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04
1505화 말을 듣지 않겠다고?
“네가 대신 나서겠다고?”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이모님 실력에 다소 미치지 못합니다.”
“다소? 하하하하! 두려움을 회피하는 방법이 정말로 참신하구나! 역시, 제 아비를 닮아 낯짝이 두꺼워!”
“청아가 두렵지 않습니까?”
청아!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렵다.”
“이모님의 실력으로는 이기지 못하는 겁니까?”
이에 여인이 웃는 얼굴로 귀밑머리를 슬쩍 넘기며 대답했다.
“그녀라면 날 매달아 놓고 죽을 때까지 때릴 수도 있지.”
“그걸 알면서도 왜 날 노리는 겁니까? 더군다나 이모와 조카 사이지 않습니까?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유라도 알 순 없겠습니까?”
“…네 모친과 관련된 일이다.”
엽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머니를 찾아가십시오!”
이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내 힘으로는 그녀를 죽일 수 없다. 게다가 친정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더더욱 내게는 기회가 없다.”
말을 듣다 보니 엽현은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대신 나를 노린단 말입니까?”
“하하! 억울하느냐? 그럼 힘으로 날 이겨 보던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엽현은 간신히 몸이 앞으로 나가려는 것을 참아냈다.
그래도 일말의 이성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때, 여인이 한쪽 허공을 쳐다보더니 무언가 발견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이쯤 해 두지.”
여인은 곧장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때, 상신이 황급히 소리쳤다.
“멈춰!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이에 여인이 웃는 얼굴로 상신을 보며 대답했다.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너희 적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순간, 상신의 안색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상신이 황급히 엽현의 손을 잡아끌며 소리쳤다.
“저 여자를 당장 멈춰! 그렇지 않으면 너도 끝장이다!”
“…….”
저 여자를 막으라고?
엽현은 어이가 없었다.
물론 자신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저 여자를 막는단 말인가?
이때, 상신이 여인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뭘 하려는지 알고는 있는가?”
이 말에 멀리 걸어가던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물론 알고 있지.”
“선이라는 게 있다. 이 선을 넘으면 통제 불능의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여인은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때 엽현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상신, 도대체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상신이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저 여자는 지금 아주 나쁜 짓을 저지르려 한다.”
“나쁜 짓?”
상신이 눈을 뜨고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지금 한가하게 질문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너도 이미 끝장이란 걸 알고 있느냐?”
“…….”
엽현은 호기심을 접어 두고서 여인의 뒤를 쫓았다.
상대가 당장 자신을 죽일 마음이 없는 이상, 따라가도 큰일은 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때, 상신이 엽현의 곁에 섰다.
“이모님! 도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여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배후가 너무나 많아서 나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려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널 죽일 수 없을 테니까!”
“…원한이 그렇게나 깊은 겁니까?”
“그래.”
“혹시 항복해도 소용없습니까?”
이 말에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엽현을 돌아보았다.
“투항?”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이 차갑게 웃어 보였다.
“그런 소리 말거라.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니까.”
어딘가로 신형을 옮긴 여인은 이윽고 어느 우물 앞에 멈춰 섰다.
조금 전의 전투로 반경 수백만 리 이내의 모든 것이 파괴됐지만, 이 우물만큼은 멀쩡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한편, 우물을 응시하는 상신의 표정은 매우 굳어 있었다.
우물 주변에는 붉은 부적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엽현이 상신에게 물었다.
“저 안에 뭐가 있소?”
“…….”
상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이때, 여인이 웃으며 대신 말했다.
“이 안에는 매우 강한 존재, 아니, ‘존재들’이 있다. 듣기로는 선사시대가 사라진 이유는 이들과 연관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나?”
여인의 물음에 상신이 고개를 치켜들고 되물었다.
“어떻게 선사시대의 사정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후후, 선사시대로부터 살아남은 건 너희만 있는 게 아니다.”
순간, 상신의 눈빛이 번뜩였다.
“또 누가 있나?”
여인은 미소만 짓고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우물로 다가갔다. 여인이 손을 뻗자, 그녀의 손안에 강력한 기운이 응집됐다.
이때, 상신이 소리쳤다.
“그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제대로 알고 있나?”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한 시대를 파멸로 몰아넣은 자들이니 분명 보통 존재들은 아니겠지.”
“그들을 봉인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강자들이 목숨을 바쳐야만 했다. 정말로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건가?”
“그건… 해 보면 알겠지.”
“그만둬! 그들은 결코 남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여인은 더 이상 대화하기 귀찮다는 듯, 그대로 우물 위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쾅-!
우물을 막고 있던 봉인이 풀리면서 엄청난 기운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 기운이 나타난 순간, 여인의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 찼다.
“재밌군! 내가 원하던 게 이런 거였어!”
반면, 상신의 표정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엽현 또한 상상 이상으로 강한 기운의 등장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바로 이때,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우물 위로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전신은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 있었고, 미간에는 인두로 지진 듯한 붉은 문양이 선명했다.
이 순간, 남자가 눈을 번쩍 뜸과 동시에, 그를 속박하고 있던 쇠사슬들이 가루로 변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미간의 붉은 각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서서히 정신을 차린 남자는 먼저 눈앞의 여인을 향해 시선을 가져갔다.
“그대가 봉인을 파괴한 건가?”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기특하구나. 내 손발이 되어 충성을 다하는 것을 허락한다.”
남자의 입에서 이 한 마디가 흘러나온 순간, 상신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이때, 어느 틈에 자리를 옮긴 엽현이 여인의 귀에 속삭였다.
“저자가 이모님을 깔보는 듯합니다.”
“후후, 그럼 일단 맞아야겠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간,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양팔을 교차해 정면을 방어했다.
쾅-!
큰 충격과 함께 남자가 수천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제자리에 멈춘 남자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여인을 향해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어리석군. 일생일대의 큰 기회를 제 발로 차 버리다니.”
이번에는 남자가 먼저 달려들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여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쾅-!
공간이 허물어지면서 그림자 하나가 수천 장 뒤로 날아갔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몸 전체가 완전히 피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더불어, 여인을 향한 남자의 눈빛도 매우 진중하게 바뀌었다.
“넌 대체 누구냐!”
여인은 말없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이 한 발을 내딛은 순간, 그녀의 신형은 이미 남자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남자가 화들짝 놀라 출수하려는 이때, 하얀 손 하나가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 순간, 강대한 기운이 그의 전신을 포박해, 말 그대로 발버둥조차 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인은 남자의 목을 쥔 채 천천히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후후, 이제 상황을 좀 파악했느냐?”
“큭… 넌 대체… 누구…….”
“지금부터는 내가 네 주인이다. 문제 있느냐?”
“큭… 크크큭… 주인? 네까짓 게 감히 그럴 자격…….”
이때, 여인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퍽-!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핏덩이로 변해 흩어졌다.
엽현이 깜짝 놀라 여인을 멍하니 바라보는 이때, 여인이 웃는 얼굴로 우물 쪽을 바라보았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감히 분신을 보내 날 시험 하려 하다니.”
이때, 우물 안에서 또 다른 남자 하나가 밖으로 튀어 나왔다.
남자는 조금 전의 그 사내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분신!
방금 죽어 없어진 것은 이 남자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남자가 여인을 향해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 시대에도 이런 강자가 존재할 줄은 몰랐군.”
여인 역시 미소로 대꾸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꺼내 준 대가로 삼 년간 내게 복종하거라. 문제 있는가?”
“훗, 거절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야… 이 자리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
순간, 남자가 차가운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때, 여인 곁에 있던 엽현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이보시오!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어찌 남의 명령을 듣고 산단 말이오? 참지 말고 확 받아 버리시오!”
남자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넌 또 누구냐?”
엽현이 눈을 끔뻑이며 대답했다.
“나는… 지나가던 과객이올시다!”
이때, 엽현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빛이 갑작스레 요동쳤다.
“액체…?”
이때 여인이 두 사람의 대화를 비집고 들어왔다.
“생각해 보았느냐? 이제 결정할 시간이다.”
이에 남자가 여인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거절하겠다. 남의 밑에 들어가는 건 내 성격과 어울리지 않아서 말이지.”
이 말에 엽현이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역시! 남자가 이 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암!”
이때 남자가 엽현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너는 액체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게냐?”
엽현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그게… 운이 좋았소! 하하하!”
“…….”
이때, 가만히 있던 여인이 손을 펼치자, 검은 상자 하나가 손바닥 위로 떠올랐다. 상자 안의 내용물을 본 순간, 남자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천지현전!?”
“후후, 갖고 싶은가?”
남자가 고개를 들어 여인을 쳐다보았다.
“천지현전이 왜 그대에게 있는 거지?”
“후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천지현전이 내 손에 있다는 것. 그리고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네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고민에 빠진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엽현이 상신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물건이 도대체 무엇이오?”
“…저건 선사시대의 가장 귀한 보물이다.”
“저자가 유혹에 넘어가겠소?”
엽현이 곁눈질로 남자를 가리키며 묻자, 상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과연,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조건을 받아들이겠다. 지금부터 삼 년 동안은 네 명령에 따를 것이다.”
이에 여인이 웃으며 상자를 거둬들였다.
“물건은 삼 년 후에 주겠다.”
이 말에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쥐었다.
남자의 행동을 본 여인이 피식 웃었다.
“불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뺏어 보던가.”
잠시 여인을 노려보던 남자는 결국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내가 뭘 해야 하지?”
“아직 때가 아니다. 당분간은 대기할 것이다.”
여인은 이번에는 우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때, 우물 안쪽에서는 여러 개의 강대한 기운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듯 넘실대고 있었다.
“네 동료들은 여기 남아서 명령을 기다린다.”
“원한는 대로 하겠다.”
대답을 마친 남자가 우물을 향해 가볍게 손을 내리누르자, 소란스럽던 우물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때 여인이 싱긋 웃으며 엽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린 조만간 다시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