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25
1425화 천존의 계략
지존의 말을 들은 중년인은 엽현이 들고 있는 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천주검을 응시하던 중년인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나쁘진 않지만, 딱 거기까지군.”
이때 중년인이 가볍게 소매를 펄럭였다. 순간, 주변 공간이 흔들리면서 그의 경지가 순식간에 평범한 성도경으로 떨어졌다.
이때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중년인이 다시 지존을 보며 말했다.
“진짜 강함이란 게 어떤 건지 보여주지!”
중년인이 재차 소매를 펄럭이자, 그의 경지가 이번에는 어도경까지 떨어졌다.
이를 본 지존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세상은 많고 멍청이는 많다더니…….”
자발적으로 두 계단이나 경지를 끌어 내린 중년인은 당당한 표정으로 엽현을 쳐다보았다.
“이제 어느 정도 공평해졌지?”
이때 엽현이 주저하듯 대답했다.
“기왕 내려오는 거 증도경까지 내려올 순 없소?”
“…….”
중년인은 다소 어이가 없었다.
“나더러 증도경까지 경지를 내리라고?”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뜻은 없소. 다만, 성도경을 초월한 자의 전투력이 얼마나 강한지 체험해 보고 싶은 생각뿐이오. 만약 증도경의 경지로 날 쓰러뜨린다면, 곧장 무릎을 꿇고 파사세계의 강함을 인정하겠소!”
“쯧쯧… 너는 내가 멍청이로 보이느냐?”
“…….”
“후후, 비록 자신은 있지만 나 역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집 밖에서는 언제나 의외의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자, 그래서? 싸울 준비가 되었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합시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엽현이 빠르게 치고 나갔다.
찰나의 순간, 한 줄기 검광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쾌검(快劍)!
이 검을 본 순간, 중년인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원래 그는 자신만만한 척했지만, 사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경지의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적 앞에서 방심은 금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엽현의 검을 본 순간, 이런 경계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왜?
엽현의 검은 빠르기는 했지만 웃음이 나올 정도로 약했던 것이다!
결국 중년인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허, 참내.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중년인이 여유 있게 주먹을 내지른 이 순간, 갑자기 깃털처럼 가볍던 검이 태산처럼 육중해졌다.
도검(道劍)!
이 순간, 중년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생각지도 못한 위협이 눈앞에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원래 공격을 하려던 그는 황급히 양손을 모아 수비 자세를 취했다. 이와 동시에 금제해 놓았던 경지를 단숨에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이때, 엽현의 검이 떨어졌다.
쾅-!
모두의 시선 속에, 중년인의 신형이 처참하게 뒤로 날아갔다. 이 과정에서 그의 육신이 한 부분씩 떨어져 나가더니, 결국 영혼밖에 남지 않은 몸이 되었다.
일검에 중년인의 육신을 쳐부순 엽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곧장 진혼검을 날렸다.
진혼검이 날카롭게 날아드는 이 순간, 중년인의 영혼이 감쪽같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잔뜩 성이 난 음성이 장내에 카랑카랑하게 울려 퍼졌다.
“후안무치하고, 극악무도한 개자식! 나 엽군(葉軍), 살다 살다 너처럼 뻔뻔한 놈은 처음이다!”
“…….”
한쪽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현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에 그녀 곁에 서 있던 노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엽현 저 녀석은 정말이지 이런 방면으로는 타고 난 놈이로구나.”
“지금까지 잘못 생각했던 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파사세계가 무도문명의 종주라는 생각에 오유계를 다소 무시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오유계는 물론 암연이나 고신연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노인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그 역시도 처음 엽현을 보았을 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엽현에 대한 그의 평가는 그럭저럭 쓸 만한 무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이건 그냥 쓸 만한 정도가 아니라 자신조차 무시할 수 없을 정도임이 틀림없었다.
엄밀히 말해 당장 파사세계의 젊은 일대와 비교해도 엽현의 실력은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던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노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허실실이라니… 전투 외에도 상황을 풀어가는 능력이 발군인 녀석이로구나.”
노인은 아직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엽현이 자신에게 굽실거렸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실력 있는 무인은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상대에게 완전히 실력을 감추는 일이다.
“장로, 사부는 언제 오시는 겁니까?”
“이틀이면 도착할 게다.”
현초가 고개를 끄덕이며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때 엽현은 지존이 있는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존 또한 마찬가지로 엽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조금 전 엽현이 보여 준 실력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비록 상대가 경지를 두 단계나 낮추긴 했지만, 이는 절대 변명거리가 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엽현의 일검에 육신이 파괴돼 도망쳤다는 사실이었다.
지존은 문득 엽현이 성도경이 되면 동일 경지 내의 무인 중에는 그의 상대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암연은 엽현보다는 그의 뒤에 버티고 있는 신비한 여검수를 더 신경 써 왔다.
하지만 지금 보니 엽현 또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존재란 것이 판명되었다.
이 순간, 지존의 마음속에 한 줄기 살의가 피어올랐다.
이런 엽현이 더 성장하면 암연에 큰 골칫거리가 될 터.
싹이 더 자라기 전에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리라!
이때 엽현이 웃으며 지존에게 말을 걸어왔다.
“인존이 어찌 죽었는지 듣고 싶지 않소?”
순간, 지존의 표정이 흉흉해졌다.
“네 놈이 날 위협하는 것이냐?”
“하하, 싫으면 마시오!”
엽현은 가냘픈 미소와 함께 빙글 돌아 자리를 떠났다.
지존은 살기 넘치는 표정으로 엽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인존의 죽음!
사실 인존이 죽었다는 사실은 크게 놀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죽은 위치가 범인계라는 것이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위기 때마다 언제나 그들의 안식처가 되어 온 범인계의 법칙이 인존을 죽인 그 여인에게는 무용지물이란 소리가 아닌가!
심지어 범인계의 법칙을 무력화시킨 인물은 역사상 단 한 명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검종의 청운!
당시 범인계에 쳐들어와 암연을 몰살시킬 뻔한 괴물 같은 여인!
이때, 지존의 귓가에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유명전!”
지존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소박한 검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칠흑같이 검은 치마는 여인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천존!
여인을 발견한 선사가 공손하게 예를 차렸다.
“천존을 뵙습니다!”
천존이 가볍게 목례하는 이때, 지존이 다급히 말했다.
“누님, 언제 와 있었소?”
“셋째가 죽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
“그런데 너는 어찌 슬퍼하는 표정이 아닌 게냐?”
이에 지존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에 와서 슬퍼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소?”
“흠… 네 말도 맞다.”
천존은 다시 엽현이 떠나간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오기 전 이미 조사를 마쳤다. 녀석을 도운 것은 사유계의 유명전이란 세력이다.”
“유명전? 그런 세력도 있었소? 어찌 나는 처음 듣는 것 같소만?”
“그럴 수밖에. 유명전은 매우 오래된 신비의 세력이니까. 게다가 그들은 한날한시에 소리 소문도 없이 모두 자취를 감췄었다.”
지존이 의아한 표정으로 천존을 바라보았다.
“사라지다니, 자신들의 본거지를 버리고 말이오?”
“그런 셈이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매우 위험한 자들인 것만은 확실하다.”
“어찌 그리 생각하시오?”
이에 천존이 지존을 보며 대답했다.
“너는 그 여인이 인존을 죽인 후에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아느냐?”
“그건 나도 잘…….”
“인존을 죽인 것은 그저 한낱 분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분신!
이 말에 지존이 충격에 빠졌다.
“아니, 그럴 수가…….”
“놀랬느냐? 고작 누군가의 분신 따위가 범인계에서 암조가 만들어 놓은 법칙을 무시하고 인존을 살해했다… 이건 내가 말 하고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구나.”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또, 또 뭐가 있는 거요?”
지존이 다급히 묻자 천존이 오유계 쪽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엽현 저 녀석은 나가용족 최후의 족장을 만났었다. 내가 알기로 그 용족 족장은 ‘그 권능’에 의해 암계에 봉인된 상태였지. 내가 암계를 찾았을 때 용족 족장은 죽어 있었지만, 엽현은 족장의 손녀인 나가루를 데리고 암계를 탈출한 상태였다. 여기서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 권능’이 엽현과 나가루를 보내주었을 가능성. 물론 이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둘째는…….”
“누군가 엽현을 위해 ‘그 권능’을 막아섰을 가능성?”
지존의 말에 천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췄다. 만약 정말로 엽현의 배후가 나선 것이라면… 우리는 엽현과 그 배후에 대한 실력 측정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것이다!”
“누님, 혹시 그 소복의 여인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있소?”
천존은 잠시 말이 없었다.
“누님, 왜 그러시오?”
“그 여인은… 강하다.”
“얼마나 말이오?”
이 물음에 천존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고신연이 왜 갑자기 죽어라 엽현을 돕는지 아느냐?
“설마 그 여인과 관련되어있는 거요?
천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에 따르면 그 여인이 고신연을 방문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후에 고신연이 엽현을 보호하러 나섰고, 심지어 소철이 직접 출수한 일은 이 여인과 관련 있는 게 틀림없다. 그것이 어떤 거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 여인과 인연을 맺기 위한 고신연의 자발적 행동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에 하나, 후자일 경우, 그녀의 강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순간, 지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천존은 말을 이어 나갔다.
“한 가지 더, 엽현은 나가용족의 피를 마시고 그 기운을 몸 안에 내재 한 상태다. 너도 알다시피 나가용족의 혈맥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 중에 가장 강력한 혈맥으로 여겨진다. 엽현이 그런 혈맥을 취했다는 것은 그의 혈맥이 나가용족의 그것보다 강하다는 의미가 된다. 상상이 되느냐?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는 그의 혈맥과 내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다.”
지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누님도 알다시피, 놈은 존재 자체가 의문투성이이오.”
이때 천존이 멀리 도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도정 선조 조지청은 녀석을 만난 후, 그에게 도주 자리를 물려주었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하나는 그냥 첫눈에 녀석이 마음에 들었을 경우다. 확실히 녀석의 자질과 총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도주 자리를 물려주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놈의 배후와 관련이…….”
천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게다가 우리의 원수인 검종의 청운도 녀석과 연결되어 있다. 여러 가지 정황상, 엽현의 뒤에는 거대한 세력이 웅크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한 가지 답답한 점은 그들이 이쪽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흠… 우리에게 승산이 있는 거요?”
천존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청운과 유명전의 그 여인만 나타나도 우리는 희망이 없다.”
“그럼 포기하는 게…….”
“후후, 그렇다고 이렇게 포기할 것도 아니다.”
“음? 어째서 말이오? 무슨 계책이라도 있소?”
이에 천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엽현에게 여섯 권의 도경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이 세상에 도경을 노리는 자는 수도 없이 많다.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만약 그들을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상황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