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75
1476화 입에 담을 수 없는 사람
도문.
어느 대전 안, 도노삼이 가만히 앉은 채 한 곳을 보고 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엔 한 자루 척이 놓여 있었다.
도문척.
대전 안에는 몇몇 도문의 강자들도 함께 있었다.
이들의 표정은 대부분 매우 어두웠다.
이번 오유계 행에서 도문은 참패를 당했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손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도노삼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대전 밖에 나타난 도노삼은 한 남자를 마주보고 있었다.
남자의 정체는 물론 엽현이었다.
도노삼이 나타나자 엽현은 속으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보통 상대가 아니란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긴 무슨 일이지?”
엽현이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난번 그대들의 공격으로 인해 내 가녀린 마음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소. 이에 대해 정신적, 육체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바요.”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조룡의 피를 얻으러 온 것이었구나.”
엽현이 화들짝 놀라 도노삼을 쳐다보았다.
“그걸 어찌 알았소?”
“명권을 익히려면 당연히 필요할 테니까.”
“…….”
“정말로 익힐 셈이냐? 어떤 무공인지는 알고?”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심에 알려주자면, 우리 도문 내에서 명권을 완성한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었다.”
“두 사람이라면?”
“사부와 나.”
이 말에 엽현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대 역시 명권을 익혔소?”
“왜,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
“그건 아니지만…. 사용은 해 봤소? 위력은 어땠소?”
“위력? 직접 맞아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한 번 해보겠느냐?”
황당한 제안에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소!”
엽현은 황당했다.
그냥 주먹에 맞아도 죽을 거 같은데 명권이라니.
제아무리 단단한 도체라 할지라도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후후, 농담이다. 다만 명권을 혼자 익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혹은 매우 많은 길을 돌아가야 하지. 괜찮다면 내가 가르쳐 줄 수도 있다.”
엽현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대가 나를?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도노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가르쳐주겠다.”
“어째서? 이해할 수가 없군. 우리는 적대 관계이지 않소?”
이때 도노삼이 먼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같이 좀 걸을까?”
“음… 좋소. 그럽시다!”
그렇게 엽현과 도노삼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
얼마 후.
도문 뒤편에 있는 산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작은 산길을 따라 걸었다. 길의 끝에는 거대한 절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적막감을 깬 것은 도노삼이었다.
“이(二) 사형이 널 미친 듯이 노린 것은 도경 때문이었다. 네가 도경을 전부 모으면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질까 두려웠던 것이지. 물론 다른 원인도 있었다. 그건 바로 도문이 천하제일이라는 오만한 망상이었지. 그 누구도 도문을 불경하게 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지. 하지만 결국, 이 사형 역시 이용당했던 것뿐이다.”
순간,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용당해? 누구에게?”
도노삼이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는 모를 수 있겠지만, 너에게는 매우 강한 적이 있다. 얼마나 강한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가 널 죽이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너는 피할 방법이 없을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쩌면… 네 배후를 의식해서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 적이라는 자가 누구요?”
도노삼이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나도 모른다. 이건 너와 그사이의 일이니 우리 도문은 참견하지 않을 거다.”
엽현의 마음속에선 의혹이 증폭되어갔다.
도대체 적이란 자가 누구란 말인가?
이때, 도노삼이 화제를 전환했다.
“어쨌든, 명권을 배우고 싶다면 내가 알려줄 수 있다. 원한다면 육신을 강화하는 것도 도와주지.”
“조건이 있소?”
도노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와 우리 도문 사이의 모든 은원을 없던 것으로 하는 조건이다.”
“…….”
“잘 생각하거라. 도문은 네 적이 아니고, 너 역시 우리의 적이 아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누군가 우리 사이를 이간질… 정확히 말하면 사부와 너 두 사람을 악연으로 묶고자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가 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익이 상충하는 것도 아니고 원래 원수를 졌던 것도 아니지. 물론 이 사형의 지능이 다소 모자란 탓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엽현이 물었다.
“도노이는 어찌 됐소?”
“이미 옥에 가둔 상태다. 앞으로 백 년은 지나야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다. 백 년 후엔… 네가 아직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그는 네게 어떤 위협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알려주지 않을 셈이오? 나를 죽이려 하는 신비인의 정체?”
도노삼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감히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다. 이해해주면 고맙겠구나.”
엽현이 막 무어라 말하려는 이때, 도노삼이 자리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은 어느새 절벽 끝에 도착한 상태로, 발아래로는 운무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이때, 도노삼이 가볍게 손짓하자 시야를 가리던 안개가 양쪽으로 흩어지고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
다름 아닌 용의 머리였다!
절벽 아래를 가득 메운 용의 머리는 얼핏 봐서는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다.
용의 머리와 마주한 순간, 엽현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용위(龍威)!
용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이번만큼 큰 압력을 느낀 적은 없었다.
현성에서 보았던 응룡은 마치 어린아이로 느껴질 정도였다.
“저게 바로… 조룡(祖龍)?”
도노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룡의 선혈만이 현재 네 도체를 강화할 유일한 수단이지.”
“그런데… 죽은 게 확실하오?”
“…죽었다.”
엽현은 문득 호기심이 동했다.
“저런 존재가 어떻게 하다 죽은 거요?”
“그건 나도 모른다.”
“…….”
도노삼의 시선이 조룡의 얼굴로 향했다.
“그때는 나도 아직 어렸던 시절이었다. 기억나는 거라곤 사부와 조룡이 도문으로 돌아오고 며칠 후, 조룡이 갑작스레 죽었다는 거다. 사부는 이 일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 후로 사부는 삼 개월 동안 조룡 곁을 지키다가 어느 날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방금 전에 말했듯, 우리는 너와 적이 되고 싶지도, 그럴 이유도 없다. 너 역시 당장은 도문을 어찌할 수 없을 테니 이쯤에서 은원을 해소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음… 그대는 내가 대도지령을 소환하는 게 두렵지 않소? 어쩌면 내가 그대의 지위를 위협할 수도 있는데…….”
이 말에 도노삼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전혀! 오히려 기뻐서 춤이라도 추려 할 게다!”
“어째서?”
엽현이 궁금해하자 도노삼이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대도지령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곧 네가 사부께서 선택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너 같은 천재가 도문의 사람이 된다면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지. 그리고 네가 도문의 주인이 되는 것은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다. 애당초 그 자리를 원했더라면, 진즉 이 사형을 끌어내리고 내가 주인이 되었겠지.”
말을 하던 도노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사형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해왔다. 바로, 실력이 없으면 어떤 자리도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지.”
“그럼 내가 대도지령의 인정을 받으면, 그대는 내가 도문의 주인이 되는 걸 찬성할 거라는 거요?”
도노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럼 나도 반대할 수밖에 없다.”
“어째서?”
도노삼이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전에 말했듯, 대도지령의 인정은 곧 사부의 인정이다. 사부가 인정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도문의 영욕과 생사고락을 함께 나눠야 하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 역시 도문의 미래를 걸고 너를 지지할 수 없는 법이다. 만에 하나 네가 스스로 도문의 제자가 되겠다면 모를까… 그럴 일은 없지 않겠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도문 조사의 뜻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구려.”
“후후, 그렇지. 예를 들자면 내가 이 사형을 죽이고 싶지만, 사부의 체면을 생각해서 목숨만은 살려 둔 것과 같다. 아, 그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다. 그가 앞으로 네 앞에 나타날 일은 최소 백 년간은 없을 테니까.”
엽현은 아래쪽의 조룡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눈앞의 도노삼이 우호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청아나 청운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끌어들여 도문이 남에게 이용당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한편, 도노삼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유계와 도문에 얽힌 은원을 해소하는 일이었다.
엽현과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도 없을뿐더러, 모든 도경을 모은 엽현이 평범한 존재일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마음 한편으로 사부가 도문의 주인으로 안배한 사람이 엽현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대도지령이 나타나기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노삼 소저, 명권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겠소?”
도노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도체부터 시작하지. 도체를 완성한 것은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그 경지가 아직 성도경 정도로 명권을 익히기에는 상당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도노삼은 절벽 아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만, 네 혈맥이 조룡의 선혈을 흡수해도 문제없을 만큼 강력하다는 건 좋은 소식이다. 그리고 원한다면 조룡의 비늘도 나눠 주지. 그걸로 갑옷을 만들어 착용한다면, 몇몇 절대 강자를 제외하고는 널 죽이기 어려울 것이다.”
“절대 강자라면?”
“음… 예를 들어, 네 배후에 있는 하얀 장포의 여인이라던가.”
“그럼 아까 말했던 ‘신비인’이라면 어떻소?”
도노삼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구나. 내가 너무나 약한 나머지 그의 존재를 감히 언급할 수 없으니 양해하기 바란다.”
“하하… 정 그렇다면 상관없소.”
엽현이 슬쩍 웃으며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렸다.
점점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구기에 도노삼 같은 강자가 이리도 두려워한단 말인가?
‘날 죽이려 한다는 놈이 대체 누굴까?’
“자, 시간 없으니 이제 슬슬 내려갈까?”
엽현은 재빨리 생각을 거둬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갑시다!”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은 절벽 밑으로 미끄러지듯 몸을 날렸다.
* * *
어느 성역.
한 소녀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녀의 한 손에는 긴 막대 사탕이, 다른 한 손에는 잘 구워진 생선 꼬치가 들려 있었다.
다름 아닌 막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어가던 중, 갑자기 정면의 공간이 가볍게 떨리더니 누군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삼유계는 외인의 침입을 금한다. 당장 돌아가도록!”
막념이 소리가 들린 공간을 향해 외쳤다.
“엽현!”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갑자기 공간이 갈라지면서 여인 하나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얀 치마를 입고서 손에 방천화극을 든 여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막념을 마주 보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