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25
1526화 경거망동하지 마!
검수!
엽현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요수들이 제 발로 그 남자를 찾아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때, 주저하던 엽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근데…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그 남자를 왜 찾아간 거지? 찾아서 뭐 하려고?”
이 말이 고월요왕이 웃으며 대답했다.
“너희가 이곳에 함께 들어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 않나?”
“그래서? 내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봐 미리 선수를 친다는 건가?”
고월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만약을 대비해 방해가 될 만한 건 제거 해 놓아야지!”
제거?
엽현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요수들이 그 남자를 제거한다고?
“한데… 표정은 왜 그런 게냐?”
고월요왕이 묻자 엽현이 고민 끝에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
“크하하! 어차피 유언이 될 것인데 얼마든지 말 해 보거라!”
이에 엽현이 씩 웃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너네 엄청 잘했어!”
남자를 죽이러 간다고?
엽현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멍청이들은 인간 세상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요수들이 한술 더 뜨지 않은가!
한편, 엽현의 태도를 가만히 지켜보던 고월요왕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그 남자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한 걸까?
이때, 계옥탑 안에 잠잠히 있던 액난문이 부들부들 떨더니, 주변으로 붉은 뇌전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화가 난 모습이었다.
* * *
대황산맥 끝자락.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성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다름 아닌 엽현을 이곳에 데려온 바로 그 남자였다.
사실 그가 일부러 엽현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무공을 지도하는 것은 바로 청삼남 때문이었다.
우연이라지만, 그의 아들을 만났으니 그냥 지나칠 순 없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같이 다니다 보니, 엽현이 하는 짓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엽현은 하나를 가르쳐 주면 빠르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발전시킬 줄도 알았다.
그도 엽현이 성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처음으로 보람이란 걸 느끼고 있었다.
바로 이때, 생각에 잠긴 남자 앞에 또 다른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장포를 입은 상대는 양손을 뒤로 한 채로, 패도 넘치는 기운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혁련요왕(赫連妖王)!
혁련요왕은 십대요왕 중 무려 서열 이위의 강자였다.
혁련요왕이 먼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그동안 실력이 있는 검수 여럿을 만나보았지만, 그대와 같은 자는 본 기억이 없군.”
이때, 시선을 거둔 남자가 혁련요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지?”
“한 수 겨뤄 볼까?”
혁련요왕의 말에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너는 내 상대가 아니다.”
순간 혁련요왕의 표정이 굳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살면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우스운 소리로군! 하하하!”
혁련요왕은 남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보통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상대로부터 검수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거만한 말은 혁련요왕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
내 상대가 아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개무시를 당한 적이 있던가?
혁련요왕은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인간 검수. 네게 삼 초를 양보하지.”
삼 초!
무인들 사이에서 선공을 양보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남자 역시 의외라는 얼굴로 혁련요왕을 바라보았다.
“삼 초? 확실한가?”
혁련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부족하면 삼 초가 아니라 오 초라도 상관없다!”
이에 남자가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대답했다.
“모욕할 생각은 아니지만, 너는 내 검을 받아 내기에 많이 부족하다.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조용히 물러가거라.”
이 말에 혁련요왕 부들부들 떨더니 흉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본왕이 검을 뽑으라 하지 않았는가!”
이때, 남자의 검이 번뜩였다.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평범한 일검이었다.
남자가 검을 뽑은 이 순간, 혁련요왕이 눈을 부릅뜨더니 자리에 반쯤 웅크리고 주저앉아 양팔로 정면을 가로막았다.
순간, 그의 몸이 바위처럼 단단하게 변했다.
그가 이토록 자신감을 보인 이유는 그의 육신이 신경을 넘어선 영항경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대황산맥 전체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준이었다.
그러나,
쉭-!
은밀하게 날아든 검이 혁련요왕의 두 팔을 지나쳐, 그대로 그의 미간을 뚫고 지나갔다.
푸확-!
두 개의 팔이 하늘 높이 솟구치면서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혁련요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 말도 안 돼…….”
혁련요왕의 마음속에는 공포가 이미 극에 달한 상태였다.
자신의 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죽음뿐이었다.
혁련요왕이 덜덜 떨면서 남자를 쳐다보았다.
“너, 너는 대체 누구냐?”
“…검수. 죽음을 갈구하는 검수.”
나지막이 읊조린 남자가 문득 혁련요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부럽군. 이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니. 나는 죽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건만.”
“…….”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혁련요왕은 완전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의 영혼은 물론 시체조차 이 세상에서 지워져 버린 것이다.
단 일검으로.
* * *
대황산맥의 어느 협곡.
엽현은 고월요왕, 그리고 망산요왕과 여전히 대치 중이었다.
두 요왕은 엽현이 도망치지 못하게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혁련요왕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엽현은 천천히 몸을 치료했다.
엽현은 이미 남자를 찾아간 자가 죽었으리라는 것을 확신한 상태였다.
상대는 무려 청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초절정 고수가 아니던가!
성난 황소와 같던 액난문이 한순간에 순한 양이 돼 버린 것만 보아도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엽현은 당장이라도 몇 가지 꼼수를 이용해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오로지 검만 사용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어기고 싶진 않았다.
이때, 고월요왕이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를 본 망산요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러나?”
고월요왕이 하늘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혁련요왕과 연락이 전혀 닿지 않는다.”
“설마… 사고라도 생긴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군.”
이 말에 망산요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고월요왕은 다시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주 침착해 보이는군?”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나도 좀 당황스러웠어.”
“음?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그 신비인은 나에게 자기가 있다는 걸 왜 너희에게 알려 준 걸까?”
엽현의 질문에 고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가 널 죽이기 위해 우리를 이용했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글쎄, 네 생각은 어때?”
“…….”
고월요왕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이 문제는 그 역시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상대는 왜 굳이 엽현에게 자기가 있다는 걸 자신들에게 알려 줬을까?
당연히 자신들의 힘을 빌려 엽현을 죽일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상대는 왜 자신들의 힘을 빌리려 했을까?
그리고 눈앞에 이 남자의 신분은 과연 무엇일까?
고월요왕의 안색은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문득 이번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던 것이다.
혹시, 엄청난 일에 휘말려 버린 건 아닐까?
이 시각, 망산요왕이 남자의 앞에 나타났다.
남자가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보자 망산요왕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혁련요왕은 어디 있나?”
“…죽었다.”
이 말에 망산요왕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죽어?”
남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죽였다. 이 말인가?”
검수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망산요왕은 잠시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곧장 뒤돌아서 떠나갔다.
망산요왕은 남자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에게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망산요왕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월요왕 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검수가 혁련을 죽였다.”
혁련요왕이 죽었다!
고월요왕이 깜짝 놀라 망산요왕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게 사실인가?”
“아마도. 그자가 그렇게 말했다.”
고월요왕의 안색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그럼 시체는? 시체가 있었나?”
망산요왕이 고개를 저었다.
“그 검수의 실력은 어느 정도지?”
망산요왕이 재차 고개를 저었다.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파악조차 할 수 없다!
이 말에 고월요왕의 표정이 더욱더 일그러졌다.
혁련요왕은 십요왕 중 서열 이위의 강자, 게다가 육신의 경지가 영항경에 도달한 몇 안 되는 존재였다.
만약 혁련요왕이 죽은 게 사실이라면 그 검수의 실력은 자신들이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말이 된다.
고월요왕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네 놈은 도대체 누구냐!”
엽현은 세 치 혀로 상대를 무너뜨릴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검으로만 관문을 돌파해야 한다는 남자의 말을 떠올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헛소리는 작작하고 이제 슬슬 승부를 봐야지?”
“…….”
고월요왕은 기고만장해하는 엽현을 보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때, 그의 곁에 있던 망산요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놈! 뒤를 봐주는 자가 있다고 기고만장하는구나! 그렇다 하더라도 너 하나쯤은 본왕이…….”
“제발 말 좀 작작 해!”
엽현이 일갈을 터트리며 망산요왕을 향해 돌진했다.
쉭-!
자신을 향해 검광이 날아오는 것을 본 망산요왕이 포효했다.
“건방진 인간 놈!”
말을 마치기 무섭게, 망산요왕의 주먹이 검광을 향해 날아갔다.
콰쾅-!
검광이 터져 나가면서 엽현이 백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망산요왕의 신형 역시 수십 장 뒤로 미끄러졌다.
바로 이때, 어느 틈에 날아온 기검들이 망산요왕 근처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쾅…….
폭발이 연거푸 이어지는 가운데 망산요왕이 순식간에 백 장 밖으로 밀려났다.
이때, 망산요왕이 발을 구르며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쾅-!
이 일격에 비검들이 순식간에 정리됐다.
하지만 이 순간, 어느새 다가온 엽현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 휘둘렀다.
발검술!
한 줄기 검광이 공간을 양단하며 날아들었다.
이를 보자 망산요왕이 눈으로 살기를 내뿜으며 일권을 방출했다.
콰쾅-!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공간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엽현이 뒤로 튕겨 나갔다.
바로 이때, 칠흑으로 변해버린 공간에서 엄청난 위력의 폭발이 발생했다.
콰콰콰쾅…….
순간적으로 천 장 밖으로 날아간 망산요왕.
이때, 그의 육신은 처참할 정도로 찢겨진 상태였다.
한편, 재차 출수하려던 엽현이 뭔가 떠오른 듯 멈칫하더니 고월요왕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뭘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어? 너도 덤벼!”
순간, 고월요왕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인간, 기고만장하구나!”
“열 받아? 그럼 와서 죽여 보든가!”
“…….”
이때, 망산요왕이 소리쳤다.
“고월! 함께 놈의 주둥이를 찢어 버리자!”
망산요왕이 신형을 날리려는 이때, 고월요왕이 그를 향해 현기전음을 날렸다.
[망산, 진정하고 내 말 들어! 평범한 놈이 아니다! 저놈을 죽였다간 화가 닥칠 거야!] [하지만 저 기고만장하는 꼴을 보고 가만두고 볼 순 없잖아!] [놈이 왜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지 생각해 봐! 분명 놈의 배후가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천방지축으로 날뛸 순 없어!]망산요왕은 여전히 주먹을 부르르 떨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망산, 차분히 생각해야 한다. 저놈을 죽이면 분명 더 강한 녀석이 복수하러 올 거다. 그걸 막아 낸다 해도 그다음엔 또 누가 얼마나 몰려올지 모른다. 지금은 절대 경거망동할 때가 아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