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54
1455화 도망치라고!
이 말을 끝으로 청합은 서둘러 신형을 날렸다.
다만 그와 함께 왔던 나머지 네 사람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여인이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 둘 요량이었던 것이다.
한편, 여인은 도망칠 생각은 전혀 없는 듯, 자신이 걸어온 방향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단 돌아가게 되면 다시 떠나기가 쉽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반드시 이 여정을 끝내야만 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여인의 몸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실선들이 붙어 있었다.
액난지인.
액난지인은 마치 거미집처럼 촘촘하게 그녀를 동여매고 있었다.
모두 엽현의 것이었다.
혹여 엽현에게 피해가 갈까 끊어 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다만, 액난지인 역시 여인을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녀가 정말로 바라는 건 엽현 곁에 머무는 일이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제아무리 액난지인이라 할지라도 감히 엽현을 위협하는 일은 벌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인은 이 액난지인의 근원을 찾는 쪽을 택했다.
도대체 누가 이 모든 걸 조종하고 있는 것일까?
어둠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여인은 잠시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디 한번 숨어 보거라… 지옥 끝까지라도 가서 찾아낼 테니…….”
* * *
한편, 도문을 향해 질주하던 청합은 얼마 가지 않아 자리에 멈춰 섰다.
가는 길 중간에 성주 등을 만났던 것이다.
청합이 먼저 말을 건넸다.
“그대들도 그 여자를 죽이러 가는 길이오?”
“그 여자를 찾았소?”
청합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청합을 바라보는 성주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런데… 죽지 않고 살아 있군?”
“죽어? 내가 말이오? 하하하! 우리 모두 속았던 거요. 그 여자는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했소!”
“그저 그런 수준?”
청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그녀가 괴물처럼 강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
성주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소복의 여인의 실력이 그저 그렇다니?
주인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 테고…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이때 청합이 웃으며 물었다.
“성주, 그대들도 그 여자를 죽이려는 것이오?”
이 물음에 성주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음? 그럼 여긴 왜 온 것이오? 설마 구경하려고 왔을 리는 없을 테고…….”
성주는 잠시 말이 없었다.
네가 죽는 걸 막아주러 왔다고 솔직히 말을 해 줘야 할까?
“청합, 혹시 그 여자와 겨뤄보았소?”
“그렇소.”
순간, 성주의 눈가에 의혹이 일었다.
“정말로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단 말이오?”
“성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그대는 왜 그 여인이 강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내가 알기로 만난 적도 없는 사이일 텐데?”
“…….”
“아무튼 성주, 마침 잘 왔소. 지금 그 여인을 치려 하는데 연합을 해서 같이 처리합시다!”
성주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소. 나는 그저 급한 용무가 있어 이쪽으로 지나가던 길이었을 뿐이오. 그런데… 청합 그대는 지금 도문으로 돌아가는 것이오?”
청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여인은 얼마 전에 나타났던 백의 여인만큼 강하진 않소. 다만 우리 몇 명의 힘만으로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구원을 요청하러 가는 길이다?”
“바로 맞췄소!”
청합의 대답에 성주의 표정이 다소 어둡게 변했다.
“청합, 뭔가 수상쩍은 느낌이 들진 않소?”
청합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수상? 뭐가 말이오?”
“내가 느끼기에는 그녀가 일부러 그대들을 유인하는 것 같소만?”
“그대 말은… 그 여자가 일부러 약한 척 연기하고 있다는 뜻이오?”
“그렇소.”
이에 청합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어째서?”
“성주, 내가 한번 물어봅시다. 그녀가 무슨 이유로 약한 척을 해야 한단 말이오?”
성주는 침묵했다. 그가 생각해도 굳이 약한 척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이때 청합이 말을 이어갔다.
“그 여자가 그렇게 강하다면, 파사세계가 엽현을 노렸을 때 이미 출현했을 것이오.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나타나서 우리 도문을 멸망시켜야 하오. 그런데 오히려 약한 척 연기를 하다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오?”
성주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인의 말대로 그 여인이 그렇게나 강하다면 왜 당장 도문을 멸망시키지 않는 걸까?
혹시 도문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아서일까?
“성주,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 한 번 들어 보시오. 그 여인은 줄곧 자신이 엽현의 동생이라고 주장해 왔소. 실제로 둘 사이의 관계는 보통이 아니오. 만약, 그녀를 붙잡을 수만 있다면, 엽현은 물론, 백의 여인과 청운이라는 여자까지 위협할 수 있을지도 모르오.”
“하지만…….”
“이런! 시간을 너무 지체했군! 성주,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청합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황급히 신형을 날렸다.
자리에 남은 성주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뭔가 이상했다. 청합의 말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주인이 자신에게 거짓말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역시나, 소복의 여인이 도문 무인들을 유인할 생각으로 일부러 약한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흠… 아무래도 도문이 함정에 빠진 것 같군. 하필이면 저런 멍청이와 함께 싸워야 한다니… 아무래도 쉽지 않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성주는 잠시 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도문.
청합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력으로 도문에 돌아왔다.
잠시 후, 도문의 대전 안, 도노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청합을 쳐다보았다.
“사람을 더 데려오라고 했다고?”
“그렇습니다!”
“흠…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지 않느냐?”
도노이의 말에 청합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그녀는 우리를 얕잡아 보고 있었습니다.”
“얕잡아 본다고? 자세히 말 해 보거라.”
청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대답했다.
“말을 많이 섞진 않았지만, 그녀를 마주했을 때, 마치 인간이 개미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검수들 특유의 오만함인 것이지요. 심지어, 그녀는 우리 도문을 알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도문을 삼류세력으로 보고 무시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흠…….”
청합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녀와 일합을 겨루었을 때, 비록 밀리긴 했지만, 쉽게 패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약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백의 여인, 청운과 비교했을 때 한 수 아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현 상황에서 이 여인은 오히려 우리의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사로잡기만 하면 엽현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배후에 도대체 어떤 세력이 있는지도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도노이는 생각에 잠겼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도노이가 망설이는 것을 본 청합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주인, 이건 정말이지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천재일우의 기회!
도노이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럼 내가 직접 가마.”
이에 청합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제게 귀일경 열만 붙여 주십시오. 사주(四主)께서 폐관 중인 이때, 이주께서 자리를 비우는 건 곤란합니다.”
“귀일경 열? 그걸로 괜찮은가?”
“충분합니다!”
“흠…….”
도노이가 고민 끝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으니 문천어를 데려가도록 하거라.”
이 말에 청합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문원 원수가 나선다면 실수는 없을 것입니다.”
“명심하거라.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실수 없이 처리하겠습니다!”
잠시 후, 청합은 열 명의 귀일경 강자와 문천어를 데리고 도문을 떠났다.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무인들을 보며 도노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문득 불안한 기분이 스멀스멀 그의 마음속을 잠식해 들어왔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동자에서 한기가 쏟아져 나왔다.
불안함?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문이 언제 누구를 두려워해 본 일이 있던가!
* * *
한편, 무변성지의 성주는 돌아가지 않고 소복의 여인이 있는 성역으로 접근했다.
도대체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역에 도착해 여인을 발견한 순간, 성주의 표정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성주의 실력과 견문은 청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본 여인은 분명 약한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저 여자는 강하다!’
이는 동물적인 감각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이때, 여인이 고개를 돌려 성주 쪽을 바라보았다. 여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성주는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영영 그럴 기회가 없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여인 또한 굳이 손을 쓰지 않고, 그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여인은 다시 어두운 성공을 무심한 눈으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는 손안에 작은 나무 인형을 꼭 쥐고 있었다.
엽현과 꼭 닮은 인형이었다.
잠시 후, 여인은 고개를 돌려 나무 인형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인형에 닿은 순간, 그녀의 눈빛이 따스하게 변했다.
바로 이때, 그녀 뒤편의 공간이 갑자기 요동치더니, 십여 개의 강력한 기운이 장내에 떨어졌다. 다름 아닌 청합 일행이었다.
청합은 여인이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곳으로 돌아오기까지 혹시라도 여인이 도망쳤을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만약 이번에 그녀를 해치우지 못한다면 도문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셈이 아닌가!
청합은 스스로가 운이 좋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때, 그의 곁에 있던 문천어가 갑자기 소리쳤다.
“도망쳐!”
도망?
문천의 말에 청합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원수, 지금 그게 무슨 말…….”
“도망치라고, 이 멍청한 놈아!”
소리치는 문천어의 표정은 이미 하얗게 질려있었다.
더불어 너무 긴장한 탓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인을 처음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분명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건 분명 함정이라는 것을!
두 번 생각 할 것도 없었다. 목숨을 건지려면 바로 도망치는 길뿐이리라!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행동은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언제 날아들었는지 모를 검광 하나가 이미 그의 미간을 꿰뚫고 지나가 버렸던 것이다!
문천어는 가만히 선 채로 혼란에 빠졌다.
여인이 언제 출수했던가?
알 수 없다.
그가 아는 것은 이미 자신이 죽어있다는 사실뿐.
한편, 청합은 지금 펼쳐진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문천어가 당했다?
청합의 시선이 천천히 여인 쪽으로 향했다.
“설마 그대가…….”
이때, 청합을 흘끗 바라본 여인이 그대로 돌아섰다.
“재미없군.”
“지금 뭐라고…….”
청합이 말하는 순간, 뒤쪽에 있던 무인 십여 명의 머리가 동시에 피를 뿜으며 잘려나갔다.
이때, 청합이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그러자 그의 목이 돌연 갈라지면서 뜨거운 선혈이 흐르기 시작했다.
청합은 화들짝 놀라 영혼만이라도 탈출하려 시도했다. 청합 정도의 강자에게는 영혼만 남아 있어도 다시 부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막 탈출을 감행한 이때, 청합은 자신의 영혼이 조금씩 소멸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청합은 그대로 자리에 멈췄다.
이미 희망이 없다는 걸 직감했던 것이다.
이대로 도망쳐 봐야 곧 영혼은 소멸하고 말리라.
청합은 원망스런 얼굴로 여인을 향해 돌아섰다.
“약한 척하는 게… 재밌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