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64
1465화 옛 친구의 아들
막념의 시선은 여인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과장이 좀 심하군.”
“하하! 어쩔 수 없소. 사실이니까!”
여인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막념이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좀 걸으면서 이야기하지?”
“좋소!”
두 여인은 구름 길을 따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내 상태를 알아챈 건 네가 처음이로군.”
“그대 역시, 내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줄은 몰랐소.”
막념이 아래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의 오유계는 내가 항상 바라왔던 모양을 이뤄가고 있다.”
“확실히 그대는 사람 보는 눈이 있소.”
“그런 셈이지.”
자화자찬!
“애당초 그의 인과에 연루되어선 안 됐소.”
“뭐, 할 수 없지. 이제 와서 발을 빼기도 늦었으니까. 안 그런가?”
이에 여인이 웃으며 막념을 바라보았다.
“늦은 게 아니라 아예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그것도 그래. 누나인 내가 동생을 팽개치는 것도 말이 되지는 않지.”
여인이 문득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머리를 아주 잘 썼더구려. 일부러 기억을 봉인해서 액난지인이 엽현을 겨누지 못하도록 하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오.”
“후후, 그러는 너는? 아직까지 출수하지 않고 있는 건 소복의 여인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존재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 괴물을 무슨 수로 꺾겠느냐?”
동병상련!
두 여인은 서로를 향해 웃음을 터트렸다.
이때,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거 아시오? 저 아이를 처음 만난 순간, 하마터면 모든 걸 포기하려 했소.”
“어째서지?”
“그건 나도 모르겠소. 이런 감정…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소.”
“이번에는 내가 묻지. 엽현과는 무슨 사이지?”
“굳이 말하자면 가까운 사람이랄까.”
“가까운 사람?”
막념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아주.”
“하하, 그런 사람을 죽이려 할 정도라면 분명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거겠지?”
“물론이오. 하지만 그것도 매우 오래된 이야기라… 여기서 굳이 꺼내고 싶진 않구려.”
“흠, 오지랖을 좀 부리자면, 복수를 하려거든 그 당사자를 찾아가는 게 맞지 않나? 내가 보기에 현생의 엽현과는 딱히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에 여인이 소리 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도 일리가 있소.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 번 지은 죄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소.”
“…….”
“내 예상이 맞다면, 그대는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해 임시로 봉인을 해제한 것일 뿐, 앞으로도 당분간은 엽현의 일에 관여하지 못할 것이오. 내 짐작이 옳소?”
막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하, 그럼 조만간 또 봅시다!”
이 말을 끝으로 여인은 자리를 빠져나갔다.
막념은 말없이 여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때, 한 남자가 막념의 뒤로 다가왔다.
“방금 저 여자는 누구야?”
순간, 다시 흐리멍덩한 눈으로 돌아온 막념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바라보았다. 뒤에 서 있는 남자는 바로 엽현이었다.
“누구…?”
엽현은 손으로 멀리 사라져가는 여인을 가리켰다.
“저 여자 말이야.”
막념은 여인을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 누구지?”
순간, 엽현의 눈썹이 꿈틀댔다.
막념의 상태가 다소 이상했던 것이다.
이때, 막념이 헤헤 웃으며 엽현의 손을 낚아챘다.
“그만 가자! 배고파!”
“…정말 괜찮은 거야?”
“응! 괜찮아!”
엽현이 무릎을 꿇고서 걱정스런 얼굴로 막념을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은 거지?”
이에 막념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잘… 모르겠어. 요즘 들어 자꾸 이상한 꿈을 꾸는 거 같아.”
“꿈? 무슨 꿈?”
“몰라… 머리만 아프고 하나도 생각이 안 나.”
“그, 그래! 그럼 생각하지마! 가자, 생선 구워 먹으러 갈까?”
“응!”
엽현은 막념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정체 모를 여인이 사라진 방향을 흘끔 쳐다본 그는 막념의 손을 잡고서 오유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도문의 한 대전 안.
도노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이미 그는 육신을 회복했지만, 엽령에게 파괴된 도체는 복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육신이 파괴되면 도체 역시 처음부터 다시 생성해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대전 중앙에는 중년 남자를 본뜬 듯한 조각상 하나가 존재했다. 한 손에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남자는 의젓한 문사의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이 중년인은 바로 도문의 조사, 즉, 도경의 창시자였다!
이때, 대전 문이 열리고 노인 하나가 조심스레 들어왔다.
도노사 앞에 선 노인이 공손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한 가지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엽현이 백의 여인과 청운을 찾으러 떠났다고 합니다.”
이에 잠잠하던 도노사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래서, 찾았다더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둘째 사형은? 소식이 있느냐?”
“그것이… 아직 어떤 소식도 전해오지 않으셨습니다.”
“무변성지는 어떻게 하고 있지?”
이 질문에 노인이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성지는… 아무래도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순간, 도노사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무슨 뜻이냐?”
“성지는 대외적으로 엽현과 적이라는 입장을 표하고 있지만, 실제로 전혀 출수할 뜻이 없어 보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엽현과 싸우도록 유도하고, 뒤에서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흥, 어리석은 놈들! 상황이 이런데 아직도 주판이나 튕기고 있다니. 그놈들은 이미 글러 먹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췄다.
“성지 외에도 현성, 고족, 남월족 등 또한 엽현과 우리 사이의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음? 현성이 그랬다고?”
“확실합니다, 주인!”
“흠… 그건 의외로군.”
노인이 말을 이어갔다.
“외부에 나가 있던 무인들은 대부분 복귀를 완료했습니다. 나머지도 조만간 합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밖에도 우리 도문을 추종하는 세력들 또한 속속들이 무인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이때, 노인이 문득 도노사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사주, 곧 전열이 완성될 듯한데, 언제쯤 출수하실 생각이십니까?”
도노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엽현 하나로 끝나는 일이었다면 진즉 모가지를 꺾어 버렸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직면해야 할 상황이지. 엽현의 배후가 은밀히 암습을 진행한다면 대부분의 도문 무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엽현을 죽이기 전에 먼저 그 배후 세력을 박멸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기 위해선 엽현을 적절히 이용하는 게 중요하지.”
“하지만 사주… 우리는 아직 그의 배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상관없다. 어차피,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 끝나는 전쟁이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전력을 총동원해 건곤일척의 싸움을 걸어야만 한다. 그다음은… 둘 중 하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겠지.”
“…….”
도노사가 노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인맥을 총동원해서 가능한 많은 고수들을 끌어모으도록 해라! 일이 끝나면 도경의 내용을 공유하겠다는 말도 잊지 말도록!”
대가는 도경!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노인은 가볍게 예를 차린 후, 대전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도노사는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엽령이 떠나가며 한 말을 상기했다.
‘그에게는 나 말고 다른 동생이 있다!’
그녀가 지목한 또 다른 동생이 하얀 소복을 입고 다니는 여인이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도문에서도 미리부터 여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움직였지만, 파견된 무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직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귀일경 열 명 정도는 자신의 실력으로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만에 하나.
그 여인의 실력이 자신보다 낮다면 귀일경 열 명을 모두 처리한 후,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된다면 소복의 여인은 도문의 돌파구가 되는 셈이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엽령이 한 말이 거짓말이었을 가능성이다.
물론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 정도 되는 강자라면 굳이 시정잡배처럼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 * *
머나먼 성역.
이곳에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성 하나가 존재했다.
신성(神城).
지극히 비밀스러운 이 성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게다가 성안에 들어가기 위해선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경지가 최소 반보신경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 성은 그야말로 절대강자들의 집합소 내지는 사교모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이날, 한 중년인이 신성을 찾았다.
다름 아닌 도노이였다.
성안으로 들어온 그는 익숙한 걸음으로 작은 객잔을 찾았다.
사실, 성안에 있는 건물은 이 객잔이 유일했다.
객잔 내부의 분위기는 한산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은 단 셋.
인상을 쓰며 주판을 튕기는 주인, 걸레를 들고 열심히 청소하는 시늉을 하는 점소이, 그리고 홀로 탁자에 앉아 한 잔 걸치고 있는 도객(刀客)이 전부였다.
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주인의 안색이 환하게 변했다.
“어서옵쇼! 안쪽으로 들어 오십쇼!”
도노이는 곧장 주인이 있는 계산대 앞으로 다가갔다.
“사람을 좀 찾고 있소.”
“음? 손님, 여기는 흥신소가 아니라 먹고 마시는 곳…….”
쾅-!
도노이가 주인의 말을 끊으며 탁자 위에 납계 하나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순간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안에는 조화신정 십억 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십억!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순간, 주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누굴 찾아주면 되겠소?”
“도문의 셋째.”
“도노삼 소저 말이오?”
도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주인이 납계를 집어 들고는 한쪽에 있는 탁자 하나를 가리켰다.
“한 보름 전쯤에 저기서 한 잔 걸치고 있었소.”
“보름… 어디로 갔는지 아는가?”
“그때 들은 말로는 북황(北荒)이라고…….”
북황!
순간 도노이의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멀리, 홀로 있던 도객은 들고 있던 술잔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하하, 지금부터 열심히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
“가기 전에 한잔하시겠소?”
도노이는 대꾸 없이 또다시 납계 하나를 꺼내 놓았다.
“정보.”
주인의 손이 곧장 납계로 향했다.
“누구를 알고 싶소?”
“엽현.”
엽현!
순간, 납계를 잡으려던 주인이 손을 멈췄다.
“오유계의 주인을 말하는 게 맞소?”
도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던 주인은 결국 고개를 저으며 납계를 툭 건드려 도노이 쪽으로 밀어냈다.
이 모습에 도노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모르는 건가 아니면 말하지 못하는 건가?”
“전혀 모르진 않소. 하지만 말할 수 없소.”
“말할 수 없다?”
주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노이의 안색은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엽현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곳 사람들마저 말하기를 꺼려한단 말인가?
신성은 도문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곳이 아니던가!
이때, 주인의 음성이 이어졌다.
“미안하지만 영업 마감할 시간이오.”
“…….”
주인을 흘끔 쳐다본 도노이는 말없이 돌아섰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도객 역시 마지막 술잔을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주인은 객잔 내의 어느 방 앞에 멈춰 섰다.
공손히 예를 차린 주인이 말문을 열었다.
“사부….”
“왜 엽현에 대해 조사하지 말라고 했는지 궁금한 게냐?”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궁금증을 갖고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방 안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옛 친구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