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67
1468화 내가 성을 간다!
무인들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도망친 줄로만 알았던 엽현이 갑자기 암습을 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는 도노이 또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무슨 배짱으로 이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엽현의 검은 도노이의 미간을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손가락 한 마디가량 진입하자, 검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도체!
이 위기의 순간에서 도체가 도노이의 목숨을 건져 낸 것이다!
한편, 검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걸 본 엽현은 발을 구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쾅-!
굉음과 함께 도노이의 신형이 천 장 밖으로 밀려났다.
이 순간, 엽현의 모습은 이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암습이 실패하자 곧장 후퇴를 선택한 것이었다.
정신을 차린 도노이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이때, 그의 미간 주변은 거미줄처럼 실금이 가득했다. 조금 전 일격에 육신이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도노이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만약, 도체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죽은 목숨이었으리라!
도노이는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방금 전에 보았던 엽현의 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기습이었지만, 감히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이었다.
한편, 다른 귀일경 강자들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확실히 두려움이 자리했다.
조금 전 검을 받은 사람이 도노이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피할 수 있었을까?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노이 조차 막지 못한 검을 자신들이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엽현은 언제부터 살수로 전향한 것일까?
“나는 먼저 돌아가겠소. 그대들도 성으로 돌아가시오.”
이 말을 남기고 도노이는 성안으로 훌쩍 들어가 버렸다.
장내에 남은 무인들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몇몇의 표정에서는 이미 발을 빼고자 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 * *
빠르게 도성을 벗어난 엽현은 어느 이름 모를 성역에 도착해 한숨을 돌렸다.
아쉬움이 무척이나 남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도노이를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도체!
현재 그의 실력으로 도체를 파훼할 방법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같은 공격을 여러 번 성공시킨다면 몰라도, 암살로는 어림도 없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엽현은 다시 어검을 타고 빠르게 미끄러져 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오유계가 아니라 바로 무변성지였다.
엽현에게 있어 상대하기 더 까다로운 쪽은 도문 보다는 이 무변성지였다.
때문에 무변성지의 전력을 확실히 알아 두는 게 중요했다.
잠시 후, 엽현은 무변성지에 도착했다.
그가 막 경계 안으로 발을 디딘 이때, 무변성지의 대나무집에 있던 여인이 들고 있던 책을 놓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문득 그녀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훗, 당돌한 녀석이로군.”
여인은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고, 보던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한편, 성역 안으로 진입하려던 엽현이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에게 발각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무변성지를 내려다보던 엽현은 고민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모험을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유가 있더라도, 당장의 실력으로는 시도할 자격조차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엽현이 떠난 후, 방 안에 있던 여인이 웃으며 책장을 넘겼다.
“보기보다 똑똑하구나.”
이때, 성주가 대나무집 앞에 나타났다.
“주인, 엽현이 도문을 헤집어 놓은 후에 곧장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곧바로 도망친 것으로 보입니다.”
“신경 쓸 것 없다. 내버려 두거라.”
여인의 말에 성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주가 사라지고 다시 적막감에 휩싸인 대나무집.
여인은 다시 책 읽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눈빛은 조금씩 차갑게 변해만 갔다.
* * *
엽현은 현성으로 돌아왔다.
그가 성안에 발을 디딘 순간, 검은 장포를 입은 남자가 엽현의 뒤에 나타났다.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흑의인이 가볍게 손을 털어냈다. 순간, 피에 젖은 머리통 열다섯 개가 엽현의 발밑으로 굴러들어왔다.
“약속 한 대로 전부 도문의 귀일경 강자들이다.”
엽현은 눈앞의 무인이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상대는 당시 경매장에서 만났던 그 흑의인이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도경 무인들을 죽였을 줄이야!
그것도 귀일경 강자 열다섯씩이나!
엽현은 흑의인이 손을 내밀자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두꺼운 책 한 권이 흑의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다름 아닌 도경 제 구권이었다.
볼일이 끝난 흑의인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이때, 엽현이 그를 불러 세웠다.
“한 번 더 하겠소? 거래 말이오.”
흑의인이 문득 자리에 멈춰 섰다.
“내 흥미를 끌 만한 게 아직 남아 있느냐?”
“하하, 달리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보시오.”
“…….”
“그대 손에 있는 건 도경 원본. 그대 능력으로 해석해 낼 수 있겠소?”
이 말에 흑의인이 책을 펼쳤다. 잠시 내용을 들여다본 그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이해할 수 있단 말이냐?”
“이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이미 연구를 끝내고 주석본까지 제작해 놓은 상태요. 필요하지 않소?”
“…….”
“파사종은 오랜 세월 동안 그 도경을 소유했었지만, 완전히 해석해 내는 데는 실패했소. 그런데 과연 그대가 성공할 수 있겠소?”
“…뭘 원하지?”
“내 편이 되어 주시오!”
엽현의 제안에 흑의인은 곧장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다. 아무리 도경이 귀해도 목숨을 걸 순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목숨을 걸 만한 보상을 제안하겠소.”
“음?”
이 말에 흑의인은 호기심이 동했다.
세상에 자신의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 존재할까?
이때 엽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유계에 가보고 싶지 않소?”
구유계!
흑의인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 거짓말을…….”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이 세상에 정말로… 구유계라는 곳이 있단 말이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내가 바로 그곳에서 왔으니까!”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이에 엽현이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무상검이 흑의인 앞에 불쑥 나타났다.
“살펴보시오. 구유계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이니까.”
흑의인은 조심스레 눈앞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검을 쥔 순간, 흑의인의 고개가 엽현을 향해 홱 돌아갔다.
“이, 이건…….”
“후후, 그런 물건은 처음이지 않소?”
“…….”
“그대의 경지는 귀일경 절정, 도경이 필요한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단계에 이르고 싶은 욕망 때문이겠지. 이를테면 신경 같은…….”
흑의인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이해할 수 없군. 네 뒤에 그렇게나 강한 자들이 있는데 왜 나를 필요로 하는 거지?”
순간, 엽현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나 신분은 구유계의 위면지자, 이곳에 내려온 것은 다양한 경험을 위한… 그러니까 일종의 수행이라 할 수 있소. 그러니 아무 때나 그들의 힘을 동원할 수는 없는 것이오. 아시겠소?”
“글쎄, 그건 모르겠고… 어째 날 속이려는 것처럼 보이는군?”
이 말에 엽현이 바로 정색하며 소리쳤다.
“나는 검수요! 그것도 지고지순한 경지에 이른 검수! 나 같은 자가 거짓말을 할 거라 생각하는 거요?”
“…….”
엽현은 다소 흥분한 채로 말을 이어갔다.
“삼 년! 단 삼 년만 내 곁에서 수고해 준다면 그대가 신경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겠소. 만약 내 말이 거짓이면…….”
이때, 엽현이 말을 끊고 흑의인을 쳐다보았다.
“그대 성이 무엇이오?”
“…양(楊).”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 성을 양씨로 갈아버리겠소!”
“…….”
엽현은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요하는 건 아니오. 원하지 않는다면 도경만 가지고 떠나도 좋소.”
흑의인은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했다. 너와 함께 하는 건 지나치게 위험하다. 그럼,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어차피 이대로 발을 빼는 것은 불가능하오! 그 많은 무인을 죽였는데, 도문이 그대를 가만 놔두려 하겠소?”
엽현의 말에 돌아서려던 흑의인이 걸음을 멈췄다.
엽현은 기세를 이어갔다.
“조만간 대도지령을 소환할 것이오. 전설로만 전해오는 대도지령을 직접 보고 싶지 않소? 나를 따르기만 하면 도경 구권은 물론 나머지 도경의 해석본도 모두 넘겨주겠소!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그대 혼자 힘으로 도경을 연구하려면 천 년이 지나도 불가능할 것이오!”
“…….”
흑의인은 다시 도경을 꺼내 들었다. 잠시 내용을 훑어보던 그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를 떠나갔다.
이 모습에 엽현은 미소를 지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상대가 도경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렇다는 건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이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막념을 제외하고 아무도 해석해 내지 못한 도경을 무슨 수로 혼자 깨달을 수 있단 말인가?
엽현은 여유 있게 성안으로 들어와 난약을 찾았다.
두 사람은 대전 밖으로 난 꽃길을 따라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놀랍구려. 그대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부족했었다니.”
난약은 엽현이 한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큰 충격을 받았다.
귀일경 강자를 초살한 것도 모자라, 도노이를 죽일 뻔하다니…….
만약 도체를 익힌 것이 아니었다면 도노이는 정말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상황이었다.
엽현의 검이 영혼체에 대해 극악의 상성을 보인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만약 육신이 파괴되었더라면, 십중팔구 살아남기 어려웠으리라.
이때 엽현이 난약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난약 소저,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소.”
“부탁? 말 해 보시오.”
“혹시 현성에 살수가 존재하오?”
난약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좀 빌립시다. 도경 일 권부터 구권까지의 무학과 심법을 주겠소.”
난약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녀뿐 아니라 세상 그 누구라도 도경 심법과 무학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난약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현성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난약의 표정을 살핀 엽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살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문이 알고 있소?”
난약이 고개를 저었다.
“그걸 아는 자는 극소수뿐이오.”
“잘 됐군. 이렇게 합시다! 지금부터 그들은 나 엽현이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살수들이오!”
난약이 엽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살수 몇이 합류한다고 해서 대세를 바꿀 순 없소.”
“물론이오. 내 계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오.”
잠시 침묵하던 난약이 가볍게 손뼉을 두드렸다.
순간, 열 개의 그림자가 소리 없이 엽현 뒤쪽에 내려앉았다.
엽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들이 나타날 때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엽현은 그제야 현성이 만만치 않은 세력임을 실감했다.
현성의 저력은 분명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이 열 사람은 암살과 추적 능력이 극한에 이른 자들이오. 이제부터 그대의 명을 따르게 될 것이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아홉 권의 책이 난약 앞에 떨어졌다.
“약속대로 도경 전 권의 무학과 심법이오.”
“…손해라는 생각은 들지 않소?”
“하하, 친구 사이에 손해가 어디 있고 이익이 어디 있겠소?”
이에 잠시 망설이던 난약이 재차 손뼉을 쳤다.
그러자 또 다른 십 인의 흑의인들이 엽현 뒤에 나타났다.
총 이십여 명의 절정 고수들.
모두 현성이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살수들이었다.
“모두 데리고 가시오.”
“하하, 이럴 것까지는 없는데… 아무튼 고맙소!”
“고마울 것 없소. 여전히 그대가 손해니까.”
“하하… 난약 소저, 지금부터 아주 큰 일을 하러 갈 거요. 부디 살아서 봅시다!”
엽현은 스무 명의 살수를 데리고 돌아섰다.
이때,
“엽 공자!”
난약의 음성에 엽현이 자리에 멈췄다.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난약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심하시오.”
엽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걸음을 뗐다.
잠시 후, 엽현과 스무 명의 살수들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