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12
1412화 악마의 속삭임
도정.
엽현은 다시 한번 도정을 찾았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대문 앞에 섰다는 것이었다.
엽현은 곧바로 삼십사중천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삼십사중천 내에 뭐가 있는지 아시오?”
엽현의 물음에 곁에 있던 미존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대도의 인장이 보관된 곳이라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알지 못합니다.”
“그대들도 들어가 보지 않았단 거요?”
미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본 적 없습니다.”
“음? 도정에서 그대가 가지 못하는 곳도 있단 말이오?”
“선조의 명령을 어길 순 없었습니다.”
이 말에 엽현은 깨달았다.
비록 오래전 인물이긴 하지만, 조지청은 여전히 이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잠시 후, 엽현 일행은 삼십사중천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은 막념이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곳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막념의 이런 행동은 조자청의 존재를 의식해서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막념이 조자청보다 약할 리는 없겠지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거니와, 당시 막념의 진짜 목표는 도조에게 타격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생각을 거둔 엽현은 삼십사중천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미존 등은 따라가지 않고 문 앞을 지켰다.
막상 삼십사중천에 들어가 보니 그저 텅 빈 공간 뿐이었다.
예상과는 다른 상황에 엽현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설마 조지청이 거짓말을 한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엽현 앞쪽 공간에 가벼운 진동이 일더니, 검은 상자 하나가 천천히 표류하듯 날아왔다.
상자?
엽현의 표정이 다소 기괴하게 변했다.
‘저 상자에서도 혹시 소백이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엽현은 눈앞에 도착한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젖혔다.
그 안에는 원형으로 된 인장이 들어있었다.
인장은 절반은 흑, 절반은 백으로 구분된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잠시 인장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엽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물건이란 말인가?
한참을 보고 있어도 전혀 소득이 없자, 엽현은 인장을 들고 삼십사중천을 나섰다.
엽현은 곧장 미존 앞에 인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 하는 물건이오?”
엽현이 내민 인장을 본 순간, 미존의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상대의 반응을 본 엽현은 미존이 이 물건에 대해 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도인(道印)입니다!”
“도인?”
엽현은 치밀어 오르는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도인이 뭔데 그러시오?”
“도인은 다른 말로 대도의 인장(大道之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도의 인장… 어디에 쓰는 물건이오?”
미존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진 저도 알지 못합니다.”
이 대답에 엽현은 김이 빠졌다.
결국, 자기도 모르는 걸 왜 그리 뜸을 들였단 말인가?
이때 미존이 말을 이어갔다.
“비록 무슨 효능이 있는지 알진 못하지만, 영혼이 깃든 도정의 보물입니다. 인장 안의 영과 대화를 시도해 보면 뭔가 얻는 것이 있을지 모릅니다.”
도인의 영혼!
엽현의 시선이 도인에게로 고정됐다.
“이봐, 얘기 좀 할까?”
“…….”
아무 반응이 없자, 엽현은 곧장 인장을 상자 안에 도로 넣어버렸다.
바로 이때, 상자 안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꺼내지 못하겠느냐!”
이에 엽현이 씩 웃으며 다시 상자를 열어젖혔다.
도인이 허공으로 떠오른 순간, 도인 안에서 작은 사내아이 하나가 튀어 나왔다.
사내아이는 대여섯이나 됐나 싶을 정도로 어렸는데, 앞머리를 한 가닥 길게 땋은 것이 매우 귀여웠다.
“이름이 뭐야?”
엽현이 물었지만, 아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엽현을 쳐다 볼뿐이었다.
“나는 엽현이라고 한다.”
“흥! 안 가르쳐 줄 거니까 물어봐도 소용없어!”
“하하! 말 안 해도 알아. 보나마나 소인(小印)같은 이름이겠지.”
순간, 사내아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너, 너… 어떻게 알았어?”
“…….”
엽현은 자기가 맞추고도 어처구니가 없어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정말 이름이 소인이라고?
도대체 누가 지었기에 이렇게 대충 갖다 붙였단 말인가!
이때 소인이 엽현을 향해 물었다.
“근데 뭐 하려고 불러낸 거야?”
정신이 번쩍 든 엽현이 웃으며 물었다.
“너 싸움 좀 해?”
“흥! 그걸 말이라고 해?”
엽현이 미존을 가리켰다.
“이 사람이랑 싸워서 이길 수 있어?”
소인이 미존을 가만히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못 이겨.”
“헹! 난 또, 뭐 대단한 거라고. 시간만 버렸네!”
이때 소인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누가 그래? 내가 별 볼 일 없다고? 이래 봬도 엄청 대단한 몸이라고!”
엽현은 어깨를 으쓱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에는 이미 불신이 가득한 상태였다.
이때, 소인이 갑자기 양손을 모으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엽현 미간 속으로 들어갔다.
쾅-!
순간, 엽현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한 줄기 강력한 기운이 그의 몸 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 파동만으로 미존을 뒤로 밀려나게 할 만큼 엄청난 위력이었다.
그 외에 무공이 약한 자들은 무려 천 장 밖까지 튕겨져 날아갔다.
이때, 엽현의 발아래에 거대한 흑백 태극도(太極圖)가 그려졌다.
엽현은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때 소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 이제 쟤랑 싸워봐!”
소인의 말에 엽현이 미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미존과 눈빛을 교환한 그는 곧장 천주검을 꺼내 들었다.
천주검이 나타난 이때, 미존의 머리 위에 태극도가 나타났다. 이 태극도의 출현과 함께 미존의 경지가 지체없이 어도경까지 떨어졌다.
성도경에서 어도경으로 경지가 제한된 것이다!
반대로 엽현의 기운은 이 순간에도 계속 불어났다. 비록 성도경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엄청난 폭증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어도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엽현은 물론 지켜보던 모든 무인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멍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침묵하는 엽현.
엽현은 깨달았다.
이 대도지인은 ‘보조형’ 신물이었던 것이다.
상대의 경지를 깎고, 아군의 기운을 높여주는 보조형 신물!
이 신물만 있다면 성도경 강자도 두렵지 않으리라!
이때 소인의 새침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때? 대단하지?”
“하하! 대단해! 엄청나게 대단해!”
이때 엽현의 몸에서 벗어난 소인이 엽현 앞에 서서 말했다.
“날 보내 주면 안 될까?”
“음? 보내줘? 혼자서는 못 가는 거야?”
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있는 그 인장 때문에…….”
“아…….”
엽현은 손안에 신기지인을 바라보았다.
이 신기지인이 소인을 구속하고 있던 것이었다.
엽현은 곧바로 신기지인에 접속을 시도했다.
과연, 신기지인을 통해 소인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자… 그 여자가 날 그 거지 같은 인장 안에 가뒀어.”
소인이 다시 촉촉해진 눈으로 엽현을 쳐다보았다.
“날 풀어 줄 순 없어? 부탁할게…….”
이때, 엽현이 말없이 손을 펼쳤다.
그러자 한 가닥 자기가 손바닥 위로 떠올랐다.
자기를 본 순간, 소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거… 나 줄 수 있어?”
“하하, 물론이지! 너 가져!”
엽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자기가 소인에게로 날아갔다.
자기를 받자마자 허겁지겁 들이마신 소인은 뭔가에 취한 듯 황홀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엽현을 쳐다보았다.
“더 없어?”
“오늘은 없어.”
“오늘은 없다면… 내일은 있다는 거야?”
엽현이 엄지를 척 내밀어 보였다.
“정답! 이러는 거 어때? 날 따라다닌다면 하루에 자기 세 개씩 쳐 줄게! 이 정도면 적당한가?”
“음… 적당하긴 한데… 혹시 네가 싸우는데 날 동원하려고 하는 거야?”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하지만 네가 직접 싸우는 일은 없을 거야. 다만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조금씩만 도와주면 돼. 할 수 있겠어?”
“음… 생각 좀 해 보고 말 해 줘도 돼?”
“하하, 그럼 이건 어때? 하루에 자기 오십 가닥, 조화신정도 천 개씩 줄게!”
엽현은 조화신정 한 움큼을 쥐고서 소인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조화신정이란 게 영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 잘 알고 있는 엽현이었다.
소인은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신정을 보며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하, 너무 걱정 마. 나는 평화주의자라서 웬만하면 잘 싸우지 않거든!”
평화주의자!
소인은 여전히 못 미더운 표정으로 선뜻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엽현은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사탕 한 알을 꺼냈다.
사탕을 보자 소인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건 무슨 물건이야?”
엽현은 말없이 사탕을 소인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입에 넣고 오물거려봐. 맛있어!”
잠시 머뭇거리던 소인은 엽현 말대로 사탕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소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도대체…….”
“사탕이란 거야.”
“사, 사탕…”
소인은 넋이 나간 것처럼 열심히 사탕을 오물거렸다.
표정만으로는 이미 천국을 맛보는 중이었다!
잠시 후, 소인이 흥분이 가득 찬 눈으로 엽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대신 이 사탕이란 것도 매일 한 알씩 줘!”
“…….”
“너무 많아? 그럼 바, 반 개! 아니 반에 반 개라도… 제발!”
미존 등은 이 광경을 보며 저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또 순수한 영혼 하나가 악마 같은 엽현의 혓바닥에 속아 넘어가고 만 것이다.
이렇게 엽현은 사탕 한 알로 소인을 곁에 두는 데 성공했다.
소인이 곁에 있다면 성도경 강자와 붙는 것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엽현은 소인을 일단 계옥탑 안으로 들어가게 한 후, 정면을 바라보았다.
현재 그의 위치는 삼십사중천, 이다음으로 아직 두 개의 중천이 더 남아 있다.
도정의 하늘은 총 서른여섯 개이기 때문이다.
다음 두 개의 하늘은 뭐가 있을까?
이때 엽현의 생각을 알아챈 미존이 입을 열었다.
“도주(道主), 삼십오중천에는 역대 선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삼십육중천은 도정 수호진법이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이 진법은 말 그대로 도정이 큰 위기에 닥쳤을 때 자동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위패… 진법… 이런 거 말고 다른 건 없소? 신물이라던가 보물이라던가…….”
“그런 건 없습니다.”
미존이 씁쓸한 미소를 비치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소. 흥미가 떨어졌군!”
엽현이 막 돌아서려는 이때, 미존이 그를 불러 세웠다.
“도주, 도정에 머무르지 않으시는 겁니까?”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엽현이 웃으며 돌아섰다.
“이렇게 합시다. 나는 도주니 뭐니 하는데 관심 없으니, 도정의 일은 그대들끼리 알아서 하시구려.”
이 말에 도정 무인들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