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29
1429화 빨리 준비합시다
여인이 질문하자 노인의 눈에서 순간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놈은 내 손자를 죽이고, 나를 병신으로 만든 장본인이오! 어찌 죽지 않길 바랄 수 있겠소!”
여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였군. 이곳에서 그 아이를 쫓아낸 게.”
“그대가 무슨 상관이오? 그대는 엽가의 사람도 아니면서!”
“후후, 그대는 손자에게 가주 자리를 물려주는 게 중요했겠지만, 사실 그 아이의 눈에는 그런 것은 별 중요한 게 아니었소. 오히려 그가 이 조그마한 가문의 사람이었다는 건 그대들 모두의 운명을 뒤바꿔놓을 천재일우의 기회였소. 그런데… 아쉽게도 복을 제 발로 차버렸구려.”
“그 녀석… 지금은 어디쯤 도달해 있소? 한 만법경쯤 된 것이오?”
여인이 눈을 깜빡였다.
“만법…경?”
“그렇소! 내가 듣기로 청주에서 가장 높은 경지는 만법경이라 했소. 혹시 놈이 그 정도 경지에 이르기라도 한 게요?”
여인은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만법경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몇만 배는 더 강한 상태요. 그가 가볍게 주먹만 휘둘러도 청주 전체가 사라질 테니까.”
이 말을 듣자 노인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마, 말도 안 돼… 그놈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여인은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그 정도 무인을 키우기에는 이곳은 너무 작고 볼품없군.”
혼자 중얼거린 여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때, 그녀 주변의 공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노인이 깜짝 놀라 바닥을 기며 물러났다.
“그, 그대는…….”
이때 눈을 뜬 여인이 고운 아미를 가볍게 찌푸렸다.
“배후가 누구인지 결국 알아낼 수 없단 말인가…….”
여인은 고개를 저으며 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 그대는 도대체 누구시오?”
이에 여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파사세계에서 왔소. 음… 아마 들어 본 적이 없겠지. 엽현의 과거와 그 여인의 뒤를 캐러 왔건만 결국 정보도 얻지 못했구려. 뭐, 아주 허탕 친 건 아니긴 하지만.”
이 말을 끝으로 여인은 문밖으로 사라졌다.
“파사세계?”
장내에 남은 노인은 그저 짧은 꿈을 꾼 듯 멍하니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 * *
오유계.
어느 고요한 성공, 천존이 뒷짐을 진 채 서 있다. 그 뒤로는 선사와 지존이 자리하고 있다.
천존의 오른편에는 한 중년 남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현와종의 이추광이었다.
한편, 이추광의 맞은편에는 또 다른 중년인, 엽현에게 육신이 파괴당한 엽군이 있었다.
이때, 노인 하나가 모두의 앞에 나타났다.
이에 이추광이 기다렸다는 듯 노인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귀도원의 호부귀(胡不歸) 장로.”
호부귀라 불린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다.
“듣자 하니 그대들이 손을 잡고 엽현의 배후 세력을 치려 한다던데, 사실이오?”
“그렇소!”
호부귀의 시선이 천존을 향해 넘어갔다.
“우리 귀도원도 끼워주면 고맙겠소!”
“환영하오! 우리도 바라던 바였소!”
이때 이추광이 천존에게 물었다.
“천존, 엽현의 배후라는 자들이 그렇게나 강한 것이오?”
“흠… 모두 잘 들으시오. 얼마 전 엽현을 돕기 위해 한 여인이 출현한 적이 있었소. 그녀는 우리 암연의 금역에서 귀일경인 우리 셋째를 깔끔하게 죽였소. 더 놀라운 건 그 여인이 누군가의 분신에 불과했다는 사실이오.”
이 말에 다른 무인들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분신!?
도대체 얼마나 강하면 분신만으로 귀일경 강자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천존이 말을 이어갔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오. 조사에 의하면 엽현의 뭄에는 액난지인이 붙어 있소. 하지만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생존해 왔소.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 것 같소? 누군가 액난지인을 대신 막고 있다는 뜻 아니겠소?”
호부귀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도대체 어떤 세력이기에 그것이 가능하단 말이오?”
천존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소. 한 가지 확실한 건 매우 강하다는 것이오.”
“매우 강하다?”
호부귀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우리 파사세계의 세력들 외에 누가…….”
“여기서 분신만으로 귀일경 강자를 죽일 수 있는 자가 있소?”
천존의 한 마디에 호부귀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결코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강자가 여럿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소. 기껏해야 한 명 정도가 아니겠소?”
“만약에 그보다 많다면?”
천존이 반문하자 호부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소. 그 정도 강자는 우리 파사세계에도 극소수…….”
이때 가만히 듣고 있던 이추광이 나섰다.
“천존 말도 일리가 있소.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만에 하나 그런 강자가 두 명 혹은 세 명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겠소?”
호부귀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때 천존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암연이 당초 이런 심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모두 그대들처럼 생각했기 때문이었소.”
천존은 오유계 방향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엽현을 죽이고 도경을 차지하려면 우선 녀석의 배후를 해결해야만 하오. 그러니 모두 방심하지 말고 최대한 많은 조력자를 불러 모아야만 하오!”
이때 호부귀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 난리를 쳐서 사람을 모았는데 만에 하나 엽현의 배후가 무서워서 숨어버리면… 각자에게 떨어지는 몫이 줄어드는 게 아니오?”
이 말에 천존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일리가 있소.”
이추광이 말을 이어갔다.
“이러면 어떻소? 우선 천존의 말대로 무인들을 가능한 많이 모아 둡시다. 다만 엽현의 배후가 겁을 먹고 내빼는 것을 막기 위해 귀일경 강자들은 숨겨 놓는 것이오. 그러다가 방심한 엽현과 그의 배후가 나타나는 순간 한 번에 일망타진하는 거요.”
이추광이 동의를 구하듯 다른 무인들을 쳐다보자 먼저 호부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생각 같소.”
“천존은 어찌 생각하시오?”
이추광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하던 천존이 입을 열었다.
“나도 동의하오. 하지만 이 정도 전력만으로는 엽현의 배후를 확실히 압도한다는 보장은 없소.”
이에 이추광이 미소를 보였다.
“그럴 줄 알고 생각해 둔 게 있소. 만약을 대비해 우리 현와종은 귀일경 절정 강자 여섯과 성도경 강자 스물을 파견할 것이오.”
“그렇다면 우리 귀도원도 같은 수의 무인들을 준비시키겠소!”
호부귀 역시 동의하자 이제 무인들의 시선은 엽군에게로 향했다.
이때, 엽군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는 여기서 포기하겠소.”
포기!?
순간,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때 엽군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 엽가(葉家)는 그대들만큼 강하지 않소. 그러니 이번 일에서 빠지도록 하겠소.”
엽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자리를 떠나갔다.
그의 말대로 파사세계 내에서 엽가의 위치는 아주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상이라 할 수도 없었다.
당시 그가 멋모르고 엽현과 싸웠던 이유는 엽현의 실력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허나, 천존의 말을 통해 엽현의 배후에 대해 알게 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파사세계만큼이나 강력한 암연이 이렇게 동맹을 구하려고 혈안이 된 걸 보면 상대는 결코 평범한 세력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엽가처럼 이도 저도 아닌 중소 세력이 끼어들었다간,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설령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 한들, 그들에게 떨어지는 것은 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 모인 세력 중 엽가가 최약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승패와 상관없이 엽가는 이득을 보기 쉽지 않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상황에서 엽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 회오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리라.
엽현에게 육신이 파괴된 원한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리라.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목숨이 아니던가!
나머지 무인들은 엽군이 떠나는 것을 보고도 붙잡으려 하진 않았다.
어차피 그들 눈에 엽가의 전력은 있으나 없으나 큰 상관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추광이 문득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파사종은 어찌한다고 했소?”
파사종!
이 말에 모두의 시선이 천존에게로 향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관건은 무엇보다 파사종의 태도였다.
왜냐하면 파사세계에서 파사종의 실력과 위치는 최상이기 때문이었다.
더욱 중요한 건 파사종에 한 권의 도경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파사세계에서 지금까지 도경을 지켜 왔다는 건 파사종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때 천존이 대답했다.
“그들의 태도는 아직 불분명하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설령 우릴 돕지 않더라도 엽현 편에는 서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오.”
이추광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파사종이라 해도 엽현을 위해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순 없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되오. 만에 하나, 그들이 정말 엽현 편에 선다면 상황은 아주 복잡해질 테니까!”
천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다시 한번 그들을 찾아가 정확한 속내를 알아보겠소. 참, 현기문의 전송진은 언제쯤 완성되는 것이오?”
“길어야 닷새면 가능하오.”
닷새!
이추광의 대답에 천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족(蕭族)도 설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소만?”
“소족뿐만이 아니라, 파사종도 참여 중이오.”
“후후, 보아하니 그들도 이번 일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닌 듯하오.”
“물론이오. 도경 외에도 약탈할 것이 수도 없을 테니까.”
“좋소! 그럼 지금 당장 파사종으로 가서 그들의 생각을 엿보도록 하겠소!”
말을 마친 천존은 지존과 선사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우리도 준비합시다!”
이추광은 마지막으로 오유계 쪽을 흘끔 쳐다본 후, 다른 무인들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모두가 떠나고 우주는 다시 고요해졌다.
* * *
도성, 검전.
대전 안에는 엽현과 소음이 마주 본 채 앉아 있다. 엽현의 곁에는 미존이 자리하고 있다.
“미존, 오유계 주변 동향은 어떻소?”
“최근 오유계 전역에서 정체불명의 강자들이 출몰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은 파사세계의 무인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우리는 빠른 시일 내에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겠소. 소음 낭자, 오유계 내부 상황은 어떻소?”
“내부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소. 다만 파사세계와 암연이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분위기가 다소 출렁이는 상태요.”
“흠…….”
“설령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장소를 옮기는 게 중요하오.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이 우주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이에 미존이 한숨을 내쉬며 발언했다.
“그건 어려울 것이오. 그들의 목적이 오유계인 이상, 굳이 전장을 옮기지는 않을 게요. 게다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