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27
1528화 지금이 딱 좋은데
한참을 이동한 엽현은 드디어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들자, 정면 수천 장쯤 떨어진 곳에 거대한 산 하나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을 뚫고서 우뚝 솟아 있는 산은 사방으로 음산한 기운을 풍겨내고 있었다.
장산!
눈앞의 산이 장산이라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저곳엔 뭐가 있을까?
엽현은 고민 없이 산을 향해 걸어 나갔다. 산으로 향하는 길은 사람 키만한 수풀이 우거져 걷기조차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람은커녕 요수들조차 찾지 않는 곳임이 분명했다.
엽현의 경계심은 점점 극에 달했다.
전투를 원한다고 해서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순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산허리에 도착한 엽현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계속됐다.
산꼭대기를 흘끔 쳐다본 그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길을 갈수록 엽현의 표정은 점점 딱딱하게 변했다.
왜냐하면, 도처에 시체들이 널려있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시체는 대부분 요수의 것이었는데, 간혹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것도 존재했다.
엽현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산 정상을 응시했다.
어떤 강력한 존재가 저곳에 있음이 분명했다.
이 생각이 든 엽현은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후, 마침내 산꼭대기에 도착한 엽현은 눈앞의 펼쳐진 광경에 온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산 중앙에는 진법으로 보이는 붉은 원이 쳐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이 사지가 쇠사슬에 묶인 채 앉아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녀 머리 위에 핏빛 장검이 둥둥 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검의 위쪽에는 붉고 굵은 글씨로 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罪(죄)
순간, 엽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이 광경이 다 뭐란 말인가?
바로 이때, 고개를 든 여인이 엽현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엽현은 비로소 여인의 용모를 볼 수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은 한 마디로 경국지색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단,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눈이었다.
두 눈이 있어야 할 그곳이 텅 비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현은 여인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엽현이 조심스레 여인에게 제안을 건넸다.
“거, 쉬는데 미안한데, 한 판 붙읍시다. 봐 주는 거 없이!”
순간, 여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꺼져라!”
쾅-!
순간, 그녀의 말이 하나의 음파(音波)가 되어 공간을 관통했다. 그러자 여인의 정면 수만 장 이내의 공간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하나의 거대한 흑동을 형성해 냈다.
이에 안색이 급변한 엽현이 서둘러 검을 뽑아 들었다.
찰나의 순간, 발검술과 검역이 동시에 펼쳐졌다.
공간을 가르며 세차게 날아간 검광은 거대한 기운에 의해 순식간에 삼켜졌고, 엽현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무려 수만 장 뒤로 튕겨 날아갔다.
자리에 겨우 멈춰 선 엽현은 수차례에 걸쳐 붉은 선혈을 토해냈다.
이때, 엽현이 불현듯 고개를 들자, 주변 십여만 장의 공간이 거미줄처럼 갈라져 있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엽현은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저런 무지막지한 여자가 또 있었단 말인가?
이때 다시 피를 한 바가지 쏟아 낸 엽현은 황급히 자리에 앉아 치료를 시작했다.
방금 전의 충돌에서 검역을 펼쳐내지 않았더라면 이만한 부상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상대는 너무나도 강했다.
얼마 전에 겨뤄 보았던 요왕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역시나 그 두 요왕이 이곳을 알려준 것은 결코 호의가 아니었다!
엽현은 대략 한 시진쯤 지나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켠 그는 천천히 장산 쪽을 향해 다시 움직였다.
두려움은 없었다. 오직 전의를 불태울 뿐.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는 맞는 게 좋아졌다.
맞고 맞다 보면 그만큼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결국 고통스런 순간을 이겨내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엽현이었다.
잠시 후, 산 정상에 도착한 엽현이 검을 빼 들고 여인을 향해 소리쳤다.
“나 엽현, 한 수 가르침을 청하는 바이오!”
가르침!
이 말에 여인이 가볍게 주먹을 쥐더니, 벼락같은 일권을 내질렀다. 일권이 방출된 순간, 그녀를 옥죄고 있던 쇠사슬이 요동침과 함께, 겨우 회복됐던 공간이 재차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이를 본 엽현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면서 크게 검을 휘둘렀다.
쉭-!
한 줄기 검광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갔다.
하지만 엽현의 표정은 금세 어둡게 변했다. 검광이 순식간에 흩어진데 이어 무형의 기운이 그를 멀리 튕겨 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수만 장 가까이 날아간 그가 지면에 발을 디딘 순간, 지면과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엽현이 튕겨 날아가던 이때, 그의 손안의 검이 은밀하게 사라졌다.
순살일검!
이 순간, 원 안의 여인이 한 손을 내밀자, 엽현의 검이 그녀의 손바닥 앞에 정지하더니,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 모습을 보자, 엽현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순살일검을 이렇게 쉽게 막아 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이때, 여인이 엽현을 쳐다보더니, 가볍게 소매를 펄럭였다.
쉭-!
한 줄기 검광이 마치 벼락처럼 공간을 관통하면서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 일검은 엽현의 순살일검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이에 엽현은 침착한 얼굴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뜻밖에 검이 점점 느려지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엽현의 손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이념공검(意念控劍)!
이는 정신적 교감을 통해 검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검을 회수한 엽현은 여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때, 그의 입가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교전도 여인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때, 여인이 엽현을 향해 검지를 까딱였다. 분명한 도발의 의사 표현이었다.
엽현은 소매로 거칠게 입가의 피를 닦아낸 후,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여인에게서 수십 장 거리까지 접근한 엽현은 주저하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찰나의 순간, 십여 개의 검광이 여인을 향해 동시에 날아들었다.
이에 여인이 가볍게 일장을 뻗었다.
쾅-!
검광들이 모조리 터져 나가면서 그림자 하나가 멀리 튕겨 나갔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역시나 엽현이었다.
엽현이 지면을 밟은 이때, 여인이 갑자기 손톱을 세워 거칠게 허공을 할퀴었다. 순간, 공간이 허물어지면서 강대한 기운이 엽현 앞에 순식간에 떨어졌다.
이를 본 엽현이 다급히 검역을 펼치면서 검을 휘둘렀다.
쾅-!
여인의 기운이 소멸함과 동시에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여인이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다시 출수할 자세를 갖췄다. 바로 이때, 무너진 공간에서 수만 자루의 기검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마치 소나기처럼 여인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여인은 갑자기 양손을 기이하게 교차했다.
수인이 완성된 순간, 그녀 앞의 공간이 마치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콰콰콰쾅…….
엄청난 수의 기검이 끊임없이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수인으로 완성된 공간은 단단한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기검은 모두 소진되었지만, 여인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
가히 물 샐 틈 없는 엄청난 수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를 보자 엽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얼마 만에 만난 강자란 말인가!
더 두고 볼 것 없이 엽현은 지면을 박차며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여인을 향해 날아갔다. 이때, 여인이 소매를 가볍게 펄럭였다.
빠각-!
찰나의 순간, 여인 앞쪽의 공간에 갑자기 균열이 일었다.
이를 본 엽현이 황급히 속도를 줄이며 일검을 휘둘렀다.
콰쾅-!
순간,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엽현이 수백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하지만 이도 잠시, 엽현은 곧바로 검광을 흩뿌리며 여인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엽현이 달려드는 걸 본 여인은 가볍게 한 손을 내밀었다. 찰나의 순간, 엽현의 검이 그녀의 손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때, 엽현의 왼손에 감춰져 있던 검이 여인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여인은 침착하게 붙잡고 있던 검을 끌어당겨 날아오는 검을 막았다.
쾅-!
검광이 흩날리면서 엽현이 뒤로 밀려났다. 이 순간, 한 자루 검이 소리 없이 여인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들었다.
순살일검!
이를 눈치챈 여인이 가볍게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해냈다. 여인을 지나친 검이 붉은 원 안에 들어간 순간, 갑자기 원이 요동치더니, 엄청난 힘으로 검을 수만 장 밖으로 튕겨 냈다.
여인은 더는 출수하지 않고 엽현을 응시했다.
멀리, 엽현이 손을 뻗자, 무상검이 그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무상검을 살펴본 엽현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 표면에서 여러 개의 균열을 발견했던 것이다.
엽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정면의 붉은 원을 바라보았다.
저 원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때,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죽고 싶으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어서 죽여주시오!”
이에 여인이 영손을 무릎 위에 얹으며 대답했다.
“그럼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나를 이 곤경에서 빠져나가게 해 준다면, 그땐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마.”
곤경!
“처음부터 거기 갇혀 있던 것이었소?”
“…네 눈은 장식품이더냐?”
“…….”
여인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안에 갇혀 있는 한 원래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만약 정말로 죽고 싶다면 나를 이곳에서 꺼내주면 된다.”
“음… 그대도 하기 힘든 걸 나라고 가능하겠소?”
“넌 가능하다.”
“음? 어째서?”
“왜냐하면, 너는 검수니까.”
엽현은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도통 이해가 안 되는구려. 내가 무슨 수로 그 결계를 파괴한단 말이오?”
이에 여인이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검을 가리켰다.
“먼저 주변에 있는 진법을 파괴하고 이 검을 쫓아 버리거라. 그럼 나는 여기서 탈출할 수 있다.”
엽현은 고개를 들어 여인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여인을 감시하듯 떠 있는 검은 피를 빚어 만든 듯 온통 붉은 빛을 띠었다.
“어쩔 테냐? 도와줄 생각이 있느냐?”
잠시 고민 끝에 엽현이 조용히 대답했다.
“사실… 정말로 죽고 싶은 마음은 없소.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상태가 딱 좋소. 지금의 그대는 아주 좋은 수련 상대요. 하지만 금제를 벗어나게 되면 그땐… 아무래도 수련이 되지 않을 것 같구려. 하하하…….”
“놈… 그렇다면 나를 가지고 논 것이란 말이냐?”
여인의 음성이 나직하게 울려 퍼진 순간,
콰쾅-!
장산 전체가 미친 듯이 요동치더니, 지진이라도 발생한 듯 지면이 쩍 갈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