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32
1432화 마지막 발악
잠시 후.
천존 등 연합 세력은 감쪽같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도성 상공이었다.
엄청난 수의 무인들이 갑자기 등장하자 오유계의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었고, 더러는 절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미존 조차 더이상 희망을 품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수의 강자들을 오유계가 어찌 막는단 말인가?
이때, 엽현이 성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수북이 매운 강자들을 확인한 순간, 그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거야말로 토끼 한 마리 잡자고 온 동네 호랑이가 모두 출동한 격이 아닌가!
이때, 작은 소녀 하나가 슬며시 엽현 곁으로 다가왔다.
바로 막념이었다.
막념은 불안한 표정으로 엽현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이번에는 나도 같이 가!”
“…그러자.”
이때, 장문수, 안란수 그리고 연만리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중에 익숙한 얼굴이 둘이 끼어있었다.
그건 바로 도계의 소도와 천말이었다!
오랜만에 본 소도의 모습에 엽현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소도 낭자, 때를 좀 못 맞추는 경향이 있구려. 하필 이럴 때…….”
“아니, 제시간에 왔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볼지도 모르니까.”
“하하, 그런 악담을…….”
엽현은 천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천말 낭자, 잘 지내셨소?”
천말은 말없이 엽현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엽현과 천말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애매했다. 친구라 하기엔 음양합일을 한 전과가 있고, 애인이라 하기엔 함께 나눈 시간이 극히 짧았기 때문이다.
이걸 무어라 정의해야 할까?
잠자리 친구?
엽현이 막 다른 말을 하려는 이때, 성공에 있던 천존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엽현! 보기보다 꽤나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구나!”
이 말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천존, 농담도 잘하시는구려! 그나저나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거 아니오? 어디 보자, 귀일경이 마흔여섯에 백 명도 넘는 성도경이라… 어도경 하나 잡으려고 온 집안이 총출동했군 그래!”
“후후, 천하의 엽현을 상대하는데 준비가 소홀할 순 없지! 내가 알기로 수많은 강자들이 네 손에 목숨을 잃었다. 분명 너보다 강한 자들이었는데 왜 그리됐을까? 원인은 바로 너를 얕보고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은 데 있었지! 우위를 점하고도 한 번에 몰아붙이지 않은 탓에 네 성장만 도운 꼴이 된 거다. 이런 좋은 예가 있는데 내가 어찌 똑같은 과오를 범할 수 있겠느냐?”
“…….”
천존이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다시 웃으며 엽현을 쳐다보았다.
“엽현, 네 배후는 어디 있느냐? 설마 숨어 버린 건 아니겠지?”
순간 엽현은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왜 자꾸 있지도 않은 배후를 들먹인단 말인가!
이때 천존 곁에 있던 이추광이 말했다.
“만약 근처에 강자가 있다면 벌써 감지했을 것이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근처에 강력한 기운은 존재하지 않는구려. 우리의 강력함을 미리 알고서 내뺀 것 아니겠소? 엽현, 어디 네 입으로 말 해 보거라. 정말 내 말이 맞는 것이냐?”
엽현은 대꾸하는 대신 뒤편에 서 있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그대들은 떠나는 게 좋겠소.”
순간, 미존 등이 멈칫했다.
이에 엽현이 웃으며 재차 말했다.
“모두 다 죽을 필요는 없지 않소?”
“…….”
“어서 가라니까!”
미존과 소음을 포함한 무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유계에 전혀 승산이 없다는 것쯤은 이미 느낀 상태였다.
파사세계 하나만 해도 버거운데 암연까지 합세했으니 붙어보지 않아도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이들 세력은 적게는 수만 년, 많게는 수십만 년의 저력을 지닌 최강자들이다.
반면 엽현은?
물론 오유계에는 막념이라는 괴물이 있지만, 기억을 잃은 그녀는 실력 발휘는커녕 엽현의 보호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간단히 말해 오유계의 승산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한 실정인 것이다.
이때 엽현이 도성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오유계의 모든 무인은 들으시오! 지금 부로 이곳을 탈출해 멀리 도망치시오! 다시 한번 말하겠소! 당장 이곳을 떠나시오!”
엽현은 같이 적을 막아서자고 말할 수 없었다.
그건 함께 죽자는 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엽현조차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이미 막념과 오유계를 지켜 내겠노라고 약속했고, 그러리라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엽현의 외침을 들은 무인들은 마음이 복잡했다.
머리로는 도망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대로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이때 엽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 미안하게 됐소. 내 능력이 부족해 그대들을 지켜주지 못할 것 같구려.”
순간, 장내에 자리한 수많은 무인들이 일제히 엽현에게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그동안 엽현이 한 일은 비단 오유계를 회복시켰을 뿐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오유계는 물론 육유계와 도계를 통틀어도 진정한 둔일경 강자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둔일경은 발에 채일 정도고 증도경 강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게다가 엽현은 그 귀하디귀한 도경을 모두에게 아낌없이 공유하기까지 했다.
오유계와 자신들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한 인물을 두고 등을 돌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달리, 오유계는 이미 그들 마음속에 제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누구도 풍족한 오유계 생활을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분! 이 엽현이 무능한 탓에 모두가 소중히 하는 오유계를 지켜 낼 수 없을 것 같소. 부디, 그대들만이라도 탈출해 살아남길 바라오!”
이때 누군가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도주! 그러는 도주는 왜 도망치지 않으십니까! 도주의 자질이라면 언젠가 이들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지 않습니까!”
도망?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들이 내가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겠소? 물론 나 역시 도망칠 생각은 추호도 없소!”
엽현은 곁에 있는 막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오유계와 생사를 함께하겠다고 맹세하는 게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그냥 잔머리를 굴린 것뿐이었는데, 일이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어쨌거나 우리는 함께 하는 거야.”
막념이 엽현의 손을 꼭 쥐며 말하자 엽현이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자!”
엽현은 다시 오유계 무인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소! 지금 당장 떠나시오!”
이에 무인들이 웅성웅성하더니 하나둘 서둘러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끝까지 자리를 지킨 자들도 있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들 중에는 미존과 몇몇 도정 무인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때, 미존 곁에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백제자였다.
백제자가 등장하자 엽현이 다소 의외란 표정으로 웃으며 말을 건넸다.
“세상에서 가장 도망을 잘 친다는 인물이 어찌 아직까지 남아 있었소?”
백제자가 엽현을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너는 여전히 도정의 유일한 희망이다. 네가 죽으면 도정의 미래도 없고, 도정이 없으면 우리의 존재 의의도 사라진다. 지금도 네 놈의 웃는 얼굴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어쩔 수 없이 참는 수밖에!”
“…….”
이때 듣고 있던 미존이 끼어들며 말했다.
“백제자 말이 맞습니다. 도주는 우리 도정의 희망, 도주께서 죽는 순간 우리 도정은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이곳에서 도주와 최후를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하하하! 한때는 원수였던 우리가 함께 죽자는 말을 하고 있으니 인생이란 건 정말 알다가도 모를 놈이오!”
엽현은 안란수 등을 향해 눈을 돌렸다.
오랜 친구들을 바라보는 엽현의 눈빛은 매우 착잡했다.
“어차피 가라고 해도 안 가겠지?”
“…….”
“너희가 보여 준 의리는 내세에서라도 갚고 싶지만, 아마 그것마저 내게 허락되지 않을 거 같군. 그러니까 미리 사과할게. 다음에 태어나면 절대 나처럼 재수 없는 놈은 만나지 않기를 바랄게!”
“흥! 재수 없다는 걸 알긴 아네!”
장문수가 툭 던진 말에 엽현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너희가 먼저 죽는 걸 보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내가 먼저 간다!”
엽현은 곧바로 허공 위의 천존 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들을 해치우고 계속해서 오유계를 지켜나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내겐 그런 힘이 없군. 이게 바로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는 걸까?”
말을 마친 순간, 엽현의 혈맥이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한 줄기 화염이 몸 밖으로 터져 나왔다.
연소혈맥(燃燒血脈)!
불타는 것은 그의 혈맥뿐이 아니었다. 뒤이어 그의 영혼마저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 * *
머나먼 성역.
하얀 장포를 입은 여인이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세웠다.
무언가를 느낀 듯 미간을 찌푸린 여인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오빠! 지금 갈게! 제발 버텨줘!”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쏜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그녀가 스치고 지나간 공간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도성 상공.
엽현의 몸이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하자 무인들이 경악하기 시작했다.
천존 등 경지가 높은 자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엽현이 이렇게 혈맥과 영혼을 태워가며 대항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천존이 엽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네 배후는 어디에 있느냐!”
천존은 기다리던 엽현의 배후가 나타나지 않자 오히려 조바심이 났다.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예상했던 강자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엽현의 배후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파사세계와 암연 무인들의 위용에 겁을 먹고 도망친 걸까?
이때 엽현이 웃으며 소리쳤다.
“천존, 죽기 전에 귀일경 강자와 한 판 붙어보고 싶구려. 소원을 들어주겠소?”
“네 배후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보나마나 무서워서 꽁무니를 뺸 게지!”
소리친 것은 다름 아닌 이추광이었다.
“보면 모르겠소? 고신연처럼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해서 도망친 게 분명하오! 간단히 말해 저놈은 이미 버림받은 것이오!”
천존은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강하다고 여겨질 만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도 오지 않는 건가?
이때 이추광이 엽현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엽현, 귀일경 강자와 싸우고 싶다고? 그 소원, 내가 이뤄주마!”
“하하! 덤비시오!”
엽현이 대답과 동시에 신형을 날리더니 크게 검을 내리쳤다.
도검(道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