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20
1521화 드디어 왔구나
요수는 천천히 배를 깔고 자리에 엎드렸다.
이미 장기전을 결심한 듯한 모습이었다.
엽현은 이 모습이 상당히 추잡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해결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비록 그의 검이 빠르긴 하지만, 한 방에 요수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요수에게 먹힐만한 공격을 가하려면 암물질의 힘을 이용해야 하는데, 요수의 입장에서는 멀쩡한 공간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렇다고 엽현이 후퇴하려고 하면 이번에는 요수가 추격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요수의 전략은 바로 엽현의 기운을 천천히 빼놓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엽현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식이라면 평생이 가도 승부를 내지 못할 판이었다.
하지만 불리한 것은 역시나 계속해서 공간을 파괴해야 하는 엽현 쪽이었다.
요수는 가만히 거리를 벌리고만 있어도 되지만, 엽현은 지속적으로 현기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결코 엽현에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
이때, 엽현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뒤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요수가 벌떡 일어나 추격에 나섰다.
요수가 지면을 박차고 날아오르자 주변 공간에 커다란 변형이 일었다. 하지만 힘을 조절한 탓에 파괴되지는 않았다.
둘 사이의 거리가 어느 정도 좁혀진 이때, 엽현이 갑자기 뒤로 돌면서 맹렬히 검을 휘둘렀다. 그의 목표는 요수가 아니라 그 앞에 있는 공간이었다.
검이 떨어지자, 요수 발 앞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검은 공간 앞에 아슬아슬하게 멈춰 선 요수는 재빨리 지면을 박차고 천 장 밖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때, 요수가 멈춰 선 곳을 향해 한 자루 검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검이 휘젓고 지나가는 공간은 순식간에 무너져 칠흑 같은 어둠을 드러냈다.
무너진 공간을 통해 암물질이 밀려드는 것을 본 요수는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뒤로 신형을 물렸다.
그가 천 장 밖에 도착한 이때, 또다시 검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공간이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이를 본 요수는 안도하며 가만히 서서 검을 맞이했다.
쾅-!
검이 요수의 머리를 강타한 순간, 요수가 재빨리 검을 낚아챘다. 뒤이어 검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요수는 검신을 발로 밟아 검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후후, 인간. 이걸 어쩌지? 이제 검을 쓸 수 없겠구나?”
엽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매우 어둡게 변해 있었다.
이를 본 요수는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하하하! 서두르다 일을 그르쳤구나! 이것으로 내 승리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요수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엽현 머리 위에 도착한 요수가 엽현을 향해 맹렬한 일장을 내리쳤다.
마치 태산이 뚝 떨어지는 것 같은 위력에 엽현 주변의 공간이 기이한 변형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간은 부서지지 않았다.
엽현은 상대의 엄청난 공격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엽현이 손을 펼치자, 무상검이 그의 손안으로 돌아왔다. 다음 순간, 엽현은 요수가 아닌 바로 앞의 공간을 향해 검을 힘껏 내리쳤다.
이미 요수의 기운으로 인해 약해진 공간은 작은 힘으로도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검을 휘두른 이 순간, 요수에게 가격당한 엽현이 힘없이 날아갔다.
바로 이때, 요수 주변의 공간이 유리처럼 박살 나면서 암물질로 이뤄진 기검들이 튀어 나왔다. 찰나의 순간, 무수히 많은 기검들이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순간, 귀가 먹을 정도의 엄청난 굉음이 산맥 전체를 크게 뒤흔들었다.
이 폭발 속에서 요수는 천 장 가까이 튕겨 나갔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기검들이 끝없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면서 반경 수만 리 이내의 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흑동으로 변모했다.
이때, 엽현이 양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응(凝)!”
음성이 떨어진 순간, 암물질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기검 수만 자루가 허공을 빽빽이 메우며 나타났다.
하지만 엽현의 안색도 매우 창백해진 상태였다.
지나치게 많은 현기를 소모한 탓이었다.
엽현은 시간 끌지 않고 곧바로 기검을 폭발시키려 했다.
바로 이때, 요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항복! 항복하겠다!”
항복?
이 말에 정신을 차린 엽현은 요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조금 전 있었던 폭발 탓에 그의 전신엔 상처가 가득했고, 두 날개는 반 이상이 사라진 등 처참한 몰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하자! 네가 이겼다!”
말을 마친 요수는 뒤쪽의 평원을 흘끔 쳐다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사라졌다.
요수가 도망친 모습을 보자, 엽현은 그제야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사실 엽현은 기검들을 온전히 터트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미 기력이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 공격을 감행했다면, 자신 또한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엽현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방금 전, 요수와의 대결에서 그는 거의 모든 기운을 소진했다. 만약 싸움이 조금만 더 길어졌더라면 자신이 먼저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엽현은 이번 경험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속도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속도는 요수보다는 빨랐지만, 검의 위력은 상대에게 치명적인 위력을 주기엔 한참 모자랐다.
한마디로 말해 검의 위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다만, 이번 전투를 통해 얻은 수확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수확은 바로 검역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육신이 강할 때는 크게 중용되지 않았던 검역이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비장의 한 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나고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그의 몸은 대략 칠 할 정도가 회복된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서 신경 급 육신과 불사혈맥이 조금은 그리운 엽현이었다.
예전의 몸과 혈맥이 있었더라면 조금 전의 요수 정도는 간단히 말려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진정한 검수의 길을 걷기로 한 이상, 외력에 대한 그리움은 모두 떨쳐버려야만 했다.
엽현은 손안의 검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은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때의 엽현은 자신 안에서 뭔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건 바로 자신감이었다.
검에 의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검도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늘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자신감의 근원은 강력한 육신도, 혈맥도 아닌 단지 손안에 쥔 한 자루 검이었다.
그렇게 두 시진 가량을 걷자, 마침내 평원이 끝나고 엽현 앞에 광활한 밀림이 펼쳐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태양이 지고 날이 어둑해진 상태였다.
호흡을 가다듬은 엽현은 밀림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밀림 안은 풀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분명 평범한 상황은 아니었다.
엽현은 다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밀림 가로지르지 않고 빙 돌아간다면 한두 시간 정도만 더 걸으면 충분히 반대쪽에 도착할 듯 보였다.
고민 끝에 엽현은 우회로를 택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은 수련을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개 위험한 환경일수록 수련하기에 적합한 경우가 많다.
숲 안으로 들어서자 주변이 매우 어둡게 변하면서, 엄청난 압박감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엽현은 여유를 유지한 채 천천히 걸음을 뗐다.
잠시 후, 엽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순간, 주변의 나무들이 파르르 떨더니, 어디선가 중후한 음성이 들려왔다.
“인간인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어찌 여기까지 온 거지?”
“수련을 하러!”
“그러기엔 매우 위험한 곳인데?”
엽현은 대화를 하면서도 연신 고개를 돌려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때, 상대가 웃으며 말했다.
“헛수고하지 마. 넌 날 찾을 수 없으니까.”
“어째서?”
“왜냐하면, 나는 목령(木靈)이니까! 목령이 뭔지 알아?”
천지지령(天地之靈)!?
이곳에 요수 말고도 천지지령이 존재한다는 것은 엽현에게는 다소 의외의 소식이었다.
“인간, 이 앞쪽은 요수왕 수금(秀擒)의 영역이야. 엄청나게 강한 데다 성격도 괴팍해서 잘못 걸렸다간 골로 가기 십상이지. 그러니 그쪽으로 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하하, 그걸 왜 내게 말 해 주는 거지?”
“안 그러면 네가 죽을 테니까!”
뜻밖에 친절에 엽현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알려줘서 고맙군.”
“인사는 됐고, 알아들었으면 이만 돌아 가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는 갈 수 없어.”
“뭐? 어째서?”
“훗, 나는 꼭 강해져야만 하거든!”
“그래? 내가 보기엔 이미 충분히 강한 거 같은데?”
“아직 한참 멀었어.”
“더 강해지고 싶다는 거야?”
“정답!”
말을 마친 엽현은 다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눈앞으로 나무 병 하나가 날아들었다.
엽현이 의아해하며 병을 받아들었다.
“이건…….”
“정목영액(精木靈液)이야. 상처를 치료할 때 도움이 될 거야!”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 목령이라는 존재의 제안은 순수한 선의인 것 같았다.
엽현은 거절하지 않고 웃으며 병을 품 안에 갈무리했다.
“고마워.”
“천만에! 그럼 조심하라고, 인간!”
“잠깐, 나도 줄 게 있어.”
엽현이 손바닥을 펼치자, 수많은 자기가 사방에 떠올랐다.
이때, 목령의 경악에 찬 음성이 울려 퍼졌다.
“허, 헉! 인간! 이건 도대체 무슨 자기야? 이렇게 정순한 자기는 난생처음이야!”
“하하, 마음에 들어?”
이때, 엽현 앞에 여인 하나가 홀연히 등장했다.
나뭇잎처럼 푸른색 치마를 입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여인은 흡사 책에서 묘사하는 정령의 모습과 흡사했다.
여인은 사방에 둥실둥실 떠 있는 자기를 보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다 네 거야.”
여인이 눈을 깜빡이며 엽현을 돌아보았다.
“정말로?”
“정말로!”
“하, 하지만… 이렇게나 귀한걸…….”
엽현이 손안에 든 나무 병을 흔들며 웃으며 대꾸했다.
“이것도 귀한 건 마찬가지지.”
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여기 이 자기에 비할 바는 아니야. 이 정도 자기라면 내가 진화하기에 충분한 양이라고!”
“하하, 괜찮으니까 어서 받아.”
“…그럼 진짜 가져간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몽땅 가져가!”
“고, 고마워!”
여인은 곧바로 크게 숨을 들이키자, 주변에 있던 자기들이 그녀의 코를 통해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기가 몸 안에 들어온 순간, 여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면서, 정순한 기운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이와 동시에 사방의 산천초목 또한 그녀를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여인의 모습을 지켜보던 엽현은 곧 돌파가 임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작은 탑이 준 자기가 이만큼 대단할 줄은 엽현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작은 탑 안에는 분명 훨씬 더 많은 양의 자기가 남아 있을 게 분명했다.
고민 끝에 엽현은 작은 탑을 불러내 한 움큼의 영기를 더 꺼내도록 했다.
그러자 여인의 주변은 순식간에 보랏빛 자기로 가득 메워졌다.
마지막으로 여인을 한번 쳐다본 엽현은 그대로 그녀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가 돌파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금방 끝날 일은 아닐 것이다. 엽현 또한 시간이 없으니 여기서 헤어지는 게 옳은 결정이었다.
그렇게 한 시진가량 전진했을 무렵.
엽현은 또 다른 형태의 숲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막 숲 안에 발을 디뎠을 때, 누군가의 음성이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드디어 왔구나! 오랫동안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