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23
1524화 죽여 봐!
엽현은 당황스러웠다.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어찌 알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곳은 오유계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곳에 방문한 것도 처음이니 아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호호, 내가 어떻게 널 알고 있는지 궁금한 표정이로구나.”
“…그렇소.”
남자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엽현, 네게 한 가지 보물이 있다는 소문이 있더구나.”
“보물?”
“그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엽현이 웃으며 되물었다.
“무슨 보물을 말하는 것이오?”
“네가 무슨 보물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보물이 하도 많아서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소.”
“호호호! 내가 말하는 건 바로 자기다.”
자기(紫氣)!
이 말에 엽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쳐다보았다.
“그대가 어찌 자기를 알고 있소”
“후후… 너는 모르겠지만, 목령이 돌파하려 한다는 소식은 이미 요왕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네게서 자기를 얻었지.”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되물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내 이름은 어찌 알고 있는 것이오?”
“하하, 알아맞혀 보거라!”
이 대답에 엽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어 보였다.
“역시 이 동네는 매가 약인가!”
팟-!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진 순간, 남자의 바로 앞 공간이 갑자기 찢어졌다.
남자가 깜짝 놀라 피하려 했지만, 이미 그러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요수의 실력으로 원래의 몇 배나 빨라진 엽현의 검을 피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때, 남자가 두 손가락을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낭혼(狼魂)!”
쾅-!
순간, 남자의 뒤로 늑대의 영혼이 현신했다. 늑대가 크게 울부짖자, 강력한 영혼력이 불어와 엽현의 검을 가까스로 멈춰 세웠다.
기습에 실패한 엽현은 무의식적으로 진혼검을 소환하려 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영혼체의 천적인 진혼검을 사용한다면 늑대의 영혼을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수련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었다.
이때, 남자가 웃으며 엽현에게 말을 걸었다.
“과연 보통내기가 아니었구나!”
잠시 말없이 남자를 응시하던 엽현은 손을 펼쳐 한 줌의 자기를 소환했다.
작은탑에게서 얻어 낸 자기였다.
자기를 본 순간, 남자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동자에서 탐욕이 섞인 눈빛이 번뜩였다.
이를 본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말 해 보시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오?”
“호호, 알아맞혀 보라니까!”
남자의 대답에 엽현이 곧장 신형을 날렸다.
엽현이 다시 출수하려는 것을 본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하나로 모았다.
“혼멸천지(魂滅天地)!”
남자 뒤에 있던 늑대의 영혼이 포효하는 순간.
콰쾅-!
남자 정면의 공간이 엄청난 폭발과 함께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때, 무너진 공간 사이에서 수만 자루의 기검이 순식간에 응집되더니,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거대한 폭발에 휘말린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이때, 어디선가 날아든 검이 늑대의 영혼을 그대로 관통했다.
일검정혼(一劍定魂)!
비록 진혼검을 사용했을 때와는 위력이 천차만별이었지만, 일검정혼은 그 자체로 영혼체에 대한 억지력이 대단한 초식이었다.
검에 관통당한 늑대의 영혼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소멸했다.
이때, 재차 커다란 충격을 받은 남자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남자가 지면에 쓰러진 이때, 한 자루 검이 날아와 그의 미간 바로 앞에 멈췄다.
검을 쥐고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엽현은 무심한 얼굴로 남자를 내려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묻겠소.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건지 말하시오.”
반 협박에 가까운 말에, 남자는 오히려 독기 어린 눈으로 엽현을 쏘아보았다.
“놈! 넌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거다! 내 아버지가 누군지 아느냐? 바로 망산의 요왕…….”
엽현은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바로 검을 휘둘렀다.
서걱-!
검광이 번뜩임과 동시에 남자의 목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목이 잘린 남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한 듯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단칼에 남자를 살해한 엽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바로 이때, 남자의 시체에서 붉은 실선 한 가닥이 떠올랐다. 이 선은 엽현의 육신에 연결돼 있었다.
이때, 엽현이 돌연 눈을 부릅떴다.
액난인과선!
“역시 너였구나!”
액난인과선을 발견한 엽현은 곧바로 계옥탑을 찾았다.
액난문은 여전히 구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엽현은 곧장 액난문 앞으로 다가섰다.
“지난번 목령과 만나게 된 것은 분명 선한 인연을 맺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대황산맥 대부분의 요수들과는 악연을 맺게 됐다. 내가 지니고 있는 자기는 그들에게 엄청난 유혹이었을 테니까. 결국, 그들은 나를 찾아올 수밖에 없을 텐데, 이때 내가 그들을 죽이면 더욱 깊은 악연을 형성하도록 설계돼 있을 것이다. 내 추측이 맞나?”
액난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가 더 많은 악연을 맺거나 저들이 날 죽이길 바라는 것이겠지? 그렇지?”
액난문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엽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 요수가 내 이름을 알게 된 것도 네가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 아닌가?”
“…….”
한동안 액난문을 응시하던 엽현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돌아선 엽현은 웃고 있었다.
액난문은 더 이상 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양심이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당당하게 살아가면 될 뿐이다.
다른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엽현이 떠나고 난 후, 액난문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 * *
계옥탑을 빠져나온 엽현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액난지인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옆에서 무슨 일이 있든, 자기가 해야 할 일만 잘해 내면 그만이었다.
잠시 후, 바삐 걸음을 옮기던 엽현 앞에 새로운 요수 하나가 등장했다.
요수의 두 눈에는 이미 탐욕이 가득했다.
“인간, 듣자 하니 네게 자기가 있다고…….”
엽현이 두 말없이 바로 검을 뽑았다.
슈욱-!
선혈이 튀고, 요수의 머리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시 후, 엽현은 이런 식으로 늪지대의 끝에 이르렀다. 이때, 그의 뒤편으로는 수십 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바로 이때, 한쪽에서 겁에 질린 음성이 들려왔다.
“이, 인간…….”
엽현이 고개를 돌리니 그의 오른편에서 자그마한 요수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요수는 백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꼬리가 두 개였다.
엽현이 웃으며 질문했다.
“무슨 일이지?”
엽현은 요수가 한동안 자신의 뒤를 쫓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저, 그러니까… 제발 부탁인데 자기를 좀 나눠 줄 수 있을까? 아주 조금이면 된다!”
이 말에 엽현이 요수를 위아래로 살핀 후, 웃으며 되물었다.
“자기를 가지고 뭘 하려 그러지?”
요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얼마 전 아버지가 전투 중에 심한 부상을 입고 쓰러지셨다. 만약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오래 견디지 못하실 거다!”
“진짜로 하는 소린가?”
“저, 정말이다! 만약 원한다면 아버지의 상태를 보여 줄 수도 있다. 가, 같이 갈 텐가?”
“음… 좋아! 직접 보고 판단하지!”
엽현이 제안을 수락하자, 요수의 안색이 급격히 밝아졌다.
“그, 그럼 바로 안내하겠다! 이리로…….”
요수는 곧장 어딘가를 향해 서둘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엽현 또한 바로 요수의 뒤를 쫓았다.
잠시 후, 요수가 안내한 곳은 어느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동굴이었다.
동굴 안에는 몸집이 거대한 요수가 바닥에 누워 힘겹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온몸이 피투성이인 것이 척 봐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엽현은 상대의 부상 정도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때, 엽현을 발견한 요수가 벌떡 일어나더니 죽일 듯한 시선으로 엽현을 노려보았다.
“인간!”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벌레 같은 인간 놈아!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엽현은 말없이 씩 웃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순간, 그의 손바닥 위에 수십 가닥의 자기가 떠올라서 요수를 향해 날아갔다.
자기를 본 순간, 요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건…….”
엽현이 가볍게 손짓하자 자기가 곧장 요수의 코와 입을 통해 몸 안으로 흡수됐다.
쾅-!
자기가 체내로 유입되자, 요수의 몸 주변으로 정순한 영기가 발산됐다. 뒤이어 상처로 가득했던 그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요수의 상처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자 엽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서 떠나갔다.
이때, 요수의 떨리는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자, 잠깐만…….”
엽현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자, 요수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맙다, 인간.”
엽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동굴을 빠져나왔다.
이때, 어린 요수가 엽현을 뒤따라 나왔다.
“고, 고마워.”
“하하, 별일도 아닌 데 뭘.”
이때, 뭔가 떠오른 엽현이 자기 수십 가닥을 꺼내더니 소녀를 향해 밀어냈다. 천천히 날아든 자기는 곧바로 어린 요수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기가 체내로 들어온 순간, 요수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근골과 경맥이 기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이 어린 요수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들이마신 자기는 다른 사람도 아닌 영조의 자기였으니까!
잠시 후, 어린 요수의 몸 전체에서 영롱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몇 가닥의 자기만으로 원래의 경지를 단숨에 뚫어 버렸던 것이다!
크게 숨을 고른 요수는 눈을 뜨고 엽현을 잠시 응시하더니,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고, 고마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는 무슨. 잘 지내도록 해.”
엽현은 손을 휘저으며 뒤돌아섰다.
이때였다.
“잠깐!”
막 떠나려던 엽현이 다시 요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요수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곳의 많은 요수들이 모두 네 목숨을 노리고 있는데, 왜 날 죽이지 않고 오히려 도와주기까지 한 거야?”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저들은 날 죽이려 왔지만, 너는 도움을 구하러 온 거였으니까. 이 두 개는 아주 큰 차이가 있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자, 잘 모르겠어!”
엽현은 우물쭈물 대답하는 요수가 귀여워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이만 가야 하니, 잘 지내거라!”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자리를 떠났다.
어린 요수는 멀어져가는 엽현의 뒷모습을 보며 한참 동안 무언가를 생각했다.
* * *
천천히 걸음을 옮긴 엽현은 어느 협곡에 도착했다. 길 양쪽으로 구름을 뚫고 서 있는 산맥은 매우 험준한 모습이었다.
엽현은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이동했다.
그는 이곳에 오면서부터 부단히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 생각해 왔다.
사실 그는 자신을 직시하게 되면서 엽현이란 사람이 얼마나 단점이 많은 무인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음만 먹는다면 이런 단점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은 단점투성이긴 하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을 마친 엽현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도처에 숨어 있는 강자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려 왔으리라.
시선을 거둔 엽현은 다시 정면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간단한 수련이 될 줄 알았지만, 상황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상관 없었다.
자신의 길을 막는 자가 있다면 그게 신이든 악마든 쳐부수고 나아가면 될 일이니까!
바로 이때, 엽현이 걸음을 멈췄다. 그의 정면, 대략 백 장쯤 떨어진 곳에 요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의 머리를 한 요수는 발이 세 개였고, 몸집은 작은 산처럼 거대했다.
요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인간, 얌전히 자기를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만약 조금이라도 반항한다면…….”
이때, 요수의 음성이 뚝 끊기고, 엽현이 그의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이 그대로 걸음을 옮기는 이때, 요수의 몸이 양단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요수의 피는 그대로 지면을 적셨고, 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이때, 앞쪽에서 걸어가던 엽현이 다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 순간, 엄청난 기운이 허공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마치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이 기운 앞에서 엽현은 작은 돛단배 신세일 뿐이었다.
이를 본 엽현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미는 순간, 그의 눈가에서 흉흉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죽일 테면 죽여 봐!”
쾅-!
엽현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한 줄기 강대한 검의가 하늘로 솟구치더니, 허공에 머물던 기운을 갈기갈기 찢어냈다.
엽현의 몸에서 계속해서 쏟아진 검의는 태풍처럼 휘몰아쳐, 이내 대황산맥 전체를 집어삼켰다. 이내 대황산맥은 금방이라도 증발할 것처럼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이 시각, 대황산맥의 끝자락.
엽현을 내려다보고 있던 한 남자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죽일 테면 죽여 봐’라니… 마음에 쏙 드는 대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