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495
1496화 오래전 이야기
벌레!
수무변은 침묵했다.
그 여자가 얼마나 강한지는 이미 겪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강함이었다.
이 세상에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있기는 할까?
몇 번을 물어도 답은 ‘아니오’였다.
그녀와 맞설 수 있는 것은 청삼남뿐. 하지만, 그 여인이 미쳐버리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청삼남이라도 말릴 재간이 없다.
게다가, 몇몇 존재를 제외하고는 그녀의 눈에는 모두 그저 개미 새끼에 불과했다.
이때, 무변성지의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설령 그녀가 돌아오더라도 나쁜 일은 아니야.”
이 말에 수무변이 여인을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후후, 엽현이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건, 그녀가 전면에 서서 액난지인을 모두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돌아온다면 감히 엽현을 노리는 자는 존재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엽현의 성장도 동시에 멈추게 된다. 무인은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법. 그 여자가 엽현을 홀로 내버려 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성장 때문이기도 하지.”
이때, 여인이 문득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가 보기에 우리를 포함한 이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엽현의 연마석일 뿐이야.”
“흥! 자신감이 대단하군!”
“그만큼 실력이 있기 때문이지.”
여인이 고개를 들어 한쪽 하늘을 응시했다.
“액난지인이 약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아니면 우리도 재미 보긴 힘들 거야.”
“액난지인에게도 승산이 있을까?”
수무변의 질문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먼저 네가 알아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청삼남이던 그 여자던 파괴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건 소질이 없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액난지인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던 것이지. 더 나아가, 액난지인의 근원이 엽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이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 액난지인을 제거하게 되면 엽현도 피해를 받을 텐데 과연 그녀가 손을 쓸 수 있을까? 바로 이런 우려 때문에 당시 그녀는 엽현에게서 액난지인을 제거하지 못했던 것이지.”
“흠…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뭐야?”
여인이 차를 한 모금 음미한 후, 웃으며 말했다.
“기다려야 해.”
“기다려? 언제까지?”
“후후, 보챌 것 없어. 지금까지 기다려 왔는데 조금 더 참는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잖아?”
“…….”
이번에는 여인이 물었다.
“부탁했던 일은 어떻게 됐지?”
“네 제안이 먹혀들었어.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협조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그녀가 돌아오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그 여자나 그 남자가 돌아오면 이 계획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거니까.”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에 대해서라면 걱정할 것 없다. 설령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몸을 빼기가 힘들겠지. 오히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도’ 일행이다.”
“그럼 다행이고. 그 여자만 돌아오지 않는다면 상관없어.”
이때, 수무변이 문득 고개를 들어 여인을 쳐다보았다.
“생각 난 김에 물어보지. 네 경지는 도대체 어느 정도지? 왜 네게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지 궁금하군.”
“후후, 우리가 적이 될 것도 아닌데 굳이 알아야 할 필요 있나?”
“그냥, 궁금해서.”
“음… 너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라 생각하면 얼추 맞을 거야.”
수무변은 다소 불만인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참, 조심해야 할 자가 하나 있어.”
여인의 말에 수무변이 눈을 반짝였다.
“누구?”
이에 여인이 약지를 찻잔에 담그더니, 탁자 위에 어떤 글자를 적었다.
이를 본 수무변이 미간을 찌푸렸다.
“도착한 건가?”
“음… 지금쯤이면 이미 와 있을 거야.”
“그럼 내가 상대하지.”
이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 상대는 따로 있어.”
“…계획을 자세히 설명해 봐.”
“그 여인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엽현 몸에 붙어 있는 액난지인을 실질화(實質化)시킬 거야. 그렇게 되면 삼검을 제외하고 누가 와도 엽현을 도울 수 없다.”
“좋은 계획이군!”
수무변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홀로 남은 여인은 한동안 찻잔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작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나무를 쓰러뜨리는 건 결국 개미들이라지… 이 말이 맞는지 조만간 확인할 수 있겠군.”
여인은 품 안에서 하얀 수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수건 위에는 조그만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 발자국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가에서 애통한 기색이 스치듯 지나갔다.
“왜 네가… 왜 네가 죽어야 했단 말이냐? 그의 누이가 무적이란 이유만으로? 걱정하지 말거라. 내 반드시 그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
이 수건은 그녀의 아들을 덮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당시, 액난지인으로 인해 여인은 거의 인사불성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자리에는 두 아이 중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아니, 또 다른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게 바로 천명이었다.
지난 일이 떠오르자, 여인의 눈에선 점점 더 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 * *
오유계.
엽현은 두 귀를 닫은 채, 온전히 수련에만 집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검역과 신앙지력을 완전히 융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
신앙지력은 검역을 지탱하고, 검역은 검도를 지탱한다. 두 가지 힘이 완벽하게 합일을 이루니, 엽현의 검역은 이미 이전의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다시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엽현은 혈역에도 손을 댔다.
혈역에 혈맥지력을 접목하는 시도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혈맥지력을 결합한 이후, 혈역의 위력이 크게 상승했던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그는 한 가지 간과하던 사실을 알아냈다.
혈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선혈이었던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현재로서는 풍마혈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살상력이 더 큰 풍마혈맥을 이용했더라면 혈역의 위력을 더욱 끌어 올릴 수 있었을 것을, 안타깝게도 ‘작은이모’에 의해 봉인된 상태라 시도해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혈액의 양을 조절하면 혈역의 위력도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낸 것은 또 다른 수확이었다.
그다음은 사역(死域)이었다.
사역은 혈역과 마찬가지로 사기를 필요로 했다.
사기가 깃든 사역과 그렇지 않은 사역의 위력은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혈역이나 검역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몸 안에 사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기를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백만 단위의 음령을 흡수해 사기로 전환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이런 기회는 대단히 드문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것은 암역(暗域)이었다.
암역은 파괴된 공간에서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암물질을 투입하니 위력을 배가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암물질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가?
그것은 간단했다.
암물질은 천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성공 같은 경우는 손만 뻗으면 암물질을 얻을 수 있으니, 암역을 펼치는 장소로는 제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의 수련 기간 동안 엽현이 얻은 수확은 결코 적지 않았다. 특히 네 개의 역은 더 이상 버리기 아까운 애물단지가 아니라, 언제든지 적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는 필살의 패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전 안, 엽현은 안란수와 마주 보고 앉았다.
폐관에 들어가 있는 동안 안란수는 엽현의 곁에서 함께 연구를 진행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엽현 역시 이미 그녀에게 명권을 전수해 주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안란수가 강대한 육신 없이도 명권을 익힐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명권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수명을 태우는 식으로 힘을 얻지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명권을 수련한 것이 아니라, 명권을 거울로 삼아 다른 무공을 창안해 냈던 것이다.
무도 방면에서 안란수의 재능은 정말이지 천부적이었다.
“그래서, 명권을 명검(命劍)으로 바꾸고 싶다고?”
안란수의 물음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야. 명권의 파괴력과 순살일검의 속도가 합쳐지면 엄청난 무공이 탄생할 거야.”
“쉬워 보이진 않네.”
“하하, 역시 그렇지.”
순살일검의 오의는 폭발적인 순간 속도에 있다.
만약 살상력이 장점인 명권과 합쳐지게 되면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두 무공은 양 극단에 존재하는 만큼 하나로 융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불가능한 건 아니야.”
엽현이 고개를 들어 안란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역을 이용하면 돼.”
역!
순간, 엽현은 정신이 바짝 들었다.
“맞아! 역을 이용하면 두 힘을 동시에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거야!”
안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앙지력과 검역을 동시에 펼친다면, 두 무공의 기운을 제어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네 육신의 힘까지 더해진다면 못할 것도 없지.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어. 일검을 펼치고 난 다음 쉽게 탈진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게 되면 아무리 강력한 기술이라 할지라도 의미가 퇴색 돼 버려. 게다가 원래의 순살일검 정도의 속도를 뽑아낼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쓸모가 없지.”
“흠…….”
안란수의 말뜻은 명료했다.
엽현이 역과 검기를 연구하는 것은 모두 그 무변성지의 여인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를 상대로, 한 번 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력하고도 충분히 빠른 일격이 필요했다.
정리하자면, 지금의 순살일검은 그녀에게 치명상을 입히기에 충분히 강하지 않은 것은 물론 속도 역시 부족했다. 만약 명권과 융합해서 더욱 강한 위력을 내는데 성공한다 해도, 속도가 줄어버리면 의미가 없다.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위협이 되는 검기를 두 번 이상 펼치게 놔 둘리 만무할 터.
엽션으로서는 어떻게든 속도와 위력 둘 모두를 갖춘 공격을 펼쳐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지 말고 직접 한 번 시험 해 보는 건 어때?”
안란수의 제안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탑 안으로 들어가자.”
엽현과 안란수 두 사람은 곧바로 계옥탑 안으로 진입했다.
연무장에서 수련하다간 자칫 오유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엽현은 무상검을 꺼내 들고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윽고, 그의 수명이 연소되기 시작하면서, 한 줄기 강대한 힘이 오른팔에 집중됐다.
수명지력(壽命之力)!
엽현은 눈을 감은 채, 계속해서 수명을 연소해 나갔다. 잠시 후, 오십 년가량의 수명지력이 모였을 때, 손안의 검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미 검역과 신앙지력을 운용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넘쳐흐르는 힘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한참이 지난 후, 엽현이 갑자기 눈을 뜨고 안란수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멈춰야겠어!”
안란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멈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힘이 너무나 강해서 제어할 수가 없어!”
“…….”
엽현은 아쉬움에 탄식을 토해냈다. 하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쉽게 성공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우스운 일이리라.
엽현은 손안에 모였던 힘을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수명이 줄어들긴 했지만, 첫 도전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호흡을 고른 엽현이 다시 도전하려는 이때, 갑자기 탑 구층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이에 엽현과 안란수의 시선이 동시에 구층으로 향했다. 이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은 이미 구층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바로 이때, 구층의 공간이 갑자기 찢어지면서 검은 물체 하나가 밖으로 튀어 나왔다.
이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