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19
1419화 내가 유리한 상황 아닌가?
끝없는 우주 공간 속.
별빛은 찬란하게 빛나는 가운데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하다.
이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아무도 답을 아는 이는 없다.
천녀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삼유계에서 출발해 쉬지 않고 이동한 그녀였지만, 아직 우주의 끝은 만나지 못했다.
무도 역시 우주와 같다. 아무리 걸어가도 끝이 없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아는 이도 없다.
천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느리게 걷는 이유는 ‘그’, 정확히는 액난지인의 원인이 되는 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운명.
도경의 주인을 포함해서 사람들은 모두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연구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운명이란 게 과연 연구로 밝힐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또 노력 여하에 따라서 운명을 개선하고 나아가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그 바뀐 운명이 원래 자신의 운명이 아니라고 어찌 확신할 수 있는가?
사실, 천녀는 엽현을 옭죄고 있는 액난지인을 강제로 끊어버리려 시도했었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일검에 운명을 끊어내는 것은 크게 어렵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다면, 엽현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이 액난지인이 엽현의 운명과 이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운명은 보이지 않는 손과 같아서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녀가 하려는 것은 엽현의 운명을 통제하는 것이 누구인지 밝히고 그자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바로 이때, 누군가의 음성이 뒤편에서 울려 퍼졌다.
“드디어 찾았군!”
천녀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자, 십여 장 거리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조!
천녀와 마주한 도조는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그대를 찾느라 고생을 많이 했소.”
천녀는 말없이 도조를 응시했다.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한 가지 목적이 있어서요. 그대가 얼마나 강한지 보고 싶소!”
“얼마나 강하냐고?”
천녀의 음성이 가볍게 울려 퍼졌다.
“내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나?”
“그렇소!”
천녀가 고개를 저었다.
“실망할 거다.”
“음? 그게 무슨 뜻이오?”
천녀는 도조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가 얼마나 강한지는… 나조차도 모르는데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말이 끝난 순간, 천녀는 순식간에 도조의 수만 장 뒤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도조는 멍하니 정면을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그의 미간 사이에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자그마한 검 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천녀가 출수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상대의 검을 보지 못했다.
도대체 언제 검을 뽑은 것인가?
물론 이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건 도조가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 일검에.
애석하게도, 도조는 결국 천녀가 얼마나 강한지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상대의 두 번째 검을 보기도 전에 죽었기 때문이었다.
고요한 성공 중, 도조의 몸이 천천히 희미해져갔다.
곧 죽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문득 도조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흘렀다.
무엇 때문에 웃는가?
바로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에 대한 웃음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는 비록 천녀의 상대는 되지 못할지언정, 도망을 칠 순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정이든 암연이든 이 여인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신경을 쓴 것은 이 여인을 무시한 것과 다름없었다.
도조를 포함한 암연 무인들은 천녀가 기껏해야 성도경 다음 경지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도조는 이 여인의 경지가 자신들의 인식 범위 밖에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패착이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잣대를 들이대는 걸로는 절대 여인의 경지를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엽현의 배후, 결국 그녀의 강함은 자신들이 절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도조는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에서야 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그가 알게 된 점은 왜 아무도 이 여인의 실력을 알지 못하느냐는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를 만난 자는 모두 죽었기 때문이었다.
도조는 마지막으로 떨리는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엽현… 이렇게나 강한 배후가 있었다니… 이건 사기가 아니더냐…….”
말을 마친 그가 손바닥을 펼치자 동전 한 닢이 천천히 떠올랐다.
“엽현의 배후는… 그렇게까지 강한 것은 아니었소…….”
이 말을 담은 동전은 어둠을 따라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도조 역시 완전히 소멸했다.
이대로 혼자 죽는 건 억울했다.
가장 좋은 건 엽현을 저승 길동무로 삼는 것이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자들로 대체해도 나쁘지 않으리라.
* * *
천녀는 계속해서 어둠 속으로 전진했다.
조금 전에 일어났던 작은 일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얼마 후, 천녀는 다시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눈앞에는 거대한 성벽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이 성벽은 모든 우주를 가로지르는 듯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 성벽의 위편에는 손에 장창을 든 조각상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이 성벽 뒤로는 모든 것이 흐릿해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시 걸음을 옮긴 천녀는 어느덧 성문 앞에 도착했다.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아무도 지키는 이가 없었다.
막 문 안으로 발을 뻗은 이때, 성 안쪽에서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한 걸음만 더 뻗으면 죽는다.”
“…죽여봐.”
천녀는 개의치 않고 성문을 넘어섰다.
잠시 후, 무수히 많은 수의 머리통이 성문 밖으로 굴러 나오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성 안에서는 끊임없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 너는 누구냐!”
누군가의 분노한 음성이 터져 나왔지만, 대답 대신 피 묻은 머리통만이 성문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 나올 뿐이다.
이때, 성 안쪽에서 강대한 기운이 솟구치면서, 거친 음성이 성공을 가득 채웠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갑자기 현성(玄城)에서 난동을…….”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피 묻은 머리통이 성 밖으로 솟구쳤다.
이때, 조금 전과는 달리 공손하고도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말이 많았던 것을 용서하십시오!”
이번에는 성 밖으로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성 안에서 누군가의 예의 바른 음성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에 방문하시면 더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 * *
오유계의 어느 성역.
연존 곁에 있던 선사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손을 뻗었다. 그가 손을 펼쳤을 때 들어온 것은 그가 도조에게 주었던 동전이었다.
연존이 선사에게 물었다.
“무슨 소식이라도 담겨 있소?”
“…도조가 죽었습니다.”
죽었다!
연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죽기 전에 남긴 말은?”
“그가 말하길… 그 여인은 그렇게까지 강하진 않다고 합니다.”
그렇게 강하지 않다!
“보아하니, 그 여자와 전투가 있었나 보구려.”
“…….”
“도조의 마지막 말로 미루어보면, 그 여인의 실력은 성도경 다음 경지일 가능성이 높소. 그 정도라면 우리 암연이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오.”
선사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느낀 것은 조금 다릅니다.”
“음?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말로는 할 수 없는 불길한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도조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연존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었다.
“어쨌든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소.”
연존은 오유계를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다가 막념이 기억이라도 되찾는 날에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오.”
선사는 고개를 돌려 먼 성공을 쳐다보았다. 천녀를 찾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그녀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 뭔가 떠오른 선사가 서둘러 귀갑을 꺼내 점괘를 펼쳤지만,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었다.
“선사, 지나치게 신경 쓸 것도 없소.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소.”
말을 마친 연존이 돌아서서 손을 펼쳤다.
그러자 검은 인장 하나가 떠올랐다. 잠시 후, 인장이 점점 기이한 형태로 변하더니, 이윽고 거대한 차원의 문을 만들어 냈다.
이때, 공간 전체가 크게 요동치면서, 양손에 창과 방패를 든 천 명의 무인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흑도군(黑道軍)!
모두 일천 기로 이루어진 흑도군은 최소 증도경의 경지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들이 차고 있는 장비는 모두 최상급이라 할 수 있는 신기들이었다.
흑도군이 모두 자리한 이때, 연존 곁으로 여섯 명의 흑의를 입은 노인들이 나란히 섰다.
이들은 모두 성도경의 강자들이었다.
연존과 선사까지 합치면 이 자리에 무려 여덟 명의 성도경 강자가 모인 것이다!
“후후, 그럼 이제 엽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보러 갈까?”
말을 마친 연존은 무인들과 함께 곧장 어둠 속을 향해 나아갔다.
한편, 막념과 놀아주고 있던 엽현이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그는 웃는 얼굴로 막념에게 말했다.
“잠깐 혼자 놀고 있어. 금방 돌아올게!”
“응!”
엽현이 막 떠나려는 이때, 막념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응? 왜 그래?”
엽현이 돌아보자 막념이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빨리 와야 해.”
“응, 알았어!”
“약속이야, 거짓말하면 안 돼!”
“하하, 나는 누구처럼 거짓말 안 해!”
막념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엽현은 그대로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오유계 상공에 도착한 연존 일행 앞으로 검광 하나가 떨어졌다. 검광이 흩어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엽현, 또 보게 되는구나.”
“훗, 통성명이나 합시다.”
“이런, 소개가 늦었군. 나는 암연의 연존이라 한다.”
“음… 그런데 내가 암연에 무슨 책잡힐 일이라도 한 거요?”
연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 그러니 도경만 건네준다면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하겠다.”
엽현이 미소를 띠었다.
“나 엽현은 내 사람에게만 관대하오. 만약 내 식구가 되겠다고 하면 그깟 도경 원하는 대로 보여주겠소.”
연존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식구?”
“그렇소. 예를 들면 나 엽현의 아들이 되는 것이지. 아들이 좀 보여 달라는 데 거절할 부모가 어디 있겠소? 안 그렇소? 하하하!”
이 말을 들은 순간, 연존의 눈빛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엽현, 죽고 싶은 게로구나.”
“하하, 내 분명 방법을 알려 줬는데도 싫다 하니, 나더러 어쩌라는 거요? 어서 결정하시오, 나를 아버지라 부를 건지 말 건지!”
“죽여라!”
연존이 외친 순간, 엽현이 검 한 자루를 꺼내 들고는 연존을 겨냥했다.
“연존, 어떻소? 수장끼리 먼저 한번 붙어 보는 게?”
“흥! 가소롭구나. 이쪽이 더 유리한 마당에 왜 그런 요구를 들어줘야 하지?”
이때, 연존의 시선이 지상에서 혼자 놀고 있는 막념에게로 향했다.
“저 계집부터 죽여라!”
그들이 진정으로 경계하는 것은 결국 엽현이 아닌 막념이었다.
연존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의 뒤편에 있던 성도경 노인 하나가 막념을 향해 쏜살같이 신형을 날렸다.
바로 이때, 갑자기 날아온 검광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에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검광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쾅-!
검광이 건재한 가운데 노인이 뒤로 십여 장 밀려났다.
이 장면을 본 연존의 표정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