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27
1427화 만만해 보이냐?
오유계.
조용한 대전 안, 엽현과 나가루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다.
엽현은 나가루에게 도경의 심법을 전수해 주는 중이었다.
나가루 역시 도체를 수련한 몸, 이 도체의 효과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심법을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이 때문에 엽현은 자신이 익힌 심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나가루에게 전하려 했던 것이다.
현재 오유계에서 가장 성도경에 근접한 것은 단연 나가루였다. 그녀가 도경 심법까지 익힌다면 전력에 아주 큰 보탬이 될 것이 분명했다.
직접 겨뤄보진 않았지만, 당장도 나가루는 실력 면에서 엽현에게 뒤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용족이 인간에 비해 타고 난 우위는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나가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짧은 한마디를 남긴 그녀는 곧장 계옥탑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엽현 역시 대전을 빠져나가려는 이때, 엽지명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이더냐?]“계획이랄 게 있겠소? 그저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는 수밖에.”
[막념이 기억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알고 있느냐?]“그걸 누가 모르겠소? 다만 그대도 알다시피 그녀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가 없소.”
[흠… 혹시 네 이모라는 여인이 한 말을 기억하느냐? 막념의 기억과 관련해서 그녀도 개입할 수 없다는 그 말…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인데, 막념은 스스로 기억을 봉인한 것일지도 모른다.]“고의로 기억을 봉인했다?”
[말했듯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다만 여전히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가 왜 기억을 잃었을까? 오유계가 타격을 입어서? 하지만 오유계는 이미 원래 모습을 회복했다. 그럼에도 막념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막념의 기억상실.
사실 엽현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막념은 무슨 이유로 기억을 잃은 것일까?
혹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어서?
다소 신빙성이 떨어졌다.
이때, 엽현과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중년 남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인이 등장한 순간, 미존이 엽현 곁에 나타났다.
“파사세계의 무인이오?”
엽현이 묻자 중년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현와종의 대장로, 이추광(李秋橫)이오.”
“현와종이라… 그럼 도경 때문에 온 것이겠구려.”
이추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 공자,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암연에서 먼저 내게 접촉해 왔소. 함께 손을 잡고 그대를 치자는 제안을 하더구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는 않았소. 내가 왜 그랬는지 아시오?”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알려 주시오.”
“후후, 엽 공자. 그대는 총명한 사람이니 자신의 처지를 잘 알 거라 생각하오. 오유계의 실력으로는 절대 도경을 지킬 수 없소. 기왕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도경을 포기하고 마음 편히 사는 게 어떻겠소?”
“내가 도경을 포기하면? 그대들이 날 살려두려 하겠소?”
“그야… 도경만 건네준다면 현와종은 절대 오유계를 건들지 않을 거라 약속할 수 있소!”
“…….”
“그대 뒤에 강대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소.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파사세계와 암연을 동시에 상대하진 못하오. 인정하시오?”
“…….”
엽현이 계속 침묵하자, 이추광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파사세계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대의 이해를 돕고자 짧게 한마디 하겠소. 파사세계는 여러 개의 강대 세력들이 존재하오. 이들 세력은 모두 오유계를 쉽게 파괴할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소.”
엽현이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대 말은 사실이오. 내 능력으로는 도경을 계속 지키기 어렵소. 하지만 이대로 내어 주는 것도 아쉬운 것은 사실이오.”
“충분히 이해하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목숨이 더 소중한 것 아니겠소?”
“만약 도경을 내주면 내게 어떤 이익이 있소?”
엽현의 말에 이추광이 황당하다는 듯 엽현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익을?”
“그렇지 않소? 기왕 넘기는 거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자에게 주는 게 낫지 않겠소? 내 말이 틀렸소?”
이추광은 황당한 나머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젊은이가 욕심이 지나치구려. 아니면 도경을 이용해 시간을 끌어 볼 속셈인 건가? 엽 공자, 나는 그대의 장난질에 놀아날 정도로 멍청하지 않소. 물론 다른 세력들 또한 마찬가지일 거요. 닷새! 오일 안에 도경을 내놓지 않으면 오유계는 이 우주에서 사라질 것이오. 물론 원군을 불러와도 좋지만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할 것이오!”
말을 마친 이추광은 돌아서서 자리를 떠나갔다.
하지만 채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다시 엽현을 향해 돌아섰다.
“듣자 하니 그대 배후에 매우 강력한 검수가 있다던데?”
“…….”
“후후, 만약 그 여인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말해 주고 싶구려. 때때로 희망은 더 큰 절망을 안겨 줄 뿐이니까! 하하하!”
이 말을 끝으로 이추광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추광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초가 엽현 앞에 나타났다.
“너무 개의치 마시오. 무도의 종주를 자처하는 파사세계 무인들은 다른 세상의 무인들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소.”
현초가 위로하듯 말하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도 개의치 않소.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요!”
현초는 엽현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엽현은 파사세계가 자신을 얕보는 것을 오히려 반기고 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어쩔 생각이오? 내가 알기로 현와종의 강자들은 이미 지척에 도달한 상태고, 현기문은 전송진까지 설치하고 있다던데…….”
이때 뭔가 떠오른 현초가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현기문이 오유계까지 오는 전송진을 뚫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소. 왜냐하면 파사세계와 이곳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은 설령 귀일경 강자라 할지라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오. 하지만 도경이 무려 여섯 권이나 나타났다는 소식은 파사세계 세력들의 유례없는 단결을 이끌어냈소. 게다가 그들의 목표에는 단순히 도경뿐만이 아니라 이 우주도 포함돼 있소.”
“어째서? 자원 때문에?”
현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아무리 파사세계라 해도 발전을 하려면 수련자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소. 그런 점에서 영기가 풍부한 오유계는 파사세계의 강자들에게는 매우 좋은 먹잇감이오. 이런 까닭에 파사세계의 여러 세력들은 현기문이 이동진을 뚫는 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소.”
잠시 말을 멈춘 현초는 엽현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하지만 무표정한 엽현의 얼굴에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아무튼 지금 상황을 보자면 그대가 설령 도경을 포기한다 해도 파사세계에서 그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오유계를 포함해 도계, 육유계, 도정, 천계연, 특히 그대가 소유한 최상급 영맥은 그들의 입장에서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도경이오. 현재 그대에게 여섯 권, 암연에 두 권, 총 여덟 권의 도경은… 그야말로 그들의 눈을 뒤집히게 만들 수 있소.”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을 끊었다.
“현초 낭자, 그래서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그렇다면 돌리지 않고 말하겠소. 우리에게 그대의 도경을 넘겨주시오. 그러면 우리가 오유계를 지켜 주겠소!”
“어떻게 지켜 준단 말이오?”
“말 그대로요. 우리의 실력이라면 암연이든 파사세계의 다른 세력이든 얼마든지 막아 줄 수 있소.”
“파사종이 그렇게나 강하단 말이오?”
현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하하, 현초 낭자. 그대 말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소. 하지만 그렇다고 파사종 전체를 믿을 순 없는 일이오.”
이 말에 현초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지금 내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오?”
“하하, 말이 그렇다는 것이오.”
이에 현초가 다시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이변이 없는 한, 파사종의 다음 종주는 내가 될 것이오.”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말은 즉, 이변이 생기면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다는 소리 아니오? 현초 낭자, 나 엽현은 절대 다른 이에게 목숨을 부탁하지 않소. 만에 하나, 도경을 주었는데 그대가 모른 척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어찌 되는 것이오?”
“…….”
“현초 낭자, 생각해 주는 마음은 고맙게 받겠소. 하나…….”
엽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돌아섰다.
현초는 멀어지는 엽현을 응시하며 한숨을 토해낼 뿐이었다.
이때 그녀 곁에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방금 암연 천존이 접근해 왔다. 손을 잡고 엽현을 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더구나.”
현초가 고개를 저었다.
“관심 없다고 하십시오.”
“어째서?”
“무인으로서의 직감입니다. 엽현을 건드렸다가 결말이 좋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엽현의 배후를 말하는 게냐?”
현초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정말 이상합니다. 이렇게나 많은 적이 그를 노리는데, 배후라는 자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이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이번에 암연과 손을 잡은 것은 현와종과 현기문 외에도 소족과 귀도원까지 포함된다. 그들의 목적은 엽현 뿐 아니라, 그의 배후까지임이 분명하다. 만약 우리가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그들이 엽현을 처리하는데 성공한다면 우리 파사문은 도경을 얻기는커녕, 파사세계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 그러니…….”
“종주의 의중은 어떻습니까?”
현초의 물음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종주는 여전히 너와 월존(越尊)에게 이번 일을 일임한다는 뜻을 견지하고 계신다.”
“사부는 도대체 언제 도착하시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월존이 나와 연락이 끊긴지도 꽤나 오래된 일이다. 어쩌면 이미 오유계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는지도…….”
“…….”
“한 가지 더, 전송진이 곧 완성 단계라는 사실 또한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일단 통로가 뚫리게 되면 파사세계의 무인들이 물밀듯 밀려들 것이고, 그리되면 엽현은…….”
노인은 말을 끝까지 잇지 않았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엽현의 배후와 막념이 되겠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정보에 의하면 암연 또한 정예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필시, 엽현 뒤의 세력을 몰살시켜 후환을 없애겠다는 의도겠지.”
“엽현의 배후… 그들이 출수할 것 같습니까?”
“달리 방도가 있겠느냐? 그들이 돕지 않으면 엽현과 오유계는 전혀 살아날 길이 없을 텐데!”
이때, 노인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에 들어 온 한 여인, 바로 검종의 육이였다.
사실 그는 육이가 도착했을 때부터 그녀의 존재를 인지한 상태였다.
이때 현초가 육이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그대가 엽현을 설득할 순 없겠소?”
“설득? 우습군. 너희는 정말로 양가(楊家)가 만만해 보이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