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38
1438화 화제 좀 바꿀까?
파사세계 사대 세력의 호소 아래, 점점 더 많은 중소세력들이 오유계로 향하는 행렬에 가담했다.
하지만 파사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파사종은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파사종.
어느 작은 정자 위에 두 여인이 서로 마주 본 채 앉아 있다.
그중 한 명은 다름 아닌 막 오유계에서 복귀한 월존이었다.
월존의 맞은편에 앉아 바둑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은 현 파사종 종주, 월희(越羲)였다.
월희가 고심 끝에 흰 돌을 내려놓았다.
“네가 말 한 게 모두 사실이더냐?”
“사저, 내가 거짓말하는 걸로 보이시오?”
월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다만, 세상에 그런 강자가 존재한다는 게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는구나.”
“처음엔 나도 같은 반응이었소.”
“참… 우리의 시야가 이렇게나 좁았다니…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왔었구나.”
월존이 흑돌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사저, 어찌할 생각이시오?”
월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하고 자시고가 있더냐? 갖고 있는 도경이라도 바쳐서 선한 인연을 맺는 게 최고의 선택이겠지.”
“동의하오!”
“한데…….”
월희의 시선이 정자 밖으로 향했다.
“점점 더 많은 세력들이 전송진으로 달려가고 있구나. 정녕 죽기를 작정했단 말인가.”
“흥, 주제도 모르는 불나방들일 뿐이지.”
월존이 생각하기에 백의 여인 같은 강자 앞에서 숫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 외에도 오유계에는 신비한 검수가 남아 있다.
그녀의 실력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백의 여인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 둘이 나선다면, 아니, 그중 한 명만 출수해도 현와종은 물론 파사세계 전체를 멸망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바로 이때, 노인 하나가 정자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먼저 두 여인을 향해 가볍게 예를 차렸다.
“종주, 현와종의 종주가 찾아 왔습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이선수가?”
월희가 웃으며 월존에게 물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 것 같으냐?”
“그야 뻔하지 않소? 힘을 빌려 달라 하겠지.”
“하하! 들라 하거라!”
노인이 퇴장하고 잠시 뒤, 이선수가 정자 앞에 나타났다.
이에 월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겼다.
“이 종주, 오늘은 무슨 일로 먼 걸음을 하셨소?”
“월 종주, 오랜만이외다. 실은 긴히 상의할 일이 있어서 왔소!”
“하하! 할 말 있으면 어서 해 보시오. 우리 사이에 빙빙 돌려 말할 필요 있소?”
이선수는 월희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월 종주, 오유계에서 벌어진 일… 그대 또한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소.”
“음? 무슨 일 말이오?”
월희의 반응에 이선수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이 여인은 분명 알고서도 시치미를 떼는 게 분명했다!
표정을 가다듬은 이선수가 웃으며 말했다.
“월 종주, 그렇다면 사실대로 말하겠소. 엽현과 그 배후의 실력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소. 하여, 그대 파사종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요. 만약 엽현을 제거하는데 협조해 준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도경은 전부 그대들에게 넘기겠소!”
순간, 월희 곁에 있던 월존의 눈빛이 반짝였다. 제법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엽현에게 있는 도경을 차지한다면 파사종이 보유할 도경은 일곱 권으로 늘어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백의 여인의 실력을 몰랐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도경 백 권을 주어도 파사종을 움직이기 어려웠다.
아니, 감히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때 월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 종주, 이번 제안은 대단히 매력적이나… 솔직히 말해서 파사종은 이번 오유계와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소.”
“어, 어째서 말이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
“어쨌든 우리는 이 일과 무관하오. 설령 그대들이 도경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관여할 생각이 없소. 그리 알고 돌아가시오.”
이선수는 말없이 월희의 눈을 응시했다.
“…실례했소이다!”
이선수는 별수 없이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파사종 종주가 싫다는데 강제할 수는 없던 것이다.
이선수가 떠난 후, 월존이 조용히 말했다.
“사실 저들에게도 여전히 기회가 있소.”
“음? 무슨 기회 말이냐?”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서 목숨을 구걸할 기회 말이오.”
“하하하! 좋은 생각이긴 하나 저들이 그리하겠느냐?”
월존이 고개를 저었다. 용서를 구할 정도의 머리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지원을 요청하지도 않았으리라.
“참, 사저. 그런데 저 자에게 엽현 배후의 진짜 실력을 알려 줄 수도 있지 않았소?”
“응? 그게 무슨 말이냐? 물어봤어야 대답을 해 주지.”
“하하하! 과연, 사부가 사저에게 종주 자리를 물려 준 이유가 있었소!”
“놀리지 말거라. 네가 원하기만 하면 지금이라도 종주 자리에서 내려올 의향이 있다.”
이에 월존이 웃으며 월희 앞에 다가섰다.
“만약 그때 내가 종주 자리를 원했다면 내게 양보할 의향이 있었소?”
월희가 월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네 눈에는 이 사저가 그리 나쁜 사람으로 보이더냐?”
“글쎄…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저의 생각은 통 읽을 수가 없으니…….”
“그럼 잘 생각해 보거라. 내가 종주가 된 후, 네게 해가 되는 짓을 한 적이 있더냐?”
잠시 고민하던 월존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 머리가 잠시 어떻게 됐나 보구려. 바둑은 나중에 이어서 둡시다!”
월희는 떠나가는 월존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바보 녀석…….”
* * *
한편, 오유계로 향하는 전송진 앞에는 무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든 상태였다.
모두 현와종 등의 요청을 받고 달려온 파사세계의 강자들이었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세계에 있거나 폐관 중인 무인들도 속속들이 전송진 앞으로 집결했다.
당장 보이는 것만 세어 보아도 귀일경 강자 예순 아홉, 성도경 강자는 삼백을 넘어갔으며, 어도경 강자는 수천을 헤아렸다.
파사세계 전체의 실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 숫자의 강자가 모인 것은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오유계.
오유계로 돌아온 엽현 일행은 곧장 파사세계가 뚫어 놓은 전송진으로 향했다.
전송진 앞에 도착하자 백의 여인이 소철에게 눈짓했다.
“그대는 여기 남으시오.”
“아, 알겠소!”
소철이 재빨리 뒤로 빠지자, 백의 여인은 엽현을 데리고 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로 이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나도 같이 간다!”
엽현이 고개를 돌리니, 청운이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흥!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해!”
백의 여인이 쌀쌀맞게 대답했지만, 청운은 굴하지 않았다.
“구경만 할게! 구경이라도 시켜줘!”
“…….”
“그, 그럼 같이 가시지요.”
엽현이 중재에 나서자 청운의 얼굴이 환해졌다.
“가자, 가자!”
말을 마치기 무섭게 청운이 먼저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진 안으로 사라졌다.
이에 백의 여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엽현을 데리고서 뒤를 따랐다.
전송진 안.
이동 중에 엽현이 청운에게 말을 걸었다.
“사저, 제 검도를 봐 주실 수 있습니까?”
“검도?”
청운이 웃으며 엽현에게 대답했다.
“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그래? 성격은 까칠해도 꽤나 실력 있는 검수인데?”
이에 엽현이 백의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청아, 너 검도 쓸 줄 알아?”
“…응.”
“그, 그럼 내 검을 좀 봐 줄 수 있어?”
백의 여인이 잠시 엽현을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오빠의 검도는 이미 제대로 자리를 잡았어. 다만… 의경(意境)이 다소 부족한 게 눈에 띄네.”
“그래? 그럼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
“음… 내가 한 마디 해 줄 테니 잘 들어봐. 이해를 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 갈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오빠 스스로에게 달렸어.”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오빠의 현재 검도는 검심자재(劍心自在) 단계야. 검심자재가 뭐야? 바로 검과 마음이 그 어떤 속박에서도 자유로운 상태를 뜻하는 거지. 그런데 오빠의 검심자재는 아직 절정에 이른 건 아니야. 왜? 여전히 오빠 마음에 족쇄를 채우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지. 족쇄라 함은 오빠 스스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나치게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일 수도 있어. 어쨌든 이런 것들 때문에 진정한 검심자재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거지.”
엽현은 말없이 여인의 말을 경청했다.
확실히 그녀 말대로 오유계를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는 그에게 검심자재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청아, 검심자재 다음은 뭐가 있어?”
“그건 가르쳐 줄 수 없어.”
“왜, 왜?”
“오빠는 이미 독자적인 검도를 걷고 있어. 다음에 뭐가 나올지 아는 건 오빠 자신밖에 없다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
여인은 말을 이어갔다.
“계속 이대로 나아가면 오빠의 검도는 기존의 검도에서 벗어나, 경계 밖의 검도가 되는 거야. 즉, 검심자재 다음 경지는 오빠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느냐에 달렸다는 거지. 내가 만든 검도를 따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어.”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조금은 이해했어.”
백의 여인이 건너편에 있는 청운을 보며 말했다.
“저 여자의 검도도 스스로 창안해낸 거야.”
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도든 뭐든 스스로의 것이 가장 좋은 거다. 다른 사람의 길을 따른다면 편하긴 하겠지만, 결국 한계에 가로막히게 되지.”
이때 청운의 입가에 문득 미소가 피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도경의 경계 안에 있는 자, 다른 하나는 그 경계를 뚫고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자. 경계 안에 있는 자를 초심자라 칭한다면 밖에 있는 자는 어느 정도 숙련된 무인이라 할 수 있지.”
“초심자라면…….”
“엄청 약하다는 뜻이다.”
“…….”
“물론 이 도경 주인은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지. 하지만 그의 길을 쫓는 무인은 반드시 이 도경을 뛰어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삼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
삼류!
“도경의 주인이란 자가 그렇게나 강합니까?”
“하하, 나도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 하지만 하나의 완전한 무학을 만들어 낸 자라면 천재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겠지. 사실 우주의 역사 전체를 놓고 봐도 이정도 천재는 드물다고 해야겠지.”
백의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 도경 무학의 체계는 확실히 대단한 면이 있어. 하지만 도경 주인의 실력이 어떤지는 평가하기 어려워.”
“그럼 소복을 입은 청아는? 그녀는 어느 정도야?”
엽현의 대답에 두 여인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침묵했다.
이에 엽현이 의아한 눈으로 두 여인을 번갈아 보았다.
“사저, 뭔가 알고 있는 거지요? 그렇지요?”
청운이 난감해하며 백의 여인을 가리켰다.
“저 여자한테 물어보거라.”
엽현의 시선이 백의 여인에게로 향했다.
이에 백의 여인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한동안 머뭇거렸다.
“오빠, 화제를 좀 바꿀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