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03
1504화 유혹
북황.
엽현은 여전히 미친 듯이 천겁뢰를 흡수하고 있었다.
천겁뢰가 몸 안으로 유입되자, 온몸에 은은한 뇌광이 번뜩였다.
엽현은 두 눈을 감은 채, 편안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현재 그의 실력은 보통의 신경 강자를 초살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그 여인을 상대로는 여전히 승산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심지어, 도노삼과 붙어도 이길 확률이 극히 적었다. 왜냐하면 단단한 그녀의 도체를 뚫을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만약, 명검과 순살일검의 융합에 성공하고, 덧붙여 신앙지력과 네 개의 역까지 펼친다면, 어쩌면 위협은 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과 붙어야 할 여인은 도노삼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엽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할 때면 가슴이 답답했다.
죽을힘을 다해 도문을 해결했더니.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또 다른 적이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이번 적은 도문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기까지 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자포자기했을 상황!
하지만 엽현은 앉아서 당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현재 그의 급선무는 육신의 경지를 신경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전체적인 실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명권이든 순살일검이든 기본적으로 강대한 육신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검도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검역 역시 새로운 경지에 발을 디뎠으니, 육신의 힘만 더해진다면 누구와도 한번 해 볼 만한 상태가 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풍마혈맥이 여전히 봉인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풍마혈맥까지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승산은 더욱 높아졌을 게 분명했다.
이 생각이 들자 엽현은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치밀한 여자 같으니!’
물론 덕분에 불사혈맥이 깨어나긴 했지만, 역시 그의 최대 무기는 풍마혈맥이었다. 중요한 건 풍마혈맥만이 그 여인을 위협할 수 있는데, 이제는 사용할 수가 없게 돼 버렸다는 것이다.
비록 가끔씩 골치를 아프게 하긴 했지만, 막상 사라지니 그리운 풍마혈맥이었다.
바로 이때, 엽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에 들어온 한 여인.
바로 무변성지의 그 여인이었다.
엽현은 순간적으로 뜨끔했다.
하필 이럴 때 저 여인이 나타나다니!
여인은 엽현을 잠시 응시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천겁뢰라면 확실히 네 육신의 경지를 끌어 올릴 순 있겠지.”
“…또 뭘 하러 온 것이오?”
“후후, 좀 도와줄까?”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의 의사를 보이자, 여인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간의 정이 있으니 한 번 도와주지.”
여인이 손을 펼치자, 한 줄기 붉은 뇌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뇌전을 본 순간, 엽현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건 무슨 뇌전이오?”
“혈색천뢰(血色天雷)라 한다. 우연히 얻은 것인데 네게 주마.”
여인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붉은 뇌전이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쾅-!
찰나의 순간, 원래 주변에 있던 뇌전들이 사라지고, 무수히 많은 붉은 뇌전들이 엽현을 에워쌌다.
“으악-!”
곧이어, 엽현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공중에 울려 퍼졌다.
이때 엽현은 마치 온몸에 장침을 박아 넣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죽을 만큼 아프다!’
붉은 뇌전의 강력한 힘에 엽현의 단단한 육신은 점차 부식되어 갔다.
“하하하! 조금 따가울 거다. 죽을 정도는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말을 마친 여인은 뒤로 돌아섰다. 그녀의 뒤에는 어느새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나 있었다.
목희!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너희들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내게 종속되는 것, 다른 하나는 도문처럼 방관하는 것이었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너희는 둘 모두 걷어차 버린 모양이구나.”
이에 목희 역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너는 엽현에게 화를 전가하기 위해, 무고한 우리 무인들 살해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후후, 꽤나 강단이 있군.”
“오늘 여기에 온 건 우리 북황을 멸망시키기 위함인가?”
여인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오, 그것도 좋은 생각인걸?”
“자신 있으면 한번 해 보거라!”
이때, 누군가의 음성이 비석 안에서 흘러나왔다.
다음 순간, 장내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더니, 서서히 사람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여인이었다.
땅에 끌리는 긴 자주색 장포를 입은 여인은 검은 비단 끈으로 허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비록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 사이로 보이는 눈빛은 세상을 오시하고도 남을 만큼 강렬했다.
상신!
상신의 시선은 곧장 여인에게로 향했다.
“마음에 안 들어.”
“그래? 그럼 한 대 치던가.”
여인이 대답하기 무섭게, 상신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때, 어두운 하늘이 한순간 환해지더니, 거대한 뇌전 하나가 그녀의 손안으로 뚝 떨어졌다.
한 손에 뇌전을 잡고 선 상신을 보자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군.”
말을 마침과 함께 여인이 손을 펴자, 손바닥 위로 두 덩이의 화염이 피어올랐다.
한 덩이는 피처럼 붉은색이었고, 다른 한 덩이는 칠흑처럼 검은색이었다.
이 두 덩이 화염이 나타난 순간, 북황계 전체가 희미하게 변하더니, 조금씩 사라져갔다.
북황계의 공간으로는 화염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여인이 양손을 모아 두 개의 화염을 하나로 합쳤다.
한 덩이가 된 화염은 이내 한 자루 검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한 면은 용암처럼 붉고, 다른 한 면은 먹처럼 검은 검이었다.
이 광경을 보자 목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모두 물러나라.”
그녀의 음성이 떨어지자마자, 북황계 내의 있던 모든 무인들이 황급히 대피하기 시작했다.
목희 역시 전장에서 수십만 리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북황계에 남은 사람은 단 세 명.
여인과 상신, 그리고 엽현뿐이었다.
엽현 역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저 뇌전과 화염 사이에 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붉은 뇌전에 묶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바로 이때, 상신이 손에 힘을 줌과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찰나의 순간, 그녀의 손안에 있던 뇌전이 마치 한 마리 은사(銀蛇)처럼 휘어져 여인을 향해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뇌전이 지나간 공간이 굉음을 내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때, 여인이 지면을 향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순간, 화염의 파도가 넘실대면서 하늘 전체가 한 편의 불바다로 변했다.
그렇게 공중 한복판에서 화염과 뇌전이 조우하는 이 순간,
쾅-!
굉음과 함께 북황계 전체가 어둠에 파묻혔다.
칠흑과 같은 어둠이 펼쳐진 와중에도 뇌전과 화염은 여전히 서로를 물어뜯으며 격렬한 싸움을 이어나갔다.
이때, 여인이 검을 들고 뇌전을 강하게 내려쳤다.
쾅-!
결국 뇌전은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상신의 표정은 아직 평온했다.
“취(聚)!”
음성이 떨어지자, 그녀의 손안으로 흩어진 뇌전이 다시 모여들더니,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뿐만 아니라, 뇌전에서 흘러나오는 위력은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이때, 상신이 천천히 눈을 감더니 뜻을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점 그녀의 주변으로 검은 구름이 모여들었다. 이 구름 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뇌전들이 담겨있었다.
하늘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지는 모습은 마치 종말의 그 날을 연상케 했다.
이때, 상신이 돌연 눈을 뜨자, 그녀의 눈동자 사이에서 한 줄기 뇌광이 번뜩였다.
“멸(滅)!”
상신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 사이에서 수천, 수만의 뇌전이 마치 화살처럼 여인을 향해 쏟아져 날아갔다.
한 손에 불검을 든 여인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겨우 이 정도로?”
그녀의 검이 다시 한번 불길을 일으키며 날아갔다.
쉭-!
검기가 공간을 가른 순간, 사방에 만연해 있던 뇌전이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이와 함께, 원래 흑동으로 변해 있던 공간이 다시 한번 타격을 입으면서 그 틈으로 암물질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 힘은 곧바로 엽현을 향해 날아갔다.
엽현이 미리 암역을 펼쳐 놓은 까닭이었다.
암물질은 곧 엽현에 의해 빠르게 흡수됐다.
하지만 엽현은 이미 죽을 맛이었다.
두 여인의 전투 여파가 고스란히 그의 몸으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도체라 하지만 두 절대강자들 사이에서 견딘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불사혈맥이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미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일검에 뇌전을 쳐부순 여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를 본 상신이 발을 크게 구르며 상공을 향해 일지(一指)를 뻗어냈다. 찰나의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불검의 끝자락과 맞닿았다.
쾅-!
무형의 기운이 폭발하면서,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반경 백만 리 이내의 모든 것이 허무로 변해 사라졌다. 이때, 엽현의 도체도 크게 금이 일었으나, 다행히 순식간에 회복됐다.
불사혈맥 때문이었다.
엽현은 불사혈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실감했다.
이때, 여인과 상신은 여전히 허공에서 대치 중이었다.
“후후, 염력(念力)이라니, 점점 재밌어지는군!”
말이 끝난 순간, 여인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회전을 일으켰다.
쾅-!
상신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천 장 밖까지 밀려났다. 하지만 이때, 여인의 미간에는 어느새 긴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물론 이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다.
그리고 이때, 여인의 뒤편으로 신비한 힘이 물결을 일으키며 퍼졌다.
이 기운은 무려 백만 리 가까이 퍼졌는데, 이 기운 안에 있던 모든 건 그대로 허무로 변해 사라졌다.
다행히, 이 근방에 있는 게 신성뿐이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상신의 일격은 무수한 생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한편, 여인이 멀쩡한 것을 본 상신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여인이 이마를 쓱쓱 문지르며 씩 웃어 보였다.
“이게 네 최강의 공격인가? 제법 강하긴 하군. 하지만 지금보다 열 배 이상 강하다 하더라도 날 죽일 순 없다. 왜인지 아나?”
“…네 혈맥 때문이겠지.”
여인이 천천히 상신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다. 이 세상에서 단 세 사람을 제외하면 일격에 날 죽일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지.”
여인의 기운은 말하는 사이 계속 늘어나, 어느새 처음의 몇 배 이상으로 강해져 있었다.
이 모습에 상신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지금까지는… 최선을 다한 게 아니었군.”
“훗, 겨우 전력의 삼 할을 꺼내 썼을 뿐이다.”
상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한다. 널 다소 얕봤던 것 같군.”
“하하하! 걱정할 것 없다. 내 비록 검수는 아니지만, 널 고통 없이 죽이기엔 충분하니까.”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음성이 떨어진 순간, 상신의 손아귀에 재차 뇌전이 응집됐다.
그렇게 두 여인이 다시 격돌하려는 이때, 갑자기 엽현이 상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에 막 출수하려던 여인이 동작을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