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백택은 엽현을 데리고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들과 함께했던 요수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망산 내의 자신들의 본거지로 돌아간 것이다.
한참을 걸어 들어간 백택과 엽현은 깊은 산 속의 한 동굴 앞에 멈춰 섰다. 동굴 입구는 동굴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넓었다. 강국 황성 입구의 족히 대여섯 배는 되어 보였다.
그때 그들의 주위로 한 무리의 요수들이 나타났다. 그 중의 어떤 요수들은 엽현이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종이었다. 요수들은 백택을 보더니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다가왔다. 백택 역시 기쁜 얼굴로 그들을 하나씩 안아 주었다.
바로 이때, 요수들이 급히 동굴 한편으로 물러났다. 잠시 후, 동굴 안에서 한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중년인은 엽현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클 정도로 거대했다. 매우 용맹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백택의 의부, 망산요왕(邙山妖王)이었다.
망산요왕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이에 백택이 씩 웃으며 그에게 엽현을 소개했다.
“아버님, 이 자가 전에 말씀드린 엽현입니다.”
망산요왕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엽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때 엽현이 한 걸음 걸어 나와 포권을 취했다.
“아버님, 엽현이라 합니다!”
‘아버님이라고?’
엽현의 호칭에 당황한 백택이 눈을 끔뻑였다.
망산요왕 역시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버님? 무슨 헛소리야?’
이때 엽현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와 백택은 형제나 다름없으니 그의 부친은 저의 부친이기도 합니다. 참, 아버님을 뵈러 오며 약소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엽현이 오른손을 펼치니 손 위로 쟁반 하나가 나타났다. 쟁반 안에는 주먹만 한 과일 열 개가 있었다. 하얗고 불그스름한 것이 보기에 좋았고 상큼한 냄새까지 풍겼다.
그것들은 도령과(桃靈果)였다.
요수들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도령과는 사람으로 치면 파공단(破空丹)에 해당하는 것이다. 요수들이 복용할 시 경지의 상승을 도모할 수 있는 과일이었다.
하지만 도령과는 파공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구하기 어려웠다. 이는 요수들에겐 인간과는 달리 도령과의 효과를 내는 단약을 제조할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인간과는 달리 창의성이 부족한 요족들이었지만 긴 수명이나 체격 등 기본적인 요소가 너무나도 월등했기에 동일 수준에서 비교하자면 인간은 결코 요족을 당해낼 수 없었다.
요족이 더 높은 경지에 이르는 방법은 그저 세월과 경험의 축적에 따라 자연히 경지를 돌파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천재지보(天材地寶)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는 굉장히 얻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도령과는 대표적인 천재지보 중 하나였다. 개당 가격이 무려 황금 이백만 냥을 호가하는 과일이었다.
그런 도령과를 하나도 아닌 열 개씩이나 선물하는 것은 엽현의 호방함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엽현과 백택이 예정보다 하루 늦은 것도 모두 이 도령과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취선루가 발 빠르게 도움을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빨리 도령과를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망산요왕이 엽현을 향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엽현이 재빨리 품 안에서 황금색 명패 하나를 꺼내 망산요왕 앞에 내밀었다.
“아버님, 이 안에는 황금 일억 냥이 들어 있습니다. 아버님에 대한 저와 백택의 존경의 표시라 생각해 주십시오!”
‘황금 일억 냥이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망산요왕이 상당히 감동 받은 표정을 지었다. 황금 일억 냥은 뉘 집 개 이름이 아니다. 망산의 요수들에게 있어 이는 엄청난 돈이었다. 망산 전체의 재물을 긁어모은다고 해도 황금 일억 냥을 만들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이를 보던 백택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엽현이 선뜻 일억 냥을 바치고자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망산요왕이 가만히 서서 한참 동안 엽현을 쳐다보다 말문을 열었다.
“무엇 때문이냐?”
엽현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만약 지난번 망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저희는 이미 당국에서 뼈를 묻었을 것입니다. 그 은혜, 저와 창란학원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며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고, 때가 되면 갚아야 하는 것이다.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수는 원수로 갚는다. 그것이 엽현의 철칙이었다.
망산요왕이 잠시 엽현을 바라보더니 동굴 안쪽으로 신형을 옮겼다.
“따라오너라!”
엽현이 황금 명패와 도령과가 든 쟁반을 백택에게 건네주며 턱 끝으로 망산요왕을 가리켰다.
이에 백택이 주저했다.
“엽 강도, 이건…….”
이때 엽현이 발로 백택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무슨 잔말이 이렇게 많아? 어서 갖다 드려!”
백택이 엽현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래, 큰 형님 말을 들어야지!”
말을 마친 백택이 망산요왕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엽현이 그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두어 번 젓고는 그들의 뒤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굉장히 깊고 폭도 마치 광장처럼 넓었다. 엽현이 놀랐던 것은 동굴 안에 인간이 사용할 법한 집기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탁자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어느 틈에 음식과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망산요왕이 엽현을 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택이 말로는 나와 상의 할 것이 있다고?”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버님께 긴히 협조를 구할 것이 있어 찾아 왔습니다. 우리 창란학원에 몇몇 요수들을 보내 주십시오.”
망산요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노예가 필요한가?”
그 한 마디에 장내 분위기가 곧바로 냉랭해졌다.
그러자 엽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꾼이 아니라 학생 신분입니다. 창란학원의 학생이 되어서 인간들과 함께 수련도 하고 필요한 자원도 얻게 될 것입니다. 인족 학생과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 역시 보장 하겠습니다.”
‘창란학원의 학생이라고?’
그 말에 망산요왕의 표정에 동요가 일었다.
청주에 창란학원과 창목학원이 들어선 이래로 그들이 요수들을 노예로 부린 적은 있었지만 학생으로 받아들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두 학원, 아니, 인족 전체가 요족을 하찮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족에게 요족이란 종족은 한낱 금수, 혹은 집에서 기르는 개나 돼지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었다. 만약 요족에게 강한 육신이 없었더라면 진즉 인족에 의해 멸종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눈앞의 엽현은 자신들을 학생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청주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창란학원에 들어 온 자들은 모두 학생의 일원으로서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아버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를 노리는 적이 결코 적지 않은 데다, 저 역시 창란학원을 청창계 최강으로 만들려는 야심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창란학원에 입학한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한편, 위험도 수반하게 될 것입니다.”
망산요왕이 말없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 역시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원하는 것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으니 망산요왕의 대답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었다.
이때, 한쪽에 있던 백택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아버지, 제 생각엔 우리 요족에게 있어 이것은 하나의 기회입니다. 요족 형제들도 망산 밖을 나가서 이 세상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많은 강자들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백택과 묵운기는 능한 등의 실력을 견식한 이후, 자신들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굉장했다.
하지만 중토신주에는 그런 그들보다도 더 강한 자들이 득실댄다고 했다.
이 세상엔 정말로 엄청나게 많은 강자들이 있는 것이다.
잠시 후, 망산요왕이 엽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말로 공평하게 대우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약속하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경지를 초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입니다.”
“제멋대로인 요수들의 특성상 그들을 다루기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규율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겠느냐?”
엽현이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만약 그들이 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면, 학원 안에서 마음대로 헤집고 다녀도 뭐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제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매로 다스려야겠지요.”
“음… 좋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창란학원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하지?”
“통유경 정도의 요수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에 망산요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굴 밖으로 향했다.
“따라오너라!”
동굴 밖으로 나온 망산요왕이 갑자기 발을 들어 지면을 세차게 밟았다. 그러자 망산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양 흔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곳곳에서 엄청난 수의 요수들이 동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 종류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장내를 한 번 둘러 본 망산요왕이 소리쳤다.
“통유경 요수는 앞으로 나오너라!”
이내 그의 앞에 이십여 기의 요족이 집결을 마쳤다.
엽현이 눈으로 세어 보니 그들은 총 스물일곱이었다. 이들이야말로 망산 전력의 핵심이라 할 만한 존재들인 것이다.
망산요왕이 엽현에게 말했다.
“이들 외의 나머지는 대부분 능공경 수준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앞에 운집해 있는 요족들을 둘러보았다. 요족들 역시 엽현을 적의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바퀴 둘러 본 엽현이 최종적으로 세 명의 능공경 요족을 더 선발했다. 이 셋은 모두 능공경 절정의 경지였다. 그 기운이 농후한 것이 금방이라도 통유경에 도달할 것 같았다.
총 서른 기의 요수를 엽현은 골랐다.
엽현이 망산요왕을 바라보자 망산요왕이 서른 기의 요수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앞에 있는 인족의 명령을 따른다. 불복하는 자는 이 자와 겨룬다.”
인족세상에서는 강자가 존중받는다. 요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엽현이 이 요수들을 데려가려 한다면,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야 했다.
달리 보면 이것은 망산요왕이 엽현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자 요수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그중 한 기의 요수가 엽현의 앞으로 나왔다.
사자의 형태를 하고 있는 요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가 엽현의 앞에 서니 엽현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잠시 엽현을 아래로 내려다보던 요수가 돌연 한 발을 치켜들더니 날카로운 발톱으로 엽현을 향해 내리찍었다.
요수의 거대한 발이 마치 작은 산과 같이 떨어지니 그 위력에 지면이 흔들릴 정도였다.
쿵!
이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자의 모양을 한 요수가 공중을 날았다. 활처럼 굽은 요수의 신형은 무려 수십 장을 날아 나무에 부딪친 후 땅에 떨어졌다.
이에 모든 요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요수들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때 엽현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그대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요수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엽현의 뒤편으로 어떤 신비한 힘이 빠져나갔다.
바로 그의 대지지력이었다. 방금 전, 대지지력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강인한 육체를 가진 요수를 쉽게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검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상대가 다칠 수도 있다.
통유경 요수의 실력으로는 결코 영수검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엽현이 요수들을 향해 한 발 걸어 나갔다.
“또 불만이 있는 자가 있는가?”
그러자 요수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엽현이 망산요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데려가거라!”
망산요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엽현은 지체 없이 요수들을 데리고 망산을 떠나 양계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길을 걷던 중, 엽현의 품 안에 있던 전음석이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엽현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백택이 물었다.
“대운제국에서 사신이 왔다는군. 구 공주와 혼인 관계를 맺고 싶다나 봐.”
엽현이 전음석을 품 안에 집어넣고는 냉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것들이… 감히 누구 허락을 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