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91
1492화 윗세대의 은원
엽현은 기가 차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부친이 외조부를 죽였다고?
이게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이란 말인가?
이때, 여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건 네 부친의 잘못이 아니었다. 네 외조부가 그의 혈맥을 강제로 취하려 했기에 벌어졌던 일이지. 게다가 외조부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 케케묵은 원한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니라.”
“저 역시 오래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그 여인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더냐. 그녀를 제압할 수 있는 건 네 풍마혈맥뿐이라고. 그런데 네가 알아서 혈맥을 봉인 당해 주었으니 이제 어떻게 싸울 셈이냐?”
“이모란 여자가 조카에게 이리 나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엽현이 억울해하며 말하자, 상대가 대답했다.
“결국, 혈육은 혈육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네 이모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로 풀어 보는 건 어떻겠느냐? 너 역시 입을 놀리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지 않으냐?”
“…….”
“그럼 큰이모는 할 일이 있으니 나중에 보자꾸나.”
여인의 음성이 사라지고, 대전 안에는 엽현의 한숨 소리만 남았다.
“은원… 빌어먹을 은원!”
엽현은 억울했다.
자기 윗세대의 은원과 자신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도대체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란 말인가!
한동안 자리에 서 있던 그는 재차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이렇게 된 것 여인과 담판을 지어야만 했다.
큰이모의 말대로 모두 한 가족이라면 왜 싸워야 한단 말인가?
대화로 풀면 될 것을!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상대가 강하기 때문이었지만…….
* * *
사유계를 떠난 엽현은 곧바로 성역을 찾았다.
일단 대화를 시도할 요량이었다.
그가 성역에 발을 디딘 이때, 성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의 그는 엽현에게서 잘린 팔을 회복한 상태였다.
“여긴 또 뭐 하러 왔느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죽이러 왔, 아니, 아니, 대화를 좀 하러 왔소. 안쪽에 기별을 넣어 주시오.”
지난번과 다른 엽현의 태도에 성주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대화? 우리 사이에 대화할 게 남아 있던가?”
엽현이 손가락으로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 말고, 저기 저 아래에 있는 이모님과 이야기하고 싶소.”
순간, 성주가 움찔했다.
“이모라니, 무슨 소릴 하는 게냐?”
“음? 저 아래 있는 여인이 내 이모라는 걸 모르는 것이오?”
“…이모를 찾으러 왔다고?”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에 성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래에는 그런 사람 없으니 이만 돌아가거라!”
“하하, 그 말 사실이오?”
엽현이 갑자기 무상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웃으며 검면으로 손바닥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성주의 안색은 붉게 달아올랐다.
이건 명명백백 자신을 위협하는 행동이 아닌가!
하지만 이 광경을 보고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신경 강자로는 엽현을 상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신경 강자의 공격은 엽현의 괴물 같은 육신에 피해를 입힐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아래쪽에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되었다. 들게 하거라.”
이에 성주가 황급히 아래쪽을 향해 예를 차리더니, 다시 엽현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가 보거라.”
“진작에 보내 주면 될 것을 꼭 시간을… 쯧쯧…….”
“…….”
성주를 지나친 엽현은 잠시 후, 어느 죽림에 도착했다.
대나무 숲을 통과하자, 넓은 공터 안에 대나무로 만든 집 한 채가 나왔다.
이때, 집 안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들어오거라.”
엽현은 주저하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의 가구라고 해 봐야 침대 하나, 책상 하나, 그리고 두 개의 의자뿐이었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는 중이었다.
엽현에게 시선을 돌린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앉거라.”
고개를 끄덕인 엽현이 여인 정면으로 가 착석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책상에는 바둑판에 놓여 있고 그 위에선 한 판의 대국이 펼쳐져 있었는데, 척 보아도 흰 돌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엽현이 바둑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백이 내 것입니까?”
여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다.”
엽현이 의외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아니라…?”
“후후, 그래. 지금 상황은 내가 어디에 돌을 놓아도 죽는 상황이지.”
“조금 전 다른 이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정말 이모가 맞는 겁니까?”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다. 나는 분명 네 친이모다.”
“그런데 왜 저를 죽이려 하는 것입니까?”
“원한.”
“윗세대 사이의 원한?”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아니… 윗세대 사이에 일어난 일을 가지고 조카에게 화풀이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까?”
“하하,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이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저 약 올리는 듯한 얼굴에 바로 주먹을 내다 꽂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겨우 참을 수 있었다.
원한진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으니 만만한 조카를 괴롭힌다고?
그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때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대화라도 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냐?”
“그렇습니다. 정확한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여인이 탁자에 책을 내려놓았다.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보거라.”
엽현이 여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이라도 절 죽일 수 있지 않습니까?”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만 하지. 만약 내가 출수하면 누군가 반드시 방해하러 나올 것이다. 심지어 너와 나 둘만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널 죽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후후,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자꾸나.”
“그럼 윗대에 있었다는 원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알려줄 수 없다. 아니, 말 하고 싶지 않구나.”
“…그러면 기어코 절 죽일 생각이십니까?”
“후후, 당연한 걸 물어보는구나.”
대답을 들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향했다.
막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엽현이 걸음을 멈추고 여인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건 분명 다른 무언가의 손을 빌려 날 죽이려는 계산이겠지요. 내 말이 맞습니까?”
여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정답이다.”
“액난지인?”
여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만하면 대답이 되었군요.”
말을 마친 엽현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방 안, 여인의 입가에 흐르던 미소가 점차 옅어졌다.
잠시 후, 그녀가 바둑판 위에 손을 얹자 모든 돌들이 불타 없어졌다.
옥석구분(玉石俱焚).
그녀의 대국에서 승자도, 패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오유계로 돌아온 엽현은 곧장 백제자를 찾아갔다.
대전 안, 엽현이 마주 앉은 백제자를 향해 말을 꺼냈다.
“부탁 하나 들어주시오. 지난번 나를 찾아왔던 자들이 누군지 알아내 주시오.”
“안 그래도 그대가 없는 사이 이미 사람을 보내 놓았소. 하지만 아직 소식이 당도하지 않았소.”
“그 말은 상대의 위치가 상당히 멀다는 의미겠구려.”
백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에도 도움을 청해 놓았으니 조만간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거요.”
“음… 현성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시오. 그들에게 부담을 줄 순 없으니까.”
백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소. 그런데…….”
백제자가 조심스레 엽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알아냈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알아냈소.”
“흠… 그게 누가 됐든 조심하도록 하시오.”
“물론 그럴 것이오.”
백제자가 말을 이어가려는 이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대전 안에 나타났다. 그림자는 엽현과 백제자를 향해 예를 차리더니, 검은 두루마리 한 권을 놓고 사라졌다.
엽현이 두루마리를 펼치자 네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신성, 북황.
신성… 북황?
엽현이 손에 가볍게 힘을 주자, 두루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난번 자신을 노린 세력은 북황 출신이란 사실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그들은 분명 그 여인의 사주를 받은 게 틀림없었다.
생각을 마친 엽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다녀오겠소.”
말을 마친 순간, 엽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 * *
북황.
비석 앞에 경건히 무릎을 꿇고 앉은 과요.
그의 뒤로는 수십 명의 무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신경을 초월한 고수들로, 과요와 마찬가지로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잠잠하던 비석이 갑자기 들썩이더니, 여인 하나가 비석 밖으로 걸어 나왔다.
여인의 옷차림은 매우 특이했다.
상의는 가슴 부위만 겨우 가린 채, 팔과 복부를 훤히 드러냈으며, 아래쪽 역시 짧디짧은 치마를 착용해 뽀얀 허벅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밖으로 나온 여인은 눈을 감은 채 한껏 공기를 들이켰다.
이때, 과요 등을 포함한 무인들이 일제히 머리를 땅에 찧으며 예를 차렸다.
“성사(聖使)를 뵈옵니다!”
“성사(聖使)를 뵈옵니다!”
여인이 옥지를 움직이자, 검은 천 하나가 흘러나와 그녀의 몸을 감쌌다.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검은 천은 그녀의 자태를 더욱 고혹적으로 보이게 했다.
이때, 여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찰나의 순간, 두 눈에서 나온 안광이 성공을 뚫고 순식간에 성역에 도달했다.
성역의 대나무집 안.
여인이 손에 둔 책을 놓고서 문밖을 쳐다보았다. 이내,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흥미롭군. 내가 선사문명을 너무 가볍게 본 모양이야.”
북황.
여인이 손을 펼치자, 한 자루 만도(彎刀)가 손에 쥐어졌다. 여인은 주저함 없이 도를 쥔 채 허공을 내리쳤다.
푸확-!
이 시각, 성역의 대나무집 안의 공간이 날카롭게 찢기면서 난데없이 한 자루 검은 도가 불쑥 튀어나왔다.
방 안에 있던 여인은 표정의 변화 없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쾅-!
검은 도가 크게 꺾이더니 천천히 허무로 변해 사라졌다.
성사는 재차 도를 휘둘렀다.
쉭-!
검은 도날이 다시 한번 성역의 여인 앞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도는 여인의 미간에서 반 촌가량을 남겨두고 허공에 멈추고 말았다.
여인의 두 손가락이 도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여인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도날이 이번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때 여인이 재차 손가락을 튕겼다.
북황, 성사의 앞쪽 공간이 갈라지면서, 한 줄기 지인(指印)이 튀어나왔다.
성사가 침착하게 손바닥을 펼치자, 엄청난 수의 도광이 일제히 지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퍼퍼퍼퍼퍽…….
찰나의 순간, 지인은 수백 조각으로 갈라져 소멸했다.
성역의 여인은 싱긋 웃고는 손을 거두었다.
북황의 성사 역시 더 이상 출수하지 않았다. 그러자, 갈 길을 잃은 도광들이 그녀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이때, 과요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성사…….”
“상대는 강하다.”
강하다!
이 말에 성사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이때, 성사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이 여인이 나의 북황에 침입해서 영혼을 탈취하고 재물을 약탈한 이유가… 그 사내아이 때문이었느냐?”
과요가 황망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엽현이란 자가 그 영혼을 모조리 흡수했습니다! 그 녀석 또한 보통 존재가 아닙니다. 육신의 강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며, 녀석의 기이한 혈맥 또한 엄청난 치유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음… 내가 직접 가서 만나보겠다. 너희는 명사(冥使)가 출관할 때까지 대기하도록.”
명사!
이 말에 과요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예, 성사!”
성사는 더 이상의 말 없이 가볍게 일보를 내딛었다. 이 한 걸음을 걸은 순간, 그녀의 신형은 이미 북황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