도정 내의 분위기는 매우 엄중했다.
거의 전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갔건만, 소득은커녕 어도경 강자 십여 명만 잃고 말았다.
혼탁지기!
엽현이 혼탁지기를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강자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기에 충분했다. 그들 중 혼탁지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도정의 대전 안.
거의 모든 강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경지는 모두 어도경 이상.
상석에 있는 것은 백제자와 진무신군이었다.
이때, 노인 하나가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놈은 어떻게 혼탁지기를 흡수할 수 있는 것입니까?”
혼탁지기!
모두의 시선이 백제자의 입으로 향했다.
사실 이들은 다소 화가 난 상태였다. 왜냐하면, 백제자가 준 정보가 정확지 않은 탓에 자신들이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백제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엽현이 어떻게 혼탁지기를 흡수할 수 있는 걸까?
보통 사람이라면 닿자마자 몸이 녹아야 하는 것 아닌가?
백제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때 진무신군이 말했다.
“백제성군, 뭐라고 한마디 해야 하지 않겠소?”
이 말에 백제자가 한숨을 쉬며 운을 뗐다.
“매번 완벽하게 파악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새로운 방법으로 놀라게 하는구려.”
백제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처음을 제외하고는 엽현을 얕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비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비웃듯, 엽현은 항상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번에도 엽현이 그의 배후를 불러낼 것이라 예상했건만, 그는 생각지도 못한 혼탁지기를 들고나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 혼탁지기란 것은 성도경 강자라 할지라도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이다.
그런 독한 기운을 엽현은 도대체 어떻게 다룰 수 있는 걸까?
바로 이때, 조용히 있던 백포가 나섰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소. 첫째, 막념이 기억을 잃은 것은 맞지만, 언제 다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소. 일단 기억을 회복하면 그땐 우리 도정은 바로 죽음 목숨이오.”
무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백포의 말대로 막념이 기억을 되찾는 순간 도정은 멸망한다.
더 이상 오유겁을 막기 위해 힘을 아낄 필요도 없으니 원래의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
그때 도정을 멸하는 것은 닭목을 비트는 것보다 쉬우리라.
“그리고 둘째, 엽현이 어도경에 이른다면 그를 죽이는 것은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어려워질 것이오.”
이에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어도경이 된 엽현이라면 설령 백포와 진무신군이 동시에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분위기가 숙연해진 이때, 백제자가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
“기다립시다.”
일순,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백제자에게로 향했다.
“길어야 5일, 그 안에 도조께서 출관하실 것이오.”
도조!
이 말을 듣자 도정 무인들이 저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조는 도정의 진정한 기둥!
이런 시기에 그가 돌아온다는 것은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을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바로 이때, 대전 밖에서 난데없이 검명이 울려 퍼졌다. 모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 순간, 멀리 남문(南門)을 통해 젊은 무인 하나가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엽현!
엽현을 발견하자 무인들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원수가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왔다!?
무인들은 두고 볼 것도 없이 일제히 대전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찰나의 순간, 사방에서 날아든 무인들이 엽현 주변을 물 샐 틈 없이 에워쌌다.
엽현은 자신을 둘러싼 무인들을 보며 여유 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호, 이렇게나 많이?”
이때 인파를 뚫고 백제자가 엽현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엽현, 정신이 나갔구나. 너 혼자서 이 많은 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때 엽현이 말없이 손바닥을 펼쳤다.
다음 순간, 그의 주변으로 기검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이 기검들을 본 순간, 도정 무인들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백제자 등 삼인의 표정 역시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무서워할 거 없다. 부탁 하나 하러 온 것뿐이니까.”
이 말에 백제자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무슨 부탁을 말이냐?”
“그러니까… 어도경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단 말인지? 그래서 너희의 도움을 좀 받으러 왔다.”
“놈… 드디어 정신이 나가버렸구나.”
엽현은 백제자를 무시한 채, 진무신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진무신군, 지난번에는 내 졌지만, 이번엔 어떨 것 같소? 한 번 겨뤄보지 않겠소?”
“놈… 나와의 전투를 통해 어도경에 이르겠다는 속셈이냐?”
진무신군이 의도를 알아채자 엽현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오. 혼탁지기는 사용하지 않을 테니.”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혹시 무서워서 그렇소?”
“…….”
“정 그렇다면…….”
엽현이 손을 들어 진무신군 곁에 있는 백포를 지목했다.
“둘이 한꺼번에 덤벼도 좋소!”
한꺼번에 덤벼라!
순간 도정 무인들은 귀를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