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활을 쏴라
‘형제라고?’
청삼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사라져가는 백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형제의 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육반장과 같은 가까운 친구들이 있었다.
만약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연고도 없는 청주까지 먼길을 오지도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 세상엔 형제의 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청삼녀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복잡한 심경이 눈빛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분명 육반장에 대한 걱정이었다.
지금 상황은 이미 젊은 세대 간의 경쟁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중토신주에서 젊은 무인들 간 전쟁이 벌어질 때면 어떤 선을 그어 놓고 절대 그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창목학원과 암계는 이미 그 통제선을 넘은 지 오래였다. 이미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는 엽현이 아닌 그의 사부를 제거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두 개의 거대 세력이 전력을 다해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중토신주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후폭풍이 너무나도 거세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세력들 간에도 연합이란 것이 있다. 두 세력 간에 일어난 작은 불씨가 중토신주 전체 세력이 참여하는 큰 전쟁으로 이어지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리고 중토신주에서 삼천 년 동안 뿌리내린 창목학원과 암계의 저력은 또 얼마나 깊은 것인가?
만약 저 세력이 진심으로 달려든다면 과연 이 세상에 막을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이는 결코 검선 하나가 나선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닌 것이다.
심지어 검선 두 명이라 해도 불가능하다.
검선이란 존재도 사람인 이상 무적은 아니었다.
청삼녀가 낮게 한숨을 토해낸 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걸음을 옮겼다.
이는 엽현이 아닌 육반장을 위한 것이다.
말려봤자 소용은 없고, 그렇다고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는 노릇이다.
넓게 펼쳐진 평원, 십여 마리의 흑랑들이 미친 듯이 달리고 있다.
엽현과 육반장은 비록 신합경은 아니지만 이미 그 실력은 충분했다.
강국의 남부는 이미 함락된 상태였다. 이는 필시 대운제국의 지원이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구가 몇몇 병사들을 데리고 간다 해서 상황을 바꾸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지원을 가야만 했다.
현재 능한 등은 이미 신합경에 오른 데다가 최상품 무기들까지 갖추고 있었다. 만약 전장에 나선다면 수만의 병사들 사이에서 피로 강을 만들 수 있는 예리한 검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 * *
저국 황성의 성벽 위.
용포를 입은 척발언이 뒷짐을 지고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곁으로 한 노부인이 다가왔다.
“전하, 조사결과 대운제국이 이미 출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초국과 월국 군사들 사이에 대운제국의 병사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척발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흑염군은?”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척발언의 두 눈이 천천히 감겼다.
“금오위(金吾衛)와 그림자들이 언제든 출격할 수 있게 준비시켜라.”
“전하… 하지만…….”
척발언이 두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린 법이다!”
한편, 강국의 취선루에서는 오 루주와 팔 루주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들 외에도 노인 한 명이 가장 상석에 위치했다.
이 노인은 바로 취선루 본부에서 급파된 사 루주였다.
그의 경지는 만법경 이상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가볍게 찻잔을 내려놓은 사 루주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손을 떼야 할 것 같다.”
이에 오 루주가 화들짝 놀랐다.
“본부의 뜻입니까?”
사 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 회의로 나온 결과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취선루는 창목학원과 암계의 기분을 거스르면서까지 엽현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이제 와서 손을 떼면 손해가 너무 막심한 것이 아닙니까?”
이에 팔 루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습니다. 지금에 와서 손을 떼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때 사 루주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 뒤 말했다.
“너희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이번에 창목학원과 암계에서 호도자에게 ‘생사령(生死令)’을 요청했다. 그리고 호도자 측에서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지.”
‘생사령(生死令)이라고!’
팔 루주와 오 루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었다.
중토신주의 세력들은 서로 함부로 전투를 벌일 수 없다. 만약 어떤 일이 벌어져서 불가피하게 전쟁을 벌여야 한다면 반드시 이 ‘생사령’을 구해야 했다.
일단 이 생사령이 발동되면 그때부터는 서로 한 쪽이 살아남을 때까지 피를 흘리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생사령을 구했다는 것은 창목학원과 암계가 전면전을 펼치기로 결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상황이 이제 젊은 세대 간의 전쟁만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 루주가 조용히 말했다.
“저들은 이번 기회에 엽현 뿐 아니라 검선까지 제거할 작정이다. 만약 우리 취선루가 계속 엽현 측에 서게 된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인데, 우리 취선루로서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
그 말에 오 루주와 팔 루주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제는 전면전쟁(全面戰争)이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만법경 보다 낮은 경지의 무인 간의 전투였지만 앞으로는 만법경 강자도 가세하게 될 것이란 뜻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전쟁이 벌어지는 청주는 조만간 거대한 피바람이 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취선루는 굳이 큰 손실을 내면서까지 이 전쟁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잠시 후, 사 루주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 몸 전체가 끌려오는 법이다. 만약 우리가 여기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극심한 내상을 입는 것은 물론, 취선루 전체가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능력이 되는 한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순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이 필요한 물건을 구해 준다든지 혹은 어떤 정보를 제공해 주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우리 무인을 내보내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사 루주가 문득 오 루주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이곳이 정리되는 대로 중토신주로 가서 만법경에 이르기 위한 폐관에 들어가거라.”
오 루주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 루주를 향해 말했다.
“엽현에게 명계 급 영검 한 자루가 필요합니다.”
“알았다. 내 즉시 사람을 보내 찾아보도록 하겠다.”
말을 마친 사 루주가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득 문 앞에 멈춰선 그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취선루를 대표하는 자들이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다간 취선루가 망국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사 루주가 자리를 떠나자 방 안에 남은 오 루주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소.”
팔 루주의 말에 오 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알고 있소. 휴, 창목학원과 암계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정말 몰랐구려.”
“엽현에겐 천재들조차 능가하는 재능이 있는 데다가 그 뒤에는 검선이 버티고 있으니 저들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을 것이오. 더 이상 엽현이 성장하게 내버려 둔다면 그들의 앞날이 불투명해질 테니 말이오. 게다가 엽현은 다른 길을 개척할 가능성도 적지 않소.”
오 루주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팔 루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팔 루주가 말을 이어 나갔다.
“내 말은 창목학원과 암계가 이와 같이 결정한 데에는 다른 원인이 섞여 있다는 뜻이오. 만약 엽현이 중토신주의 세력에 투신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소? 예를 들어 창란학원 같은 세력에 말이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창목학원이 상대해야 할 적은 엽현과 검선만이 아니게 되는 것이오.
물론 지금으로서는 창목학원과 암계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엽현을 거둬들이려는 세력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말이오.”
오 루주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었다.
다른 세력은 물론이고 현재는 취선루조차 감히 엽현을 거둘 수 없던 것이다.
이번에 창목학원과 암계는 정말로 상대와 동귀어진할 생각까지 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오 루주가 뭔가 결심한 듯한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어쨌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돕기로 합시다!”
* * *
강국 남쪽 국경.
개양성(開阳城).
강구가 망루위에 올라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그녀의 눈에 새까만 기병들이 들어왔다.
초국의 철기(铁騎)였다. 족히 십만은 될 듯싶은 대군이었다.
가히 초국의 모든 기병들을 다 끌고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기병을 둘러싸고 있는 보병들이 있었는데, 이는 공성전을 대비한 병력들이었다.
개양성 안에도 십만에 달하는 병력이 있었지만, 그 표정들은 하나같이 어둡기만 했다.
왜냐면 저 기병들 사이에 대운제국의 강자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주 지역의 맹주인 대운제국 세력은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대운 제국이 자랑하는 흑염군은 엄청난 군대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얼마 전 백 명이 되지 않는 흑염군이 일개 국가를 멸망시킨 일은 모두 익히 알고 있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들인가?
이들 병사들에게 대운제국은 그야말로 귀신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강국도 맞설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저들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강국은 그날로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될 테니 말이다.
강구가 고개를 돌려 곁에 있던 부장을 향해 말했다.
“동쪽의 상황은?”
“임소 장군의 대군이 잘 버티고는 있지만 상황이 좋진 않습니다. 월국 병사들 사이에 신합경 강자들이 섞여 있다는 소식입니다. 게다가 한두 명이 아닌지라 일반 병사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고 합니다. 배소호 원수가 합류한 뒤로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철저히 수세에 몰려 있습니다!”
강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바로 이때, 기병들 사이에서 움직임이 일었다.
이에 성 위에 있던 병사들이 목을 길게 빼고 성 밖을 내려다보았다.
초국 기병들 앞에 한 무리의 이만여 명에 달하는 공성보병대가 위치 해 있었다. 그들 앞에 또다시 수천 명이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병사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이었다.
바로 강국의 백성들이었다.
그들 중엔 노인, 아녀자 그리고 어린아이들까지 섞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자 강국 병사들이 괴로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어느새, 초국의 사병들이 강국의 백성들을 앞세워 성 가까이로 접근했다. 이때 병사들의 얼굴을 본 강국 백성들이 미친 듯이 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풀 한 포기라도 잡아보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자 성 위에 모든 병사들의 시선이 강구에게로 향했다.
백성들은 점차 성에 가까워졌고, 초국의 공성부대가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강구는 고민에 빠졌다.
만약 성문을 연다면 그 틈을 타 초국의 병사들이 성문을 파괴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몰살당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개양성이 뚫리면 그때부터 저들은 황성까지 무혈입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강국 백성들과 초국의 병사들은 계속 성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때, 강구가 한 걸음 내디디며 무표정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활을 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