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28
1529화 형한테 이른다?
여인의 외침은 장산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를 본 엽현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여인이 지금까지 보여 준 실력과는 완전히 딴판이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엽현은 항상 생각해 오던 의문을 떠올렸다.
왜 자신이 만나는 여인은 항상 이렇게 강한 걸까?
혹시 몸 어딘가에 강한 여인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라도 달려 있는 걸까?
바로 이때, 여인이 벌떡 일어나 엽현을 향해 섰다. 비록 눈은 존재하지 않지만 엽현은 여인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진정하시오. 나는 그저 가볍게 비무나 해 볼 생각이었소.”
“분명 네 입으로 죽여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 그건 맞지만 진심은 아니었소.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소? 변태가 아닌 이상. 하하하…….”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그런 소릴 지껄인 게냐?”
여인이 불같이 화를 내며 묻자 엽현이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일종의 각오를 표현한 말이었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소.”
이 말을 들은 여인이 비꼬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각오? 그것참 우습구나. 진정으로 단련을 하고자 한다면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여야 한다.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꽁무니를 내빼는데 어찌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느냐?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느냐?”
“…….”
“지금의 나는 너보다야 강하긴 하지만, 벼랑 끝까지 몰아붙일 순 없다. 이런 식으로 비무를 해서 얻는 게 있겠느냐?”
“솔직히 말하면, 그대를 풀어주면 날 때려죽이려 할까 무섭소.”
“정말 꼴불견이로구나. 방금은 죽여 달라고 해 놓고 이제는 죽는 게 두렵다니. 어찌 사내의 입이 이렇게도 가볍단 말이냐?”
엽현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확실히 여인이 하는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여인을 풀어준다면 자신이 죽을 확률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봉인이 풀린 여인이 얼마나 강할지 전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얼 망설이느냐? 아직도 두려운 게냐?”
“…….”
“흥! 검수의 마음속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있어선 안 된다. 지금 보니 너의 검도는 한참 모자란 것이 틀림없구나.”
“그대가 아무리 날 흔들어도 풀어 줄 생각은 전혀 없소.”
엽현의 말에 여인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이딴 식으로 천년만년 수련해 봐야 절대 강해질 수 없다.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려면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여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최소 백 년은 지금 경지에 머무를 것이다.”
대화의 흐름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엽현은 곧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왜 이곳에 갇혀 있게 된 것이오?”
“흥!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게냐? 그걸 네게 말해 줄 의무는…….”
여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 엽현이 뒤돌아서 떠나갔다.
검 자루를 쥐고 있는 게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를 상대로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었다.
이때, 여인의 다급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기다려!”
엽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멀쩡하게 잘 생겨 가지고 속은 왜 그리 좁은 게냐!”
이 말에 엽현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방금 무어라 했소?”
“속이 왜 그리 좁냐고 했다.”
“아니, 아니. 그 전에.”
“멀쩡하게 잘 생겨서?”
“그대가 보기에 내가 잘 생겼소?”
여인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내가 이제까지 본 남자들 중에서 괜찮은 축… 아, 아니… 그 누구보다도 빼어난 용모를 지녔다. 이, 이건 정말이다!”
이 말에 엽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구려. 어디 계속 대화를 해 봅시다.”
“후… 솔직히 말하자면 네 도움이 필요하다. 부디 이곳에서 날 꺼내 다오.”
“음… 계속해 보시오.”
“내 머리 위에 있는 검은 ‘천죄(天罪)’라 한다. 이곳 명하성역(冥河星域)에서 두 번째로 강한 검이지. 천죄는 죄악지력(罪惡之力)을 지니고 있는데, 만약 이 검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때,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어냈다.
“소저, 나는 외물에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오.”
엽현이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내게 필요한 건 한 자루 검뿐, 다른 건 크게 의미가 없소.”
이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척 내밀었다.
“대단해. 역시 내가 탄복한 검수답구나!”
이에 엽현이 코를 쓱 문지르며 말했다.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조금 전에는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소. 물론, 그대 역시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상태니 엄밀히 보면 우리 둘은 막상막하인 셈이오. 나 엽현과 동수를 이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대는 이미 훌륭하오!”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거라고?”
“물론이오!”
엽현이 뻔뻔하게 대답하자, 여인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살다 살다 이렇게 뻔뻔한 인간은 처음이었다.
“참, 아까 했던 질문이긴 한데… 어쩌다가 그곳에 갇혀버린 것이오?”
이 질문에 여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천가(天家)의 여식이다.”
“천…가?”
엽현의 표정을 본 여인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천가를 모르는 건 아니겠지?”
엽현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처음 듣는 이름이오.”
여인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도대체 어디서 왔기에 천가를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이때, 이번에는 엽현이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소?”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걸 어찌 알겠느냐?”
이때, 엽현이 갑자기 액난문을 밖으로 소환했다. 액난문을 본 순간, 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건…….”
여인은 액난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위험한 기운을 감지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액난문을 툭툭 건드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내 노예라 할 수 있소.”
노예!
이 말에 액난문이 발작하며 주변으로 혈광을 뿌려댔다.
그러자 엽현이 액난문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우리 형님께 일러바칠 거니까.]형님!
이 말 한마디에 액난문이 곧바로 잠잠해졌다.
엽현이 다시 여인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아보시겠소?”
“…전혀 모르겠다만.”
“아니, 액난계(厄難界)를 모른단 말이오?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이오?”
“액난계?”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액난계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소?”
“흠… 언젠가 기록에서 본 적이 있긴 하다만… 솔직히 안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말에 엽현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액난계의 소계주(少界主)요.”
순간, 발광하려는 액난문의 귓가에 엽현의 전음이 울려 퍼졌다.
[이른다?] […….]이때 여인이 물었다.
“그래서, 뭘 말하고자 하는 게냐?”
액난문을 다시 계옥탑으로 돌려보낸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별 의도는 없었소. 그저 나 역시 그대처럼 일반인은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
여인은 잠시 침묵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원한다면 네가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더… 높은 경지?”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시피, 나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이 상태로는 너를 극한까지 몰아붙이기 어려우니, 네가 한계를 초월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관찰한 결과, 네 검의 속도나 파괴력은 모두 한계지점에 이른 상태다. 여기서 단숨에 막힌 벽을 뚫기 위해서는 생사의 절경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할 거다. 물론, 죽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도전이기는 하다. 그러니 네가 새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는 온전히 네가 목숨을 걸 용기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엽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여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것은 바로, 생사 간의 극한을 통한 경지의 상승이었다.
여인의 말대로 엽현의 검은 속도나 힘 모두 막다른 길에 도달한 상태였다.
여기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단순한 수련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직 목숨을 걸고서 힘차게 돌진해야만 한계를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때 정말로 죽어버릴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연 여기서 도전을 해야 할까?
엽현은 심각한 얼굴로 장고에 들어갔다.
여인은 멀찌감치 서서 엽현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엽현이 갑자기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대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소.”
“…….”
엽현이 자조 섞인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대가 지적한 대로, 말로는 목숨을 건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소.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던 셈이오. 게다가 조금 전 그대와 싸울 때, 나는 이미 그대의 실력에 다소 겁을 먹은 상태였소. 다만, 그 사실을 직시하지 못했을 뿐…….”
엽현이 손안의 검을 응시하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난 겁쟁이였소.”
“그럼 결심했느냐?”
이 말에 엽현이 고개를 들어 여인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대를 구출하게 되면 그대에게 나쁜 인과가 묻을 수 있소. 그래도 상관없소?”
“상관없다. 그 어떤 인과라 해도 너와 내가 공동으로 부담하면 될 일이니까. 물론, 전제는 네가 겁먹고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하하하! 누가 무서워한다는 거요? 예전에는 최대한 인과를 피하려 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소. 어차피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오. 기왕 이렇게 된 거, 인과 몇 개쯤 늘어난다 해도 전혀 무섭지 않소!”
엽현이 천천히 여인 앞으로 다가왔다.
“약속 지키시오. 그대를 구해주면 그대도 날 도와주어야 하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여인이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이 검을 내게서 떨어뜨려 놓거라.”
“그게 전부요?”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은 눈앞의 혈검을 잠시 응시한 후,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검은 요지부동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마음으로 검을 통제해 보려 했건만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이 녀석… 꽤나 재미있는 검이군.”
여인 앞에서 체면을 구긴 엽현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엽현은 아예 공중으로 날아올라 검 앞에 똑바로 섰다. 이윽고, 검의 주변으로 검역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검이 갑자기 부르르 떨더니, 엽현을 향해 한 줄기 강대한 검기를 뿜어냈다.
콰쾅-!
공간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엽현이 백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엽현은 깜짝 놀라 검을 바라보았다.
검이 이렇게나 강하단 말인가?
이때, 여인이 말했다.
“검이 강한 게 아니다. 검 밑에 있는 진법 때문이다.”
이 말에 엽현이 여인의 발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붉은 원은 어느새 활성화되어 붉은 기운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먼저 이 진법을 파괴하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말이오?”
“그건… 네가 생각해내야 한다.”
진법을 파괴하라!
엽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저렇게 강한 여인이 어쩌지 못하는 진법을 자신이 무슨 수로 파괴한단 말인가?
바로 이때, 좋은 생각이 떠오른 엽현이 곧바로 액난문을 소환했다.
엽현은 액난문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여인을 구하면 분명 나쁜 인과가 생성될 게 뻔하다.
그렇다면 굳이 자신이 나서야 할 필요가 있을까?
여기 악한 인과의 대장 격인 액난문이 있는데?
액난문이 이 일을 대신 처리하게 하면, 자신은 인과에서 자유로울 게 아닌가!
엽현은 액난문을 붉은 원 앞에 내려놓았다.
“자, 이 진법을 파괴해줘!”
엽현의 말에도 액난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빨리 부숴. 안 그러면 ‘형님’에게 다 일러바칠 거다!] […….]