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53
1454화 실망시키지 않겠소
난약의 의혹이 점점 늘어가는 이때.
엽현의 육신이 격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한 줄기 광포한 힘이 그의 체내에서 난동을 부리며 여기저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이를 본 난약은 곧바로 엽현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쾅-!
한 덩이 온화한 기운이 엽현의 몸을 감싼 순간, 체내에서 미친 듯이 날뛰던 기운이 그대로 잠잠해졌다.
“돌파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소. 지금부터는 절대 평정심을 흐트러뜨려선 안 될 것이오. 그리고 방금 그대의 몸 안에서 난동을 부리던 힘은 응룡혈에 내포된 혈맥지력이오. 그대에겐 아무 쓸모가 없으니 천천히 몸 밖으로 배출하도록 하시오.”
엽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난약의 말대로 응룡의 혈맥지력을 몸 밖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략 이틀의 시간이 흐르자, 엽현의 육신은 진정 될 수 있었다.
난약은 고개를 돌려 응룡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이때, 시체 안에 있던 피는 엽현에게 모두 흡수된 상태였다.
이를 보자 난약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응룡의 피는 단약을 제조할 때 최상급 재료로 분류되는 것으로 그 가치를 매기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그 귀한 재료를 엽현이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사실이었다.
조사 결과, 엽현은 고마움을 모르는 자는 아니었다.
오늘 현성이 베푼 은혜가 훗날 둘 사이의 관계에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순 없지만, 시도 자체는 훌륭하다고 볼 수 있었다.
사실 난약은 소복의 여인뿐만 아니라, 엽현과 관계를 맺는 것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
엽현의 잠재력이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엽현이 이룰 성취는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천재에게 미리 투자하는 것은 현성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전략이 틀림없으리라.
바로 이때, 엽현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순간, 그의 주변 공간이 크게 흔들리면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엽현이 다소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난약이 웃으며 말했다.
“축하하오. 그대의 도체는 이제 성도경이 됐소.”
성도경!
엽현은 천천히 주먹을 쥐어 보았다. 이내 그의 손안에 강력한 힘이 응집됐는데, 이는 원래보다 최소 다섯 배는 강한 것이었다.
이때, 엽현이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겉옷을 훌쩍 벗어 던졌다. 한눈에 봐도 그의 몸에선 특이한 광택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그대의 몸은 귀일경 강자가 와도 흠집조차 낼 수 없을 것이오. 과연 도체는 역천(逆天)이라 할 수 있군!”
다시 옷을 챙겨 입은 엽현은 곧바로 난약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난약 소저, 정말 고맙소!”
“하하, 그나저나 앞으로 어쩔 생각이오?”
난약의 물음에 엽현의 표정이 다소 진중해졌다.
“난약 소저, 실은 한 가지 더 부탁할 것이 있소.”
“말 해 보시오.”
“도경 팔권의 주석을 경매에 붙이고 싶소.”
난약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매라니? 돈이 부족한 것이오?”
“아주 많이 부족하오.”
“흠… 오유계 전체를 부양할 생각이구려.”
엽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던 난약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합시다. 그 주석본, 내게 파시오.”
“난약 소저 그건…….”
“걱정할 것 없소. 값은 충분히 쳐 주리다.”
“하하, 난약 소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구려.”
엽현은 두루마리 한 권을 꺼내 난약에게 내밀었다.
“이게 바로 도경 제 팔권의 주석본이오. 원한다면 드리겠소.”
“이걸… 그냥 준단 말이오?”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내 경지를 올려 준 것도 모자라, 육신까지 강화시켜 주었소. 그런 은인에게 어찌 물건을 팔아 이익을 챙긴단 말이오? 이 주석본은 내가 그대에게 주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으시오. 단, 외부로 내용을 유출하지는 말아 주시오. 왜냐하면, 경매에 붙여 한 몫 단단히 챙길 생각이니까.”
난약은 난처한 표정으로 두루마리를 받아 들었다.
“그대 뜻은 충분히 이해했소. 하지만 공짜로 받진 않을 거요.”
이번에는 난약이 엽현에게 납계 하나를 들이밀었다.
“받으시오!”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받을 수 없소. 주석본은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오.”
“하하, 일단 안에 내용물부터 확인하시오.”
이 말에 엽현이 납계 안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이 모습을 보자 난약이 씩 웃어 보였다.
“받으시오.”
하지만 엽현은 여전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받을 수 없소.”
“엽 공자, 진심이오?”
난약이 똑바로 쳐다보며 묻자 엽현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진심이오. 그대가 베푼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해주시오.”
“그럴 거면 아예 구권의 주석본도 내 주지 그러시오?”
이 말에 엽현은 고민도 하지 않고 품 안을 뒤져 도경 구권의 주석본을 꺼냈다.
“받으시오. 이게 제 구권이오.”
난약은 말없이 엽현을 눈을 응시했다.
이에 엽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난약 소저,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이시오?”
난약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엽 공자, 지금 보니 우리가 엽현이라는 인물을 너무 가볍게 본 것 같구려.”
이 말을 끝으로 난약은 자리를 떠났다.
도경 구권은 받지 않았다.
팔권 주석본의 가치는 이미 자신이 엽현을 도운 것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만약 구권까지 받게 되면 현성이 엽현에게 베푼 은혜는 상쇄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성이 은혜를 입은 꼴이 된다.
게다가, 이 험난한 우주에서 잔뼈가 굵은 난약은 탐욕이 패망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현성이 엽현과 친구 사이로 남고자 한다면 반드시 분수를 지켜야만 한다.
엽현이 도리를 지키고자 하는 상황에서 현성이 선을 넘어 버린다면 그 관계는 지속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제단 위, 홀로 남은 엽현은 손안에 남은 도경을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난약이 도경의 유혹을 이겨 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난약이 엽현을 가볍게 보았다고 시인한 것처럼, 엽현 역시 난약을 재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엽현은 미소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 * *
어느 머나먼 성역, 무변성지의 성주가 한 무리의 무인들을 이끌고 미친 듯 어둠 속을 질주하고 있다. 그들은 시종일관 최대 속력을 유지했다.
이들의 목표는 소복의 여인을 쫓고 있는 도문 무인들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 성주 곁에 있던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제시간에 따라잡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이에 성주가 제자리에 멈추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정면의 성역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제기랄, 우리 무변성지까지 불똥이 튀게 생겼군!”
또 다른 성역.
한 노인이 여러 명의 강자를 이끌고 어둠 속을 질풍노도와 같이 달리고 있다.
노인의 정체는 바로 도문의 청합이었다.
청합은 온 힘을 다해 질주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자칫 소복의 여인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녀가 수인계에 발을 들이면 입구를 지키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수인계는 도문조차 진입할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드시 서둘러야만 했다.
대략 반 시진 후, 선주에 있던 청합이 흥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찾았다!”
이 목소리에 뒤에서 따라오던 무인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먼발치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서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들어왔다.
여인의 정면에는 거대한 비석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비석에는 패도 넘치는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족 접근 금지.
비석은 인간계와 수인계를 가르는 경계석이었다.
여인이 막 걸음을 옮기려는 이때, 뒤쪽에서 노호와 같은 음성이 날아들었다.
“멈추시오!”
여인이 뒤를 돌아보자, 수백 장 밖에 있는 공간이 찢기면서 오인의 무인이 튀어 나왔다.
바로 청합 등 도문의 무인들이었다.
이들을 본 여인은 늘 있는 일인 양, 표정에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청합은 여인을 앞에 두고 다소 긴장된 얼굴이었다. 상대가 만만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인에게서 그 어떠한 기운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 흔히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기운을 숨기는 비술을 사용한 경우.
다른 하나는 상대가 지나치게 강할 경우였다.
생각을 정리한 청합은 곧장 여인을 향해 말을 건넸다.
“그대가 바로 엽현의 배후요?”
엽현!
엽현의 이름이 나오자, 얼음장 같던 여인의 표정에 가벼운 동요가 일었다.
“혹시 도문이라고 들어 보았소?”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청합은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 도문을 모른단 말이오?”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내느냐?”
“엽현 말이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청합이 냉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놈은 아주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소!”
순간 여인의 미간이 꿈틀댔다.
하지만 청합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농담하지 말고 대답하시오. 정말로 도문을 모른단 말이오? 그럴 수가 있소?”
“그가 잘 지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너희 도문 때문인가?”
“바로 맞췄소! 놈은 하루하루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거요!”
이때 청합이 오른손 주먹을 감아쥐며 천천히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경지를 측정할 수 없는 여인 앞에서 방심은 금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여차하면 도망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가장 좋은 건 역시나 이 자리에서 여인을 제거하는 것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목숨이라도 건지는 게 중요했다.
청합은 긴장된 얼굴로 정면을 쳐다보았다.
여인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청합 일행을 응시할 뿐이었다.
“소문에 오유계 천도와 실력이 비슷하다고 들었소.”
청합의 말에 여인이 잠시 멈칫하더니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다.”
“그대의 경지는 어디쯤이오?”
“음… 너희보다 아주 조금 높다랄까?”
“귀일경 다음 경지?”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때, 청합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거대한 권인 하나가 여인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여인은 서두르지 않고 검을 세워 수비 자세를 취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인이 십여 장 뒤로 밀려났다.
반면 청합은 수백 장을 튕겨 나갔다.
자리에 멈춰 선 청합은 다소 흥분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크게 강하진 않군!”
이에 여인이 차가운 눈으로 청합 일행을 훑어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희는 날 죽일 수 없을 거다.”
청합은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 일합을 겨룬 결과 여인의 대략적인 실력을 파악하는 데는 성공했다. 어쩌면 귀일경 절정, 많이 쳐줘야 그다음 경지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인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을 들지 않았다.
그러기엔 대동한 인원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제길, 귀일경 열 명만 더 있었더라도…….’
“아니면… 좀 더 불러와 보던가.”
여인의 말에 청합이 의아한 눈빛을 드러냈다.
“도망치지 않을 거요?”
“그럴 일은 없다.”
“어째서?”
“음… 너무 많이 걸어서 이제는 좀 쉬고 싶구나.”
“정말이오? 진짜로 도망치지 않을 거요?”
여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흥! 그럼,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시오!”
“좀 강한 녀석들로 데려오거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이 말을 듣자 순간 청합의 눈가에 살기가 맺혔다.
“걱정 마시오!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