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26
1527화 개무시
배후!
망산요왕은 침묵했다. 고월은 그 검수를 두려워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사실 망산요왕 또한 꺼림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혁련요왕이 그의 손에 죽은 게 확실하다면 자신들은 그 검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눈앞의 인간이 오만방자하게 날뛰는 꼴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때, 고월요왕이 말했다.
“망산, 잘 생각해 봐. 그 신비인이 왜 우리에게 자기에 대해 알려줬을까? 그건 분명 우리가 저 아이를 죽이길 바라서였을 거다. 혹은 우리와 저 녀석이 양패구상을 당했을 때 뒤에서 이익을 거두기 위함이었겠지.”
“흠… 듣고 보니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군.”
고월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자기가 좋아도 남의 꼭두각시가 될 순 없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간단해. 지금부터 관망하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행동에 나서야지.”
잠시 고민하던 망산요왕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하지.”
이때, 멀리서 엽현이 소리쳤다.
“무슨 잡담들을 그렇게 하시나? 싸울 거야 말 거야?”
이에 고월요왕이 웃으며 엽현을 향해 돌아섰다.
“네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깨달았다. 패배를 인정하지.”
“…….”
“그리고… 만약 정말로 수련을 하고 싶은 거라면 이 앞쪽에 있는 장산(葬山)에 가 보길 추천한다.”
엽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장산?”
고월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수련하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다.”
“거기에 뭐가 있지?”
“후후, 솔직히 말하자면 매우 커다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다만, 실력을 키우기엔 이만한 곳도 없지.”
엽현이 고월요왕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수상하군. 너희 둘이 동시에 공격한다면 나로서는 힘겨울 수밖에 없을 텐데… 이렇게 나오는 저의가 뭐지?”
고월요왕이 황망히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너는 충분히 강해. 그러니까 더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
“…그러지 말고 싸우자. 내 뒤에 정말로 아무도 없어!”
이에 고월요왕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아무렴, 아무도 없으시겠지.”
“…….”
이때, 곁에 있던 망산요왕이 대화에 참여했다.
“단련을 원한다면 장산으로 가거라. 그곳은 아직 어떤 인간도 발을 디디지 않은 곳이니까.”
엽현이 망산요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난 네 아들을 죽였는데? 그런데 정말로 이대로 보내 준다고?”
“아, 그래? 누구지? 자식이 만 명이 넘어가니까 누가 죽었는지도 모르겠군.”
이 말에 엽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때 고월요왕이 말했다.
“아무튼, 망산에 가고 싶거든 이 길로 쭉 두 시진 정도만 가면 도달할 수 있을 게다. 그럼, 무운을 빌지.”
이 말을 끝으로 고월요왕과 망산요왕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엽현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한참 잘 싸우다가 갑자기 꽁무니를 빼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엽현은 하는 수 없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물론 장산이었다.
요수들이 자신을 그리로 보내는 이유를 대략 짐작할 순 있었지만, 더 강한 적을 만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결국 실전 경험과 실력향상이기 때문이었다.
적은 강하면 강할수록 좋은 법!
엽현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월요왕과 망산요왕이 다시 원래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로 갈 줄이야…….”
“도대체 저놈의 정체가 뭘까?”
고월요왕의 말에 망산요왕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
“흠… 그나저나 혁련요왕은 정말로 죽은 듯하군. 아무리 연락을 취해 보려 해도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이 말에 망산요왕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나저나 그 신비인은 도대체…….”
고월요왕은 말을 아꼈다.
이때, 망산요왕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검수는 정말로 위험한 존재야. 조심해야 한다.”
검수!
고월요왕이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지금부터는 얌전히 지켜보기만 하는 게 좋겠어.”
* * *
이 시각, 엽현은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는 자신의 가장 큰 결점이 검의 파괴력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비록, 신경 급 육신에 상처를 낼 순 있게 됐지만, 이것만으로는 치명상을 입히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망산요왕과 같은 강자를 상대로 그의 승산은 기껏해야 사할 정도로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검은 상대의 단단한 육신을 뚫지 못하는 반면, 상대의 주먹은 단 한 방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때문에, 요왕들과의 전투는 매우 조심스레 접근해야만 했다.
백 번 공격을 적중시킨다 해도, 단 한 방에 전세가 완전히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엽현은 문득 지난날 강인했던 자신의 육신이 그리워졌다.
만약, 신경 급 육신이 있었더라면, 망산요왕 정도는 이미 자신의 발아래를 기고 있었을 테니까.
아니!
엽현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만약 강력한 육신이 있었더라면 검도가 이렇게 강력해질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육신에 의지하는 상태였다면, 검도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생각이 미치자 엽현은 씩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강력한 육신도 분명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결국 검도 경지의 향상이다.
비록 단단한 육신은 없지만, 그의 검도는 이미 정상 궤도에 올라선 상황이었다. 이때의 엽현은 어떤 적을 만나도 자신이 있었다.
장산!
엽현은 먼 곳을 응시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당장 싸우고 싶었다.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때, 계옥탑 안의 액난문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너무 찰나 간에 벌어진 일이라 엽현은 눈치채지 못했다.
* * *
어느 성역.
막념 등 세 여인은 여전히 온 우주를 휘젓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액난문의 자취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추적에 열중한 나머지 자신들이 어디에 와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때, 가장 앞서 있던 여인이 자리에 멈춰 섰다.
깊은 성공을 응시하는 그녀의 표정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공포!
그녀는 살면서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떨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액난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엽현 혼자는 물론, 자신들이 합세한다 하더라도 액난문을 막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엽현이 아직 살아 있을까?
그 대답은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웠다.
한편, 도의 표정 또한 매우 어두웠다. 사실 그녀 역시 여인과 마찬가지로 점점 두려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엽현의 실력으로는 절대 액난문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아직 살아 있어!”
이 목소리에 두 여인이 막념을 쳐다보았다.
막념이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그가 죽었더라면 우리가 아직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이 말을 듣자 도와 여인이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엽현이 죽었더라면, 천명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을까?
자신들은 엽현의 위치를 알지 못하지만, 그녀라면 분명 엽현의 기운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엽현이 죽었다면?
천명은 곧장 이 우주로 돌아와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다.
즉, 자신들에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까닭은 엽현이 생존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 생각이 들자, 여인과 도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이때, 막념이 말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러.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의 상황은 나빠질 거야. 그러니 빨리 찾아내야만 해. 만약 너무 늦게 발견한다면…….”
막념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액난지인!
세 여인의 안색은 다시 어두워졌다.
액난지인은 이미 천명을 멀리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 말해, 지금이야말로 엽현을 죽일 최적의 시기인 셈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여인은 머릿속에 온통 엽현에 대한 걱정뿐이라,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고민 끝에 막념이 대답했다.
“일단 이 방향으로 계속 나가 보는 수밖에. 우리와 그가 연락이 닿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거리가 멀기 때문일 수도 있어. 그러니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진다면 다시 연락을 취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여인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빨리 가자!”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여인이 먼저 신형을 날렸다.
도는 그런 여인을 보며 차가운 눈빛을 쏘아냈다.
“보면 볼수록 죽여 버리고 싶군.”
막념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지금 급선무는 복수가 아니라 엽현을 찾고 액난지인을 상대하는 일이오.”
액난지인!
이 말에 도의 표정이 다시 차분하게 변했다.
“그럼 갑시다! 이러다가 뒤처지겠소!”
막념이 먼저 신형을 날리자, 도가 바로 그 뒤를 쫓았다.
이윽고, 세 여인은 어두운 성공 안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 * *
대황산맥.
엽현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주변은 조용했고, 요수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풀벌레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지만, 장산에 가까이 갈수록 이마저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엽현은 장산이 보통 지역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물론, 이때의 엽현은 상대가 위험하고 강할수록 더욱 흥분됐다.
피 터지는 싸움이야말로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었으니까.
걸음을 빨리한 엽현은 어느덧 장산 부근에 이르렀다.
하나, 그는 한 쌍의 눈이 뒤편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걸 꿈에도 알지 못했다.
* * *
대황산맥이 끝나는 지점.
성공을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는 남자의 몸에는 몇 가닥의 붉은 선이 걸려 있었다.
조금 전, 엽현을 위해 출수하고 난 뒤 생겨난 액난인과선이었다.
물론, 전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액난인과선은 그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바로 이때, 액난인과선이 갑자기 검게 그을리더니, 어느 순간에 완전히 사라졌다.
이 장면을 본 검수의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스스로 사라졌다?
검수가 곧바로 대황산맥 깊숙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곧바로 엽현의 몸 안에 있는 액난문으로 향했다.
“불쾌하구나. 한참 액난지인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왜 걷어가는 것이냐? 다시 돌려놓거라!”
“…….”
액난문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남자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순간, 한 줄기 검의가 빛처럼 날아가 액난문을 휘감았다. 남자의 검의를 느낀 액난문은 자리에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때, 남자의 몸 주변에 붉은 실선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처음에 있던 것보다는 많이 줄어든 숫자였다.
“부족해! 더 줘! 아니, 다 줘!”
이때, 남자의 몸 주변에 십여 개의 액난인과선이 더 생성됐다.
남자는 그제야 편안해진 표정을 지으며 액난문에게서 시선을 뗐다.
계옥탑 안.
액난문은 조용히 구석에 쭈그려 앉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자신이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 본 적이 있던가!
명색이 액난문인데 이렇게 개무시 당하는 게 맞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